"선생님 덕분에 저도 한국어를 알아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습니다."
학기가 막바지에 다다를 때면 학생들이 수업을 들으면서 느낀 감정과 생각을 글로 써 보는 시간을 갖는다. 학기 내내 한국어 능력시험을 위한 글쓰기만 연습하다 보면 학생들의 마음도 나의 마음도 저마다의 이유로 답답하기 마련이다. 한 주에 길게는 6시간이라는 시간을 함께하지만 마흔 명, 학생 개개인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신경 써 주기란 참 힘든 일이다.
학생들의 진심이 담긴 글을 읽으면서 나 자신도 반성하고 배우고,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얻는다. 이 시간은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털어놓는 하나의 창구가 되기도 한다.
복습을 많이 했는데도 다른 친구들보다 한국어를 못 한다고 느낄 때, 시험 점수가 예상보다 좋지 않을 때 아주 힘들었다고 말한다. 한국어만으로 진행되는 수업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부분이 생각보다 적을 때 얼마나 그 기분이 참담할지는 나도 너무나 잘 알기에 대부분의 수업에서 되도록이면 천천히 말하려고 애쓴다. 천천히 말하고, 정확한 발음으로 이야기하면 보다 많은 학생들이 교사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 선생님이 하는 말을 잘 알아듣게 되면 자신감이 생긴다. 혹시 내 리스닝 실력이 늘었나 하는 기대감에 학생들의 눈빛이 빛나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그동안 쓰기 숙제 검사를 하면서 글을 잘 쓴 학생들에게는 'Very good'을 주었고, 나름 노력한 학생에게는 'Good'이라고 써 주었다. 이는 큰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숙제 검사를 완료했다는 표시이기도 했다. 그런데 학생들은 자신이 받은 'Good'의 숫자를 세고 있었다. 그리고 'Very good'을 받고 싶다고 수줍게 말하고 있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도 한다.
아무리 대학생이지만, 외국인 학생이 한국어를 이 정도로 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게다가 원고지 쓰기에 띄어쓰기까지 공부해야 한다. 태국어에는 띄어쓰기가 없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는 정말로 대단한 성과이다.
외국인으로서 한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끊임없는 의문의 연속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이라면 '선생님는 한국사람이에요'라는 문장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외국인에게는 받침이 없는 명사 뒤에는 '는', 받침이 있는 명사 뒤에는 '은'이 오게 된다는 문법을 공부해야 비로소 정확하게 말하고 쓸 수 있다.
목이 쉬어라 가르쳤는데도 학생들이 엉뚱한 대답을 할 때, 복습과 예습을 하라고 그렇게 일렀는데도 학생들의 책과 노트가 깨끗할 때면 치밀어오는 화를 참지 못하고 교실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 때가 있었다.
'얘들아 미안해. 너희들 덕분에 나는 오늘도 이만큼 성장했어.'
오늘도 나는 학생들 덕분에 감동하고, 반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