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태국 대학교에서의 첫 수업을 잊을 수가 없다.
3학년 수업이었는데, 마흔 명 학생들의 호기심 어린 눈동자가 모두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내가 조금만 가까이 다가갔다면 학생들은 쿵쾅대는 나의 심장 소리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모든 학생들의 이름과 얼굴을 빨리 외우고 싶어서 학생들의 페이스 북을 들락거리며 사진을 저장했고, 이름과 사진이 함께 저장된 나만의 출석부를 들여다보며 학생들의 얼굴과 이름을 익혔다. 수업 도입부에 해 줄 재미있는 이야기도 준비하고, 학생들이 지루할세라 수업시간 틈틈이 할 수 있는 게임과 활동도 밤새 준비했다.
학생들은 내가 하는 말 하나하나에 귀 기울여 집중했고, 별 것 아닌 농담에도 미소를 지었다. 물론 결석도 지각도 없이 수업 5분 전부터 교실에 옹기종기 모여 나를 기다렸다.
그렇게 수업을 마치고 구름다리를 건너 인문대 건물로 걸어오다 보면 마침 다른 수업을 끝내고 오는 2학년 학생들을 마주치게 된다. 모두들 나에게 수줍게 인사하며 말을 걸었고, 내 수업을 수강하지 않는 1학년 학생들은 나와 인사라도 나누고 싶은 눈치로 서성였다. 그렇다.. 나는 한국어학과의 유일한 외국인 강사였던 것이다.
"아.. 외국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것이 이런 거였구나.."
나는 마치 셀럽이라도 돼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아침에 출근할 때면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도서관에 들어설 때나 학교 식당에서 접시만 들고 서 있어도 학생들 모두 나를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일부러 학생들이 타는 교내 순환 버스를 타기도 했고, 도서관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학생들을 마주치면 음료도 사주곤 했다.
아마 이 '외국인 강사 효과'는 약 3주 정도 지속되었던 것 같다.
나는 바뀌지 않았는데 학생들은 점차 시들해져 갔다. 수업시간에 조는 학생도 있고, 지각과 결석을 하는 학생들도 생겼다. 출석을 부를 때마다 나는 배신감마저 들었다.
"아니, 내 수업에 어떻게 안 올 수가 있지? 이렇게 재미있는 수업에 말이야."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노트북과 소지품을 챙긴 후 고개를 들어보니 텅 빈 불 꺼진 교실에 나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에너지 절약에 투철한 학생이 에어컨 스위치도 야무지게 내리고 떠났다.
그때서야 나는 깨달았다. 내가 학생들을 짝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무리 아이스크림을 사주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로 학생들과의 거리를 좁혀도 나는 그들에게 선생님이었다. 나중에 학생들에게서 듣자 하니 '친절한 선생님', '착한 선생님'으로 불렸다고 한다.
한국어 강사가 되었다는 기쁨과 사명감에 취해 깨어있는 모든 시간 동안 학생들을 생각했다. 수업 준비에 오랜 시간을 투자했고, 학생들을 부추겨 주중에는 한국 드라마 스터디 그룹을, 주말에는 한국어 능력시험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계속 학생들을 만났다.
일과 학생들 그리고 내 사생활을 분리하기까지 조금의 시간이 더 걸렸던 것 같다.
아니, 사실 그 짝사랑은 아직도 끝내지 못했다.
오늘도 수업을 마치고 케이블과 노트북을 주섬 주섬 정리하면서 나는 기대와 생각에 차 있다.
어떤 열정적인 학생이 질문을 하려고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나와 커피라도 마시면서 고민 상담을 하고 싶어 하는 학생이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아마 이 구질구질한 짝사랑이 끝날 때쯤 야말로 교사로서의 나의 열정도 식은 때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