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미(週末意味)

주말의미(週末의美)

by OIM

주말에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할까. 7일 구간으로 생활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직장이 있다면 대체로 5일 일하고 2일 쉰다. 그러니 2일은 나머지 5일과 다르게 보낼 것이라 기대하기 쉽다. 직장이 없던 대학 시절까지만 해도 주말은 수업이 없는 날, 그러니까 공강 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게임을 하거나 티브이를 보고, 책을 읽거나 잠을 자며 시간을 보냈다. 딱히 주말이란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도, 의미도 없었단 말.


직장인이 되면서 주말을 인식했다. 의미가 생겼고 더불어 소중해졌다. 시간과 행동이 제약되는 나날을 보내다 보니 '주말만큼은' 같은 생각이 싹텄다. 월요일을 미워하기 시작했고, 목요일을 기다렸으며 금요일 오전부턴 다소 설렘도 가졌다. 주말을, 보장받아야 할 생의 작은 부분으로 여기며 48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도 해봤다. 대체로 고민은 뚜렷한 성과를 내지 않은 채 끝이 났지만 그 과정은 몇 번이고 반복됐다.


기자가 되면서 주말에 대한 생각이 또 한 번 달라진다. 작은 매체에 있을 때부터 밤낮없이 일했다. 오전 8시 30분까지 출근해서 오후 10시나 11시가 넘어 퇴근했다. 지방 출장을 가거나 기획취재에 들어가면 근무시간은 훨씬 늘어났다. 정신적으로 또 신체적으로 부담이 가중됐다. 쉬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생활패턴에 돌입했고, 주말은 다음 주를 위한 충전 시간으로 보내야 했다. 어떤 의미에서 더욱 간절해졌다.


공채로 조금 큰 매체에 가자 수습기자 생활을 시켰다. 영향력 증대에 따른 책임감을 기르라는 의미였을까. 오전 8시까지 출근해 오후 11시쯤 일을 마칠 수 있었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오후 9시쯤 마치기도 했다. 그런 날은 회사를 나서며 '일찍 마쳤으니 여유라도 부려볼까' 하곤 퇴근길에 괜히 커피를 마셨다. 출퇴근 시간까지 합하면 내가 회사를 위해 쓰지 않는 시간은 대략 자정쯤부터 오전 6시까지였다. 그마저 씻고 나면 채 6시간이 안 되기도 했다. 경찰서 수습 기간은 뭐, 하루에 공식적으로만 20시간씩 일하던 때니 제외하자. 이땐 주 1일 쉬었는데, 주말에 자거나 집안일을 하지 않으면 생활을 유지할 수 없던 시간이었다.


요즘은 비교적 주말을 보장받는 편이다. 대략 3주에 한 번씩 주말 근무가 있는데 수당이 나오니 최악은 아니다. 주변 많은 이들의 말처럼 안 하고 안 받는 게 최고지만 사진기자가 몇 없으니 할 수 없다. 어제도 일하고 왔다. 마감한다고 새벽까지 일했더니 토요일의 절반 정도가 사라졌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쉬어야 할 시간에 일을 한다는 게 반갑지만은 않다. 연말연시엔 이 바닥 일이 다 그렇다는 말을 격언처럼 읊조리면 받아들이기 조금 수월해지려나.


간혹 일이 있는 주말엔 온전히 쉬지도, 놀지도 못한다. 잘하는 사람들은 시간을 쪼개서라도 잘 놀더라만 나는 그게 잘 안 된다. 무엇보다 금요일처럼 영하 10도 안팎에 하루 종일 걷고 다음날 또 일을 하면 체력적으로 부하가 걸린다. 일과 일 사이에 원래 컨디션을 찾지 않으면 그다음 날도 쉬어야 한다. '쉬는 날'을 '쉬어야 하는 날'로 만드는 마법 같은 업무강도랄까. 그래서 조금 전까지 쉬다가 일어나 글을 쓴다. 머리도 깎고 손발톱도 다듬고, 일과 무관하게 커피도 한 잔 하는 중이다.



181227, 누가 신촌에 애국당 뿌렸나. 애국당xBoots 콜라보.

그러고 보니 새로 만든 '하루 한 장' 코너에 사진을 빼먹었다. 우격다짐으로 어제 사진을 오늘 올리면 아주 '펑크'난 건 아니라며 자위 중이지만 사실상 원래 취지에선 마감을 어긴 셈이다. 하루에 한 장은 꼭 올리려고 했는데 금요일엔 업무강도가 과해 집에 오니 녹초가 됐다. 찬 데 있었더니 몸에서 열도 나고 여러모로 고단해 올려야지 하다가 잠들어버렸다. (요즘 랩탑을 이불 머리맡에 둔 이유도 한몫한다.) 물론 지역 출장 가면서 쉽사리 올릴 사진을 찾지 못한 탓도 있다.


오늘은 어제 사진을 올릴 예정이다. 가능하면 그날그날 마감할 테지만 시간을 놓치는 일이 있어도 하루 한 장은 맞출 계획이다. 매거진을 일종의 의무로 정착시켜 두면 기타 여건 속에서도 이룰 수 있는 무엇인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꾸준함이란 건 생각보다 갖추기 어려워서, 30년 하고도 절반 가까이 살아왔지만 자문하면 결국 대답이 궁해진다. 사진을 계속하기로 한 이상 안목과 실력은 발전을 거듭해야 하고, 이럴 때일수록 피드백은 소중해진다. 누군가 피드백을 남겨주면 좋겠지만 그건 그것대로, 업로드는 업로드대로 중요하다.


최근 며칠 동안 "사진 좀 늘었다"는 말을 두 사람에게 들었다. 나도 그날 찍은 사진에 만족할 때가 있지만 같은 현장에 간 타사 선배들의 사진을 보기 전까지, 딱 그때까지 일 경우가 많다. 같은 피사체를 다른 사람과 동시에 찍게 되면 아무래도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 이때 선배들의 사진을 보는 건 좋은 공부가 된다. 그렇게 사진을 배우고 익힌다. 하지만 이 과정에 받는 패배감은 피하기 어렵다. 나름 선방했다고 여기다가도 더 나은 사진을 보고 나면 금방 시든다. 배울 사람이 있다는 건 낙관적이나 언제까지고 등을 쫓아선 곤란하다.


그 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취하는 '뽕'일 수도 있고 조금 닭살 돋는 말일 수도 있는데 예전에 그런 말을 들었다. 사진이란 게 결국 대상을 보여주는 자신의 시선이고, 연속된 현상에서 어떤 순간의 어떤 부분을 보여줄지 결정하는 건 사진기자의 역량에 달렸다고 누가 그랬다. 그런 면에서 취재기자가 자료나 사실을 취사선택해 기사의 줄기를 엮는 것과 같이 사진기자도 그런 역할을 요구받는다. 나는 요즘 포토 기사를 쓰면서 내가 찍은 사진이 그날 현장을 온전히 전할 수 있는지 늘 궁금하다.


일요일 밤에 이런 생각이나 하고, 나도 참 글렀다:(







181228, 세종시


*연말단상: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면 나이를 먹는 행위가 온당해지는 게 아닐까' 상대적으로 더 많은 날을 살면서 삶의 충실도를 통해 자신을, 사람을 평가하려던 적이 있었다. 그런 강박을 시선에 담으면 행동거지에 기준이 생긴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반대로 자신을 포함한 인간관계가 일순 배타적으로 변한다. 내가 '새해엔 더 나은 내가 되자'는 다짐을 놓은 것도 그런 자각이 생긴 이후다. 21살의 나와 34살의 나, 52살의 나는 어떻게 다른가. 결국 나는 나고 변하는 건 주변 환경인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새해 떡국이나 얼른 먹었으면 좋겠다. 대파 송송, 지단 송송 썰어 입천장이 델 정도로 뜨거운 떡국으로. 새해는 그런 데서 밝아온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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