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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IM May 15. 2023

그만하자

여기서 끝내자

먹고 자고 먹고 잤더니 얼굴이 부었다. 안경다리가 측면에 끼어 살을 짓누른다. 정돈되지 않은 날들이 제멋대로 쌓인 것처럼 살집을 이뤘다. 주변부도, 생각도 요즘 좀 정신없다.


컵홀더 보려고 커피 마시는 듯.


그런 날들의 연속이다. 밥은 사 먹기 일쑤고, 먹으면 그대로 어지른다. 집안에 공간이 있다는 건 한 번 더 어지를 수 있다는 의미이고, 그 기회를 나는 놓치지 않는다. 집안은 난장판, 마치 내 모니터 화면과 같다.


정신상태는 대체로 생활에 나타난다. 출근하면 마주하는 모니터 화면의 상태는 흡사 공통분모 없는 사물들로 테트리스를 하는 모습이다. 켜켜이 쌓인 파일들에선 질서를 찾을 수 없다. 화면이 꽉 차는 대로 폴더를 만들어 한 번에 때려 박는다. 그런 폴더가 어느새 4개째.


이런 가운데 '기자 좀 안 할래요 이제' 했더니 법적 유예기간 한 달을 끌고 온다. 그래서 다니는 와중에 각종 사건이 벌어진다. 막달은 늘 길지만 이번 달은 유독 길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매일이 모험이다.


얼마 전엔 다른 부서에서 퇴사하지 말고 부서 이동을 하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편집국에서 비편집국으로 가는 거다. 기자를 그만두는 과정이야 어찌 됐든 사실 이 자체로 이직에 가깝다. 즉답은 하지 않았다.


얼마 안 가 이번엔 부서장 제의를 받았다. 마음대로 부서를 운영해 보라는 독려와 함께다. 


하지만 애초에 내가 이 조직을 탈출해야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나태하고 무능력한 이를 1년 넘게 관리자들이 방관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권한을 주겠다는 말이 달갑게 들릴 리 없다. 


조직 내부에 불거진 불통 문제와 치우기 힘든 똥을 나로 하여금 긁어내겠다는 것일까. 당연히 거절했다. 


아울러 성과만 나면 무얼 해도 상관없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는데, 드림팀으로도 성공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게 (새롭게) 시작하는 조직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회자될 정도로 갖은 문제를 안고 있는 인력을 데리고 성과를 내는 건 어불성설 아닌가.


더군다나 할 수 있는 이가 하는 게 당연하다는 식의 조직문화에는 정나미가 떨어진다. 이런 형상이 만성화되면 더 이상 문제의식마저 못 느낀다. 늘 하던 사람이 불만을 제기했을 때 '이게 왜 이래?' 정도의 속된 반응이 나올 뿐.


그런 이유로 날을 받아놓고 취재를 나가다 보니 취재원과 인사도 덜 나누고 가급적 명함도 안 쓰려한다. 얼마 전 국회 세미나에 갔더니 1명 빼고 모든 패널이 아는 사람이더라. 이렇게 뛰어 봤자 남는 게 무엇인가 생각하면 기사를 쓰다가도 뒷골이 싸하다.


다니며 느낀 문제를 나열하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무사히 벗어나는 것이 지금은 급선무다. 퇴사하는 날까지 핀잔을 들으며 기사를 치다 갔다는 어느 전임자의 얘기처럼 나도 편안하게 나가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왜 한 달을 묶어놨는지는 지금도 의아하다.


인수인계자를 뽑는 것도 아니고 무슨 작업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법적으로 한 달..." 했을 때는 반박하려는 의지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내려갔다. 나이를 먹으면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이야기를 조금씩 믿어보려 하지만 웃는 낯에 쓴소리를 들으면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싶어 진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오래된 사실은 아마 '회사는 회사'라는 평범한 깨달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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