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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IM Jun 02. 2023

이웃과 동료, 그 위험한 확률게임에 대하여

'생의 뗄 수 없는 난제'로 인한 고통엔 질병코드를 부여해야 하지 않을까

아주머니는 고양이를 부르고, 고양이는 부르지 않았는데 나를 따라오고, 나는 "줄게 없다"라며 손사래 쳤다. 이 불안정한 애정이 누군가에겐 위안이라는 사실을 너도 알아줬으면 좋겠다.


사람이란 건 어렵다. 달리 말하면 관계겠지. 오늘(1일)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근 4개월간 말을 섞지 않던 직원과 관련해서다. 결론부터 말하면 속은 후련하다. 근 1년을 참았기 때문이다. 배경은 이러하다.


하지만 애초에 내가 이 조직을 탈출해야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나태하고 무능력한 이를 1년 넘게 관리자들이 방관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권한을 주겠다는 말이 달갑게 들릴 리 없다.


갈등의 대상은 얼마 전 적었던 글의 주인공이다. 이해를 위해 "심하다 싶을 정도"의 사례를 든다. 약 9개 월간 기억나는 지각만 해도 20회는 넘는다. 심할 땐 주 5일 중 4일 연속 지각할 때도 있다. 말없이 지각할 때도 있으니 실 사례는 기억보다 많은 편이다.


잔다. 조는 건가. 근무 시간에 자리에서 엎드려 자거나 의자에 기대 잔다. 잔다고 몇 번 데스크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해 내가 깨운 적이 있다. 자리에서 자는 횟수는 지각보다 많다. 월요일은 거의 '반드시'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한동안 매주 잤다.


취재를 안(못) 한다. 시키지 않으면 일을 안 한다. 출입처에 전화를 돌리거나 동향을 파악하는 일도 드물다. '드물다'라고 표현할 정도라도 하는지 모르겠다. 현장 취재 땐 취재원에게 멘트도 잘 못 딴다. 그리고 안 딴다. 출입처에선 딱히 정보를 물어오는 일이 없다. 타사(경쟁사)에게 허구한 날 물먹는다. 추가 취재도 없다. 그러다 보니 회의 때 보고하는 일정이 늘 출입처의 정기 행사나 기자회견 정도에 그친다. (출입처에 보고할) 일정이 없어 회의 준비를 안 했다는 말도 한다. 단기가 아니라 1년 넘게 이어진 일이다.


상식을 벗어난다. 본인이 쓴 기사의 사실관계가 맞냐고 물어보면 "그렇지 않을까요?"라고 답한다. 멘트를 따라고 하면 "연락처가 없는데요"라는 말도 한다. 추가 취재를 시키면 "(오후) 6시 넘었는데요"라는 말도 한다. 때론 "(오후 6시 넘었는데=취재원 퇴근시간 지났는데) 지금요?"라고도 한다. 학술대회 일정은 하루에 세미나가 여러 개라서 당일 마감은 힘들어 못 할 것 같다는 말을 한다. 하라는 데스크의 지시에 "(기록해 놨다가) 다음 주에 하나씩 (마감)하면 안 될까요?"라는 제안을 한다.


끝이 아니다. 본인이 지역 출장을 가려면 이른 시간에 움직여야 해서 힘들지 않겠냐는 얘기도 기억에 남는다. 출장비는 같은 기간 다른 사람의 2배 정도 지출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행사나 기자회견 기사를 쓸 때면 "기자가 열 명이면 열 가지 다른 기사가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한다. 타사 기자들이 짚은 '야마'와 혼자 동떨어진 주제로 기사를 써서 데스크가 지적하자 한다는 말이다. 이런 주장이 한두 번은 아니다.


대게 언론사에서 하지 않는 일들을 골라한다. 다른 사람 출입처 아이템을 발제한다. 그래놓고 손도 못 대서 기사가 떠밀려 오는 일도 있었다. 정작 자기 출입처 아이템은 보고도 못 하면서 이런 짓을 한다. 2일 날 한 국회의원이 발언한 내용을 기록해 달라 했더니 1일 날 했던 발언을 주기도 했다. 현장 취재를 가겠다고 했다가 늦게 가서 못 들어간 적도 있다. 현장 워딩을 넘기라고 했더니 마음대로 특정 인물의 워딩을 누락했다가 그마저 누락했다는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가 데스크에게 들킨 적도 있다. 현장 사진은 말해 뭐 할까.


이 모든 게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이번에 알았다. 언론계에 발 들인 후 이런 인물은 처음이다. 이러면서 데스크가 잘못을 지적하면 "아, 그래요?"라고 하거나 추가 취재를 못 하곤 "전화를 안 받는데 어떻게 합니까" 또는 "취재가 안 되니까 (공식 발표를) 기다릴 수밖에 없죠"라는 얘길 한다. 하지만 타사는 관련 내용으로 기사를 냈다. 이를테면 '나는 제대로 하고 있는데 왜 뭐라고 하느냐'는 식이다. 그러면서 회사의 요구 수준이 과한 거라고 주장한다. 취재원에게 정보 하나 못 얻어오는 관계는 잘못됐다고 입모아 말해도 "그렇지 않다"라고 부정한다.


지금까지 읽은 분들은 놀라움 반, 분량이 길어 지침 반 정도의 기분일 거다. 언론사에 근무해 본 적 있는 분들은 아마 압도적으로 놀라운 비중이 높을 거다. 왜 이렇게 구구절절 배경을 깔았냐면, 마침내 이런 부분에 대해 회사에서 지적을 했더니 보인 반응이 기함할 정도로 난센스라 그렇다.


이 사람은 자신의 근무 태도에 대한 지적에 얼굴까지 상기돼서 왜 본인에게만 말(지적)하냐고 반발했다. 본인이 자거나 앉아서 시간 때울 때 취재원 만나고 '오프'로 해주는 정보 모아 오고 출입처 외 자료들까지 보고하던 나를 앞에 두고 저 얘길 상급자에게 했다. 지난한 시간 이어진 본인의 행동에 문제의식 자체가 없는 거다.


이런 사람의 사고구조를 확인한 뒤 기어코 내 입에서 4개 월여 만에 말이 튀어나왔다. 당연히 살가운 말은 아니다. 저 치의 반응이 어이없어서. 그 뻔뻔함에 화도 났다. 예컨대 본인을 지적할 정도로 자신의 잘못을 증명할 수 있느냐는 취지의 얘기를 했다. 그 대응에 '이 사람은 업무에 미숙한 게 아니라 사람이 못됐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 정도로 끝이면 다행이게. 내 발언에 맞대응하다가 갑자기 본인이 위협을 느꼈다며 기록하겠다고 덧붙였다. 먼 옛날 아는 형이 "진상을 상대하려면 진상보다 더한 진상이 돼야 한다"는 얘길 한 적이 있는데 바닥이 보이지 않는 이와 다투려면 어디까지 내려가야 할까. 그런 불필요한 고민이 퇴근길을 채웠다. 소모적 이게도.


운동으로 화를 누르고 온 지금은 두 가지 생각 정도가 지배적이다. '역시 이런 꼴 보기 전에 그만뒀어야 하는데'라는 생각과 '무탈한 관계란 대게 한쪽의 일방적 인내에 의해 유지되는 게 아닌지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라는 생각. 누구에게 전할 것도, 마음에 새길 것도 아닌 생각이지만 풍선처럼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게, 오늘 잠은 다 잤나 싶고.


역시 세상은 넓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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