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몸살이란 게

이런 느낌, 이런 기분

by OIM
KakaoTalk_20180210_231029632.jpg 집 앞, 연희동.


- 몸살 걸렸다. 출근길 몸이 으슬으슬한 것이 설마 했는데 맞는 듯하다. 단순히 '조금 추운데?' 정도로 치부한 상태가 회사에 도달하자 춥고 아픈 상태로 변했다. 약국에서 약을 사 먹고 편의점에서 핫팩을 구해 외투 안주머니에 넣었다. 좌우 심실이 뜨끈한데 여전히 춥다. 뭐랄까. 몸 앞쪽은 더운데 팔꿈치부터 등까지 이어지는 라인을 타고 엉덩이, 다리 등 신체 후면부는 추운 느낌이랄까. 묘한 기분인데 몸살과 겹쳐 언짢다. 전화 올 때 폰에서 울리는 진동을 신체에 적용해 같은 속도로 한동안 떨어댄다면 이런 근육통이 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프다. 몸살 경험이 적어 정확한 표현이 어렵지만 마찰면이 넓은 고무망치로 몸을 잘근잘근 다지는 느낌의 고통이다.


몸살 증상을 찾다가 관련 검색에 '노로바이러스'가 보였다. 발열, 구토, 근육통, 복통 등 다양한 증상을 동반한단다. 무엇보다 고통스럽다고. 경험자들의 말에 따르면 급성 맹장염 다음으로 아팠다고 하니 어지간히 아픈가 보다. 나도 노로일까 봐 살펴봤다. 증상 차가 있었다. 다행이라 생각하며 이 글 쓴다.



- 제주 게하를 이용한 여성이 살해됐다. 교살 흔적이 있는 걸 보면 타살이 맞을 테다. 창창한 나이에 타지에서 죽음을 맞이할 줄 누가 알았겠나. 한때 지친 일상에서 도피하고 싶으면 대안으로 떠올랐던 섬 제주가 이제는 흉흉한 소문으로 설렘을 가린다. 한밤 중에 빛 쨍한 도심지와 달리 섬만이 가질 수 있는 기대와 안식이 있었는데 그마저 못하게 된다면 무엇으로 보상받나.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날 때마다 세상 모든 길흉이 내 일 같지 않다가도 어느 순간 내 흉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아 어찌 사나 싶다. 특히나 여자들은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공포에 대한 체감도가 눈에 띄게 오르겠지.


3년 전만 해도 말이다. 내가 제주를 찾아 혼자서 게하를 돌아다니던 그때, 그러니까 지인의 결혼식을 위해 제주를 찾았을 때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을 그만두고 쉬고 있을 때라 평일에 제주를 찾았다. 결혼식은 그 주 토요일. 월요일 밤에 제주에 떨어진 뒤 금요일까지 매일 다른 숙소에서 묵었다. 그날그날 즉흥적으로 예약하며 장소를 물색했다. 스쿠터도, 차도 빌리지 않고 버스를 타고 걸으며 제주를 즐기던 그때는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곤 생각 못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나는 경계심이 적었고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내 몸 하나는 건사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런 생각으로 제주를 돌아다니며 처음 만난 사람과 이야기도 나누고 나름 섬을 즐겼다.


한동안 제주 감상에 포커스를 맞춘 채 조용한 곳에서 묵었다. 저렴하고 조용할 것. 그 정도면 좋았다. 그러다 마음이 바뀌어 결혼식 전 날엔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한다는 분위기 좋은 게하를 찾았다. 바다가 바로 앞에 있었고 통유리로 들어오는 일몰이 기가 막힌 곳이었다. 그날 숙소를 찾은 사람들은 직사각형 테이블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으며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눴다.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큰소리가 나오는 법도 없었으며 피곤한 사람은 일찍 들어갔다.


저마다의 화제로 꽃을 피울 무렵 시간은 자정에 가까워졌다. 쉬는 이들을 위해 자리를 파하기로 하고 이야기를 더 할 사람들은 바닷가로 나가거나 외출을 하기로 했는데 내게도 바닷가에서 이야기 좀 더 하지 않겠냐는 제안이 있었다. 당시 나는 기자 지망생이었고, 그 사람은 작가 지망생이었다. 동년배였고, 여자였다. 제주에서 게하 직원으로 일하며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좀 더 이야기를 나눌까 싶어 밖으로 향했지만 밤바람은 말소리를 묻을 만큼 거세게 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모르는 사람과 동일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사실이 즐거웠던 것 같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무슨 소설 같은 이야기를 하는 듯하지만 이번 일을 보면 좀 더 주의가 필요한 일이었나 싶다. 제주에마저 경계와 의심을 챙겨가야 한다니, 이제 좀 슬플 지경이다.




- 얼마 전 취재 후기로 남기려 한 미세먼지 이야기가 있다. 기사를 쓴 뒤 좀 더 쉽게 정리해서 내용을 풀어보려 했다. 참석했던 포럼에서 발제자로 나섰던 한 교수님의 강의가 주된 내용이다. 말로 풀어 설명할 땐 쉬웠는데 글로 적었더니 중언부언됐다. 기사부터가 그렇다. 그래서 후기를 쓸 수 없어 아쉬움을 남긴다.


기사는 그렇다. 교수님께 배울 때부터 기사 쓰기는 취재한 내용 가운데 무엇을 버릴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라 들었다. 기본적인 일을 이번에 망쳤다. 선택과 집중에 실패해 내용을 시멘트처럼 갖다 발랐다. 중심 내용이 없고 강의 기록이 돼 버렸다. 문득 내가 일하러 갔는지 수업 들으러 갔는지 헷갈렸다. 기사를 보니 반성이 절로 됐다.


원래 기사만 완성한 뒤 교수님께 친구 신청을 하려 했다. 분야의 전문가는 늘 좋은 스승이다. 그러나 기사를 워낙 개판 쳐서 기사 보여달라고 할까 봐 '쪽팔려서' 신청 못했다. 돈 받고 글 쓰는 주제에 '오랜만'이라고 변명하기엔 궁색하다. 주말 동안 자기합리화 과정에 들어갔다. 나름의 위안을 찾아야 했다.


주가 바뀌고 월요일이 왔다. 개판 친 기사는 마음 한쪽에 밀어 두고 교수님께 친구 신청을 걸었다. 공손히 사유도 말씀드리고 인사도 했다. 흔쾌히 받아주셨다. 감사한 일이다.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어 그동안 눈여겨보던 일이 이번 일을 계기로 좀 더 적극적으로 기사를 쓸 수 있게 이어졌으면 좋겠다. 어렵지만 말이다.



KakaoTalk_20180211_205053817.jpg 적당한 크기, 적당한 커피.


- 계획을 세우면 안 한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 같은 건 아니더라도 실패하는 사람을 위한 최단기 코스는 밟지 말아야 한다. 그런 불안이 인생 중반에 접어드는 지금 슬그머니 피어올랐다. 그래서 손본다.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기록하거나 해야 하는 일들을 수첩에 적어두고 해치울 때마다 줄을 긋든 동그라미를 치든 기록해야겠다. 지금처럼 계획을 세우고 안 하면 계획을 세우는 시간의 즐거움을 제외할 때 남는 건 하나도 없지 않은가. 사실 카카오 채널인가 어디서 책을 빌리는 것만으로 만족해버리는 건 최악의 습관이라는 내용의 짤을 본 듯하다. 영화의 한 장면이었던 것 같은데 얼추 "계획만으로 만족해버리는 네 녀석은 쓰레기야" 같은 대사를 누군가 주인공에게 날렸다. 주인공은 자살을 결심하다가 그마저 실패해 생을 연명하는 젊은 이였다. 이 정도로 기억이 나지만 정작 영화가 생각이 안 난다.




- 의식의 흐름대로 쓰다 보니 영화 계획 하나 쓴다. 목요일 아침에 울산행 버스를 타야 하니까 수요일 심야 영화를 보자. 신촌역 메가박스에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I Am Not Your Negro)'가 있다. 혼자 보기 딱 좋은 영화다. 꽤나 늦은 시간인데 팝콘을 팔려나. 보고 자거나 글 좀 쓰다가 내려가는 버스에서 자야겠다. 이번에도 대략 7시간 걸리겠지.




- 결혼식 사회를 보다 보니 축의금 문제가 애매해서 몇 번 주변에 물어본 적이 있다. 한 번은 사회를 보면서 축의금을 내고 사례금은 거부했다. 친구 결혼식이었다. 또 한 번은 사회를 보고 축의금을 안 내고 사례금은 받았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시간이 없어 밥은 안 먹었다. 이 두 사례를 놓고 어떤 것이 맞는지 주변에 물었더니 1. 사회를 보면 축의금을 내지 않는 거란 의견과 2. 사회를 보면서 축의금도 내고 사례금도 받는 거란 의견으로 갈렸다. 어렵지 않은가. 축의금을 내고 사례금을 받으면 주고받는 격이지 않냐고 2번에 되물었더니 그게 '관례'란다. 좋은 일엔 주고받는 게 탈 없고 무난하다고. 그랬더니 왠지 설득력이 더해지며 1번 사례로 다녀왔던 결혼식이 무척 무안해졌다. 결혼식 선물은 무엇이 좋은가.



KakaoTalk_20180211_172247658.jpg 게살 볶음밥. 인스턴트 제품을 볶는다. 밥 속에 치즈 있다. 모든 게 완성되면 고추장을 첨가한다. 맛있다.


- 책 읽고 팟캐스트 듣는 습관을 다시 들여야겠다. 오랜 시간 끊고 살았더니 과제하듯 참아내지 않으면 그 시간들이 힘든 수준이다. 어릴 땐 밤새서 책 읽고 그랬는데 거 참. 어떻게 큰 거지?




- 잘 모르는 사안에 펜을 대다 보니 똥이 나온 듯하다. 이처럼 모르는 것에 대해 알은체를 하면 그만큼 위험한 일이 없다. 특히나 '기자' 같은 직함 달고 하는 행위는 어떤 의미에서 해악이 되기도 한다. 물론 나는 지금 매체력이 없는 곳에서 일하기에 똥을 싸도 스스로에게 거름이나 주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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