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6.
몸의 중심에서 우리를 기쁘게도 슬프게도 하는 존재에 관하여. 주먹 모양의 근육, 생명의 강력한 원천, 우리 모두가 시작된 그곳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
이는 스코틀랜드 조산사 리어 해저드가 쓴 책 ‘자궁 이야기’의 부제이기도 하다.
자궁내막암으로 자궁절제술을 받은 이후 복잡 미묘한 심정으로 2년을 보냈다. 서른 중반의 젊은 여성에게 자궁이 없다는 것은 여러 방면에서 복잡 미묘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엄마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마음이 불편했던 것과 비슷한 양상으로 자궁을 떼어 보내고 난 후 ‘생리’, ‘임신’ 같은 이야기를 들을 때면 이상하게 마음이 어지러웠다. 하지만 내 또래 여성에게 자궁과 관련된 주제야말로 너무나 일상적이고도 중요한 화두가 아닐 수 없는 현실. 내가 만약 불편한 이야기를 듣기 싫어 사람들을 안 만났다면 내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자궁절제술을 받은 여성들은 여성의 필수적인 기관을 잃는다는 것을 여성성을 잃는 것과 동일시하여 큰 상실감은 물론 일종의 배신감까지 든다고 고백했다. 자궁은 자기 정체성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고 자궁 제거는 자궁의 존재만큼이나 강렬한 사건이라고. 실제로 자궁 이야기에 언급된 사례를 보면 자궁절제술이 여성의 정신건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가 있다. 2100명 이상의 여성을 22년 동안 추적 관찰한 조사에 따르면, 자궁절제술을 받은 여성의 경우 장기적으로 새로운 정신질환을 진단받을 위험이 높았다. 특히 가임기이자 출산 적령기인 18세부터 35세 사이에 자궁절제술을 받은 여성은 우울증 위험이 12퍼센트나 더 높아졌다. 자궁절제술은 불안과 성 심리적 기능 저하에서부터 정신병에 이르는 다양한 질환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오 마이 갓. 책을 읽으면서 난 혼란스러웠다. 여성에게 자궁의 의미가 이 정도였단 말인가? 그저 복잡 미묘하다는 심정으로 끝난 것은 내가 성격이 지나치게 낙관적인 탓인가? 아니면 너무 일찍 체념을 했던 것인가? 다른 여성들만큼 큰 상실감에 빠지지 않은 걸 감사해야 할까? 우울증 위험이 12퍼센트나 높아졌는데도 우울증에 걸리지 않은 걸 그저 기뻐하면 되는 것인가? 나는 궁금했다. 비록 나는 자궁이 없지만 자궁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자궁을 잃고야 자궁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교과서는 리어 해저드가 쓴 ‘자궁이야기.’
자궁이야기의 목차는 자궁, 생리, 수정, 임신, 수축, 진통, 상실, 제왕절개, 산후, 건강, 폐경, 자궁절제술, 생식 학살, 미래에 이르기까지 자궁의 과학, 역사, 문화를 두루 다루며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 존재인 인체 기관 ‘자궁’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바로 우리 대부분이 자궁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무지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자궁내막암’ 진단을 받았을 때 자궁내막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무슨 역할을 하는 것인지조차 몰랐다는 것이 그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건 비단 나의 무식함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됐다. 자궁은 그동안 덜 중요한 기관으로 취급되며 위험할 정도로 연구가 부족했던 것이다. 왜냐면 아주 오랫동안 의학은 남성 후계자를 위한 그릇으로써의 역할 외에는 자궁에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저드는 이 책에서 우리가 자궁에 대해서 더 깊이 이해하고 공부할수록 유산을 예방하고, 불임을 해결하고, 질병을 예방하고, 의학 혁신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뿐만 아니라 신체의 자율성과 인권을 지키기 위해 자궁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자궁에 대해서 공부하며 새롭게 알게 된 점은 자궁이 매우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생식 기관이라는 것이다.
특히 자궁경부는 수천 개의 작은 지하실에 질 좋고 생존력이 강한 정자를 저장했다가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한 정자만 통과시키는 문지기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 내가 자궁에 대해서 몰라도 한참 몰랐구나 싶었다. 그러니까 자궁과 나팔관은 단순하게 정자를 기다리는 그릇이 아니라, 아기가 만들어지는 중요한 첫 순간에 주연으로 활약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저드의 글을 읽고 있으면 저절로 자궁을 예찬하게 되지만 ‘상실’ 부분을 읽게 되면 자궁도 때때로 잘못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챕터에서는 유산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나는 유산의 경험은 없지만 유산을 유발하는 ‘자궁경부무력증’에 대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매우 집중해서 읽었다. 자궁경부무력증은 태아가 독자적으로 생존 가능한 단계에 도달하기 전(임신 24주 전후)의 자궁경부가 통증 없이 확장되는 것을 말한다.
17세기 의사 라자루스 리베리우스는 ‘자궁의 아가리가 너무 느슨해서 씨를 보관할 만큼 수축할 수 없는 상태’라는 다소 과격한 표현을 했고, 현재 왕립산부인과대학에서는 ‘임신 2기에 자궁경부가 통증 없이 확장되고 짧아져 태아 손실이나 분만을 초래하는 현상’이라는 정의를 내렸다.
나의 경우 임신 25주 즈음, 느닷없이 피가 비쳤다.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좋지 않은 사인이라는 건 확실했고 와중에 자궁의 수축도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위험한 상황이라는 걸 감지했고 근무 중에 바로 연차를 내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 길로 고위험 산모로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자궁경부무력증’이라는 병명이 붙지는 않았지만 자궁경부길이가 너무 짧아져 있는 상태라 이대로 일상생활을 유지하다가는 양수가 터져 조기출산을 해야 했고, 그러면 아직 미처 자라지 못한 아이의 생명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 것. 입원하자마자 라보파라는 자궁수축억제제를 맞기 시작했다. 이제 쓸 수 없는 약품이 되었다는데 그 부작용을 느껴본 사람으로 어쩐지 이해가 된다. 가만히 있어도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발이 덜덜 떨렸으니까. 혹시 모를 조산의 상황에 대비해 아이가 태어났을 때 자가호흡을 할 수 있도록 폐성숙주사도 맞았다. 나는 아직도 가끔 아이가 격렬하게 뜀박질을 하다가 ‘엄마 나 너무 숨이 차고 가슴이 아파’하고 말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 폐성숙주사가 생각날 때가 있다. 나 때문에 폐가 안 좋은 건가? 그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며. 하지만 나는 최선을 다했다. 움직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씻는 건 언감생심, 화장실 가는 것도 철저한 계산을 통해 해결했으니까.
아무튼 나는 26주부터 36주까지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그리고 36주 6일이 되던 날 열심히 방어하고 있던 양수가 결국에는 터졌고 2.14kg의 아주 작은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는 다행히 크게 아픈 곳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미숙한지라 혈당조절을 제대로 못했고 청색증의 증상도 보여서 신생아중환자실에서 보름 정도 입원해 있다 퇴원을 했다. 그러니까 나는 불행 가운데 행운의 엄마였다는 걸.. 이 챕터를 보면서 새삼 느꼈다.
“내 몸이 모든 단계에서 나를 실망시키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요. 난 임신을 할 수도 없었고 임신을 유지할 수도 없었으며, 태반을 11주 동안이나 보유하고 있었어요.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어요. 한 가지만 잘못하는 게 아니라 모든 걸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정말 속상하고 화가 났죠.”
자궁경부무력증으로 쌍둥이를 잃은 산모의 이야기다. 자궁경부무력증 혹은 약한 자궁경부라는 용어 자체가 힘이나 의지가 부족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어 임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했을 여성에게 깊은 상처를 준다고 했다. 해저드는 우리가 언어학자가 아니더라도 더 적절하고 상처를 덜 주는 용어를 충분히 생각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부정적이지 않고 판단하지 않은 언어로 말이다. 그래서 이 챕터에서 해저드는 ‘통증 없는 조기 확장’이라는 용어를 종종 사용한다. 이 용어는 몸을 탓하지도, 가장 고통스러운 상처를 받은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거나 모욕을 주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대상을 잘 설명하면서도 중립적인 것이다. 사려 깊은 용어 사용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어 준 포인트였다.
자궁의 모든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이니만큼
‘자궁암’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화두다. 이 책에서 자궁내막암은 폐경 이후 여성에게 주로 발생하는 암이며,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암 가운데 비만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언급한다. 참말로.
서른 중반의 젊은 여성이며 일평생 저체중으로 살아온 나는 헛웃음이 난다. 대체 너는 어쩌다 나에게 온 거니?
아무튼 영국암연구소는 영국에서 자궁암으로 진단받은 여성 네 명 중 세 명이 5년 이상 생존하고, 15-39세 연령 집단에서는 생존율이 열 명 중 아홉 명까지 증가한다고 보고한다. 물론 어떤 암이든 암 진단은 달갑지 않지만, 자궁 연구자들의 새로운 연구가 계속해서 우리의 이해를 높이고 결과를 개선해 나가고 있다고.
하지만 암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발생하는 것은 아니듯, 모든 자궁에 진단과 치료의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자궁경부암으로 인해 매년 30만 명의 이상의 여성이 사망하고 있다고 한다. 고소득 국가에서는 60퍼센트 이상의 여성이 자궁경부암 선별검사를 받는다면 의료 서비스가 열악한 국가에 사는 사람들은 20퍼센트 이하만이 자궁경부암 선별검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모든 자궁은 평등하지 않다. 정기적인 부인과 검진을 받고 부담 없이 치료까지 마친 나는 역시나 또 불행 가운데 행운의 여성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이것은 비단 자궁암 선별검사에만 지나지 않는다. 자궁절제술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자궁은 평등하지 않다. 우리는 암을 물리치기 위해서든, 질병의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서든, 자아를 확인하기 위해서든 저마다의 다른 이유를 갖고 자궁절제술을 시행한다. 하지만 이 중심에는 누구나 ‘정보에 입각한 선택’을 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자궁을 포기하는 결정을 상담과 고민 끝에 자유의사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과거나 지금이나 이런 자율성을 부정당한 여성들이 전 세계에 너무나도 많다. 한 개인이 존엄과 인간다움을 박탈하면 뒤따라 생식권도 빼앗기게 된다는 것을 역사는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근거 없는 이유로 ‘다르고, 열등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존재로 간주된 여성에게 강제적인 자궁절제술은 어디에서든 횡행했다고 한다.
‘생식학살’이라는 챕터에서 말하고 있는 무수히 많은 비인간적이고 끔찍하고 잔혹한 사례들을 나는 간단하게 요약한 것조차 읽기가 무척 어려웠다. 이 책을 읽는 걸 그만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그저 자궁을 가진 몸이 흑인이든 백인이든, 부자든 가난하든, 구금 중이든 자유롭든 관계없이 몸의 자율성을 지켜내길 바라며- 모든 자궁, 학대나 폭력을 당했거나 소외된 자궁, 개발도상국과 저소득 국가의 자궁도 최적의 건강을 누릴 기회를 갖게 되기를 또한 바라면서-
사력을 다해 끝까지 책을 읽었다.
사실 자궁을 잃고 자궁을 공부하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좀 비관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에 나와 있는 구절을 인용하자면, “왜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는지 묻는 것은 괜찮다. 아니 반드시 필요하다. 이 질문은 슬픔의 일부이며, 거기에 답하는 것은 치유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자궁이야기를 읽으면서 내 안에 잠겨있던 많은 질문들이 솟아났고 그 아프고도 슬픈 질문들에 답해가며 스스로 조금씩 단단해지는 것을 느꼈다.
미국 배우 롭 딜레이니는 이 책의 추천평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많이 배웠던 책이 없다. 이 책은 생물학 책이자 역사서이며, 모험 이야기이자, 어떤 기념비이기도 하다.”
언젠가 내가 만약 독서모임의 호스트가 된다면 그 포문을 ’자궁이야기‘로 열겠다는 꽤나 기념비적인 다짐을 해보며, 이 기쁘고도 슬프고도 경이로운 책을 덮는다.
p.s. 이런저런 핑계와 사연들로 늦게 업로드해서 죄송해요! 기다려주신 분이 있다면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