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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이 Mar 26. 2022

취미는 다짐

3! 4! / 룰라


 

브런치 작가가 된지도 1년이 훌쩍 지났지만 노트북 앞에 앉는 일을 가뭄에 비 내리듯 하는 꼴을 보면 이젠 아예 글은 안 쓰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쓰지도 않은 카드빚 독촉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이유 없는 초조함이 늘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매일은 아니지만, 잠이 안 오는 밤이면 하릴없이 누워 브런치에 어떤 글을 올리면 좋을까 고민을 하기도 했다. 아이 낳고는 그림책을 많이 접하며 좋아하게 됐고, 그 인연으로 그림책 모임에도 나가고 그림책에 관한 글을 기고하기도 하며 나름대로 무언가를 쓰고는 있었지만 글을 쓰기 위한 글을 쓰자니 자꾸만 쓰기가 싫었다. 쓰기 싫은 글을 억지로 완성하니 어디에 올리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게다가 어쩐지 일하는 느낌이 들어서 인지, 글쓰기 전이면 괜히 포털사이트를 켜서 뉴스 기사의 연예란을 모조리 다 읽고 그것으로는 모자라 잘 올리지도 않는 인스타그램에 들어가서 기웃거리다 결국엔 맘 카페까지 향하고, 그러다 글은 한 자도 못쓰고 아이 하원 시간이 다 되어 노트북을 닫게 된다는 슬픈 전설.. 의 악순환.  

올해는 정말이지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그리하여 나는 또 하나의 다짐을 한다. “올해는 (모가 되든 도가 되든) 진짜 꾸준히 글을 써야지.”

 

그렇다. 나의 취미는 다짐이다. 물론 특기도 다짐이다. 내가 그동안 다짐해왔던 걸 다 지켰다면 나는 지금쯤 BTS, 봉준호, 손흥민, 김연아 정도로 유명한 한국인이 됐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내 다짐은 항상 다짐으로만 끝나는 게 바로 핵심 포인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매년 거창할 것 없지만 나름 기준점이 되어주는 다짐 같은 걸 정한다. 이럴 때 보면 꽤 뚝심이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게 ‘올해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겠어!’, ‘이번에 등록한 요가 수업엔 일주일에 3일 이상은 출석해야지.’ ‘제발 유튜브 보면서 시시덕거리는 시간 좀 줄이고 밤늦게 마시는 맥주는 금물.’ 같은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다짐 같은 건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지만, 뭔가 두루뭉술하고 애매모호하고 추상적으로 정해놓은 다짐 같은 건 희한하게 잘 지켜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예를 들어 2019년에는 함께하는 삶이 목표였고 2020년에는 실천하는 삶이 목표였는데 실제로 재작년엔 (내 수준엔) 많은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며 함께 어울렸고, 작년엔 인생의 과업이라 여겼던 꽤 굵직한 일을 실행에 옮겼으니 말하는 대로 된다는 노랫말 가사가 떠오를 수밖에! 어쩐지 다짐이 한 건 해낸 것 같은 느낌에 2021년 올해의 다짐을 정하는데 쓸데없이 심각하게 고민을 하다, 결국 내가 간절하게 갖고 싶은 역량이자 가장 멋있다고 생각하는 자질인 ‘꾸준함’을 택했다.  

 

‘꾸준한 삶’

(팬데믹처럼)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내 의지로 쉽게 바꿀 수도 없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고 ‘꾸준하게’ 내 갈 길을 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물론 SNS 조차 꾸준하게 하지 못하는 나 같은 게으른 인간에겐 숙제와도 같은 목표이지만 어이없는 다짐을 할 수 있는 것 또한 새해의 특권이니까. 게다가 나는 올해 사랑만으로 늘 가득한 그런 내일로 가고 싶은 3! 4!(34살)이니까.  

 

그래서 나는 올해 꾸준하게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꾸준하게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나의 이 비루한 인생 속에서도 꾸준히 이어온 것들 그리고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가고 싶은 것에 대해서 써보기로 했다. 그건 바로 음악 감상이다.  

마치 소개팅 현장에서 ‘실례지만 취미가?’라는 질문에 어울릴 법한 답변이지만 실제로 내가 유일하게 꾸준히   취미생활이 음악 감상이기 때문에 아무리 뻔하고 촌스럽게 보인 다고 해도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내 인생 곳곳에서 나를 웃겨주고, 울려주고, 위로해주고, 응원해주고, 질책해주고, 결국 나아가게 해 준 플레이리스트에 대해서 써보기로 했다.   

꾸준하게 해 온 일을 꾸준하게 쓰겠다는 생각을 하니 어쩐지 뭔가 엄청 멋진 사람이 된 기분이다. (사실 무엇이든 처음 시작은 다 그렇다.)  

꾸준하게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지구력이나 인내심 혹은 철저한 자기 관리의 영역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사실 꾸준하다는 것은 그 무언가를 엄청나게 사랑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대단한 이익이 기다린다고 한 들, 좋아하지 않는 무언가를 매일매일 꾸준히 이어나간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물론 끝이 정해진 목표라면 좋아하지 않는 일이라도 단기간 동안 스퍼트를 올릴 순 있겠지만, 매일매일 꾸준히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삶 속에 고스란히 녹아나는 일이다. 그렇기에 그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꾸준하다는 것은 감히 넘볼 수도 절대 탐 낼 수도 없는, 하나의 ‘재능’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꾸준함을 재능으로 가진 사람을 동경하고,  

나 역시 꾸준함을 재능으로 갖고 싶어 늘 다짐의 다짐을 반복해 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끔은 자꾸 다짐만 하니까 아무것도 된 건 없고 앞으로 될 것만 가득한 내가 사무치게 싫어질 때가 있다. 삼십 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에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나 싶어 스스로를 구석으로 내몰고 다그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를 위로해 준 것도, 내가 꾸준하게 해 온 일들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라디오를 켜고 익숙한 혹은 새로운 노래를 듣는 일, 따뜻한 물 한 컵을 챙겨 먹는 일, 오후엔 동네 도서관에 들러 아이의 그림책을 대여하는 일, 저녁엔 집안의 식물들에게 물을 주는 일, 잠들기 전엔 아이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처럼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일들.   

야, 네가 여태 한 게 뭐 있냐? 하는 질문에

나 여태 이렇게 꾸준하게 해왔잖아. 하고 말해주는 일들.

이 책을 끝까지는 쓰는 것으로 꾸준하기만 하면 다짐도 재능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지.

역시나 이것도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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