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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선생 Jan 12. 2022

역사의 상처를 내면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기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리뷰


2021년 올해의 책 특집 각종 언론 매체와 대형 서점에서 선정한 올해의 책 중 네 권을 골라 같이 읽어보는 세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다룰 책은 우리 역사의 큰 상처인 1948년 제주 4.3 사건을 다룬 소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입니다.



작가이자 대학 강사인 경하는 사진작가이자 영상감독인 인선과 20년 지기입니다. 최근엔 연락이 뜸해도 인선은 언제나 경하 마음 한구석에 자리한 그런 친구죠. 영상 작업을 정리하고 목공일을 하겠다며 제주로 거처를 옮긴 뒤엔 연락이 더 뜸해졌는데, 어느 날 갑자기 문자가 왔습니다. XX병원에 있는데 신분증 들고 와줄 수 있겠냐고. 인선은 목공일을 하다 전기톱에 손가락이 잘려 접합 수술을 앞둔 상태였습니다.

인선은 제주 집에 있는 반려 새에게 먹이를 줘야 한다며 경하에게 부탁합니다. 경하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으면서도 인선의 요청에 제주도로 향합니다. 길에서 하염없이 펑펑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인선이 옛날에 자신에게 해줬던 말을 되짚어보며 인선의 어머니와 그 가족들이 제주에서 겪었던 기억을 하나씩 거슬러 올라갑니다.

해방공간에서 우리 역사에 가장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제주 4.3 사건을 여러 문학적 장치와 함께 제시하는 소설, 부커상 수상 작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이 소설이 다루는 사건인 제주 4.3 사건은 이념적 저항, 국가 폭력, 사적 폭력 등이 복잡하게 뒤엉켜있어 정확하게 이런 의미를 지닌 사건이다 라고 단정적으로 평가하기에 무척 어려운 사건입니다. 그래서 1987년 민주화 이후 제6공화국에 들어오면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끌어올리는 데 공헌한 여러 사건들이 공식적으로 그 의미가 격상되는 와중에도, 이 사건만큼은 아직 공식적으로 제주 4.3 ‘사건’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간략하게 사건 전개를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1948년 한반도 남쪽만 단독으로 총선거를 실시하겠다는 방침이 발표됐죠. 여기에 여러 정치세력들이 저항했고, 공산당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특히 제주도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확보하고 있던 남쪽의 공산당인,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은 전면적인 선거 거부를 선언하고 시위와 봉기, 무장투쟁에 들어갑니다. 이에 따라 당시 한반도 남쪽을 통치하던 미 군정과 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 경찰은 제주도에 인력을 급파하고 진압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비공식적 조직인 서북청년단까지 가세합니다. 남로당의 지지세가 거셌던 만큼 진압과정에서 남로당원과 민간인을 구별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 이를 구실 삼아 미 군정과 군인 경찰 서북청년단 단원들은 제주도민들을 무차별 진압 학살했습니다. 이로 인해 제주도민 14000여명이 죽었고, 진압하려 온 세력 쪽에서도 1000명이 발생한 사건입니다. 도민 사망자 14000명 중 민간인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영유아 청소년 노인이 2000명에 달하는 것을 봤을 때, 남로당 토벌을 빙자한 국가 폭력의 민간인 학살이라는 성격이 뚜렷하다는 게 이 시기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이 대체로 합의한 내용입니다.

제주는, 이 시기 동안 국가가 행사한 무자비한 폭력에 의해서, 어떤 이유도 없이 그저 그들이 폭력을 행사할 시간에 내가 어디에 있었는가라는 아주 우연한 요소에 따라 삶과 죽음이 갈라진 그런 지역이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제 감상에 따르면 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보여주는 소재로 이 소설에서 눈이 쓰이는 것 같았습니다. 제주는 한반도 본토보다 남쪽에 있지만, 해안에서부터 한라산 정상까지 올라가 있는 화산섬이다 보니 기본적으로 습하고 중산간지역은 춥기 때문에 눈이 많이 내립니다.

생명이 있는 존재는 눈과 닿으면 눈을 녹여서 물로 만들어버리지만, 생명이 없는 존재는 눈이 쌓이는 채로 내버려 둡니다. 이 소설의 주요 인물인 인선과 인선의 어머니, 어머니의 가족들이 국가 폭력을 경험하는 순간도 눈이 녹지 않는 이미지로 표현됩니다. 그래서 이 표지도, 이야기의 어둡고 밝음 이런 것과 관계없이 이렇게 돼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밖에 소설이 보여주는 이런저런 비유와 표현과 상징을 찾아내는 것이 이 소설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가 아닐지, 이렇게 생각해봅니다.



이 책과 함께하면 좋을 콘텐츠는 현기영의 순이 삼촌지상에 숟가락 하나 입니다. 현기영은 제주 출신 작가이며 제주에 4.3 사건이 벌어질 때 성장기를 보냈습니다. 두 작품은 그 기록을 소설의 형식으로 담아냈습니다. 수능 문학을 공부하고 있을 고등학생 청취자는 한 번쯤 문제로 풀어본 경험이 있을 거라고 제가 장담할 수 정도로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랐죠. 학부모 청취자 여러분께도 익숙할 텐데, 그 기억 속 저편에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던 것 기억하시나요? 바로 그 프로그램에서 2003년에 캠페인 도서로 선정하기도 했었죠. 사실상 국가가 폭력적으로 자행한 민간인 학살 현장을 상상해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겠다는 다짐을 끊임없이 되새기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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