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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의 DNA

왕이 되려는 자 왕관의 무게를 견뎌라

by 효문


1명의 사람이 100명을 이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1981학년도 케임브리지대학교 입학 논술고사 시험에 출제된 문제 중 하나였다고 한다. 저자는 이 질문을 들은 후 이에 사로잡혔고, 수많은 전쟁터에서 단련된 군사지휘관의 이야기에서 그 비밀을 찾았다고 말한다.


앤드루 로버츠의 책 <승자의 DNA>에는 '9명의 리더'가 등장한다. 처칠과 나폴레옹, 넬슨, 마셜, 드골, 아이젠하워, 데처, 히틀러 그리고 스탈린이다. 이들 대부분은 젊은 시절 역사서와 위인전을 다독하며 저마다 가장 존경하는 영웅의 계보를 잇는 인물로 성장하려고 애썼다. 위대한 영웅들이 과거 수천 년 전부터 축적된 역사의 지혜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눈에 보이지 실'에 연결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저자는 이것을 '승자의 DNA'라고 표현한다.



나폴레옹은 자신이 영웅으로 삼았던 고대인물들의 전투 기술을 정성 들여 따라 했다. 코르시카에서 살던 어린 시절부터 잡독가였던 나폴레옹은 아버지의 대형 서재에서, 그리고 아홉 살 때부터 다닌 3곳의 군사학교에서 위대한 군인들의 전기를 닥치는 대로 읽었다.



마거릿 대처 역시 포틀랜드 전쟁을 앞둔 며칠간, 제2차 세계대전 때 처칠이 보여준 용기와 두려움을 내내 생각했다고 한다.



서로를 거울처럼 여기며 삶의 문제를 해결해 나간 영웅들은 자신의 강정만큼이나 약점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겸손한 황제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은 겨우 24살에 장군이 된 '비상한 천재'였다. 엄청난 집중력을 자랑하는 동시에 그 어떤 순간에도 평정심을 유지했다.

나폴레옹이 남긴 위대한 업적의 상당수는 생각을 구분하는 상상력과 다른 모든 일을 배제하고 눈앞의 문제에만 오롯이 집중하는 몰입력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부하들에게 종종 이렇게 말했다. “내 머릿속에는 작은 찬장이 있다네. 한 가지 생각을 그만하고 싶으면 나는 그 생각이 들어 있는 서랍을 닫고 다른 서랍을 열지. 자고 싶을 때는? 그저 모든 서랍을 닫은 후 눈을 감으면 된다네. 이 방법을 익히면 모든 업무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네”

그의 가장 뛰어난 자질 중 하나는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도 위엄 있게 평정심을 유지하는 능력이었다. (...) “나는 내 감정이 스스로를 배신하는 일을 막고자 자제력을 기르는데 아주 오랜 시간을 보냈다. 이 정도의 자제력이 없었다면 오늘날 내가 이뤄낸 모든 일을 해낼 수 있었으리라 생각하는가?”


더 놀라운 건 자신의 능력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타인의 능력을 적절히 활용하는 데도 탁월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사람들을 대할 때 질문했고, 경청했고 그다음에 결정했다. 거절할 때는 상대방이 느낄 실망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노력했고, 일을 잘했을 때는 신속하고 적절하게 포상했다.


나폴레옹은 집권 기간 내내 가장 집요하게 확인했던 부분은 바로 병사들의 군화상태였다고 한다. 끊임없이 행군했기 때문에 병사들의 군화가 해지거나 찢어지지 않았는지 각별히 신경을 썼다. 조직의 최말단에 있는 병졸까지 자신이 보호해야 할 사람으로 여겼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임으로써 그들의 자긍심을 고취시켰다. ”내게 바라는 것을 숨기지 마라. 전장에서 가장 큰 죄악은 패배하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큰 죄악은 상관에게 말하고 싶은 불만을 감추는 것이다.”


타고난 포식자 - 호레이쇼 넬슨

넬슨은 열정적인 연인이었지만 끔찍한 남편이었고, 허영심 많은 이기주의자였고, 아첨을 사랑했던 영웅이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글쎄,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넬슨은 '100년도 넘는 기간 동안 영국을 단 한 차례의 침공도 받지 않은 군사 강국'으로 만들었다. 영국 사람들이 그를 사랑하기에 충분한 이유이다.


넬슨은 전투 중에 한쪽 눈과 팔을 잃은 채 집으로 돌아갔다. 거의 5년 만에 남편을 만난 아내는 헌신적으로 그를 간호했고, 덕분에 그는 다시 전선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영국인들의 영웅이 되었지만, 아내를 두고 다른 여인과 사랑에 빠졌고 겸손이라곤 한 톨도 없는 안하무인의 모습을 보였다. 자신의 실제 모습과 전혀 다른 초상화를 그리게 하고 이를 인쇄물로 만들어 영국 전역에 배포하게 했다. 영국인들은 이런 그의 유능함과 오만함을 사랑했고, 넬슨 역시 자신을 비방하는 세력을 설득하거나 양해를 구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강력하게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길을 택했다.

넬슨이 두려움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남긴 교훈은 간단하다. "주도권을 잡고 적이 그 주도권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필요한 경우 규칙을 어기고 명령에 불복종하라. 병사들이 전투를 제2의 천성처럼 여길 수 있도록 끊임없이 훈련하라."


울보 수상 - 윈스턴 처칠

미숙아로 태어난 처칠은 어린 시절에 심하게 말을 더듬었고, 교과과정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으며, 세 번의 낙제 끝에 군사학교에 입학한 둔재였다. 그리고 변덕스럽고, 두뇌회전이 빠르고, 남의 눈치를 잘 살피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모든 것을 강박적으로 통제하려 하고, 때로 불쾌한 말도 서슴없이 내뱉는 남자로 성장했다. 그런데 그는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자기 확신이 있었다. "나는 언젠가 영국이 위기에 빠졌을 때 런던의 수호자가 될 것이다." 이 신념 덕분이었을까? 죽음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그는 번번이 살아남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킨 제후의 생존자가 됐다

처칠은 스물두 살에 의회에서 의석을 차지하기도 전에 무려 네 차례의 전쟁에 참전했고, 20세기 가장 위대한 기병대의 일원이었으며, 적의 포로수용소에서 대담하게 탈출한 적이 있는 군인이었다. 그리고 문학과 정치와 역사에 관한 5권의 책을 출판했으며, 신문과 잡지에 215편의 기사를 기고했고, 공직에서 일하는 동안 무려 1000번 이상 연단에 올라 연설을 했다.


처칠은 '용기'도 반복적으로 연습해서 강화시킬 수 있는 자질이라고 여겼다. 그는 수십 번이나 위험한 군사작전을 펼치며 죽음과 맞섰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처칠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는 '눈물'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공개 석상에서 우는 모습을 쉰 번 넘게 보였다. 수상이 눈물을 흘릴 때 영국인들은 그가 '감정을 잘 드러내는 솔직한 리더'라고 생각했다.


과거의 삶을 돌아보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실수로부터 도움을 받았고 가장 현명한 결정으로부터 상처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 운명의 기이한 리듬과 화해하십시오. 그것들은 당신이 내쫓는다고 해서 멀리 달아나지 않습니다. 운명은 당신과 함께 이 시공간에 존재해야 합니다. 기쁨을 소중히 여기되 슬픔을 한탄하지는 마십시오. 빛의 영광은 그림자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인생은 전체이며, 선과 악은 늘 함께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저의 지난 여정은 즐거웠고 한 번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 처칠의 <내가 만약 내 인생을 다시 산다면> 중에서


승리의 설계자 - 조지 마셜

마셜의 삶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고립'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릴 것이다. 그 누구도 곁에 두지 않고 그 누구의 곁에 남으려고도 하지 않았던 미군의 서열 1위 사령관. 그가 바로 미국 제15대 육군 참모총장 조지 마셜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무수히 많은 지휘관 중 대전을 종식할 진짜 승리를 설계한 장군은 마셜이었다. 그 덕분에 노르망디 상륙 작전은 연합군이 지닌 모든 힘이 완전히 갖춰진 가장 적절한 순간에,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가장 적절한 장소에서 개시되었다. '독일을 전쟁에서 몰아낸 뒤 일본을 몰아내야 한다'는 모토를 제시하고 이를 실현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우직하게 해내는 것이 그가 삶에서 배운 지혜였기 때문이다.


위대한 방패 - 샤를 드골

협력자이자 경쟁자였던 루스벨트와 처칠을 드골을 두고 '만족할 줄 모르는 굶주린 하이에나'라고 평했다. 강점보다 결점이 더 많았던 불완전한 인간 드골의 삶은 모순으로 가득했지만 그는 누구보다 솔직하고 당당했다.

연합군 전체 병력의 1%도 미치지 못했던 미약한 병력을 이끌었음에도 자신의 조국을 승전국 명단에 올리고 루스벨트, 처칠 등과 동등한 지도자 대우를 받았던 성공이 비결은 바로 이것이었다. “아군을 향해서든, 적군을 향해서든 끊임없이 요구하라. 상대를 불쾌하게 만들더라도 멈추지 않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라.”


550만 군의 지휘관 -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맥아더와 아이젠하워를 한 번씩 만나고 온 한 여성은 두 사람을 이렇게 비교했다. “맥아더를 만났을 때 나는 그가 진정으로 위대한 장군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젠하워를 만났을 때는 내가 얼마나 매력적인 여자인지를 알게 되었다.”

탁월한 군인적 자질과 정치인의 자질을 동시에 가진 인물이 아이젠하워였다. 위대한 사령관에게는 코끼리나 하마 같은 후피동물처럼 딱딱한 가죽이 필요하다. 아이젠하워도 그러한 가죽을 하나 갖고 있었다. 그는 모든 위기 상황에서 절대 불안을 드러내지 않았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결정할 당시 그는 하루에 담배 4갑을 피웠고, 혈압이 110에서 176으로 치솟았다. 하지만 부대 내에서 그의 변화를 눈치챈 이는 아무도 없었다.


타협 없는 사자 - 마거릿 데처

라디오를 통해 영국 대공습과 르비튼 전투를 알리는 처칠의 목소리를 들으며 자란 데처는 청년보수 당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전후 몰락의 길을 걷던 영국의 경제 시스템을 체질부터 개혁함으로써 집권 기간 내내 야당을 공격을 받았지만 "진정한 선의는 힘이 있는 자가 베풀 수 있다"라고 응수하며 죽기 전까지 자신의 견해를 번복하지 않았다.

상냥한 표정을 지으며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은 얼마나 쉬운가. 하지만 타협을 거부하는 마녀가 되는 일은 불편하고 어렵다. 대처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다.


20세기의 지배자 - 아돌프 히틀러

히틀러는 아무런 존재감이 없는 병풍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유럽 대륙에서 사회적, 과학적으로 가장 발전했던 국가의 국민들에게 무려 10년 넘게 종교적 숭배를 받았다. 독일인 700만 명, 연합군 3400만 명, 유대한 600만 명 등 다 합쳐 4700만 명의 사람이 그 한 사람의 비뚤어진 생각 때문에 죽어갔다.

히틀러는 다양한 수법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조작하고 창조했다. 주위에 천재들을 모아 자신의 카리스마를 드러냈고, 수영복을 입은 상태에서 절대 사진을 찍지 않음으로써 약한 모습을 은폐했다. 또 대중 앞에서 연설할 때는 의도적으로 말의 속도와 목소리의 크기를 조금씩 높였다. 연설문에서 한 문장의 길이는 절대 40자를 넘기지 않았다.

히틀러는 아군을 모으는 일보다 적을 지정하는 데 훨씬 더 오래 고심했다. 적을 제대로 지정만 하면 언제든지 추종자를 모을 수 있다고 믿었다. 적어도 이 부분에서 히틀러는 천재였다.


공산권의 일인자 - 이오시프 스탈린

스탈린이 전 생애의 절반 가까이를 살아가며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벌인 동족 학살과 숙청의 역사는 '이념'이라는 유령이 얼마나 한 사람을 극단적으로 미치게 만드는지, 또 그 광기가 인류에게 얼마나 거대한 희생을 강요하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언젠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하를 효과적으로 통솔하는 요령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스탈린이 이렇게 대답했다. “공포는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법이지요.” 스탈린은 집권기간 내내 공포를 기획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부하들이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을까 그 스스로 숨죽여 떨었다. 스탈린이 발명한 공포정치는 두 가지 사실을 증명했다. 첫째 공포는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둘째 이는 만인 앞에서 평등하다. 공포에 휩싸인 자에게나 공포를 휘두르는 자에게나.


결론적으로 저자는 말한다. 승자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서로가 서로를 보면서 배운다고. 그리고 9명을 통해 찾아낸 승자의 DNA를 이렇게 정리했다.

몰입: 승리할 미래를 통째로 외워라.

신념: 더 굳세게 믿는 자가 이긴다.

언어: 모든 위대한 존재는 문학가다.

근성: 단 한 대도 얻어맞지 마라

겸손: 싸움은 최후의 수단이다

책임감: 그 누구도 당신 대신 비난당해 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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