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를까?
누군가 그랬다. "멋진 인간이 되는 데는 70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멋진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참 다행스럽다. 10년 전, 20년 전의 나를 돌이켜보면 지금의 나는 조금 덜 조급해하고, 다른 사람의 얘기에 더 많이 귀 기울일 줄 알고, 어떤 문제는 시간에게 맡겨두는 여유도 생겼으니 말이다.
데이비드 브룩스의 책 <사람을 안다는 것>은 사람 즉 자신과 상대방을 더 잘 아는 법 그리고 관계를 잘 맺는 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사람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이 '지혜'라고 말한다. 물리학이나 지리학에 대해서 무언가를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누구인지 또 인생의 복잡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게 옳은지를 깊이 꿰뚫어 보는 능력이 지혜라는 것이다.
학문에 깊이를 더하는 것이 지식이라면, 사람을 통찰하는 것은 지혜다. 그 지혜를 키워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저자는 말한다. 다른 사람을 알고자 하는 탐구를 시작했다면 이런 질문을 던져보라고.
그는 일어난 일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그는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그는 자기의 현실을 어떻게 구성하는가?
이 질문은 스스로에게 던져봐도 좋을 것 같다. 자기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잘 아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으니 말이다. 그저 습관적으로 일어나서 일을 하고, 습관적으로 퇴근해서 잠자리에 드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면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릴 수도 있다.
또 이런 조언도 한다. "만일 당신이 누군가를 잘 이해하고 싶다면, 그 사람이 수행 중인 과제가 무엇인지 알고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 그의 마음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알아야 한다."라고.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그 사람이 수행 중인 과제가 무엇인지, 꿈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모를 때가 훨씬 더 많다. 그런 무관심과 무지가 나도 힘들게 하고, 상대방도 힘들게 한다.
삶의 질은
우리가 세상에 투사하는 관심의 질에 따라서
상당히 달라진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 하는 생각을
얼마나 정확하게 인지하는지 연구하는 분야에
선도적인 학자인 윌리엄 이크스는
처음 보는 사람끼리 대화하면서
상대방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경우가
약 20%밖에 되지 않으며,
가까운 친구나 가족이더라도
35%에 그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결혼한 지 오래된 부부일수록
서로의 마음을 읽는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모습대로
스스로를 바라본다.
윈스턴 처칠의 어머니 '제니제롬'에 대한 유명한 이야기,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젊은 시절의 제니는 영국의 정치가 윌리엄 글래드스턴과 저녁 식사를 했다. 그리고 제니는 '글래드스턴이 영국에서 가장 영리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글래드스턴의 경쟁자인 '벤저민 디즈레일리'와 저녁식사를 한 뒤에 제니는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나 자신이 영국에서 가장 영리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초대손님을 모시고 방송을 하고 난 후 제니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정말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고,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된 것 같은 기분'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종종 본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걸 결정하는 것은 '인터뷰어의 자세'이다.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사람이 말을 할 때는 평균적으로 1분에 120~150개의 단어를 말한다고 한다. 듣는 사람의 뇌가 처리하기에는 너무 많은 양의 데이터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 머릿속으로 딴생각까지 한다면?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수밖에 없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고 좋은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무조건 상대방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100퍼센트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몇몇 전문가들은 '슬랜트(SLANT)'라는 방법론을 제안한다. 대화를 할 때는 가만히 앉아서(sit up) 상대방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lean forward) 질문하며(ask questions) 고개를 끄덕이고(nod your head) 상대방을 따라가는(track the speaker) 것이다. 귀가 아니라 눈으로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 이것이 100퍼센트 관심을 상대방에게 집중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에 대한 관심'이다.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면 질문도 경청도 의미가 없으니 말이다.
군중 속에는 디미니셔(Diminisher)와 일루미네이터(Illuminator)가 있다. 제 능력을 믿고 혼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디미니셔는 한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존재라고 느끼게 한다. 즉 디미니셔는 타인을 친구가 될 사람이 아니라 이용할 대상으로 바라본다. (...) 일루미네이터는 다른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둔다. 이들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기술을 따로 훈련받았거나 스스로 깨우친 사람들이다. 상대방에게서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그리고 상대방에게 언제 어떻게 질문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성격은 평생 연마하는 재능이다.
어제 해본 나의 MBTI는 'ESTJ, 사업가형'이었다. 이 책에서는 MBTI보다 더 정확한 방법으로 '빅파이브 성격적 특성 검사'를 말한다. 한 사람이 지닌 다섯 가지 핵심 성격 특성 '외향성, 성실성, 신경성, 친화성, 개방성'을 측정하는 것이다. 측정결과 '개방성 2.3 / 성실성 3.4 / 외향성 1.9 / 우호성 2.1 / 신경성 1.0'이었다.
그런데 이 데이터가 정말 '나'라고 할 수 있을까? 내일 테스트를 다시 하면 분명 다르게 나올 텐데...
성격의 특성이 한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저자의 말대로 '그는 성실한 간호사일 수도 있고, 성실한 나치주의자'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물론 '성격'이 그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부분임은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성격이 전부일 수 없다는 사실이고, 더 중요한 것은 성격은 변해간다는 사실이다. '성격은 타고난 재능이기도 하지만, 평생 연마하는 재능'이라는 저자의 말에 100퍼센트 공감한다.
성격적 특성은 타고난 재능이기도 하지만 평생 연마하는 재능이기도 하다.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여전히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최근 이루어진 연구 결과는 이런 통상적인 발상과 매우 다르다. 200개가 넘는 중재연구를 검토한 글에서 성격적 특성, 특히 신경증은 임상적 개입을 통해 수정될 수 있다고 밝혀졌으며, 이때 변화는 짧게는 6주 만에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더 나은 인간으로 변해간다. 더 상냥해지고 더 성실해지며 감정적으로 더 안정적으로 바뀐다는 말이다.
'성격'을 연마해 간다면 그리고 앞서 말한 '지혜'를 키워간다면, 우리는 분명 더 멋진 사람이 될 수 있고 좋은 사람들과 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