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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의 부름

우리 사회와 닮은 알래스카

by 효문

'벅'은 인간의 사랑을 받으며 문명의 혜택을 누리면서 살아온 미국 남부의 장원을 지배하던 왕이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그의 삶이 달라진다. 황금에 눈이 먼 사람들은 너도 나도 알래스카로 향했고, 썰매를 끌 개가 필요했다. 헐값에 알래스카로 팔려간 벅은 가혹한 매질과 냉혹한 자연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세술을 배우고, 도둑질을 배우고, 싸움의 기술을 배운다. 그리고 대장으로 성장해 간다. 그 사이 몇 번 주인이 바뀌고, 주인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그 이면에 공존하고 있는 야성을 '개'의 시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알래스카는 우리 사회와 닮았고
벅과 동료들은 우리를 닮았다


살을 에는 지독한 알래스카의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복종을 요구하는 인간의 무자비한 곤봉과 약한 모습을 보이면 단박에 드러내는 동료의 송곳니까지,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벅'은 적응해야만 했고 인내해야만 했다.


한 줄에 같이 묶인 12마리의 개와 운명공동체로 묶인 까닭에, 내가 삶아남기 위해서는 무능력한 이에게 대장의 자리를 양보할 수가 없다. 그 인정이 나 자신을 죽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자리를 놓고 쉼 없이 싸우는 12마리의 늑대개들은 어디선가 본 듯한 직장인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스피츠는 더 이상 다들 두려워하는 대장이 아니었다. 오랜 경외감은 사라졌고 개들은 그의 권위에 도전해서 동등해지고자 했다. 급기야 파이크는 스피츠의 물고기를 반이나 훔쳐 갔다. 그러고는 벅의 비호 아래 그것을 꿀떡 삼켰다. 어느 날에는 더브와 조가 스피츠에게 대항했는데도 당연히 받아야 할 벌을 받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순둥이 빌리조차 더 이상 착하게 굴지 않았고 비위를 맞추듯 킹킹 대던 짓도 전보다 반쯤 줄었다. 벅은 스피츠와 가까이 있을 때면 언제나 으르렁댔고 위협하듯 털을 곤두세웠다.

대장이 대장답지 못한 모습을 보이자 팀의 질서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대우를 받는 것이 과연 공평한 것일까? 대장에게는 그만한 자격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대장의 지시에 따라 12마리가 한 몸처럼 달릴 때 살아남을 수 있고, 최고의 능률을 올릴 수 있다면 '능력에 따른 서열'이 '공평함'일지도 모르겠다.


무책임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알래스카로 향하는 과정에서 만난 두 번째 주인 '핼과 찰스 그리고 머시디스'. 그들은 알래스카라는 자연의 무서움도, 개를 어떻게 부려야 하는지도, 썰매 끌기의 어려움도 아무것도 모른다. 그런데 사랑은 넘친다. 개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아낌없이 음식을 베푼다. 시간이 흐르면서 음식은 부족해지고 상황이 어려워진다. 우아함과 낭만이 벗겨지자 머시디스는 스스로를 위해 울고, 남편과 동생과 다투느라 더 이상 개들을 위해 울지 않았다.

그들은 근육도 아프고 뼈도 아프고 가슴도 아팠다. 그들은 그런 아픔 때문에 아침에 입을 열자마자 그리고 밤에 잠들 때까지 날카롭고 거칠게 말했다. (...) 자신들이 너무나 비참했기 때문에 그들은 동물의 고통에 무감각해졌다.

상황이 좋을 때만 사랑을 속삭이는 일은 얼마나 쉬운가. 그리고 그 사랑이 얼마나 가볍고 무책임한가. 조금만 어려움이 닥치면 나의 안위가 제일 중요해지는 그 얄팍한 사랑도 사랑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까?


사랑하기 때문에


그에 비해 온 마음을 다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절벽으로 뛰어내리라는 주인의 말에 기꺼이 몸을 던지는 잭의 사랑은 도대체 어떤 사랑일까? 끊임없이 들려오는 야성의 부름에도 불구하고, 세 번째 주인으로 만난 '손턴'에 대한 사랑이 잭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소리가 어디에서 오는지

왜 들리지는 그는 알지 못했지만

야성의 부름은 계속되었다.

숲 속 깊은 곳으로부터 들리는

절체절명의 소리였기에

그는 어디로

그리고 왜라는 물음을 던지지도 않았다.



광활한 하늘을 머리에 이고

한 번도 밟지 않은 흙 위로

자유롭게 광야를 달리고 있었다.

둘은 흐르는 개울에 목을 축이고 잠시 멈췄다.



바로 그때 벅의 가슴속으로 존 손턴이 파고들었다.





손턴이 죽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잭은 말할 수 없는 공허감을 느낀다. 배고픔과도 같은 공허감. "벅은 아프고 또 아팠다. 어떤 음식으로도 채울 수 없는 아픔이었다." 손턴이 떠난 후 잭은 야성의 부름을 따르기로 한다. 그를 묶어 놓았던 마지막 끈이 끊어졌으니 말이다.


[불을 지피다]

이 책에는 [불을 지피다]라는 짧은 소설이 같이 수록돼 있다. 이 작품 역시 영하 50도 이하로 떨어지는 극한의 자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침을 뱉으면 공중에서 쨍하고 갈라지는 추위라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알래스카에 막 도착한 신참 사내는 절대 길을 나서면 안 되는 추운 날씨에 길을 나선다. 상황은 점점 악화된다. 손가락이 마비되고, 발가락이 얼어붙는다. 간신히 불을 피웠지만, 하필이면 전나무 밑이다. 나무 밑에서는 절대 불을 피워서는 안 되는데, 그 순간에는 오직 불을 피워야겠다는 일념뿐이었다. 잠시 후 열기가 전해지면서 눈을 잔뜩 짊어지고 있던 나뭇가지들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눈사태처럼 눈이 쏟아져 내렸다. 어렵게 피운 불은 그렇게 꺼져버렸고, 그는 죽음이 이끄는 잠속으로 빠져든다.


작품 해설에서 권택영 번역작가는 이런 말을 한다. "런던은 우선 우리가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자만심을 버릴 것을 권한다. 문명과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준다는 자만심을 버리는 게 중요하다." 맞다. 자만은 늘 화를 부르는 법이다. 인간은 결코 자연을 정복하지 못한다. 어디서든, 누구와 함께 하든 정복이 아닌 공존의 길을 모색할 때 번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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