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는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사랑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여든이 넘은 엄마는 아직도 김치를 담가 보내주신다. 지금이야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서 잘 먹고 있지만, 2~30대 시절에는 썩 내키지 않을 때도 많았다. 집에서 밥을 먹는 날이 많지 않아서 김치는 곧잘 처치곤란이 되곤 했으니까. 보내지 말라고, 보내더라도 조금만 보내달라고 아무리 당부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일찍 타지 생활을 시작한 아들딸에게 당신이 직접 농사짓고, 직접 담근 김치나 고구마, 토마토 등을 잔뜩 보내는 것이 엄마 입장에서는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었지만, 그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오직 감사의 마음만 갖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렇게 상대방의 호의나 배려가 불편하고 괴로울 때가 종종 있다. 저자는 이를 일본어 '아리가타 메이와쿠'에 견주어 설명한다. 아리가타 메이와쿠는 '고맙다'는 뜻의 '아리가타'와 '피해'를 뜻하는 '메이와쿠'의 합성어이다. 직역하자면 '고마운 피해'이다. 원치 않은 호의나 배려를 받아서 난처하고 부담스러운데, 억지로 고마움을 표해야 할 때를 뜻한다. 상대방의 마음에 악의라곤 1도 없다는 것을 알지만, 어쩌면 온통 사랑뿐이겠지만 문제는 내가 편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관계가 어렵다.
"노력이 부족해서 인간관계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상대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해보지 못해서. 다시 말해서 우리가 자기 중심성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 45p
상대방을 위해서 하는 행동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행동일 때가 훨씬 더 많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에게 그리 솔직하지 못하다.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행동이라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위해서 내가 수고하고 배려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상대방이 나의 배려나 친절을 온전히 받아주지 않으면 속상해하고 화를 낸다. 그래서 어렵다. 관계가.
"당신은 과연 친한 친구의 감정과 생각을 얼마나 읽어낼 수 있을까?
이케스 등의 실험에 따르면 사람들의 평균적인 공감 정확도 점수는 0~100점 중 22점에 불과했다. 친구 간에도 40점을 넘지 못했다.
쉽게 말해 두 번에 한 번 이상은 상대의 마음을 잘못 해석한다.
이러니 인간관계에서 갈등과 분란이 끊이지 않을 수밖에 없다."
마음 읽기와 마음 헤아리기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저자는 단순한 '마음 읽기'가 아닌 '마음 헤아리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마음 읽기가 타인의 얼굴 표정이나 몸짓을 보면 바로 활성화되는 거울신경세포로 매개된다면, 마음 헤아리기는 내측전전두엽피질, 측두두정접합 등 그와 다른 뇌의 부위를 활성화한다고 한다. 마음 읽기는 무의식적으로, 자동적으로, 빠르게, 판단적으로 이루어진다. 지극히 주관적이어서 정확도도 떨어진다.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판단하기 때문에 무시당한 경험이 많은 사람은 상대가 무심히 한 행동을 보고 '자신을 무시한다'라고 느끼기 쉽다.
반면 '마음 헤아리기'는 의식적이고, 이성적이고, 비판단적이고, 언어적이고, 느리다.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 헤아림을 받아야 발달할 수 있으며, 건강한 어른들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마음 이해 방식이다. 이 능력은 인간의 전유물이며 진화의 역사에서 '소통과 협력, 친절의 바탕'이 되어왔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나는 당신의 마음을 잘 모른다'라는 태도로 상대와 대화하고, 이로써 눈치의 오류를 수정할 줄 알아야 하며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인간다움의 본질이 '마음을 헤아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 73p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 생각처럼 어렵지 않다. 궁금함과 관심을 가지고 질문을 하고 상대방의 얘기를 귀 기울여서 들으면 된다. 말로 하면 너무나 간단하다. 하지만 막상 실천하려면 쉽지 않다. 옛말에 '남의 말은 사흘'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상대방에게 관심을 지속적으로 갖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설령 그가 사랑하는 가족이고 친구여도 언제나 내 문제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관심을 유지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사랑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첫눈에 반하는 사랑? 아마도 가능할 것이다. 빼어난 외모에, 화사한 미소에, 친절한 행동에, 수려한 언변에 심장이 요동칠 때가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사랑을 유지하는 것 혹은 그 사랑이 더 깊어지게 만들려면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한 사람을 사랑할 때, 그의 잘생긴 얼굴이나 큰 키 혹은 두툼한 지갑만 사랑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가 가진 성격이나 취향, 습관까지도 사랑해야 한다. 아니 최소한 이해하고 존중은 해야 한다. 얼굴이 잘 생겨서 혹은 재력이 빵빵해서 까칠한 성격도 저절로 좋아 보인다면 다행이지만, 안타깝게도 그 효과는 잠깐이다. 그래서 사랑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저자도 말한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자동으로 되지만, 사랑이 깊어지려면 많은 이해와 노력이 필요하다. 바꿔 말하면 연애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사랑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당신은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해"라는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 나오는 그 유명한 대사처럼 진짜 사랑에 빠지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지고, 상대방도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미켈란 젤로가 원석을 다듬어 아름다운 조각상을 만들듯 우리는 사랑을 통해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간다. 마음 헤아리기가 작동하는 사랑은 건강한 사랑이며 이를 가리켜 사랑의 '미켈란젤로 효과'라고 한다.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의 사회심리학자 케릴 러스벌트 연구팀이 '미켈란젤로 현상'을 연구한 결과 어떤 커플은 점점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가고 서로의 삶을 완성해 간다고 느낀다. 이들은 이상적인 자아가 되어가도록 상대를 다듬고 쪼아주는 망치와 끌이 되어주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점점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간다고 느낄 때 관계에서 느끼는 만족감과 활력도 커진다. (...) 두 사람이 서로 상대의 삶과 이상에 관심을 기울이고 지지해 줄 때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120p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주례사(법륜스님의 주례사였던가? 아무튼)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결혼하세요."
착각하지 말자. 이미 완성돼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상대방을 깎고 다듬어서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 사랑하는 것이다.
'나'는 단수가 아니다
세계적인 멘토로 손꼽히는 짐론이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은 당신과 함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5인의 평균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내가 자주 만나는 다섯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는 어렵지만,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는 세상 쉽지 않은가.
그리고 세상 그 어떤 좋은 사람도 혹은 그 어떤 나쁜 사람도 홀로 좋거나 나쁜 사람은 없다. 누군가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좋은 점, 나쁜 점이 만들어진다. 그 옛날 엄마들의 단골 멘트였던 "나쁜 친구를 사귀어서 그렇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다. 물론 중요한 사실은 나만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았을 리 없다는 사실이다. 어떤 형태로든 나 역시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쳤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은 결코 혼자 성장하지 않는다. 인간의 성장은 오직 '대상의 내면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내면화란 외부 대상이 지닌 속성의 일부 또는 전체가 내부로 흡수되는 것을 가리킨다. 간단히 말해 당신이 대상의 좋은 면들을 내면화하면 점점 좋은 사람이 되고, 대상의 나쁜 면들을 내면화하면 점점 나쁜 사람이 되어간다. (...) '나'라는 사람은 단수가 아니라 지금까지 '내면화한 모든 관계의 총합'이다. 그러니 변화와 성장을 원한다면 좋은 내면화 대상을 찾아야 한다. - 10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