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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인재 Nov 12. 2023

워킹대디

 두 번이나 대법관 후보에 오르셨던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해주신 말씀이 있다. 좋은 로스쿨을 졸업한 사람들은 국가에 해가 되는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이 높으니, 나라에 기여하고 싶다면 학교에서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고 애를 둘 이상을 낳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태어난 아이들을 법조인 말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시키라고 하셨다. 그 말씀 듣고는 웃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맞는 말씀인 것 같다. 


 아기를 낳아 기르기 참 힘든 세상이다. 나는 그나마 공무원이라서 육아시간도 쓰고 있고, 9개월 동안 육아휴직도 했지만 힘들었고, 아직도 힘들다. 육아휴직 하고 3개월 동안은 100만 원 언저리 돈을 받았던 것 같다. 일을 하지도 않는데 돈을 주니 어떻게 보면 감사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수입이 없으니 생활하기가 어려워진다(그 당시 국가에서는 육아휴직을 해도 초반 3개월 동안은 150만 원을 받을 수 있다고 했지만 실 수령액을 기준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공무원연금공단에서 그 와중에도 40여만 원을 가져간다). 부모님, 장인장모님, 마이너스통장의 도움으로 살아간 9개월 동안은 경제적으로 여유는 없었지만 내 인생에서 제일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 당시 아들의 아가스러움, 귀여움은 내 기억속에 영원히 남아있을테니 말이다. 그래서 난 주변 아빠들에게 꼭 육아휴직을 쓰라고 권유하고 있다. 


 워킹맘이라는 용어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내포한채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에 비해 워킹대디라는 표현은 많이 사용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21세기이긴 하지만 아직도 전통적인 남성상, 여성상이 강요되고 있어서 그런 듯 하다. 당연히 남자가 일해서  돈 벌고,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조선시대 통념.


 나랑 와이프는 일을 그만둘 생각이 전혀 없다. 가끔씩 출근하는게 싫은 적은 있지만 그래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사실이다. 정년퇴직 하신 아빠와 장인어른을 봐도 느끼게 된다. 여유가 있어서 좋긴 하지만 일을 하지 않으면 늙는다. 나중에 나도 정년퇴직하면 일 했을 때의 삶을 그리워 할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가 고되도 일을 그만두거나 육아를 전적으로 조부모에게 맡길 생각은 없다. 


 지금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영역은 당연 육아다. 육아를 하는 와중에 일을 하고 있다. 사정 상 조부모님들이 완전히 도와줄 수도 없고, 도와준다고 해도 전적으로 유가을 맡길 생각도 없기에 육아는 내 인생에 가장 븐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결혼을 하지 않거나, 딩크족으로 사는 친구들을 보면 솔직히 부러울 때도 있다. 자기계발, 취미생활에 시간을 쓸 여유가 있으니 직업적으로 또는 삶 전체적으로 앞서나가는 것 같아 부러울 때가 있다. 


 애를 키우면서 자기계발을 해보겠다고 새벽 4시에 일어나 본 적이 있다. 애를 키우려고 내가 태어난게 아니고, 애를 키우려고 그렇게 지랄같이 공부한게 아니니까 육아에 치이는 내 인생이 아까웠다. 하지만 곧 그만뒀다. 너무 피곤했다. 삶이 피폐해지는 것 같길래 당분간 몇 년은 육아에 우선 방점을 찍자고 마음 먹었다. 설령 그래서 남들보다 조금 늦게 가더라도 그건 어쩔 수 없다고 마음 먹으려고 노력했다. 


 장난삼아 친구들에게 말하곤 한다. 육아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랑은 인생의 고난함을 말하고 싶지 않다고. 남을 위해 죽을 수도 있는 경우는 많이 없다. 소방관들도 경찰관들도 본인 생명이 진짜 위험하면 남을 구하러 가지 않는다. 태풍이 와서 비바람이 몰아 치는데, 울릉도에 있는 응급환자 이송을 위한 에어 엠뷸런스를 띄울 수는 없다. 하지만 부모는 내가 아닌 남인 자식을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다. 


 나는 육아를 하면서 일을 병행하는 직장인이다. 일을 하면서 육아를 병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생활도 성공해도 그만 실패해도 그만이지만 아들과의 관계는 꼭 성공하고 싶다. 아들하고 같이 주짓수 학원 가는 그 날을 위해 열심히 육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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