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이 천박한 농담이 된 시대에, 한 남자가 사막에 서 있었다.
'눈물을 마시는 새', 내가 다회독을 가장 많이 한 책이자 제일 아끼는 책이다. 나는 판타지 장르에 대해 잘 몰랐다. 어릴 적 어머니는 나에게 판타지 소설(특히 한국 작가의)은 만화책만큼이나 안 좋은 거라며(물론 둘 다 전혀 안 좋은게 아니다!) 판타지 소설을 멀리하게 하셨고, 나도 자연히 판타지 소설에 거리를 두게 되었다. 어머니로 인해 판타지 소설 = 질 낮은 소설이라는 등식이 내 마음 속 어딘가 깊숙히 새겨진 것이다.
내가 이영도의 소설을 처음 접한 건, 아마 20살 때였을 거다. 판타지 소설을 아주 좋아하는 친구가 나에게 '드래곤 라자'를 권했다. 소위 말하는 양판소와는 전혀 다르다면서, 고등학교 모의고사에도 나온 적이 있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나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읽어 보았다.
다 읽고 난 후의 내 결론은, '약간 유치하지만 재미도 있고 나름 교훈도 있네.' 였다. 사실 어릴 적 부터 나는 게임을 좋아했기 때문에 판타지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판타지가 낯설거나 새롭지는 않았다. 오히려 드래곤 라자의 소재가 약간은 진부하다고 느껴졌을 정도니 말이다.
어찌되었건 드래곤 라자는 판타지 소설에 대한 내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고, 이후 이영도 작가의 소설들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드래곤 라자의 후속작인 퓨쳐 워커부터 폴라리스 랩소디, 눈물을 마시는 새, 피를 마시는 새, 그림자 자국, 그 외 각종 단편들까지 말이다. 판소 문외한이었던 나는 완전한 이영도의 빠돌이가 되어 버렸다. 이후에는 룬의 아이들, 월야환담 등을 비롯한 다른 작가들의 소설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가장 좋아하는 이영도 책 단 한권만 뽑으라.'고 하면, 나는 주저않고 '눈물을 마시는 새'를 꼽는다. '눈마새'는 주관적인 견해로, 내가 읽어본 모든 판타지 시리즈 중에 가장 훌륭하다. 해리포터, 나니아 연대기, 앰버 연대기, 반지의 제왕, 차모니아 시리즈 등 다양한 판타지 시리즈를 읽어보았지만 눈마새만큼 내 가슴 깊은 곳 어딘가를 자극한 소설은 없었다.
눈물을 마시는 새는 일종의 신화인 동시에 판타지적 '군주론'이다. 주인공 케이건은 수수께끼 하나를 낸다. 물을 마시는 새, 독을 마시는 새, 눈물을 마시는 새, 피를 마시는 새 중 어느 것이 가장 오래살고 어느 것이 가장 빨리 죽을까? 케이건은 이렇게 답한다. 사람들이 가장 내보이기 싫어하는 피를 마시는 새가 가장 오래 살고, 해로워서 밖으로 내보내려하는 눈물을 마시는 새가 가장 빨리 죽는다.
그는 무릇 왕이란 눈물을 마시는 새라고 말한다. 사모를 왕으로 추대하면서 케이건은 그녀가 눈물을 마실 줄 알기 때문에 북부의 왕이 될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눈물을 마시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의 왕은 나무의 단풍과 같다, 고 케이건은 말한다. 왕이란 일종의 희생양인 것이다. 나무가 겨울이라는 위기를 맞을 때 잎을 희생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왕이란 이름의 희생양을 만드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희생양을 바치자 위기를 이겨내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그 희생양을 존귀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왕인 것이다.
눈물을 마신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등장인물들의 말을 들으면 그 행위는 때로는 비정함을 말하는 것 같기도, 때로는 자기희생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정확한 말이 기억은 안 나지만, 어슐러 르 귄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소설의 교훈은 글로 나타낼 수 없다.' 눈물을 마시는 행위가 명확히 말로 떨어지지 않는 것은 그런 이유일 것이다.
단지 담고 있는 내용이 좋아서 눈마새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치밀한 구성을 가진 책을 읽으면 전율을 느끼곤 한다. 처음 그랬던 소설이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였고, 두 번째가 바로 이 '눈물을 마시는 새'였다. 거의 2000여 장의 긴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치밀한 구성이 작가 이영도의 장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눈마새는 바늘로 찌를 틈 없는 빈틈없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전작들과 비교하면 더욱 절실히 느껴진다.
드래곤 라자, 퓨쳐 워커 등의 초기 소설에서는 작가가 등장인물을 자신의 생각을 대변하기 위해, 혹은 이런 캐릭터가 필요하니까 넣었다는 느낌이 굉장히 강했다. 아마 내가 느꼈던 불편함이나 오글거림도 그것에서 비롯된 것 같다. 이야기의 전개 방식도 a라는 주제를 말하기 위해 이런 에피소드를 넣고, b라는 주제를 말하기 위해 저런 에피소드를 넣은 듯한 전개였다.
하지만 눈마새 이후의 이영도 작가는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전의 그가 판타지 소설로 자기 생각을 전달하는 사람이었다면, 눈마새 이후의 그는 진정 소설가이며 이야기꾼이 되었다. (물론 후속작 피마새의 경우 분량이 지나치게 긴 탓에 구성에서 약간 부족한 면이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너무 긴 탓이지, 절대 작가의 부족함이라 생각치는 않는다.)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글쓰기를 했을지, 감히 상상이 가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이영도의 신작이 늦어지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아마 치열한 자기반성과 되뇌임을 반복 중일 것이다. '눈마새 외전'의 출간이 취소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크게 실망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계속 그의 작품을 기다릴 것이다. 이영도는 매 작품마다 엄청난 발전을 보여주었고, 항상 기대치 이상의 작품을 내놓는 작가였기 때문이다.
*첨부된 사진은 소설과 전혀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