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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Oct 12. 2021

버몬트 가을 기행


백강(White River), 우리 한강만큼이나 멋진 이름이지 않은가. 더구나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아늑해지는 버몬트주에 있는 강이라니. 다른 건 몰라도 백강의 사연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내 주말 정도는 버릴 만한하다고 생각했다.


어디를 뒤져도 호텔은 만원이다. 코에 바람을 넣고싶은 인간들이 한둘이 아닌게지. 인간사 으레 그렇듯이 막판 취소가 있을테니 기다려보자고 했는데 정말 하나 걸린 것이 하필이면 강과 강이 만나는 River Junction. 그 읍내 이름이 그래서 White River Jumction이다. 백강은 이곳에서 코네티켓 강을 만나 대서양으로 간다.


버몬트가 겨울로 유명한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화이트 크리스마스' 도 아마 그중 하나이지 않을까.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퇴역한 장군이 운영하는 호텔, 수천명 호령하던 장군도 망해가는 호텔을 살릴 수는 없었고. 겨울이 배경임에도 아주 따뜻한 영화. 번잡하지 않되 눈은 넉넉하고 절벽같은 코스를 활강하는 프로급 스키어뿐만 아니라 A자 만드느라 무릎 나가는 줄 모르는 나같은 초보자도 환영하는 곳, 그 겨울의 고장을 나는 가을에 찾아 나섰다. 


91번과 89번 고속도로는 운전을 좋아하는 사람이 즐길 수 있는 단풍길이다. 91번 고속도로는 코네티켓의 뉴헤이븐에서 시작되어 매사추세츠, 버몬트 주를 관통한 다음 캐나다 국경에서 끝난다. 89번 고속도로는 뉴햄프셔주의 남동쪽 보우(Bow)에서 시작해 버몬트 주 북쪽 끝에서 역시 캐나다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 두 고속도로는 하필이면 두 강이 만나는 작은 도시 화이트리버정션에서 교차한다. 자연도 사람도 선택한 곳이니 풍수는 물을 필요도 없을 듯 하다.


버몬트의 단풍은 그 색이 선명해서 특별하다. 노란색과 오렌지색이 어우러져 있는데 그 가운데 빨간색이 툭 튀어나와 있는가 하면 그런 색에도 전혀 기죽지 않은 침엽수도 보기 좋다. 마치 촘촘히 박혀있는 브로콜리를 갖가지 물감으로 색을 입힌 것 같다. 붓으로 무심하게 툭툭 찍어 바른 듯 한.


맨스필드 산으로 가는 길은 중간중간 가을 이벤트 중인 곳을 지나느라 제법 정체다. 이 한적한 시골이 언제 또 이리 붐벼보겠나 싶은데, 가을을 즐기려는 수많은 사람중에 나도 끼어있다고 생각하니 정체도 그럭저럭 견딜만 하다. 산으로 가는 길은 외통수. 그 길 입구를 막고서 뜯어가는 통행세는 검색과는 달리 인두세다. 가을산의 품격을 보기 위해서 굳이 정상으로 갈 필요는 없다. 중턱부터 활엽수는 사라지고 침엽수림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정상에 오르면 샴플레인 호수도 보인다는데 저렇게 구름에 가려 있으니 다음을 기약할 밖에. 


집으로 오는 길에 흑강(Black River)도 지났고 광강(Mad River)도 지났다. 어딘가 홍강(Red River), 황강(Yellow River)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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