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의 우리 in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의 랜드마크인 할그림스키르캬 성당이 멀리 보이는 숙소에 체크인을 하자마자 함박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앞선 두 번의 여행과는 미묘하게 다른 느낌의 겨울이었다.
암스테르담 환승까지 20시간이 넘는 긴 비행에 지친 우리는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침대에 몸을 던져 버렸다. 방이 크지는 않았지만, 기분 좋게 바스락 거리는 이불의 감촉이 반갑기만 했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흰 눈이 내리기 시작한 창문 밖을 넌지시 바라보니, 맞은편의 이층 집에서 왈츠라고 생각되는 춤을 추는 여자가 보였다.
호사로운 무료공연을 보고 있자니 시간은 느리게 흐르기 시작했고, 나는 아주 행복한 순간에 빠져들었다.
라디에이터에 널어놓은 장갑과 양말이 기분 좋게 바싹 마르는 소리가 느껴졌다.
혼자서 떠났던 첫 번째 아이슬란드 여행을 돌이켜보면, 겁도 없이 도전한 첫 해외 운전이 바로 이곳이었다.
변변찮은 운전실력으로 링로드를 완주해야 했었기에 나의 몸과 정신은 항상 긴장의 연속이었고, 여행의 초반엔 주변을 볼 여유조차 없었다.
뒤차가 따라오기 시작하면 덩달아 초조해져 더 빨리 달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놓친 풍경들이 하루를 마감할때가되면 두고두고 아쉬웠었지
힘겹게 목적지에 도착하면 아쉬움을 맥주 한 잔을 위안삼아 괜찮다 다독이던 날들이 쌓여만 갔다.
동서남북도 제대로 모르는 나는 공교롭게도 빙하투어를 하다 떨어진 휴대폰 액정이 깨져 남은 여행은 지도에 의존하며 끝마쳐야 했다.
휴대폰 없이 여행한 첫 번째 여행은 조금은 불편한 여행이었지만, 나 자신을 좀 더 마주한 시간들이었다.
우리는 상대방의 기분은 중요시 생각하면서, 정작 나 자신을 돌아보고 소중히 여기는 시간은 좀처럼 가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선 첫 번째 아이슬란드 여행은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고독한 여행이었지만, 어쩌면 그 시간의 나는 조금은 더 단단해졌으니 그런 의미의 관점에선 좀 더 성장할 수 있었던 여행이기도 했다.
북부의 데티포스 폭포로 가는 길에서는 생전 처음 볼 정도의 폭설에 길이 통제되고, 차가 옴짝달싹 하지 못해 조난을 당하기도 했었다.
다들 폭설에 차량을 다시 돌렸는데, 데티포스를 보겠단 무모했던 나의 오기는 1킬로를 채 남겨놓지 않고 꺾여버리고 말았다.
생전 그렇게 무섭게 내리는 눈은 처음이었는데, 필사적으로 눈을 파내다 절망에 빠져있을 때 이미 무릎만큼 쌓인 눈을 휩쓸며 나타난 구조차량에 견인되어 기적처럼 그곳을 빠져나왔었다.
그 이후로 나는 아이슬란드의 날씨를, 특히 눈을 한껏 경계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아침에 깨어 큰 창문 밖으로 밤새 엄청나게 쌓인 눈을 바라보면 그 모든 고생이 눈 녹 듯이 사라지곤 했다. 아이슬란드의 눈은 경외롭다고나 할까.
아이슬란드의 겨울이 나는 이렇게도 좋아서 이번엔 겨울의 시작 즈음에 이곳에 와 버렸다.
조금은 충동적이기도 했지만, 조금의 용기를 가지면 이렇게 지구 반대편의 포근한 아지트에 올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밤이 되어도 유독 푸른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보고 있자니 마치 아늑한 집에 온 것처럼 어느새 다시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길고 긴 겨울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