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김정 Aug 23. 2024

주식, 코인으로 대박 맞은 경험이 과연 필요할까

고등어 요리




우리 집안에는 금기가 있다.    

  

고등어를 식탁에 올리면 안된다 이다.

어린 시절 고등어구이를 먹은 적이 있는데, 한입 먹자마자 내 배에만 오돌토돌 뾰루지 같은 게 갑자기 발진했다.      


“엄마, 가려워요.”

“이런, 이런.”

알레르기다.

가족들은 모두 혼비백산했다.

특히 병이라면 이상하리만치 공포심을 갖고 있는 아버지가 기겁을 했다.

“남은 거 싹다 갖다버려!”


그러나 어머니는 “이런 멀쩡한 걸, 굳이.” 하며 옆집에 얘기하니.

“괜찮으니, 우리 주쇼.” 하고 선뜻 건네받았다.

4남 1녀의 자식들과 연로한 할머니까지 모시고 사시는 대가족인 옆집은 구이며, 조림이며, 고등어김치찜이며, 시끌벅적 고등어 레시피 먹방을 했다.

“아니, 이 맛난 걸 먹고 알러지가 낫다고?”

“그렇다네요.”

“꺼억. 별 일이네.”     


그러나 아버지 생각은 달랐다. 병에 대해서는 엄격한 원칙론의 근본주의자였다.

중세 수도승이며, 이슬람 원리주의 시아파이다.

“네 속엔 고등어와 상극의 피가 흐르는 게 틀림없어.” 라며, 우리 집은 고등어를 밥상에 올리는 일은 일체 없었다.  

가자미는 올려도, 갈치는 먹어도, 동태는 괜찮아도, 새우젓갈, 멸치조림은 곁들여도, 고등어는 철저히 배제되었다.

나만 빼고 먹어도 될텐데, 매우 강경했다.   

난 그 뒤로 고등어가 없는 세계에서 살았다.     


그러다 회사 신입사원때 일이다.

연수원에서 인사담당 상무님과 점심 테이블에 동석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는 인사팀 부장님, 연수원 부소장님, 지도 선배님이 함께 했다. 회사 들어온지 1개월도 안되는 신입사원이 그런 자리에 껴앉은 것이다.

당연히 숨소리도 못 냈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신입사원이 백명도 넘었는데, 하필 내가 왜 그런 자리에 앉게 되었을까.

우수사원이라서. 신입사원들을 대표해서.

절대 아니다.

아마 강의실에서 무슨 일인가로 늦게 올라왔는데, 식당 문 앞에서 자리가 없어 꾸물쩍거리는 나를 보고, 지도선배님이 이렇게 말하며 손을 흔들었을 것이다.

“어이. 거기 멀뚱멀뚱 서있지 말고, 일로 와 앉아.”      


헌데 간밤 꿈자리가 나빴는지, 하필이면 식당의 메인 메뉴가 고등어조림이었다.

거기다 배식하시는 분께서 상무님과 함께 식사한다고 선심을 쓰듯 고등어 토막을 듬뿍 얹어주셨다.

사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시 연수원 식당에는 ‘잔반을 절대 남기지 말기’ 라는 캠페인이 한창이었다.

출구에서 영양사님이 엄정한 눈빛을 빛내며 식판을 일일이 확인하고 있었다.

“거기, 신입! 밥알 12톨 남았네. 이번만 봐줄게.”     


주위에 냠냠냠 맛있게 고등어를 먹고 있는 소리가 들린다.

요새 고등어가 제철 아닙니까 하는 손바닥 비비고 아부하는 소리도 들려온다.

나는 식판 위의 고등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침을 꿀꺽 삼켰다. 맛있어서가 아니라 긴장해서다. 등줄기로 식은땀도 흐르는 것 같다.

딜레마다.

알레르기 때문에 편식이나 하는 나약한 이미지를 회사생활 초반부터 내보일 수는 없어 라고 나는 순진하게 생각했던 거다.

지금이야 “전 알레르기 때문에 이딴 거 먹을 수 없어요. 딴 거 주세요” 했겠지만.

그건 배가 나오고, 틀딱이 되고, 누구네 부서가 회식으로 어디 좋은데로 가는지, 그 돈은 어떻게 꽁쳤는지까지 알게되는 세월이 흘러서다.     


그래서 마음을 다졌다.

‘이건 고등어가 아니라 고등어로 둔갑한 삼치이거나 살찐 꽁치일 뿐이야’ 라고.

오쇼 라즈니쉬 비파사나 명상까지 동원했다는 좀 과장이고.     


그렇게 나는 고등어를 섭취했다.

결론은.

내 몸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린 시절 발진했던 뾰루지는 일도 찾아볼 수 없었다.

허무하지만, 그렇다.     


이 세상 어떤 금기란 어쩌면 경험이라는 미명하에 맹신, 또는 편견에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닐까 싶다.

경험이 오히려 자신을 배신하는 것이다.     


좀 참담한 타입으로 그런 류는 또 있다. 예전에 있었던 일이다.     


A라는 회사의 주식으로 한때 꽤 높은 수익율로 푼돈을 번 적이 있다.

사람들이 한턱 쏘라며 “주식의 신이네.” “비결이 뭐야.” “재주가 남다르네.” 난리가 났다.

얻어먹고 싶어서겠지만, 듣기에 나쁘지는 않았다.     


단순했다.

주가가 많이 떨어졌길래 샀던 거고, 올라서 판 것이다.

아내 몰래 꽁쳐둔 비상금으로.     


이런 단순한 진리를 사람들이 왜 모르지 하며 혼자서 히죽히죽 웃었다.

주식 별 거 아니네 하고.

내게 이런 재능이 있었나 싶다.

늦었지만, 내 안의 빛나는 재능을 찾게돼서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간혹 늦은 나이에 재기가 꽃피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조선시대 이황선생님이라든지, 65세에 kfc를 차린 할랜드 샌더스 할아버지라든지.     


여하간.

이러다 너무 큰 부자가 되면 어쩌나 하고 걱정도 들었다.

“먼 친척까지 돈을 빌려달라고 손 벌리면 어쩌지.” 하고.

친구들도 문제고. 부모님들도 “에휴, 노후가 말이다.” 할텐데.     


어쨌든 계획은 있었다.

일단 큰 돈을 벌면 이 지긋지긋한 회사부터 때려치고, 사무실을 두고, 전문 투자가로 회사도 차리고, 비서도 둔다 하며 상상의 나래를 폈다.

사무실 자리는 테헤란로가 나을까, 여의도 증권가가 좋을까 하고 고민도 하고.

차는 뭐로 바꾸지 히히히 하고.     


그러던 어느날 지켜보던 B 라는 회사의 주가가 곡소리 나도록 내리길래 돈을 좀더 끌어다(아내 몰래 직장인 신용대출도 쓰고) 밀어넣었다.

이전의 경험처럼 많이 떨어졌으니 오르겠지 하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이제 곧 부자가 되겠구나 하고.


그로부터 두달 뒤 모니터를 열어보니 입이 떡 벌어졌다.

주식의 신은 나를 철저히 외면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내게.”

경험은 오히려 나를 배신했다.     


회사에는 부업이 금지라는 금기가 있는데, 이걸 몰래 깨는 것이 좋을지 나쁠지 고등어 구이를 먹으며 고민했다.     


“여보! 신용대출 안내 문자, 이거 뭐야?”

“아니야! 그거 스미싱이야. 보기만 해도 스미싱 걸려! 읽지마! 제발!”

매거진의 이전글 자동차의 온기를 느끼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