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 비즈니스로 대전환, K-콘텐츠의 넥스트 스텝
'IP 비즈니스'라고 하면 어떤 것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가?
아마도 <미키 마우스>라는 장수 캐릭터부터 영화, 애니메이션, 테마파크에 이르는 IP 왕국을 건설한 디즈니나, 일본을 대표하는 캐릭터 <슈퍼 마리오>를 탄생시킨 닌텐도 같은 회사일 것이다.
이처럼 IP 비즈니스라고 하면 이런 슈퍼 IP가 먼저 떠오르기 마련이고, 이걸 하려면 대단한 노력과 자본이 투입 되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실제로 한 포럼에서는 게임사에서 IP 사업을 담당하시는 분이 IP 사업은 '오너 사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투자가 많이 들어가고 당장에 성과가 나지 않기 때문에 오너가 관심을 가지지 않고서는 제대로 IP 사업을 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수년 전 포맷 사업을 담당할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중소 제작사 대비 많은 인프라를 보유한 방송사나 대형 스튜디오조차도 IP로 다양한 사업을 하는 것에 대해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았다. 투자 대비 성과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했다.
위에서 언급한 사례들은 게임과 방송이다. 이 두 장르는 대작의 경우 수백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되기도 하니 당연히 리스크가 크다. 게다가 우리나라 방송 분야는 저작권이나 사업권이 하나로 모이기가 쉽지 않아 IP로 사업을 하기에 더욱 어려운 여건에 있다.
* 롱테일 전략: 소수의 인기 상품에 집중하는 대신 다양한 상품들을 제공해 틈새 시장을 공략하는 방식
콘텐츠산업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대작들로만 IP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 맞을까? 하나의 산업이 지속가능하려면 다양하고 많은 사업자들이 시장에 계속 유입되어야 하고, 대박은 못쳐도 중박이라도 쳐서 이익을 내고 사업을 계속 영위할 수 있는 생태계가 조성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경쟁력 있는 스몰 IP가 많아져서 산업의 허리를 탄탄히 지탱할 수 있도록, 롱테일 전략 관점에서 IP 사업 관련 정책을 수립해 뒷받침 하는 것이 필요하다. 양질전환의 법칙*도 있듯이 스몰 IP가 계속해서 나오면 그 중에서 슈퍼 IP도 등장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우리가 아는 슈퍼 IP들도 기획 단계부터 대작이 아니었던 경우도 많았다.
* 양질전환의 법칙: 헤겔의 변증법에서 나온 개념으로, 일정한 양이 누적되면 어느 순간 질적인 비약이 이루어진다는 의미(박용환, 2016)
특정 장르에서는 아닐지 모르겠지만, 콘텐츠산업 전체를 봤을 때는 이런 스몰 IP 기반 롱테일 전략에 대한 가능성은 보이고 있다.
특히, 캐릭터 시장이 그러하다. 이 분야는 다른 장르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은 편인데, 최근 이모티콘 시장의 급성장으로 개인 창작자도 큰 수익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카카오가 추산한 국내 이모티콘 시장 규모는 2024년 기준 1조 2천억 원을 넘었고, 누적 매출 1억 원 이상이 2,885개, 10억 원 이상은 146개, 100억 원이 넘는 이모티콘도 17개나 되었다(이정현, 2025).
물론 소수의 상위권 IP가 가장 많은 수익을 얻고 있지만, 어느 정도 인지도를 얻은 스몰 이모티콘 IP도 팬덤을 기반으로 다양한 라이선싱 비즈니스로도 파생된다. 인형, 키링 등의 굿즈로 제작돼 판매되고 팝업스토어 등 다양한 마케팅을 통해 팬덤이 확장되고 수익도 늘어나게 된다. 이런 캐릭터 IP는 창작자들이 SNS를 기반으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자신만의 팬을 위한 일러스트나 상품을 판매하며 팬덤을 형성하고 확장한다.
"예전에는 몇몇 IP가 독식하는 구조였다면
지금은 크든 적든 팬덤을 가진 IP가 무수히 많다."
- 정태호 대표(잇츠유어프라임타임) -
from 아이러브캐릭터 인터뷰(2024)
영상과 게임은 제작비 규모가 큰 분야로 대작 중심의 투자가 많이 이루어지는 분야다. 독립영화나 단막극, 인디게임 같이 작은 제작비 규모의 작품도 존재하지만 이것으로 IP 비즈니스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영상 분야는 넷플릭스 이슈로 인한 저작권이나 제작비 급등 문제, 게임 분야는 모바일 게임이 대세가 되면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영상 분야 스몰 IP 선구자는 '와이낫미디어'라고 할 수 있다. 2010년대 중반 유튜브 기반 웹드라마로 비즈니스를 시작했고, 작은 규모의 콘텐츠를 다작하며 IP를 확보하고 성공 가능성도 높여가는 전략을 추구했다. 그러다가 성공한 IP나 나오면 스핀오프, 부가사업 등 다양한 IP 사업을 하며 수익을 창출했고, 이러한 BM을 인정받아 500억 원이 넘는 투자를 유치했다. 지금은 M&A를 통해 숏폼부터 롱폼, 미드폼 등 다양한 제작 라인을 구축해 덩치를 키워나가고 있다.
게임 분야의 경우 캐쥬얼 게임 <고양이와 스프> IP가 주목할만 하다. 2021년 네오위즈에 인수된 인디게임사 하이디어의 작품으로 현재까지 글로벌에서 6천만 다운로드가 넘었다. 이러한 인기와 IP성을 바탕으로 동화책, 굿즈 등 다양한 IP 라이선싱 사업을 하고 있고, 작년에는 카페와 콜라보한 팝업스토어도 개최했다. 이처럼 <고양이와 스프>는 수많은 대형 게임 IP 사이에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팬덤을 구축하고 확장해나가고 있다.
콘텐츠산업에서 스몰 IP는 단순히 생태계 다양성 차원에서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언제든지 빅 IP로 성장할 가능성도 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수많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이 존재하고, IP를 단순히 소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향유하는 '팬덤'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IP의 1차 소비는 대부분 플랫폼에서 이루어진다. 인스타그램, 틱톡, 플랫폼 유튜브, 구글플레이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캐릭터, 영상, 게임 등이 소구되고 있다. 플랫폼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어 누구든지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고, 원하는 콘텐츠를 즐길 수도 있다. 특히, 소비자의 선택권이 넓어져 자신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 소비가 늘고 이것은 팬덤 형성으로 연결된다.
이런 시대이기 때문에 스몰 IP가 소수 팬덤으로도 니치 마켓에서 생명력을 가질 수 있지만, 언제든지 빅 IP로 성장할 수도 있다. 캐릭터 분야에서는 이미 수많은 이모티콘 IP가 이를 입증하고 있고, 영상은 숏폼, 게임은 인디게임 등 장르마다 스몰 IP가 빅 IP로 성장한 사례가 계속 나오고 있다. 더 이상 국내 콘텐츠산업이 All or Nothing이 아닌, 다양한 IP가 존재하고 이를 기반으로 IP 비즈니스로 더 큰 수익 창출이 가능한, 그런 생태계가 조성되기를 바란다.
이미 그간 정부에서는 이런 스몰 IP를 탄생시키기 위한 기획·제작비를 지원해 왔다. 그래서 기관의 IP 관련 전략을 고민할 때 주안점을 둔 것은 스몰 IP의 지속성과 다양한 IP 비즈니스를 위한 지원책이었다. IP의 지속성은 새로운 시즌이나 스핀오프 같은 콘텐츠가 꾸준히 나와야 하고, 팬들에게도 계속 노출되기 위한 마케팅이 필요하다. 그간 콘진원이 해오던 신규 콘텐츠 개발, 콘텐츠 기업 중심 B2B 같은 기조와는 달라져야 했다.
이러한 지원책을 신규 사업에 반영하려 했지만 예산 확보에는 실패해서, 현재 관련된 몇몇 사업에 적용해서 실행해보고 있다. 늘상 해오던게 아니라 시행착오는 겪고 있지만, 그래도 그 결과 하나하나를 보며 방향성은 어느 정도 입증되고 있는 것 같다. 관련 사업들의 실행과 결과에 대해서는 차후에 다루도록 하겠다.
참고문헌
이정현, '카톡 이모티콘 출시 14주년…매출 1억 이상 이모티콘만 2885개', 머니투데이, 2025.
박용환, '양에 집중하라', 세이지,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