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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팬덤, 팬과 팬을 연결하라

브랜드 팬덤에서 놓치고 있는 팬덤의 핵심 전략

by 박찬우


스크린샷 2025-09-08 083841.png <어메이징 스토리> 1926년 11월호 표지

<어메이징 스토리>라는 1926년 휴고 건즈백이 창간한 SF 전문 월간지 이야기로 시작해 보죠. 예전 잡지를 좀 보신 분이라면 잡지 중간 부분쯤 구독자 엽서 코너를 기억하실 텐데요, <어메이징 스토리>에는 지금이면 상상할 수 없는 독특한 기능이 있었습니다.


<어메이징 스토리> 잡지사에 편지로 의견을 보낸 구독자들의 주소를 잡지에 게재하여 독자들이 서로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하는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한 것입니다. 자신 말고도 <어메이징 스토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독자들은 공개된 주소로 편지를 보내 펜팔 친구가 되어 팬클럽을 결성하고 자신들만의 팬진(팬잡지)을 발행하기도 했습니다. 마이클 본드의 <팬덤의 시대>에 의하면 이는 최초의 팬커뮤니티이자 거의 확실히 최초로 알려진 공상과학 팬덤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팬덤은 팬덤의 대상인 스타와의 연결도 중요하지만 팬과 팬이 연결되어야 창의적 발전과 지속적 운영이 가능해집니다. 브랜드 팬덤에서 대부분의 브랜드가 브랜드와 팬을 연결하는데만 집중하고 팬과 팬 간의 연결을 놓치고 있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무언가를 아주 좋아하면 그것을 공유하고 싶어지고,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이야기하고 싶어 진다."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팬 문화를 연구하는 캐서린 라슨의 말처럼 팬덤의 영향력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팬과 팬을 연결하여 소속감, 참여감, 성취감을 배양해 주어야 합니다. 이제부터 팬과 팬을 연결하는 방법들을 차례로 알아보겠습니다.


브랜드가 중계하는 느슨한 연결


팬덤의 시작은 거대한 커뮤니티가 아닌, '나와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이 또 있구나'라는 가볍고 느슨한 깨달음에서 비롯됩니다. 이 단계에서 브랜드의 역할은 팬들에게 낮은 진입 장벽으로 다가가 그들이 서로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연결의 끈'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뉴스레터나 카카오톡 등이 바로 이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합니다.


휴롬의 베프 케미스트 뉴스레터

팬과 팬이 직접 마주하지는 않지만 브랜드가 매개가 되어 서로 연결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뉴스레터를 통한 연결입니다. 휴롬의 브랜드팬덤 '베프 케미스트'의 경우 팬덤만을 대상으로 전송되는 뉴스레터를 통해 다른 팬들의 활동이나 소식, 새로 합류한 팬 소개 등과 같은 콘텐츠로 팬과 팬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휴롬의 브랜드 팬덤, 베프 케미스트를 어떻게 구축했는지가 궁금하시다면


이처럼 느슨한 연결은 팬덤의 외연을 넓히고, 팬들이 서로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판'을 깔아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연결의 핵심은 일방적인 정보 제공이 아닌, 팬들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가벼운 콘텐츠와 경험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스크린샷 2025-09-16 141738.png 한성기업의 한성Club 오픈 채팅방

팬들을 전용 커뮤니티 인프라 없이 기존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통해 연결점을 만들어내는 또 다른 방법은 카카오톡과 같은 메시징 앱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한성기업의 브랜드 팬덤 '한성Club'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사용 중인 카카오톡 서비스를 활용하여 오픈 채팅방을 개설했습니다. 이 오픈 채팅방을 통해 한성Club만의 독점적인 정보나 이벤트를 제공하고 있으며, 팬들 간의 소식과 참여 후기 등을 함께 공유하면서 팬들이 비공식적이지만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느슨한 연결’은 팬들이 자연스럽게 같은 공간에서 정보와 경험을 나누는 습관을 기르도록 촉진하게 됩니다.


뉴스레터와 카카오톡과 같은 기존 메시징 서비스를 활용할 때 중요한 것은, 단순히 브랜드의 팬들에게 정보나 소식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팬들의 모임이나 활동 소식, 멤버 간 후기 공유 등을 꾸준히 전달하여 팬들이 서로 정보를 교류하고 느슨하게 연결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입니다.


브랜드가 '중계자' 역할을 하며 팬들 사이에 가벼운 접점들을 자주 만들어 주는 방식은 참여 부담은 낮고, 정보는 꾸준히 공유되며, 팬들의 취향은 서서히 맞물리게 합니다.


강력한 효과의 오프라인 모임


느슨한 연결을 통해 팬덤의 규모를 확장했다면, 그다음 단계는 물리적 만남을 통해 팬덤의 결속력을 다지는 것입니다. 지역적, 시간적 제약은 있지만, 오프라인 미팅은 온라인에서 얻을 수 없는 생생한 교류와 공동 경험을 제공하며 팬들의 유대감을 폭발적으로 강화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할리데이비슨의 H.O.G.

1983년에 시작된 H.O.G. 는 할리데이비슨 오너를 위한 공식 팬 커뮤니티로, 단순한 제품 사용자 모임을 넘어서 라이더들이 서로 직접 만나고 교류하는 장을 제공합니다. 지역별 챕터 활동, 정기 랠리(대규모 집회), 투어, 라이딩 이벤트 등 다양한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팬들은 브랜드에 대한 애정과 유대감을 깊게 쌓아갑니다. 특히 이 모임은 단순히 브랜드와 팬을 연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팬과 팬이 직접 연대하며 강력한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H.O.G. 모임에서는 회원 간 친목 도모는 물론, 라이딩 스킬 공유, 안전 교육 등 실질적이고 가치 있는 경험이 공유됩니다. 팬들이 직접 주도하는 다양한 행사들은 브랜드 충성도를 강화하고, 브랜드를 넘어선 ‘라이프스타일 공동체’로 확장되는 효과도 얻었습니다. 이처럼 물리적 공간에서 직접 만남을 통해 만들어진 팬 간 끈끈한 유대는 온라인 활동만으로는 불가능한 강력한 팬덤 에너지를 생성합니다.


에듀윌 공인중개서 합격자 모임

하지만 이런 오프라인 모임의 강력한 장점을 유지하면서 지역적, 시간적 제약을 뛰어넘는 방법도 있습니다. 바로 에듀윌의 '2022 공인중개사 합격자 모임'처럼 온라인으로 확장하는 경우죠. 매일일보 기사에 따르면, 에듀윌은 합격자 모임을 3년 연속 온라인으로 진행했는데도 사전 신청자만 3천 명을 넘었고, 유튜브 라이브에는 약 4천 명이 참여하는 등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고 합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으로 전환된 행사였지만, 물리적 제약 없이 전국 각지의 합격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합격을 축하하고 고생을 위로하는 본래의 목적을 성공적으로 달성한 것입니다. 오히려 더 많은 팬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게 된 셈이죠.


팬덤의 오프라인 모임의 핵심은 '동시 행동'입니다. 같이 해봤다는 경험은 온라인 대화의 밀도를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습니다. 팬들이 직접 참여하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놀이터'로서 행사를 기획해야 합니다. 단순히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는 팝업스토어를 여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공간을 팬덤의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무대'로 만들어야 합니다.


오프라인 경험은 팬덤의 충성도를 심화시키는 결정적인 단계입니다. 지역적, 시간적 한계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오프라인 모임은 언제나 팬과 팬을 연결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입니다. 팬덤에게 이러한 물리적인 만남은 서로의 존재를 현실에서 확인하고, 공동의 경험을 쌓으며 소속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결정적인 기회입니다. 온라인상의 느슨한 연결이 깊은 관계로 발전하기 위한 필수적인 기회인 것이죠.


영향력을 발휘하는 커뮤니티로 연결


오프라인 모임과 온라인 소통이 팬들 간의 교류를 촉진하는 '채널'이라면, 전용 커뮤니티는 팬덤 활동의 모든 것을 담는 '플랫폼'입니다. 브랜드가 직접 팬덤을 위한 생태계를 구축하고, 팬들이 그 안에서 주체적으로 활동하게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스크린샷 2025-09-16 160539.png LG전자 틔운 카페

LG전자의 식물생활가전 '틔운'은 자체적인 커뮤니티 플랫폼을 구축하는 대신,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네이버 카페를 팬덤의 공간으로 선택했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이제는 한물간 채널로 생각했던 바로 그 네이버 카페 말입니다. 오히려 네이버 카페를 활용함으로써, LG전자는 자체 플랫폼 개발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고 팬들에게는 접근성이 좋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단순히 LG전자 틔운의 소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팬들 스스로가 소통의 주체가 되고 문화를 만들어가는 장을 마련해 주는 것에 중심을 두었다는 점입니다. 팬들은 이 공간에서 틔운 제품 사용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 식물 재배 경험을 공유하며, 때로는 제품 개선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안하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팬들은 자신이 브랜드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커뮤니티 연결의 핵심은 팬들이 서로 교류하고, 브랜드에 대한 애정을 마음껏 표현하며, 심지어는 브랜드의 비공식 앰버서더가 될 수 있는 강력한 무대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스크린샷 2025-09-16 160831.png 밀워키의 네이버 카페

공구계의 명품으로 불리는 '밀워키(Milwaukee)'의 한국 공식 네이버 카페 역시 강력한 팬덤 커뮤니티의 모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밀워키 공구를 사용하는 전문가나 취미로 공구를 다루는 소위 '공구 덕후'들이 이곳에 모여 제품 사용 후기부터 장비 튜닝 팁, 심지어 특정 작업에 최적화된 공구 조합에 대한 정보를 활발하게 공유합니다.


단순히 제품에 대한 질문을 넘어, 서로의 작업 노하우를 배우고, 더 나은 작업 환경을 위한 아이디어를 나누면서 팬들은 더욱 깊은 유대감을 형성합니다. 밀워키코리아 역시 이러한 팬들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때로는 카페 회원들의 의견을 제품 개발에 반영하는 등 소통의 창구로 활용합니다. 이렇게 팬과 팬이 연결된 커뮤니티는 정보 교환을 넘어 강력한 공동체를 형성하며 브랜드의 영향력을 자연스럽게 확장하는 역할을 합니다.


성공하는 팬덤 커뮤니티에서 브랜드는 팬덤 운영의 주체가 아닌 '무대'를 제공하는 역할로 물러 납니다. 즉 브랜드는 ‘운영자’이자 ‘조력자’로서 규칙·경험·인센티브를 설계하고, 팬들은 브랜드의 울타리 안에서 스스로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브랜드의 가치를 내재화하는 진정한 '지지자'로 성장합니다.


영향력을 발휘하는 커뮤니티의 연결의 핵심은 팬들이 자발적, 주체적으로 소통하게 하는 것입니다. 팬들이 스스로 콘텐츠를 생산하고, 서로 정보를 교류하며, 브랜드의 공동 창작자(Co-creator)로 성장하는 자율적인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죠. 이것이 팬덤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가장 중요한 전략입니다.


고객과 고객, 팬과 팬의 연결을 두려워 마라


아마 많은 기업들이 소셜미디어 시대가 열린 후, 고객과 고객이 서로 연결되어 기업에게 항의하거나 대항하는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위기들을 겪은 기억이 있을 겁니다. 그 때문에 여전히 많은 브랜드가 팬들 사이의 직접적인 연결을 달가워하지 않거나 심지어 경계하는 시선으로 바라보곤 합니다. 과거의 부정적인 경험은 분명 무시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건강한 팬덤은 팬과 브랜드의 관계를 넘어, 팬과 팬 사이의 관계에서 더 큰 가치를 창출합니다. 팬과 팬의 연결은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새로운 사용법을 발견하며, 때로는 브랜드가 미처 생각지 못한 창의적인 방식으로 브랜드의 가치를 확장시키기도 합니다. 팬들끼리의 소통과 교류는 브랜드에 대한 애정을 강화하고, 더 많은 잠재 고객을 팬으로 끌어들이는 강력한 원동력이 됩니다.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나 유대감을 다지고, 온라인으로 주기적으로 소통하며 연결 고리를 놓지 않고, 나아가 활발한 커뮤니티를 통해 팬들 스스로가 브랜드의 든든한 지지자가 되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브랜드 팬덤을 얻기 위해 브랜드가 노력해야 할 핵심입니다.


팬과 팬의 연결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들이 만들어내는 창의적 에너지와 지속적인 충성도는 어떤 마케팅 캠페인보다도 강력한 브랜드 자산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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