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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조공, 팬들의 팬이 되자

팬심은 '얻는' 것이 아닌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지는' 브랜드 자산

by 박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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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의 컴백 신곡 쇼케이스 현장. 관객석 의자마다 정성스레 준비한 굿즈나 선물이 가지런히 올려져 있습니다. 컴백 무대에는 일반적으로 팬덤 중에서 일부 선발된 인원이 초대되죠. 이른 아침부터 생방송이 있는 시간까지 아무리 즐거운 놀동이라도 고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팬들에게 정성이 담긴 선물은 이제 필수입니다.


선망의 대상인 아이돌이 팬들에게 베푸는 이러한 '역조공' 현상은 이제 일반화되어 팬덤 간의 경쟁이 벌어지는 등 중요도가 커졌습니다.


'역조공(逆朝貢)'은 선망의 대상인 스타가 팬들에게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위를 일컫는 신조어입니다. 이는 팬들이 스타에게 선물하는 '조공(朝貢)'이라는 은어의 개념을 뒤집은 것이죠. 팬덤 문화에서 '조공'은 본래 종속국이 종주국에 예물을 바치는 사전적 의미를 차용하며 스타와 팬덤 간의 권력관계를 상하로 고정시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팬덤의 역할이 일방적인 지원자에서 스타와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로 변화하면서, 역조공은 팬들에게 보답하고 소통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역조공은 단순히 개인의 애정 표현을 넘어, 팬덤을 핵심 이해관계자로 인식하고 이들의 자발적 '놀동'을 격려하는 마케팅적 지원으로 진화했습니다. 이는 팬심이 더 이상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지는' 브랜드 자산이라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입니다.


*놀동이 생소하시다면


브랜드의 역조공은?


브랜드는 어떤 의미에서 이미 역조공의 경험이 풍부합니다. 브랜드의 기념일이나 특별한 이슈가 있는 날엔 언제나 고객들에게 선물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준비해 왔으니까요. 매우 익숙한 상황이죠.


스크린샷 2025-09-01 135201.png 예스24의 해피 예스데이

브랜드의 생일을 맞아 고객들에게 특정의 선물이나 서비스를 무료 제공하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예스24의 '해피 예스데이', 생일맞이 역조공 이벤트를 살펴보세요. 매일 이벤트를 신청한 예스24 회원 중 10명을 선정하여 책선물을 하는 이벤트입니다. 예스24를 이용해 준 고객들에게 역조공 혜택을 돌려준 사례입니다.


20240730143453_2057995_900_1282.jpg 휴롬의 역조공 페스티벌

휴롬은 휴롬 착즙기 사용고객을 위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건강 습관을 만드는 ‘휴롬 주스키트’를 최대 1년간 무료로 체험할 수 있는 ‘역조공 페스티벌’을 진행하였습니다. 회원 가입을 하고 설문조사에 참여한 고객들 중에서 역조공을 받을 고객을 선정하여 휴롬이 항상 제안하는 '건강을 선물'하는 방식입니다.


Free_Cone_Day.jpg?p=twitter 벤앤제리스의 '프리콘데이'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브랜드 벤앤제리스의 프리콘데이(Free Cone Day)는 소비자들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일 년에 하루, 아이스크림 콘을 무료로 나눠주는 행사입니다.


1979년 벤앤제리스 창업자 벤 코헨(Ben Cohen)과 제리 그린필드(Jerry Greenfield)가 버몬트에서 첫 매장을 운영하며, 첫해를 무사히 보낼 수 있도록 도와준 고객들에게 감사하는 의미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이벤트는 단순히 아이스크림을 무료로 주는 행사를 넘어, 팬덤에게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는 '역조공'의 개념을 담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고객과의 상호작용을 강화하고 브랜드에 대한 로열티를 높이는 효과를 얻는 벤앤제리스의 대표 이벤트로 자리매김했죠.


위에서 소개한 세 가지 사례는 브랜드가 그들의 팬들에게 역조공을 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방식입니다. 이러한 역조공의 방식은 직관적이어서 좋지만 일반적인 판촉 프로모션과 유사해서 조금 더 신경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벤앤제리스의 프리콘데이는 위의 다른 사례와 달리 장기간 지속적으로 진행된 행사이기 때문에 고객들에게 다른 두 사례보다는 역조공이 진정성 있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반 고객보다는 팬에 집중!


휴롬과 예스24, 벤엔제리스의 사례 모두 일반 고객 또는 대중을 대상으로 역조공을 한 사례입니다. 하지만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역조공은 팬덤을 핵심 이해관계자로 인식하고 이들의 자발적 '놀동'을 격려하는 마케팅적인 지원을 하는 것입니다. 역조공의 대상을 팬이나 팬덤으로 집중하면 더욱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생일을 맞아 '까르보불닭볶음면'을 선물로 받자 눈물 흘리는 미국소녀 영상은 틱톡, 인스타그램 등 SNS 공개 이후 약 1억 회, 좋아요 약 1000만 개를 기록했습니다.


삼양라운드스퀘어는 이 영상의 주인공인 아달린이 거주하는 미국 텍사스의 샌안토니오로 까르보불닭볶음면 색상의 핑크 테마로 밴 차량을 꾸미고, 약 1년 치를 먹을 수 있는 약 1000여 개의 제품을 준비했습니다. 아달린의 가족들과 함께 집 앞마당, 뒤뜰에 불닭볶음면 제품은 물론 풍선, 가랜드 등으로 꾸민 깜짝 파티로 팬에 대한 역조공 이벤트를 진행했습니다.


Lay’s Chip Cam with David Beckham & Thierry Henry

'No Lay's No Game'라는 메시지를 캠페인으로 강조해 온 칩스 브랜드 레이(Lay's)는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팬을 대상으로 역조공을 실행했습니다.


축구 스타인 데이비드 베컴과 티에리 앙리가 경기장에서 경기 시작을 기다리면서, 앙리가 레이 칩스를 혼자 다 먹어버리는 상황에서 발생합니다. 이들은 더 이상 먹을 레이 칩스가 없자, 경기장 대형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에게 '레이 칩스를 가진 사람이 있는지' 물어봅니다. 이때 '레이 칩 캠'이 작동하여 관중석을 비춥니다. 스크린에 잡힌 관객들은 자신들이 가진 다양한 물건(피자, 빈 레이 칩스 봉지, 심지어 레이 칩스 사진)을 들어 보이며 주목받기를 원합니다. 마침내 레이 칩스 봉지를 들고 있는 팬을 찾아내면, 베컴과 앙리는 그 팬을 자신들의 VIP 좌석으로 초대하여 함께 경기를 관람하는 특별한 경험을 역조공을 선물합니다.


역조공은 팬의 합당한 놀동에 대한 보상일 때 더욱 효과적입니다. 팬덤의 영향력은 이러한 보상에 대한 선망이 중요합니다.


* 팬덤을 선망의 대상으로 만드는 이야기는 지난 칼럼에서 다루었었죠.


역조공의 가치는 규모나 가격이 아닌 진심에 달려 있습니다. 팬들이 스타나 브랜드가 자신들의 '노고'를 알아주고 '배려'하고 있다고 느낄 때 가장 강력한 효과를 발휘합니다. 따라서 역조공의 대상은 팬이나 팬덤이 우선되어야 진정성과 공감을 이끌어 내게 됩니다.


팬들의 팬질을 응원!


* 팬들의 '비이성적 사랑(irrational love)'에 대해서 하인즈의 사례로 설명을 드렸었죠.


2023년 하인즈는 팬들이 라벨과 제품을 타투로 새긴다는 점을 주목했습니다. 빨간색 잉크가 알레르기 반응 및 기타 합병증을 유발할 위험이 높이 기피하는 색상이라는 점을 파악하고, 타투 잉크 제조업체인 일렉트릭 잉크(Electric Ink)와의 협업을 통해 인체에 안전한 성분으로 구성된 빨간색 타투 잉크를 개발했습니다.


하인즈 타투잉크

출시를 기념하여 5명의 유명 타투 아티스트와 함께 57개의 오리지널 하인즈 타투 스탠실을 제작하고 팬들에게 무료로 타투를 새겨주는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하인즈는 자신의 몸에 하인즈를 새길 정도의 슈퍼팬들의 비이성적인 사랑을 인정하고 존중하였고 더 나아가 응원하였습니다. 이는 팬들에게 '나의 사랑이 가치 있구나'라는 확신을 주며 강한 유대감을 형성했습니다. 단순히 상품을 제공하는 대신, 팬들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독점적인 경험인 '하인즈 타투'를 선사한 것입니다.


핵심은 팬들이 더욱 깊이 팬질에 몰입할 수 있도록 그들의 문화와 열정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역조공' 전략을 구사하는 것입니다. 단순한 상품 제공이 아닌 특별한 경험과 진정한 가치를 선물함으로써, 팬들은 브랜드의 가장 열정적인 홍보대사가 되고, 이는 궁극적으로 브랜드 가치 상승으로 이어집니다.


팬들의 불편함을 해결!


팬들은 스타나 브랜드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때로는 불편함이나 아쉬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팬심은 '무조건 참는' 것이 아니거든요! 이런 소소한 불편함까지 세심하게 파악하여 해결해 주는 것이야 말로 강력한 역조공이 역조공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팬들이 ‘아, 이 브랜드는 정말 우리 마음을 알아주는구나!’ 하고 진심으로 감동하게 만듭니다.


치토스 팬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치토스를 먹은 후 손에 남는 끈적하고 주황색 가루는 불편하고 귀찮은 '단점'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치토스는 이 치즈 가루에 '치틀(Cheetle)'이라는 고유명사를 붙여 단순한 찌꺼기가 아니라 치토스의 진한 맛과 특별한 경험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재정의했습니다.


치토스 팬들이 치틀을 손에 묻히는 것을 즐기지만, 닦을 곳이 마땅치 않다는 불편함을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치토스 팬츠'를 출시했습니다. 바지 허벅지 부분에 수건 질감의 패널을 부착해 언제든지 치틀을 닦을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치토스 더스터

또한 치토스 팬들이 요리에 치틀을 뿌리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보다 쉽게 치틀을 만들 수 있는 조리도구 치토스 더스터(Cheetos Duster)를 개발했습니다. 약 2,000개의 상품을 준비했는데 단 두 시간 만에 완판 되었습니다.


치토스는 브랜드가 가진 '결점'도 매력이 될 수 있으며, 오히려 상징적인 특징으로 당당하게 내세울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치토스를 먹는 전체적인 경험'에 집중하여 손에 묻는 가루까지도 즐거운 경험의 일부로 인식하게 만들었죠. 그러면서도 팬들이 불편하게 느낄 수 있는 요소를 외면하지 않고, 더욱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굿즈를 개발하여 완벽한 역조공을 실현했습니다.


KFC의 트레이 타이퍼

유사한 접근법으로 KFC도 혁신적인 해결책을 제공한 사례가 있습니다. KFC를 먹을 때 손에 묻은 기름 때문에 스마트폰을 만지기 어렵다는 팬들의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쟁반 위에 놓는 일반 종이 대신 '트레이 타이퍼(Tray Typer)'라는 이름의 초박형 블루투스 키보드를 제공한 것이죠.


트레이 타이퍼는 얇은 종이 형태의 키보드로, 무선(블루투스)으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과 연결됩니다. 기름기가 손에 묻더라도 키보드로 타이핑을 할 수 있어, 식사 중에도 스마트폰을 깨끗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충전식으로 여러 번 사용할 수 있으며, 방수가 되어 닦아서 재사용이 실용적인 디자인을 자랑합니다.


KFC는 이 캠페인을 통해 고객의 작은 불편함까지 세심하게 배려하는 혁신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구축했습니다.


하인즈의 Pour Perfectly

케첩을 즐기는 팬들의 오래된 불편함 중 하나가 병 바닥에 남은 케첩을 꺼내 먹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하인즈는 이러한 팬들의 불편함에 창의적이고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그중 'Pour Perfectly' 캠페인은 케첩이 가장 잘 흘러나오는 최적의 각도가 45도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발견하고, 이 사실을 소비자들에게 재미있게 알렸습니다. 병의 라벨을 이 45도 각도에 맞춰 비스듬하게 인쇄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병 라벨이 잘못 인쇄된 것처럼 보였지만, 병을 기울여보면 라벨의 기울기와 병의 각도가 완벽하게 일치하면서 케첩이 부드럽게 흘러나오는 놀라운 경험을 제공했습니다.


하인즈의 Up&Down

또 하나의 혁신적인 해결책이 바로 'Up& Down' 캠페인입니다. 케첩 용기를 위쪽 뚜껑과 아래쪽 뚜껑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한 듀얼 캡 용기를 출시한 것이죠.


하인즈는 팬들의 오랜 불편함을 유머러스하고 실용적인 방식으로 해결해 주었습니다. 단순히 새로운 제품을 내놓는 대신, 기존 제품의 디자인을 창의적으로 활용해 고객 경험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는 점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처럼 팬들의 사소한 불편함을 놓치지 않고, 팬들의 고충을 깊이 이해하여 해결해 주는 역조공은 팬덤에 대한 진정한 공감과 존중을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 팬들은 자신들의 진정한 팬심이 인정받고 있다고 느끼게 되며, 브랜드에 대한 애정과 충성도가 한층 더 깊어지게 됩니다.


역조공, 비즈니스 성공을 이끄는 팬덤의 힘


브랜드가 브랜드 팬덤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지 않더라도 역조공의 방식으로 브랜드의 지지자나 팬덤을 대상으로 영향력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역조공은 이제 단순한 마케팅 이벤트가 아니라, 브랜드와 팬덤이 함께 성장하는 '관계 마케팅'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팬덤이 한 브랜드의 가장 열정적인 지지자이자 홍보대사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들의 노력과 사랑에 보답하는 것이죠. 팬덤의 목소리에 진정으로 귀 기울이고, 그들의 경험을 풍요롭게 만들며, 함께 성장하는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치토스가 팬들의 '놀이 문화'를 포착하여 유쾌한 캠페인을 펼치고, 하인즈가 팬들의 '불편함'을 해결하는 혁신을 보여준 것처럼, 역조공의 본질은 브랜드의 가치를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팬들이 창출한 가치를 발견하고 증폭시키는 것입니다.


역조공의 최종 목표는 팬들을 '구매자'로만 인식하는 것에서 벗어나,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결국, 팬덤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브랜드의 가장 강력한 브랜드 자산입니다. 그들을 팬덤으로 존중하고, 그들의 팬심에 보답하며, 그들의 '덕질'을 응원할 때 팬심은 '얻어지는' 것이 아닌, 영속적인 '브랜드 자산'으로 '만들어지는'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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