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즈가 증명한 '팬덤이 곧 브랜딩'인 이유
역시 니콘!
이 광고가 기억나시나요?
한때 "얏빠리(やっぱり) 니콘!"으로 더 잘 알려졌던 Nikon의 전설적인 광고입니다. 단순히 제품 스펙을 나열하거나 기능을 설명하는 일반적인 광고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이 한 마디는 카메라 마니아들 사이에서 니콘의 기술력과 신뢰성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상징이 되었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정말 흥미로운 건, 이 강력한 메시지가 마케팅 부서의 회의실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이런 강력한 브랜드 메시지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신뢰의 니콘'이라는 50년 이상 축적된 브랜드 자산이 있었습니다. 1959년 SLR(단일 렌즈 반사식) 카메라 시장에 혁신을 가져온 '니콘 F'는 니콘을 단순한 카메라 회사가 아닌 '기술력의 상징'으로 자리매김시켰습니다.
중요한 건, 팬들이 이런 오랜 브랜드 유산을 직접 체험했다는 점입니다. 그들의 손으로 셔터를 누르고, 현상된 사진을 보며 느꼈던 감동과 만족이 '역시 니콘!'이라는 자연스러운 감탄사로 터져 나온 거였어요.
마케팅 부서에서 만든 슬로건이 아니라, 팬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심이 브랜드 메시지가 된 것이죠. 팬덤이 단순히 트렌드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의 본질적 가치를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캐논 유저인 저조차도 '역시 니콘!'이라는 구호를 들을 때마다 니콘이라는 브랜드가 가진 든든함과 자신감에 마음이 설렜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만큼 이 메시지에는 진정성과 힘이 담겨 있었던 거죠.
하인즈(Heinz)는 1869년 설립된 미국의 대표적인 식품 회사입니다. 케첩, 소스, 냉동식품 등을 생산하며, 2015년 크래프트와의 합병을 통해 세계 5위 규모의 식품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유럽과 미국에서 높은 마켓 점유율을 가진 부동의 케첩 분야 1위 브랜드입니다.
2019년 하인즈는 전년 대비 연간 매출 4.9% 하락의 위기를 맞이 하게 됩니다. 이유는 건강을 중시하는 소비자 트렌드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지나친 비용 절감으로 인해 신제품 개발과 브랜드 투자가 미흡했기 때문이었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경영진 교체와 함께 비용 절감 중심 전략에서 성장 중심 전략으로 전환하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또한 건강을 중시하는 소비자 트렌드에 맞춰 제품 혁신에 주력하면서도 소비자 참여를 유도하는 기발하고 창의적인 마케팅 캠페인을 전개하며 브랜드 이미지를 쇄신하고자 했습니다.
'Shape of You' 'Perfect' 'I Don't Care' 등 수많은 히트곡을 보유한 영국의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 ‘애드 시런(Ed Sheeran)’은 팔에 하인즈 케첩 병 문신을 새겼을 정도로 하인즈 케첩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하인즈 케첩을 들고 찍은 사진 3장과 함께 자신에게 하인즈 TV광고를 위한 특별한 아이디어가 있으니 함께 하자고 제안합니다.
드디어 만들어진 광고는 그가 하인즈에 직접 아이디어를 제안하면서 시작되었기에, 단순히 광고 모델을 넘어 브랜드와의 진정한 협력자로 인식되었습니다. 광고의 내용도 그가 겪었던 실제 경험, 즉 고급 레스토랑에서 케첩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일화를 유머러스하게 각색했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었습니다.
화려한 샹들리에와 우아한 분위기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애드 시런이 가방에서 하인즈 케첩을 꺼내 음식에 뿌리는 모습은 관객에게 웃음과 함께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주변의 모든 사람이 경악하는 반응은 하인즈 케첩이 '특별한 순간'에도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을 위한 제품임을 강조한 것이죠.
하인즈는 고객들과 감정적으로 다시 연결되기 위해 이렇게 팬들의 '비이성적 사랑(irrational love)'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소비자들이 하인즈 케첩을 생각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를 그림으로 그려달라고 요청하는 'Draw Ketchup' 캠페인은 소비자들의 그림을 모아 실제 광고로 제작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 캠페인은 하인즈가 고객 중심적 브랜드임을 보여주었으며, 하인즈 케첩이 단순히 제품을 넘어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음을 고객을 통해 증명했습니다. 또한 소비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브랜드에 대한 '하인즈여야만 해(It has to be Heinz)'라는 높은 충성도와 애정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밖에도 많은 고객 참여 캠페인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하인즈는 2023년 6월 150년 역사상 첫 글로벌 마스터브랜드 플랫폼 ‘It Has to be HEINZ’를 공개했습니다. 미국·캐나다·영국·독일에서 시작해 하반기 다른 국가로 확장했습니다. '하인즈여야만 해(It has to be Heinz)' 캠페인의 진정한 시작점은 바로 팬들이었습니다. 하인즈는 소셜 미디어, 뉴스 기사, 그리고 입소문을 통해 퍼져나가던 하인즈에 대한 의 이야기들을 '비이성적 사랑(irrational love)'의 이야기들을 발견했고, 이것이 캠페인의 핵심 영감이 되었습니다.
캠페인에서 “하인즈만 고집하는 비합리적 사랑(irrational love)”을 실화 기반 영상으로 제작 공개하였죠. 정말 흥미롭습니다. 평소 같으면 이상하게 보일 행동들 - 스시를 케첩에 찍어 먹기, 장례식에 케첩 가져가기 등 - 이 '하인즈 팬'이라는 정체성으로 포장되어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이 됩니다. 광고에 나온 할아버지는 실제 하인즈 팬이고, 그들의 진짜 사연을 모아서 만든 것입니다. 그러면서 슬로건이 바로 "하인즈여야만 해(It has to be Heinz)"입니다.
즉, ‘It has to be HEINZ’는 팬덤을 체계화하여 “왜 하인즈여야만 하는가”를 브랜드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팬이 보여주는 방식으로, 전 세계 모든 카테고리에 적용하려는 장기 전략인 것입니다.
이후에도 하인즈는 하인즈 없으면 먹기 전까지 기다리는 팬들의 비합리적 사랑(irrational love)을 ‘기다림(The Wait)’이라는 “하인즈가 없으면 먹지 않고 기다린다”는 팬 의식으로 찬양합니다. 브랜드가 팬의 ‘규칙, 문화’를 발견하여 팬들의 자신감을 확산시키는 것이죠.
'It has to be Heinz' 은 하인즈 케첩의 독보적인 위치와 소비자의 깊은 충성심을 아주 잘 나타내는 슬로건입니다. 사실 문구 자체는 사실 1950년대부터 하인즈의 마케팅에 사용되어 온 유서 깊은 메시지인데요, 2020년 이후 다시 전 세계적인 핵심 캠페인으로 재활성화되면서 큰 주목을 받았죠.
하인즈는 1970년대부터 'It has to be Heinz'라는 슬로건을 사용하며, 소비자들이 특정 음식(햄버거, 감자튀김 등)을 먹을 때 케첩이 없어서 아쉬워하는 상황을 연출하는 광고를 선보였습니다. 당시에는 다양한 케첩 브랜드들이 경쟁하고 있었지만, 하인즈는 "케첩이 아니라 하인즈 케첩이어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통해 경쟁사와 차별화했습니다. 이 캠페인은 단순히 제품의 존재를 알리는 것을 넘어, 하인즈가 고품질의 대명사이자 케첩의 표준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이후 2020년대 'It has to be Heinz'는 하인즈가 스스로의 품질을 주장하는 대신, 팬들이 이미 실천하고 있던 '비이성적인 노력'을 발견하고, 이를 브랜드의 가장 강력한 가치 증명으로 전환한 전략적 통찰력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브랜드가 직접 "우리는 최고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팬들이 "하인즈여야만 해"라고 외치는 것이 훨씬 더 강력한 증거가 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브랜딩의 성공은 브랜드가 얼마나 잘 말하는지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은 팬이 '자발적으로' 그 브랜드의 가치를 증명해주는가에 달려있습니다. 팬덤은 단순한 마케팅 전략을 넘어, '브랜드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합니다. 팬들은 브랜드의 가장 강력한 대변인이자, 동시에 브랜드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는 파트너입니다.
하인즈와 니콘이 보여준 것처럼, '브랜드가 일방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닌 팬이 자발적으로 보여주고 증명하는' 시대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가치는 바로 '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진정성'과 '그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지혜'입니다. 팬덤이 증명하는 브랜드의 위상은 곧 그 브랜드의 지속 가능한 미래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