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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니 스탁 Jan 25. 2023

<빅쇼트>대해부 : 모든 막장에는 이유가 있다

1부. 현실은 드라마보다 막장이다.



지금의 내 모습은 몇 년 전 내 행동의 결과일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다룬 명작 영화 <빅 쇼트> 대해부를 위해 연구를 하던 중, 저는 아주 중요한 인사이트를 얻게 됩니다.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당시 일어난 사건과 결과만 보아서는 진짜 문제의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일도 대개는 오랫동안 누적된 문제들이 서로 엉켜 일어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 연결 고리를 먼저 되짚어 보기로 했습니다. 자본주의 끝판왕 미국이 어떤 경로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 총 10개의 결정적 사건을 통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만든 막장 드라마의 시놉시스를 이해해 보도록 하죠. 본문에 나온 용어*의 해석은 아래쪽에 따로 기술하였습니다.




결정적 순간 01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


1919년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승전국이 된 미국은 전쟁 후의 반발 소비 심리와 평화가 찾아온 안도감, 전쟁 물자 수출로 쌓은 막대한 국부(國富)와 한 층 높아진 국제적 지위 등으로 사회적, 경제적 부흥기를 맞이합니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참전한 남성들을 대신한 여성의 사회진출에 따른 지위향상 등 본격적인 근대화가 시작되고 대중문화가 융성합니다. 모두들 재즈, 패션, 영화, 스포츠에 열광했습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같은 초고층 빌딩이 지어집니다. 반짝이는 점멸등, 재즈 클럽의 자욱한 담배연기와 위스키, 하얀 구두와 검정 자동차, 숏커트에 진한 화장을 한 발랄한 여성들.. 넘치는 풍요 속에서 마음껏 먹고 마시던 이때를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라 부릅니다.


ⓒ Wekipedia



대량소비와 마케팅의 시대로


헨리 포드의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타고 저렴한 자동차가 쏟아져 나와 거주와 이동의 개념을 바꾸었습니다. 라디오, 레코드, 선풍기, 냉장고, 진공청소기, 토스터 등 전쟁기술의 부산물이자 기술발달의 결과로 발명된 최신 가전제품들이 보통 사람들의 삶의 질과 소비형태를 바꿉니다. 신박한 '할부제도'의 등장으로 목돈의 부담 없이 소비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 이젠 근검절약보다는 소비가 미덕입니다. 미디어와 마케팅은 더욱 발전하여 대량소비의 시대를 활짝 열었습니다. 광고에선 일반 대중들에게 끊임없이 ‘상류층 따라 하기’를 부추겼습니다. '당신도 사면 그렇게 살 수 있어요'를 외치자 너도 나도 빚을 지고 과소비는 확대됩니다.


Flapper라 불렸던 당시 여성들의 패션 ⓒ rawpixel.com


유럽에서 일어난 최악의 전쟁으로 밀 가격이 치솟았던 터라 농촌에서는 밀재배 농가가 크게 늘어났습니다. 그때 마침 농업 생산량을 당시 기준 저세상급으로 향상시킨 트랙터라는 위대한 농기계가 등장합니다. 더 이상 사람의 힘만으로 짓는 농사는 경쟁력이 없어진 것입니다. 은행은 형편이 안 되는 농부들에게 대출로 트랙터를 구매하게 했습니다. 트랙터의 보급이 급격하게 확산되자 밀 생산량은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이제 사람들은 가진 돈 만으로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일단 빚을 내 더 큰 이익을 추구하는 소위 레버리지(leverage, 지렛대 효과)*의 달콤함에 취해가고 있었습니다.



농업 혁명의 시발점 트랙터의 출현 ⓒ Wekipedia


그러나 제도적, 경험적 기반이 튼튼하지 않은 미국의 번영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920년대 중반을 지나며 확장 일로였던 경기가 한계를 보이며 후퇴하기 시작합니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The Fed.)*는 경기부양을 위해 기준 금리를 낮추어 시중에 마구 돈을 풉니다. 낮은 이자로 쉽게 돈을 빌려주니 사람들은 실제 필요한 돈보다 더 빌리게 됩니다. 자기 돈은 아니지만 수중에 남는 돈이 있으면 인간은 투기를 하게 됩니다. 당시 휴양지로 인기가 높던 플로리다 지역에서 부터 부동산 투기 붐이 일어나 주택 가격이 치솟습니다. 넘치는 돈, 즉 싸게 마련한 빚들은 결국 주식 시장으로 몰려들어 주가가 폭등합니다. 이러니 밀농사로 큰돈을 번 농부들조차도 재투자보다는 주식에 전 재산을 털어 넣었습니다. 이런 쏠림 현상의 결과로 1921년~1929년까지 주가지수는 무려 4배가 상승했습니다. 개별 종목이 아니라 지수가 4배 상승했다는 것은 수십 배 폭등한 주식도 있다는 뜻입니다.



고전경제학의 위기


기업가들이 이익을 독차지하는데 비해 여전히 저임금 노동자들은 돈이 없어 소비여력은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생산량은 줄이지 않습니다. 당시 자본가들과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이 신봉했던 『국부론』저자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바로 잡아 줄거라 믿었습니다. 시장의 수요와 공급은 알아서 균형을 맞춘다. 즉,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의 질서를 잡는다는 주장입니다. 소비가 위축되니 날이 갈수록 상품재고는 쌓이고 가격이 하락합니다. 보이지 않는 손의 원리에 의하면 가격 하락은 더 큰 수요를 창출해야 하는데 오히려 버티면 내일 더 싸질 거니 안 삽니다. 그렇다면 생산량을 제한해 공급을 줄였어야 하는데 당시 자본가들은 그걸 몰랐던 것입니다. 농업분야 역시 생산 폭증으로 인한 밀가격 하락으로 농부들은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채무 불이행 상태가 됩니다.


 보이지 않는 손은 없다 ⓒ Wekipedia


게다가 당시 미국 정부는 엄청난 패착을 범하는데요, 몰락하는 국내 제조산업을 보호한답시고 당시 전 세계적인 자유무역 기조를 역행하며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웁니다. 운송기술의 발달로 세계 각지로 부터 값싸게 들여오던 수입품 2만여 개에 대해 평균 59%, 최대 400%에 달하는 엄청난 관세를 매겨버립니다. 이에 반발한 각국이 보복관세로 대응하자 세계 교역 물동량이 감소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미국의 머리만 큰 경제구조의 허리 아래를 강타합니다. 결국 미국 내 국민 총생산을 오히려 감소시켜 실업률 상승을 더욱 부채질했습니다. 과잉투자, 과잉생산과 자본시장 투기화에 무역수지 적자의 결과는 뻔합니다. 빚을 회수하지 못한 은행의 부실은 한계에 봉착합니다. 마침내 부동산 버블은 붕괴하고, 기업의 파산이 줄을 잇고 실업률이 크게 늘게 됩니다. 미국경제에 전례 없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습니다.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 : roaring은 활발하다, 포효하다와 같은 힘찬 이미지를 가진 단어이기도 하지만 술 먹고 떠들거나 미친 듯 으르렁 거린다는 뜻도 있습니다. 미국인들에게 20년대는 이 두 가지 의미를 다 가진 시대로 기가 막힌 네이밍이 아닐까 합니다. 어떤 시대보다 번창했지만 퇴폐적 문화와 낭비가 넘쳐났어요. 재즈 음악을 중심으로 쇼 비즈니스가 크게 성장했으며 유성영화 붐을 타고 영화산업도 발전했죠. 야구, 테니스 등 스포츠 산업도 인기를 끌었답니다. 편리한 플라스틱 생필품과 전자제품, 자동차가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었습니다. 건축과 패션은 가히 르네상스에 비견할 만큼 꽃피었는데요 여기저기 마천루가 세워지고 합성섬유와 인공염료의 개발로 탄생한 각종 신소재들은 패션의 전성기를 가져왔습니다. 아르누보 양식이라 불리던 강렬한 색 대비와 화려한 패턴으로 진정한 근대 디자인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플래퍼(Flapper, 말괄량이)라 불리던 미국의 신여성들은 짙은 화장과 유흥을 즐기며 트렌드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반면 금주령의 시행으로 밀주 제조로 돈을 벌던 무법자 갱스터들이 활개를 친 시대이기도 합니다. 영화 <위대한 게츠비>, <언터처블> 등의 배경이 되는 이 시절에 대한 미국인의 향수는 문화 곳곳에 아직도 짙게 어려 있습니다.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 Wekipedia


연방준비제도(聯邦準備制度, Federal Reserve System) : 미국의 중앙은행 시스템입니다. 줄여서 연준(Fed)이라 씁니다. 국제결제은행과 더불어 세계 금융경제의 중심입니다. 미 연준의 가장 큰 역할은 미국 달러 지폐의 발행입니다. 또한 산하에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두고 매년 8차례 회의를 열어 기준 금리를 정합니다. FOMC 의장은 사실상 세계경제의 대통령이며, 그의 한 마디에 전 세계 주가는 요동칩니다. 미 연준은 기능적으로 우리나라의 한국은행과 같은 역할을 하며 미정부의 통제아래 있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공공기관이 아닌 사기업(私企業)이라는 점입니다. 주주가 있고 배당을 받는 회사입니다.


레버리지 효과(leverage) : 그냥 들 수 없는 무거운 물건도 지렛대를 이용하면 들 수 있는 것처럼 사업이나 투자에 부족한 자금을 대출을 이용하여 투자금을 확보, 더 큰 수익을 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종종 과도한 레버리지는 모든 것을 망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므로 경기, 금리, 환율과 자신의 부채 상환 능력을 함께 고려해 신중히 접근해야 합니다.


애덤 스미스의『국부론』과 보이지 않는 손 : 18세기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고전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저서『국부론(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에서 '시장에 특정 집단의 힘이 작용해서는 안된다. 시장의 가격은 철저히 수요와 공급의 자정작용을 통해 스스로 결정하게 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이지 않는 손'을 주장하였습니다.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시장주의자(자유주의 경제학)의 근본이 되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는 당시 기승을 부렸던 정부와 기업의 유착이나 길드(Guild)와 같은 특정 이익집단의 영향력을 경계하는 의미였을 뿐입니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라는 당시 고전 경제학자들이자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은 이를 왜곡한 것입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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