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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클랑 Apr 20. 2022

일기의 유익

유학생활의 버팀목


타지 생활을 어쩌다 보니 9년째 하고 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계획하고 온 것이 아녔기에 거의 늘 진로 고민을 했던 것 같다.

단순히 ‘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의 문제를 넘어서서

나는 오늘 하루를 잘 살았는 가’

‘나는 내일 하루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가’

이런 질문을 많이 던졌던 것 같다.

물론 답을 쉽게 할 수 있는 시간들은 많지 않았다.

'Niemand weißt morgen.'이라는 말처럼 내일일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삶의 불확실성은 누구에게나 같은 것이다.

단지, 가지고 있는 내적 자원, 외적 자원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 불확실성에 대해서 대응하는 것은 분명 다를 것이다.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현지인에 비해서 외적 자원이 현저히 적기에 거의 늘 내적 자원으로 어떻게든 현재 처한 상황을 극복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런데, 그 내적 자원은 어떻게 발견되고, 발전될 수 있을까.



 일기의 시작


어렸을 때, 방학 숙제로 해야만 했던 일기 이외에, 성인이 되고 난 후, 언제부터 일기를 썼는 지를 가만히 반추해보자면, 학부시절 QT노트가 나에겐 새로운 시작점이었던 것 같다.

성경을 읽고, 말씀으로 나의 삶뿐만 아니라 내가 맺어가고 있는 관계, 그리고 그 속의 나를 반추해보는 과정에서 마음속의 숨겨져 있던 감정들을 발견할 때가 있었다. 안개처럼 뭉게뭉게 피어나는 그 감정을 구체적으로 적어보는 것은 나에게 굉장히 유익한 일이었다.

QT노트는 가끔은 기도문, 가끔은 독백이 되기도 했었다.  



마음의 창문이 되어준 일기 쓰기


타지 생활을 하다 보면, 별별일을 다 겪게 된다. 아니면 그 별별일을 듣게 된다. 그 별별일은 당연히 감정의 호수에 작은 돌이 되어 날아오고, 마음은 요동을 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그 호수는 잠잠해지지만, 그 돌은 깊은 호수 속에 가라앉고, 다시 꺼내보지 않으면, 잘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잊히게 된다.

처음엔 그 돌이 큰 문제가 안 되겠지만, 점차 쌓이다 보면, 그 돌들을 버려야 할 때가 올 것이다. 또 어떤 돌들은 버리려 해도 잘 버려지지 않아서 아주 깊이 묻어두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의 호수 속 돌들이 너무 많아지면, 무거워지지 않겠는가. 이 돌들을 쌓이지 않도록, 잘 버릴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것이 나에겐 일기가 아니었나 싶다.


삶의 불확실성 속에서 나에게 외적 자원이 얼마 없다고 느껴질 때,

때로는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내적 자원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세상이 나에게 던져오는 작은 돌도 커 보일 때가 있고,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내 안의 돌들도 자꾸만 나의 마음속에 거리낌이 될 때가 있었다. 그럴 때 일기를 썼다.

그리고 쓰면서 스스로에게 또는 그 돌에게 물었다.

'왜 너는 문제가 되었니?' '넌 어디서부터 왔니?'


QT노트처럼 일기는 가끔은 다짐, 가끔은 독백, 또 때로는 감정의 쓰레기 통이 되었던 것 같다.

글씨는 나만 알아보게 쓴 것도 있고, 정갈하게 쓴 것도 있다. 그렇게 쓴 일기가 꽤 된다.



시간이 지난 뒤에야 발견하게 되는 일기의 힘


요즘엔 한 달에 한번 정도, 또는 매우 특별하게 (좋게든 나쁘게든) 느껴진 하루의 경우 일기를 쓰는 것 같다.

최근에 책장을 정리하다가 2016년부터 써온 일기 몇 권을 발견했다.

안에 내용을 훑어봤는데, 조금 놀랐다.

'내가 저렇게나 힘들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한편으로는 지금의 만족감, 다른 한편으로는 그 당시의 감정이 잊힘을 의미하는 것 같다.

아니면 그때보다 지금 더 마음이 단단해졌음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단단해졌다는 것은 강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단지 나를 더 이해하게 되었고, 사람을 더 이해하게 되었다는 의미가 아닐런지.


곧 타지 생활을 할 예정이라면, 너무 힘들 때 꼭 일기를 써보시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당장 일이 해결되진 않겠지만, 눈앞에 있는 불확실성 앞에서 조금은 용기를 낼 수 있는 매개체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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