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이 감정은 뭔가요?
입덕을 하고 과연 내가 I에게 가지고 있는 마음의 이름은 무엇일까 한동안 궁금했던 적이 있다. 그저 예쁜 피사체에 대해 흔히 사람들이 가지는 마음일까, 아니면 꾸준히 본업을 이어나가며 착실히 커리어를 쌓아 나가는 같은 사회인으로서의 존경심일까,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음악을 잘하는 예술인에 대한 동경일까, 혹은 너무나 많은 취향이 겹쳐버린 누군가에 대한 동질감일까.
그러나 이 단어들로 내 마음을 정의하기에는 어딘가 모자라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I를 보기만 해도 괜히 기분이 좋고, 음악을 듣는 대부분의 시간에 I의 목소리와 함께하더라도 질리기는커녕 오히려 대부분의 순간에 새로운 목소리에 감탄한다. 누군가에게 I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희미하게나마 목소리에 웃음이 서려있고 그의 커리어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내가 낳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다. 이 친구가 무엇을 하든, 어떤 선택을 하든 응원하게 되고, 새로운 도전으로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순간에 함께함이 꽤나 뿌듯하다. 그러니까 이건 존경이라기에도, 동경이나 동질감이라기에도 어딘가 어색하지 않나.
그렇게 헤매다 발견한 최애에 대한 감정들을 정의한 말들 속에서 흔히들 최애는 모성애, 차애는 이성애에 가깝다고 하더라. 어느 정도 감정의 결이 비슷하다는 것에는 동의하는 바이지만, 아무래도 무조건적이고 본능적인 사랑인 모성애에 빗대어 이 감정을 설명하기에는 아직 나의 이 마음에 붙일 수 있는 이유가 너무 많다.
처음엔 이 감정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에는 어딘가 어색하다고 생각했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직접 이야기도 나눠보지 않은 상대에게 붙이기에는 나에게 그 단어가 많이 무거웠던 것도 이유일지 모르겠다. 어떻게 일방적으로 보이는 부분만으로 그 사람을 안다고 할 수 있으며 서로 대화 한 번 나눠보지 않은 사람을 마음 깊이 품을 수 있을까. 저 사람은 나를 모를 텐데, 내 마음이 만약 사랑이라면 대체 이 마음의 방향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어딘가에 답이 있을 것만 같은 이 의문에 대해 틈틈이 생각하다 보니, 어느 날 정말 원초적인 질문이 내 머릿속을 헤집었다.
대체 사랑이 뭔데?
나도 내가 다른 것도 아니고 입덕을 이유로 이런 옛날 드라마 대사 같은 의문을 가지게 될 줄은 몰랐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무형의 것을 제대로 설명할 자신도 없고, 누군가에게 물어본다고 나의 개인적인 감정에 대해 그렇다 할 답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아서, 가장 정석의 방법에서 그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사랑’이라는 말을 국어사전에 검색해 보면, 다음과 같은 정의들을 찾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아마도 살면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 처음 검색해 본 것 같은데, 이 정의들을 보며 나는 그 어딘가에 숨어있던 나의 편견을 마주한 기분에 뒤통수가 얼얼했다. 그러니까 나에게 그 단어가 막연히 무거웠던 것이 아니라 그저 잘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라는 생각에 말이다.
어쩌면 나는 무언가의 형태로든 내 마음에 대한 대가를 돌려받고 싶었던 것 같다. 마음을 주는 만큼 돌려받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머리로 깨달은 이후에도 여전히 나는 내가 마음을 준 것들이 소중했고, 여전히 미숙한 인간인지라 머리로 아는 것이 마음이 있는 곳까지 전달되지 못했던 듯하다. 그러니까 대체로 내가 경험한 사랑은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의 정의처럼 굳이 남녀에 한정 짓지 않더라도 개인 대 개인의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한 사랑이었던 것 같다. 그랬기에 처음 제대로 마주해 버린 입덕에서 일방적으로 존재를 아끼게 되어버린 이 마음을 사랑이라고 정의했을 때, 그 마음의 방향과 더불어 한 번도 닿아본 적 없는 미지의 목적지에 그저 길을 잃었던 기분이었나 보다.
그런데 이 사랑이라는 단어의 뜻에서 가장 위에 있는 말뜻은 그저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라고도. 그러니까 애초에 이 사랑이라는 것의 대상은 굳이 사람일 필요도, 어떠한 대답을 돌려받을 필요도 없는 그저 나의 마음만을 뜻하는 것이었나 싶다. 그러니까 그게 무엇이든 내가 그 대상을 아끼고 귀중히 여기며, 그 대상과 더불어 그 대상에 가지는 나의 마음을 즐기는 모든 순간이 사랑의 순간일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드니, 사랑을 꼭 사랑한다는 말로 표현해야 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함께 왔다. '사랑한다'라는 말이 가장 포괄적인 범위의 표현이라면, 그 안에서 내가 대상을 사랑하는 모든 마음을 표현한 말들이 전부 사랑한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하고. 어제는 좋아한다는 말이, 오늘은 밥은 먹었냐는 인사가, 내일은 날이 추우니 옷을 따뜻하게 입으라는 걱정이 모두 사랑한다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밤이 되었으면 한다던가, 잘 잤으면 좋겠다던가 하는 흔한 인사말들도.
내 마음이 사랑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날들에 I에게 남겼던 모든 말들이 돌이켜보니 사랑의 흔적이었다는 걸 깨달았을 즈음, I가 남겼던 모든 말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멀리서 보면 그저 팬서비스로 남았을 그 평범한 모든 말들과 인사들에서 어딘가 장미향을 느끼기 시작한 건 그 언저리쯤이었던 것 같다.
어떤 형태의 사랑은 물과 같다.
온도를 높여버리면 서서히 끓기 시작해 증발해 버리기도 하고, 온도를 낮추면 더 이상 물이 아니라 얼음의 형태를 띠기도 하고, 어떤 그릇에 담는지, 어떤 색을 떨어트리는지에 따라 같은 물이라고 할지라도 그 모양과 색, 온도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각기 다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에게 맞는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온도를 올린 채 끊임없이 마음을 끓여버리면 금방 증발해 남지 않을 테고, 그렇다고 너무 차게 둬 버리면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을 테니.
어떤 팬덤의 누군가가 한 말이라는데, 입덕을 한 후에 이만큼 마음속에 깊이 박힌 문장이 없다.
내가 주는 사랑이 가장 작은 사랑이었으면 좋겠어
정말 어딘가 내 마음이 닿지 못하는 곳에는 다른 누군가의 마음이 닿아서 I가 언제, 어디서든 본인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게 노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모든 사랑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 더 높은 곳에서 더 많은 걸 보고, 더 새로운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그러다 언제나처럼 안부를 묻고, 일상을 나누고, 서로를 응원하는 그 모든 날들에서 더 짙게 장미향이 났으면. 그렇게 흔적이 남는 모든 곳에서 다시 이런 사랑도 있다는 걸 확인하며 또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