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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큼대마왕 Jan 10. 2024

슬기로운 주재원 생활
- 12. 바보탱이 경영진


‘한국 기업의 베트남 진출은 월요일 오전에 결정된다?’


코로나 이전 한국 기업들이 베트남으로 묻지 마 러시를 이루던 시절 농담반 진담반으로 하던 말이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베트남 진출 상담을 요청하는 기업들을 만나볼수록 진담이 70% 이상은 되는 듯하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회장님이나 대표님들이 알고 지내는 다른 기업 대표들과 주말 골프 모임에 나갔다가 ‘김 회장네, 박 대표네 회사가 베트남에 진출해서 잘된다더라’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는 월요일 아침 임원 회의에서 ‘김 회장네는 베트남에 진출해서 잘된다는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베트남 진출을 검토하라!’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해외 진출 경험이 전혀 없거나, 계획에도 없던 기업들은 담당부서도 없는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급하게 베트남으로 시장 조사를 나오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면 임직원들은 모든 인맥과 학연, 지연을 동원해 베트남에 파견 나가 있는 사람을 만나보고 KOTRA, 무역협회, 법무법인, 회계법인 등등을 찾아가 다급하게 시장 상황을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럴 때 한국인들이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것이 갑작스레 주어진 해외 시장 조사에도 짧은 시간에 상당한 조사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싼 해외 출장비를 들여 만든 보고서를 회장님, 사장님들은 당최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본인들은 골프장에서는 좋은 결과에 대해 이미 들었는데 베트남 진출 준비 과정과 시장 진출 타당성에 대한 실무진들의 조사 결과는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회장님들 입장에서는 일반인들은 쉽게 접하기 어려운 고급 정보를 들을 수 있는 기업 대표들의 모임에서 나온 말이니 확실히 ‘베트남 = 황금알을 낳는 시장’ 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내 부하직원이라는 것들은 시장 파악도 제대로 못하고 진취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고 월급이 너무도 아까운 인간들이 아닐 수 없다. 



 실무자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다. 모든 인맥을 동원해 베트남에서 근무하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을 20년 만에 만나거나 친구의 친구, 동서, 처남까지 연결해 베트남에 진출한 기업들의 상황을 파악해 보면 베트남에서 제조해서 해외로 수출하는 회사들을 제외하고는 베트남에서 수익을 내는 기업은 손에 꼽았다. 베트남 현지 소비자들을 상대로 사업을 해서 수익을 내는 회사들은 손에 꼽기도 하지만 그 기업들은 베트남에 진출한지 20년이 넘은 베테랑들이었다. 그 회사들 역시 베트남 진출 초창기 큰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좁디좁은 시장 문을 비집고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 회장님 눈에는 실무자들이 한심해 보일 뿐이다.


 경영진들은 자기 직원들의 이야기는 믿지 않고 굳이 돈을 들여 낯선 이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대한민국에서 이름만 대면 다 알고 연간 조 단위 매출을 기록하는 모 기업에 베트남 진출 관련 상담을 해주러 간 적이 있었다. 이런저런 질문에 대한 내 답변을 못 믿겠다는 듯 반응하는 한 임원에게 ‘전무님 저희가 출장 다녀와서 보고 드렸던 내용과 동일합니다’라는 말이 조심스럽게 한 구석에서 흘러나왔다.

설마 대기업이 아무 생각 없이 저렇게 막무간으로 해외 진출한다고? 소설을 써도 정도껏 해라 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다. 하지만 100% 리얼이다. 정말 갑자기 오너나 회사 대표가 어디에서 듣고 와서 해외 진출을 결정하는 일이 많다. 특히 베트남 진출에 대해서는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경우가 정말 정말 많다. 문제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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