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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자정리 May 13. 2022

이런 달달한 냉모밀이라니...

[문래동 - 몽밀]

  제목부터 맞춤법 오류다. 냉모밀. 표준어에 따르면 '메밀'의 의미로 '모밀'을 쓰는 경우가 있으나 '메밀'만 표준어로 삼는다라는 설명이 있다. 모밀이 메밀의 지방 사투리라고 하니 표준어로는 메밀만 된다는 것이 당연하긴 한데 냉(冷) 자에는 메밀보다 모밀이 찰떡이다.


 유독 나만 그리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냉메밀은 왠지 어색하다. 어쨌든 메밀국수를 차게 해 먹으면 냉메밀이요. 따뜻하게 먹으면 온(溫)메일이다. 간혹, 메밀소바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소바'가 사실 일본어로 메밀이니 '메밀메밀'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것인데, 이 또한 왠지 입에 잘 붙는다.




 메밀국수 하면 하면 떠오르는 게 결혼식장이다. 큰 은색 보온 통에 간장 육수가 들어있고 옆에 미리 삶아 놓은 메밀국수가 차곡차곡 똬리를 틀고 있다. 그리고 똑같은 모양새로 보온통과 소면이 자리 잡고 있다. 잔치국수다. 보통 둘 중에 무엇을 먹을까 망설이다가 잔치국수에 손이 가는 편이다.


 메밀국수가 고민 없이 바로 선택받는 경우는 더운 여름 정도. 아주 얕은 맛의 간장 육수에 무와 파를 듬뿍 넣어 먹는다. 메밀은 탄력도 없고 향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도 여름에는 좋아하는 국수를 밀쳐내고 냉모밀을 선택하게 된다. 사실, 메밀이 찬 성질이 많은 음식이라고 하니 더울 때 콩국수와 더불어 입맛을 돋우기에는 이만한 것이 없다.


 요즘의 사계절은 '봄여어어르름갈겨어우울' 정도니, 조금 이르지만 슬슬 메일국수가 당기는 시기다. 우연찮게 알게 된 냉모밀 맛집인 '몽밀'에 초여름 날씨를 배경 삼아 다녀왔다. 주말 아침 문래역 근처 철물 거리는 아직 한산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름 난 맛집 앞에는 이미 줄이 제법 길었다.


 여지없이 몽밀에도 앞 선 6개 팀이 대기 중이었다. 순서가 오려면 시간이 꽤 남았지만 메뉴를 고르는 것만큼은 마음이 급하다. 기대와 조바심도 잠시, 각기 고른 메밀국수를 포함해 사이드 메뉴인 고추 튀김까지 먹기로 하고 입장.


올드문래 - 몽밀 (고추튀김도 맛난다!)


 고추 튀김이 먼저 나오고 허겁지겁 하나씩 먹어 치운다. 청량고추가 들어가 꽤 맵다. 하지만, 입안에서 고기의 푸짐함과 육즙이 섞여 맛있는 알싸함을 선사한다. 애피타이저를 하나씩 먹고 나니 아내가 시킨 성게알 냉모밀, 내가 시킨 새우장 냉모밀이 차례로 등장. 먼저, 한 숟가락 국물을 맛본다. 맛있다. 맛있게 달다.


 달다는 단순한 표현이지만, 그 안에는 복잡하고 미묘한 맛이 녹아 있다. 세지 않은 달큰함에 역시 과하지 않은 간장 향미. 낮은 곳으로부터 은근하고, 고급지게 입맛을 당기는 맛이다. 젓가락으로 라임을 으깨듯 과즙을 내고 국물을 한 숟가락 먹으면 라임의 상큼함이 더 해 산뜻한 단맛을 선사하니, 여기~ 라임을 더 주세요!라고 하고 싶을 정도. 



 성게알은 순수 재료다 보니 평이한 맛. 새우장은 감칠맛 나는 단맛으로 메밀국수의 단맛과도 궁합이 좋았다. 특히, 절인 방울토마토는 단 한 알이지만, 적절한 산미가 배어 라임과 함께 엄청난 존재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이런 걸 바로 신의 한 수라 할만하다. 또, 반찬으로 나온 타카나(일본식 갓 절임)도 들기름에 한번 볶은 듯했는데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스타일의 가니쉬였다. 




 메일국수라 하면 조금 오래된, 옛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예식장에서 먹던 것이 먼저 연상되는 내게 올드한 걸 수도. 그런데, 몽밀의 메밀국수는 변모된 문래라는 공간에 맞게 젊은 감성과 맛을 이끌어 낸 것 만 같다.   


 누구가에게 여전한 삶의 터전이자 일터인  문래. 그 안에 문화공간과 예쁜 상점이 곳곳에 들어서 자연스러운 융화가 이미 상업적으로 변해버린 몇몇 OOO길보다 작위적이지 않고 따뜻하기만 하다. 그래서일까? 그날 몽밀에서 봤던 손님들 중에 우리 부부가 제일 나이가 많은 듯했지만, 마음만큼은 늘 청춘인 아내와 난 다음에도 문래 어느 맛집 앞에서 줄을 설 것 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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