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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리카 May 01. 2024

37살에 결혼, 미국이민, 꿈에도 생각못한 믿음을 얻다

하나님, 왜 저를 이곳에 데려오셨어요? 라는 질문의 답

3년전,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때, 7년간의 싱가포르 생활을 정리하고 들어와 이제는 드디어 한국에서 정착을 하려나- 했던 부모님의 기대를 어김없이 (?) 무너뜨리고 이제는 밴쿠버에 MBA를 하러 간다는 딸. 

다른 집 딸들은 다들 결혼하고 애도 낳고, 한국에서 꾸준히 직장 다녀서 무슨무슨 직급도 달고한다는데, 우리 딸은 왜 이렇게 별난건지. 그저 '평범하게' 살길 바라는 부모님의 기대와는 너무나도 다르게 이제는 더 멀리 간다는 딸. 


부모님의 입장에서 걱정이 되는건 당연히 이해가 갔다. 하지만 뭐든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나는 내 마음이 이끄는, 이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을수밖에 없었다. 신내림을 받지않으면 몸이 아픈 무당들처럼, 내 마음에 생긴 목표는 이루지않으면 영혼이 시들어가는 극단적인 나는, 전 세계가 아무리 코로나 팬데믹 뉴스로 혼란스러울지라도 그저 묵묵히 내가 할 준비를 해나갔다. 

 

https://brunch.co.kr/@erikajeong/161

이건 그때 써둔 글. 

이 시기에 흔들리지않고 내 결정에 확신을 가질수 있었던 이유는 명상에서 얻은 대답이 너무나도 명료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방향을 잃고 흔들렸지만, 모든 답은 내 안에 있다는것을 믿고 간절한 마음으로 명상을 하던 시기에 어느 날, '캐나다'라는 답을 들었다. 지금까지는 전혀 관심도 없었던 캐나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힘

하지만 너무나도 그 메시지가 또렷했기에 믿음을 가지고 그 길을 따라갔고, 세상의 혼돈스러운 뉴스와 걱정과는 달리, 나는 너무나도 순조롭게 MBA에 합격했고, 비자를 발급받았고, 좋은 룸메이트들과 함께 밴쿠버 생활을 시작했다. 다들 처음엔 걱정했고, 나중엔 신기해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모든것이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기에 덤덤했다. 


졸업후에는 현지 스타트업에 마케터로 취업해 좋은 대우를 받으며 직장생활을 했고, 밴쿠버의 아름다운 자연, 문화생활,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 이 모두를 즐기며 3년동안 후회없는 멋진 삶을 살았다. 

이 모든게 가능했던건 의심하지않고, 내가 받은 메시지에 믿음을 가지고 행동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이 때가 나의 믿음의 힘을 강렬히 경험한 시기이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나는 명상, 참자아, 우주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을 뿐, 신을 향한 믿음은 없었다. 


그러다 작년 가을, 미국의 명상센터에서 한국으로 가는 명상여행 프로그램을 알게되었고 그 여행에서 지금의 미국인 남편을 만났다. 각자 살던 미국도, 캐나다도 아닌 한국까지 날아가 서로를 만난 우리. 

처음 만나 이야기를 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마치 오랫동안 알고지낸 사이처럼 서로가 익숙했고, 소울메이트라는 진부하지만 그렇게밖에 표현할수밖에 없는 느낌을 경험했다. 


우리는 서로가 운명임을 그저 자연스럽게 알았다. 그렇게 만난지 두달 만에 결혼을 결정했고 (결정이라기보다는 당연한 수순처럼 느껴졌다), 하와이에서 작은 세레모니를 올리고 얼마전 시부모님댁에서 모든 가족들의 축복과 함께 다시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시부모님이 사시는 오레곤주의 아주 평화로운 작은 도시에서 함께 산지 두달 남짓. 

처음에는 내게 익숙한 화려한 도시생활이 그리웠다. 한국식당 하나 없고, 예쁘게 차려입고 나가서 파인다이닝을 하려면 옆 도시까지 나가야 하는 이 곳. 운전을 하지 못하는 내가 자유롭게 지하철, 버스를 타고 돌아다닐 수 없는 이 곳. 

사랑하는 남편, 시댁과 함께 생활하는 좋지만 익숙하지 않은 소도시가 답답했다. SNS에서 LA, 뉴욕, 런던 화려한 도시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저런 삶이 익숙한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사랑하는 남편이 내 옆에 있고, 나를 아껴주는 시댁가족이 있고, 아름다운 자연이 있고- 감사할 일이 가득하지만 내 마음은 어느순간부터 방황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내가 무얼하고 있는건지. 왠지 모르게 가슴이 답답했다. 마치 나의 색을 잃은 기분이 들었다. 


왜 저를 여기에 데려오셨어요?


이곳은 저녁이 되면 화려한 도시의 조명이 없어 그저 새카만 밤하늘의 별이 쏟아지는듯 하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밤하늘. 

가족들이 잠에 들고나면 혼자 답답한 마음을 달래러 뒷마당 의자에 앉아 명상도 하고, 오디오북도 듣고, 그러다 그저 멍하게 앉아있기도 하고. 사랑하는 가족은 한국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은 밴쿠버에 있고 생각지도 못했던 미국의 이 소도시에 오게된 나. 내가 여기에서 무얼 하고있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러다 문득 나도 모르게 신에게, 하나님에게 물었다.

"왜 저를 여기에 데려오셨어요? 저는 도저히 모르겠으니 저를 여기에 데려오신 이유를 알려주세요." 처음엔 머릿속으로, 그러다 나중엔 소리내서 물었다. 그러다 울컥 울음이 났다. 왠지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하나님께 왜 나를 여기에 데려오셨는지 이유를 알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렇게 실컷 엉엉울고나서 마음이 조금은 풀려서 이렇게 물었으니 언젠간 답을 하시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자리를 정리하고 방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렇게 몇일인가 나는 하나님께 투정부리듯 이야기를 계속했고 하나님은 얼마지나지않아 나에게 답을 주셨다. 



나는 종교에 대한 특별한 반감이 있지도, 관심이 있지도 않은- 어릴적부터 그저 명상과 마음공부를 꾸준히 해온 평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기독교, 예수님, 하나님, 천국, 지옥- 이런 개념이 워낙 의미가 많이 변색되고 좋지않은 예가 세상엔 많다보니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르는건 솔직히 부정하기 어려웠다. 크리스찬하면 꽉막힌 예수쟁이, 혹은 말만 번지르하고 오히려 더 세속적이고 자기 실속만 챙기는 그런 나쁜 예를 너무 많이 봤다. 크리스찬은 나와는 거리가 먼 다른세계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것과는 별개로 이곳에 이사온 이후로 일요일이면 시부모님을 따라 '별생각없이' 교회에 나갔다.

아직까지는 아는 사람도, 하는 일도 없는 나에게는 어디라도 갈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나는 일이기에 일요일 아침 교회를 가는 길이 참 즐거웠다. 다행히 이 교회는 정말 작고, 아늑한 느낌의, 동네사람들이 모여서 그저 소박하게 성경을 함께 공부하고 몇곡의 찬양을 하고, 한주간의 근황을 묻고- 아주 담백한 곳이었다. 그래서 큰 거부감없이 꾸준히, '별 생각없이' 교회에 나갔다.


그러던 어느날, 동네의 예쁜 호텔에서 여성들의 조찬모임을 한다기에 오랜만에 설레는 마음으로 옷도 차려입고 나갔다. 그 날, 나는 나의 영혼의 가이드, 어머니 수잔을 만나게 된다.

다들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는 사람이 없어 서먹서먹 서있던 나에게 누군가 상냥한 목소리로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반가워요. 나는 수잔이라고 해요."라며 환한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넸다. 수잔은 금발에 새하얀 셔츠를 입고 보석처럼 빛나는 파란눈을 반짝이며 마치 천사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하는 생각을 들게했다. 누군가의 밝은 오라를 실제로 느껴본건 이때가 처음이었던것 같다.


그렇게 수잔과 인사를 나누고, 간단한 대화를 한 후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찬양을 하고, 몇명의 사람이 자신의 간증을 하는걸 들었다. 그때까지만해도 그저 흔히 '크리스찬들의 행사'라는 느낌으로, 관객의 입장으로 관람을 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마지막 순서로 prayer sister 기도자매를 선정한다고하며 바구니에 자신의 이름과 연락처를 넣은 카드를 넣고, 돌아가며 뽑게했다. 나는 문득 '수잔과 기도자매가 되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카드 하나를 뽑았고 티나라는 이름이 보여 아쉽지만 그러려니 했다. 


모임이 끝나고 이제 돌아가려는데 수잔이 역시나 환한 미소를 띄며 다가오며 '네가 지은이니? 내가 네 카드를 뽑은것 같아.'라며 말하는게 아닌가. 내가 수잔과 함께 기도자매가 되길 바랬는데 이렇게 되어서 정말 반갑고 신기하다고 하니 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며 싱긋 웃었다. 그 순간 나도 정말 그렇게 느꼈다. 


나는 수잔과 연락처를 교환했고, 마치 상냥한 천사가 내 손을 잡고 이끌어주듯이 수잔과 함께 조금씩 조금씩 믿음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고 방황하던 자식을 아주 오랫동안 인내심있게, 사랑과 믿음으로 기다려준 아버지를 만난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신이 있다는 건 언제나 알고있었지만, 나에게 개인적인 신은 아니었다. 그저 막연한 존재로의- 이 세계를 창조한 신이라는 느낌일뿐, 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고, 내가 무슨 죄가 있으며, 왜 구원을 받아야하는지 등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이해되지 않은 것들 투성이었다. 


하루는 수잔과 점심을 먹으며 이런저런 질문을 하던 때였다. 수잔에게 나는 이미 신의 존재를 믿는데, 크리스찬과는 어떤 다른점이 있냐고 물었다. 수잔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는것을 믿고, 그분을 나의 구원자로 받아들이면 돼."라고 했다. 어떤 특별한 의식이 있냐고하니 그저 예수님께 내 삶에 와달라고하면 된다고 했다. 예전의 나같으면 그 컨셉 자체가 도통 이해가 가지않고, 내가 왜 구원을 받아야하며,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는걸 믿어야 신을 만날수 있다는건지 수많은 질문이 생겨났을 것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순간, "그게 다라구요? 너무 간단한데요...하나님이 그걸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죠 뭐."라는 말이 나왔다. 나 스스로도 정말 신기한 변화였다. 


그날 저녁, 나는 혼자 고요한 방안에 앉아 예수님께 말을 걸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어색하게 말을 거는것처럼- "안녕하세요, 예수님. 저 지은이예요. 저 이렇게 하는게 맞는지 모르겠는데...예수님이 저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는 걸 믿어요. 하나님, 예수님을 더 잘 알고, 가까워지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예수님을 저의 주님으로 받아들입니다. 아멘."


이렇게 기도를 하고나면 뭔가 기적같은 일이 일어날줄 알았다. 천사가 내려온다거나 몸에 전율을 느낀다거나, 비전을 본다거나-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이게 진짜 다라고...?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살짝 허무한 마음을 느끼며 책상을 정리하고 평소와 별 다를것없는 루틴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일요일,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동안 나는 잊지못할 경험을 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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