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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리카 May 02. 2024

그저 묵묵히 기다려주신 아버지 품에 안겼다

토요일 저녁, 수잔의 말대로 예수님께 처음으로 인사를 드리고 그분을 나의 구원자로 받아들인다고- 잘 부탁드린다고 말씀 혹은 어색한 기도를 드린 후, 무언가 기적적인 경험을 기대했던 나의 바람과는 달리, 머쓱할 정도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천사가 내려오지도, 어떤 계시가 들리지도 않는- 그저 고요한 정적만 흘렀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음에도 왠지 쑥스러운 마음을 추르시며 앉았던 책상을 정리하고 평소와 다름없이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또 '별생각 없이' 교회에 나갔다. 이날은 처음으로 수잔을 따라 10시에 시작하는 예배 이전에 1시간 동안 진행되는 바이블 스터디에 참석하는 날이었다. 


역시나 처음인 자리라 살짝 어색함을 느끼며, 혼자 머릿속으로 '내가 바이블 스터디에 와있다니. 참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군.'이라는 생각을 하며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수잔 옆에 앉아 시어머니께 얼마 전 선물 받은 성경과 노트를 주섬주섬 펼쳤다. 참석한 사람의 대부분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인 듯했고, 스터디를 이끄는 제임스는 30대 중후반의, 키가 190은 돼 보이는 아주 훤칠한 멋진 청년이었다. 


다들 엄청난 두께의 성경을 가지고 있었고 오랜 기간 몇 번이고 읽고 공부한 흔적이 역력히 보이는 멋지게 낡은 페이지에 눈이 갔다. 예전 같았다면 참 고지식해 보이는 사람들이라 생각했을 사람들을 보며 '참 성실하고 헌신적인 학생들, 하나님의 자녀들이구나. 멋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 역시 신기한 변화였다. 



바이블 스터디는 몇 주에 걸쳐 하나의 주제를 정해 성경에서 그 주제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우리 삶 속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배우고 함께 생각을 나누는 식으로 진행됐다. 이번 주의 주제는 'Encouraging One Another 서로를 격려하기'였고 나는 어떻게 다들 어느 구절이 어느 페이지에 있는지를 그렇게 기억하고, 금세 찾는지에 감탄하고, 몇몇 구절에 끄덕끄덕 공감하고 나의 생각을 나누기도 하다 보니 금세 1시간이 지나갔다. 


스터디가 끝나고 예배를 드리러 가려는데 스터디 리더인 제임스가 내게 다가오더니 "지은, 오늘 네가 나눠준 이야기 참 좋았어. New believer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새로운 영감이 되거든. 그리고 이 책이 너한테 도움이 될 것 같아. 한번 읽어봐."라며 책 한 권을 건넸다. 그건 바로 C.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 Mere Christianity'. 

제임스가 건네준 Mere Christianity

그 책을 보는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비신자들을 위한 기독교에 관한 책 리스트에 있어서 곧 읽어봐야지 하며 지난주 노트에 적어놨었던 바로 그 책이었다. 내가 웃으며 제임스에게 내가 이걸 읽고 싶어 했던걸 어떻게 알았느냐 하니 제임스 역시 싱긋 웃으며 "이건 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지." 하고는 재밌게 읽으라는 말을 남기고 예배장으로 향했다. 그 자리에 잠시 서서 하나님 참 재미있으시네요 생각했다. 


나 역시 이제 예배장으로 향하려는데 스터디 모음에 참석했던 또 다른 수잔이 나에게 다가와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었다. 한국이라고 하니 반색하며 남편 일 때문에 한국에서 2년 동안 살았던 적이 있다며 역시 한국인일줄 알았다고 했다. 나 역시 반가워 그럼 한국 어디에서 살았냐고 하니 대구라고 한다. 바로 내 고향 대구. 이 멀리, 미국 시골도시에서 내 고향 대구에서 2년간 살았던 수잔부부와 바이블 스터디 모임에서 만나다니. 그럴 확률이 얼마나 될까. 수잔 역시 사람들이 서울은 알아도 대구는 잘 모른다며, 대구 친구를 만나다니 너무 반갑다며 진심이 느껴지는 포옹을 했다. 


예배장에 들어와 시부모님 옆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잠시 마음을 가라앉혔다. '참 신기한 우연의 연속이다'라는 생각을 하다 정말 하나님이 이렇게 다 이어주고 계신 걸까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목사님의 성경낭독과 해설, 그날의 메시지를 듣고 함께 일어나 찬양곡을 부를 때였다. 평소와 다름없는 흔한 찬양곡의 가사가 스크린에 떴고 나는 역시나 '별생각 없이'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I was blind but now I can see. Your love is endless. Because of your love, I'm saved."

"저는 장님이었지만 이젠 볼 수 있어요.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당신의 사랑으로 저는 구원받았습니다."라는 가사- 그 흔하디 흔한, 진부하다 생각한 기독교의 찬양곡 가사가 그 순간 갑자기 내 심장 깊숙한 곳에 와닿았다. 


어떤 생각을 한 것도, 특별한 감정을 느낀 것도 아닌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당황해 허둥지둥 눈물을 닦아도 닦아도 멈추기는커녕 밸브가 고장 난 수도처럼 눈물이 계속 쏟아졌다. 그 찬양곡의 가사처럼 마치 지금까지 장님이었던 내가 갑자기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듯했다. 성경에서 하는 말, 찬양의 가사가 하는 말이 이제야 정말로 '보이고', '들리기' 시작했다. 


그저 묵묵히 기다려주신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는 자신의 무한한, 끝없는 사랑을- 그걸 지금까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나 혼자 방황하던 시간을 묵묵히 기다려주셨다. 내가 스스로 아버지께 돌아오기를 기다려주셨다가 그저 아무 말 없이 따뜻하게, 든든하게, 사랑으로 안아주시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지금까지 나 혼자 잘 해낼 수 있다고, 하나님의 사랑도, 구원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그저 고작 인간일 뿐인 나의 능력으로 살아가려고 했던 그 마음이 얼마나 오만했었는지를 깨달았다. 


그렇게 찬양을 하는 내내 눈물을 쏟아내고 마치 가사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닿음을 느끼며 믿기지 않지만 분명 부정할 수 없는 내 안에서 어떤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았다. 옆에 서계신 시아버지가 알아차리실까 (물론 당연히 다 보셨을 테지만...) 나를 추스르고 예배가 끝나자마자 바로 나의 영적 어머니 수잔을 찾아가 내가 한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자 수잔은 언제나처럼 너무나도 환한 미소로 내 두 손을 꼭 잡으며 "정말 너무너무 기쁘구나. 하나님이 지은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겠지?"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다시 한번 또 눈물이 줄줄 흘렀다. 


예배가 끝난 후에는 얼른 집에 성경을 읽고 싶어 졌다.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나도 궁금해졌다. 

내가 성경을 읽고 싶어 하다니! 도저히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마치 목이 마른 이가 허겁지겁 물을 마시듯이 나는 그렇게 성경을- 고지식한 크리스천들, 나와는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 읽는 책이라고 생각했던 그 성경을- 앉은자리에서 몇 시간씩 멈추지 않고 읽기 시작하게 되었다. 예전에도 몇 번 성경이 대체 어떤 이야기일까 궁금해서 읽어보려고 시도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마치 난독증처럼 글을 분명 눈으로 읽고 있는데 머리에, 가슴에는 전혀 와닿지 않고 흡수가 되지 않았다. 큰 동기가 없으니 당연히 이어지지도 않았다. 


집에 돌아와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책상에 앉아 성경을 펼쳐 그날 목사님이 이야기해 주신 Corinthians 챕터를 읽기 시작했다. 마치 어릴 적 해리포터를 날이 새는지도 모르고 푹 빠져 정신없이 읽던 것처럼 책장이 계속해서 넘어갔다. 그 뒤로도 손이 가는 대로 성경의 챕터를 하나씩 읽어나가기 시작했고, 마치 영상을 보는 것처럼 생생한 이야기가 눈앞에 펼쳐졌다. 성경이 이렇게 흥미롭고 재미있는 책이었던가. 나는 소리 내어 한줄한줄을 읽기도 하고 특히 마음에 와닿는 부분은 노트에 옮겨가며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목마름을 달래는 소중한 물처럼 꿀꺽꿀꺽 마시고 있었다. 



어린 시절 건강문제로 고생하며 일찌감치 삶의 의미를 묻기 시작했고, 그렇게 명상, 자연치유, 영성에 집중해 나름 영적성장을 해나가고, 이루고 싶은 꿈을 하나하나 이루어가며 30대 후반이 되어 어느 정도는 세상의 이치를 깨우쳤노라 생각했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예수님을 나의 목자로 받아들인 순간 지금까지는 경험하지 못한 너무나도 큰 마음의 평온이 찾아왔다. 


그렇게 평생을 간절히 찾아다니던 대답을 얻은 것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아도 되며, 더 이상 이것저것 시도해보지 않아도 되며, 그저 나의 든든한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따르며 그분의 말씀만 읽고, 듣고, 공부하며 그대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마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다니다 탁 내려놓은 홀가분한 느낌이었다. 이 얼마나 심플한 삶인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스토리로 삶이 전개되는 것 역시, 내가 볼 수 없는 길을 하나님은 보고 계시니 내가 가장 나의 빛을 발할 수 있는 곳에, 내가 가장 나답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로 살 수 있는 곳에 데려다주시는 과정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미래에 대해 내가 계획을 짜고 '어디에 언제 가서 무엇을 해야 하며 등등'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다. 인간인 나의 머리로는 생각할 수조차 없는 큰 그림을 하나님께서 이미 다 가지고 계시니 나는 그저 그분의 능력을 믿고 잘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내가 '하나님', '영광', '성경', '구원'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는 자체가 믿기지 않고 이게 과연 내가 쓰는 글인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분명 나의 이야기이지만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 기분마저 든다. 하지만 내가 한 경험, 내 안에서 일어난 변화는 부정하기엔 너무나도 크기에, 이야기를 공유해야만 한다는 마음이 너무나도 강렬하기에 이렇게 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내 눈이 뜨이고, 귀가 트인 그날. 

그날부터 나는 매일 하나님과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아침저녁으로 공부하며, 하루하루 내가 조금 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라고 기도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믿기지 않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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