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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WK단편선 57> 나이트&피지컬

by 김동은WhtDrgon

비가 내렸다. 컨테이너 지대에 쏟아지는 빗소리가 마코의 귀를 때렸다.

"더럽게 재수 없는 날씨네."


마코는 낡은 레인코트 아래로 총의 감촉을 확인했다. 미모대사국 수호사들이 곧 올 것이다. 그들이 자신을 피지컬 러너로 분류한 이후, 마코의 인생은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그는 컨테이너 172번을 찾아 숨어들었다. 살롱즈 행 화물선이 두 시간 후 출발한다. 단 두 시간만 버티면 된다.

컨테이너 안은 어두웠다. 손전등을 켤 수도 없었다. 수호사들의 눈에 띄기라도 하면 끝장이다.


"꼼짝말고 있어."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마코는 반사적으로 총을 꺼냈다.

"진정해, 피지컬 러너. 널 죽이려는 게 아니야."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나타났다. 검은 수트에 살짝 미소 짓는 얼굴. 마코는 즉시 알아봤다. 시안, 빅포레스트에서 악명 높은 나이트 러너였다. 불법 의뢰만 골라서 받기로 유명한 자였다.


"뭐야, 이것도 네 영역이야?"

마코가 물었다.

"그런 셈이지." 시안이 어깨를 으쓱했다. "살롱즈로 들어가는 특별한 불법 화물을 배달하는 임무랄까. 나이트 러너 전문이지."

"빌어먹을." 마코는 중얼거렸다. "여기 수호사들이 올 거야. 다른 컨테이너로 옮겨."

시안은 웃었다. "그럴 수 없어. 내 임무가 여기 있으니까."


그때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미모대사국 수호사들의 정찰 소리였다.

"여기 검사해봐." 누군가 명령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코는 시안을 노려봤다. 그들은 서로를 알았다. 카페 문화에서 나이트 러너는 불법을 마다하지 않아도 최소한의 규칙은 지키는 존재로 여겨졌고, 피지컬 러너는 그마저도 무시하는 존재로 배척당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구분이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널 좋아하진 않지만," 시안이 말했다. "여기서 네가 들키면 나도 위험해. 따라와."

시안은 컨테이너 뒤편으로 마코를 이끌었다. 화물 상자들 사이에 숨겨진 작은 공간이 있었다.


"넌 왜 피지컬 러너가 됐어?" 시안이 물었다.

마코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상자 안에 쭈그려 앉았을 뿐이다.

"난 적어도 나이트 러너야." 시안이 말을 이었다. "불법이든 뭐든 의뢰만 받으면 해결하지만, 적어도 러너의 그릇은 건드리지 않아."

"너도 똑같아." 마코가 쏘아붙였다. "난 임무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


밖에서 금속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수호사들이 컨테이너를 열고 있었다.

"널 여기서 내보내야겠어." 시안이 말했다. "내 임무가 더 중요하니까."

마코의 얼굴이 굳었다. "내가 널 죽이기 전에 시도나 해봐."

시안은 웃음을 참았다. "진정해. 농담이야. 둘 다 무사히 빠져나가는 게 좋잖아."


그는 상자를 밀어 작은 통로를 드러냈다. 컨테이너 바닥에 숨겨진 비밀 출구였다.

"이건..."

"응급 탈출로. 러너들이 위험할 때 쓰는 거야. 가서 널 특별히 돕진 않겠지만, 적어도 널 팔아넘기진 않을게."

마코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시안을 보았다. 그러다 그의 시선이 시안 뒤의 상자로 향했다. 상자 중 하나가 살짝 열려 있었고, 그 안에서 이상한 물건이 보였다.

"그게 뭐지?"

시안은 한숨을 쉬며 상자를 완전히 열었다. 안에는 광택이 나는 검은색 가죽으로 만든 채찍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내 임무야. 살롱즈 상류층에게 배달할 물건이지."


마코는 채찍 하나를 집어들었다. 묵직하고 광택이 나는 검은 가죽이었다. "채찍? 이건 무슨 가죽이야? 보통 것 같지 않은데."

"코끼리 코 가죽이야. 500개. 윤리적 생산 증명서 포함." 시안이 작은 카드를 꺼내 보여주었다. 화려한 도안 위에 '윤리적 채취' 인증 마크가 찍혀 있었다.


마코는 놀라움에 채찍을 떨어뜨렸다. "코끼리? 멸종 위기종 그 코끼리? 그게 윤리적이 어디 있어? 이건 완전 불법이잖아!"

시안은 어깨를 으쓱했다. "증명서가 있잖아."

"종이 한 장이 코끼리를 살리진 않아."

"코끼리는 이미 죽었어."

마코는 인상을 썼다. "난 평생 코끼리 구경도 못해봤어. 이 잔인한 놈아."

"그래? 코끼리는 138마리나 있어." 시안이 태연하게 말했다. "엄청 커. 귀도 크고, 코도 길고..."


"138마리? 동백국에 코끼리가 어디 있어?"

시안이 눈을 깜빡였다. "동물원에 있어."

"동물원? 그런 게 어디 있어?"

"살롱즈엔 있어."

"거기 138마리나 있다고?"

시안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냥 아무 말한 거야."

마코가 의심스럽게 바라봤다. "세볼 거야?"

"없다니까."

"알았대두."

마코는 다시 채찍을 들었다. "어차피 한 마리면 채찍 500개 나올 거야."

"코가죽이라며?"

"알빠냐?"

"코끼리 코는 지그시 만지면 푹신푹신한데, 이건 그냥 쇠가죽이잖아."

시안은 얼굴을 찡그렸다. "쇠가죽 아냐. 그건 확실해. 보증서에 써있잖아."

"윤리적 코끼리 보증서?" 마코가 비웃듯 말했다.


시안의 얼굴이 굳었다. "그래놓고 나를 욕해? 내가 때리는 건 거리에 흔해빠진 것들이잖아. 사람 말이야."

마코는 말문이 막혔다. "그건... 그건 다른 문제야."

"어떻게? 설명해줘. 관심 있어서 묻는 건데."

"난 적어도 생명을 고문하려고 죽이진 않아."

"아, 그래? 너는 그냥 바로 죽이는 거지? 훨씬 인도적이네."

"야, 내가 피지컬 러너라고 사람 죽이는 건 아냐."

"그럼 뭐야? 러너 그릇에 몸 담고 있는 러너들을 때려서 의식 잃게 하는 거야? 그게 더 나아?"

마코는 얼굴이 붉어졌다. "그건 상황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도 마찬가지야." 시안이 차분하게 말했다. "난 그냥 이 가죽을 배달할 뿐이야.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해."

침묵이 이어졌다. 두 러너 모두 서로를 바라보며 각자의 선택을 정당화하려는 듯했다.

"왜?"

"네가 피지컬 러너라도 여전히 러너야. 우리 직업엔 코드가 있지."

마코는 잠시 망설였다. "그 임무,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어. 하지만 후회는 없어."

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린 모두 선택을 해. 어서 가."


마코가 막 통로로 들어가려는 순간, 갑자기 컨테이너가 흔들렸다. 누군가 크레인으로 컨테이너를 들어올리고 있었다.

"뭐야, 이게 계획에 없던 건데!" 시안이 소리쳤다.

마코는 재빨리 밖을 내다보았다. 미모대사국 함선이 항구에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컨테이너를 직접 함선으로 옮기려는 것 같았다.

"이런 제기랄..." 마코가 중얼거렸다. "코끼리 가죽 때문인가?"

"아마도. 누군가 이 화물에 대해 제보했을 거야."

시안은 이어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연락했다. "야, 상황이 이상해. 미모대사국 함선이 여기 있어... 뭐? 임무 변경? 그럼 이 피지컬 러너는 어떻게... 알았어, 코끼리 가죽은 어쩔 수 없지. 하지만 500개 중 하나라도 손상되면 내 보수가 깎인다고."


시안은 난처한 표정으로 마코를 보았다.

"보내줄 테니 걱정 마." 마코가 말했다. "어차피 죽이려면 벌써 죽였을 거야."

"문제는 그게 아니야." 시안이 말했다. "우리가 살롱즈가 아니라 미모대사국으로 가게 됐어."

마코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하지만," 시안은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 내 계획이 있어."

그는 작은 가방을 열어 검은색 수트 하나를 꺼냈다.

"입어. 내 동료인 척 해. 나이트 러너로서."


마코는 의심스러웠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는 재빨리 옷을 갈아입었다. 이제 그들은 같은 차림새였다.

"기억해, 넌 나이트 러너 '마크'야. 내 파트너지. 그리고 이 컨테이너에는 미모대사국이 필요로 하는 특별한 것이 있어."

마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뭐지?"

시안은 씩 웃었다. "모르는 게 좋을 걸."


컨테이너가 크레인에 의해 완전히 들어올려졌다. 그들은 잠시 균형을 잡으려 비틀거렸다.


"내가 불법 일을 즐겨도 피지컬 러너 정도는 아니지." 시안이 중얼거렸다.

마코는 눈을 굴렸지만, 묘한 방식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그래, 그렇게 자위해. 적어도 난 내 선택에 솔직하니까."

시안은 웃었다. "우린 둘 다 러너야. 그런데... 충고 하나 해도 될까?"

"뭔데?"

"이 일이 끝나면, 잠시 러닝을 쉬어. 수호사들이 널 잊을 때까지."

컨테이너가 함선 위에 안착되었다. 곧 문이 열릴 것이다.

"준비됐어?" 시안이 물었다.

마코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준비 완료."


문이 열리고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두 러너는 똑같은 수트를 입고 자신감 있게 밖으로 걸어나갔다.

"어서 오십시오, 시안 씨." 미모대사국 관리가 인사했다. "화물은 안전합니까?"

"물론이죠." 시안이 대답했다. "제 파트너 마크와 함께 완벽하게 수행했습니다."

관리는 마코를 의심스럽게 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보상은 약속대로 지급될 겁니다."


그들이 함선 내부로 안내되는 동안, 마코는 시안에게 속삭였다.

"내가 널 대체 왜 도와주는 거지?"

시안은 씩 웃었다. "왜냐하면, 네가 나이트 러너 흉내를 낼 때만큼은 살롱즈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으니까."

"이 컨테이너는 살롱즈로 가는 게 아니라며?"

시안의 눈이 반짝였다. "내 진짜 임무는 이 컨테이너가 아니라 저기 있는 미모대사국의 마스터 키를 훔치는 거야. 그리고 이제 우린 함께 훔쳐서 살롱즈로 도망갈 거지."

마코는 한숨을 쉬었다. "어쩜 이렇게 꼬이는 거야."

"이게 러닝이지." 시안이 웃으며 말했다. "타락했어도 잊지 마. 우린 모두 러너야."


마코는 마지않을 미소를 지었다. 그는 피지컬 러너가 되었지만, 오늘만큼은 나이트 러너처럼 행동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시작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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