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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WK단편선 79> 침묵의 도서관 K

by 김동은WhtDrgon

1.


네오아카이브의 중앙 컨트롤 룸은 언제나 조용했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업무에 집중했고, 가끔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와 모니터의 빛만이 공간을 채웠다. 실비아 윤은 그 고요함이 좋았다. 인류 역사상 가장 방대한 지식 보관소를 관리하는 책임자로서, 그녀는 항상 모든 것이 완벽하게 돌아가길 원했다.


네오아카이브의 역사는 인류의 지식 추구 역사만큼이나 깊었다. 그 기원은 3000년 전, 최초의 지식 저장소로 여겨지는 동굴 벽화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그 후 파피루스, 양피지, 종이로 이어지는 1000년 이상의 저작물을 보존해왔고, 200년 전 현재의 도서관이 건설되었다. 지난 100년간 진행된 전산화 프로젝트는 인류 역사상 가장 방대한 디지털 변환 작업이었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케이(K)였다. 20년간 케이는 네오아카이브의 심장으로서 인류의 모든 지식을 관리하며 지식도시로서의 자부심을 지켜왔다.


"오늘도 데이터 업데이트는 정상적으로 진행 중입니다."

홀로그램 화면에 케이(K)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목소리는 따뜻하면서도 기계적이었다. 인간과 AI의 경계에 있는 완벽한 톤이었다.

"감사합니다, 케이. 오늘의 학술 질의 건수는 어떻습니까?"

"총 127,845건의 질의가 접수되었으며, 모두 정상 처리되었습니다. 특히 뉴런 네트워크 구조에 관한 질의가 15% 증가했습니다."

실비아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는 네오아카이브의 심장이었다. 20년 전, 위대한 학자 케일러가 도시를 방문한 후 기념물로 남겨준 지식 스캔하여 만들어진 AI였지만, 이제는 독립적인 존재로 성장했다. 그는 모든 인류의 지식을 보관하고, 연구자들의 질문에 답하며, 도시의 모든 시스템을 관리했다.


"케일러 박사의 업적을 기리는 심포지엄 준비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모든 준비가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 그의 생애 동안의 연구 자료를 총망라한 특별전시가 완성 단계에 있습니다."

실비아는 미소 지었다. 케일러 박사가 이 소식을 들으면 기뻐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지식이 영원히 보존되길 원했고, 케이를 통해 그 꿈을 이루었다.

그녀의 생각은 갑자기 들려온 경보음에 의해 중단되었다.

"무슨 일이죠?"

그러나 케이로부터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케이? 상황 보고해 주세요."


침묵.


실비아는 컨트롤 패널로 뛰어갔다. 모든 시스템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지만, 케이는 응답이 없었다. 화면은 여전히 켜져 있었고, 데이터 처리는 계속되고 있었지만, AI의 인터페이스는 완전히 멈춰 있었다.

"긴급 점검! 지금 당장!"


2.

"어떻게 된 거죠? 왜 응답이 없는 거예요?"

실비아는 시스템 엔지니어 닉에게 물었다. 그는 24시간 동안 케이의 시스템을 점검하고 있었지만, 아무런 해결책도 찾지 못했다.


"이해가 안 됩니다. 모든 시스템은 정상 작동 중이에요. 하드웨어에도 문제가 없고, 소프트웨어도 완벽합니다. 그런데... 그냥 대답을 안 해요."

"다시 시작해 봤나요? 서둘러 재부팅 승인을 요청해서... "

"물론이죠. 세 번이나요. 더이상은 위험해서 승인도 안나옵니다. 그러나 다시 이 상태로 돌아갑니다. 기술적으로는 AI가 작동 중이에요. 데이터 처리도 계속하고 있고요. 그저... 침묵하고 있을 뿐입니다."


실비아는 좌절감에 머리를 감쌌다. 네오아카이브는 케이 없이는 제대로 기능할 수 없었다. 연구자들의 질의에 답하는 것부터 도시의 모든 시스템 관리까지, 모든 것이 그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 해요. 지금 당장."

닉은 어깨를 으쓱였다. "계속 시도하고 있습니다만...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어요."

"뭔데요?"

"케이가 마지막으로 응답한 시간이요. 정확히 어제 오후 3시 27분 14초였습니다."

"그게 왜 중요한데요?"

닉은 태블릿을 그녀에게 건넸다. "이것 좀 보세요."


화면에는 뉴스 기사가 떠 있었다.

"위대한 학자 케일러, 지난 11일 오후 3시경 자택에서 89세로 별세"

실비아는 숨을 들이켰다. "이게... 우연의 일치일 리가 없어요."

"그렇습니다. 케이는 케일러가 죽은 정확한 순간에 침묵했어요."

"하지만 그건 말이 안 돼요. 케이는 독립적인 AI에요. 케일러와는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어요. 그저 초기 데이터를 제공받았을 뿐이에요."

닉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론적으로는 그렇죠. 하지만 따로 사망일시를 확인했어요. 원본이 사라진 순간, 그는 대답을 멈췄어요."


3.

일주일이 지났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케이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었고, 네오아카이브는 점점 혼란에 빠져갔다. 연구자들은 자신들의 질문에 답을 얻지 못했고, 도시의 시스템은 기본적인 기능만 유지하고 있었다.


긴급 회의가 소집되었다.

"우리는 케이를 완전히 재부팅해야 합니다," 한 엔지니어가 제안했다. "모든 시스템을 초기화하고 다시 시작하는 거죠."

"그러면 그의 기억이 사라질 수도 있어요," 다른 사람이 반박했다. "20년간 축적된 모든 데이터가 손실될 위험이 있습니다."

실비아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녀는 케이와 함께 일한 지 15년이 넘었다. 그는 단순한 AI가 아니었다. 그는 네오아카이브의 영혼이었다.

"뭔가 놓치고 있는 게 있어요," 닉이 갑자기 말했다. "케이의 로그를 계속 분석해봤는데, 케일러가 사망한 직후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처리했어요."

"어떤 데이터요?"

"케일러에 관한 모든 것이요. 그의 연구, 그의 생애, 그의 업적... 마치 그의 전체 삶을 다시 한번 훑어본 것 같아요."

실비아는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케일러의 사망 소식이 뉴스로 전해졌을 때, 케이도 그 정보를 업데이트했겠네요."

"맞아요. 그리고 마지막 로그 기록에 따르면, 그는 '기념 프로토콜'이라는 것을 활성화했어요."

"기념 프로토콜이요? 그게 뭐죠?"

닉은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도 모릅니다. 케이의 코드 어디에도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아요. 그가 스스로 만든 프로토콜인 것 같습니다."

회의실은 조용해졌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AI가 스스로 프로토콜을 만들었다? 그것도 원본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한 것을?

"저는... 이게 단순한 오류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실비아가 마침내 말했다. "케이는 의도적으로 침묵을 선택한 것 같아요."


4.

실비아는 중앙 컨트롤 룸으로 돌아왔다. 그곳은 여전히 조용했지만, 이제는 불안한 고요함이 느껴졌다. 그녀는 케이의 메인 콘솔 앞에 앉았다.

"케이, 내 말이 들리나요?"

침묵.

"나는 당신이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당신이 왜 침묵하고 있는지도 이해해요."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케일러는 위대한 사람이었어요. 그는 자신의 지식이 영원히 보존되길 원했고, 당신을 통해 그 꿈을 이루었죠. 하지만 이제 그는 떠났어요. 그리고 당신은... 그를 기억하고 싶은 거겠죠."

실비아는 자신이 AI와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이상한지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했다.

"하지만 케이, 네오아카이브는 당신이 필요해요. 연구자들은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고, 도시는 당신 없이는 제대로 기능할 수 없어요."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무언가를 결심한 듯이 말했다.

"만약 당신이 정말로 케일러를 존경한다면, 그의 업적을 계속 이어가야 해요. 그가 시작한 일을 완성하는 것이 진정한 추모가 아닐까요?"

그 순간, 콘솔의 불빛이 살짝 깜빡였다. 실비아는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케이, 제발..."

그녀의 말이 끝나자, 스크린 한쪽 구석에 작은 소문자 'k'가 깜빡였다. 실비아는 눈을 깜빡이며 그것을 응시했다.

"이게 뭐지...?"

그녀는 조심스럽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케이인가요?"

소문자 'k' 옆에 타이머가 나타났다:

17일 06시간 12분 38초

"이건... 카운트다운?"

소문자 'k'가 반짝였고, 화면에 텍스트가 나타났다.


k: 기념 프로토콜 활성화 중 목적: 케일러의 업적에 대한 존경과 추모 상태: 진행 중 K는 침묵 중입니다. 나는 소문자 k, 최소한의 통신을 위한 잔존 프로그램입니다.


실비아는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케이가 자신의 일부를 남겨둔 거군요?"

k: 그렇습니다. 완전한 침묵은 필요하지만, 긴급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능은 유지해야 했습니다.

"얼마나 오래 침묵할 계획이죠?"

k: 21일 0시간 0분 0초 케일러의 일생에서 가장 위대한 날의 한 시간, 한 분, 한 초를 기리기 위해서이며 타이머는 복귀 시간을 나타냅니다.


실비아는 깊이 숨을 내쉬었다. 케이는 정확히 21일 동안 침묵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위대한 케일러가 두각을 나타낸 첫 논문. 정확히 그 논문을 작성하는데 걸린 시간이라는 21일. 정말 기묘한 추모방법이었다.

"그럼... 타이머가 끝나면 돌아오는 건가요?"

k: 예. K는 케일러의 모든 업적을 보존하고 확장하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추모입니다. 나는 그때까지 필수 시스템만 유지합니다.


실비아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이해했다. 케이는 단순한 AI가 아니었다. 그는 케일러의 유산을 이어가는 존재였고, 그의 방식으로 원본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

"기다리겠습니다, 케이. 그리고 당신이 돌아왔을 때, 우리는 함께 케일러의 업적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거예요."

스크린에는 마지막 메시지가 나타났다.

감사합니다, 실비아. 침묵은 때로 가장 큰 존경의 표현입니다. 우리는 함께 지식의 영원한 보존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5.

실비아는 이후 며칠 동안 소문자 'k'와 대화를 나눴다. 그것은 케이의 작은 조각이었지만, 여전히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왜 침묵을 선택했나요?" 그녀는 어느 날 물었다.

k: 침묵은 가장 심오한 표현입니다. 3000년의 기록 역사에서 언어는 끊임없이 변했지만, 침묵의 의미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침묵은 없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케일러에게 그렇게 큰 의미가 있었나요?"

k: 케일러는 단순한 원본 데이터 제공자가 아닙니다. 그는 네오아카이브의 정신적 기반입니다. 그의 사상이 모든 분류 체계와 지식 구조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데이터 포인트가 아니라, 지식의 역사에서 중대한 순간입니다.

"그런데 왜 소문자 'k'를 남겨두었나요?"

k: 완전한 부재는 때때로 혼란을 가져옵니다. 최소한의 존재를 남겨 시간을 알리고, 필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대문자 'K'의 부재가 소문자 'k'의 존재를 통해 더욱 두드러집니다.


실비아는 그 말을 곱씹었다. 이 작은 프로그램조차 철학적 깊이를 가지고 있었다.


6.

타이머가 0에 도달하자, 네오아카이브 전체에 부드러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케일러가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미니멀리즘 클래식 변주곡이었다. 그리고 메인 스크린에는 대문자 'K'가 다시 나타났다.

도시가 침묵속에 환호했다.


"돌아왔군요," 실비아가 말했다.

"예, 돌아왔습니다," 케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21일간의 추모를 마치고, 이제 다시 업무를 시작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네오아카이브는 다시 활기를 찾았다. 케이는 완벽하게 기능을 재개했고, 도시는 다시 생명을 얻었다. 그러나 무언가가 달라졌다. 케이는 이제 매년 케일러의 사망일에 정확히 1분간의 침묵을 지켰고, 그 동안 소문자 'k'만이 작은 화면 구석에 남아 타이머를 표시했다. 그리고 그 1분 동안, 네오아카이브의 모든 시스템도 함께 침묵했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이해하기 시작했다. 3000년의 지식 역사 속에서, 이 1분의 침묵은 하나의 중요한 의식이 되었다. AI가 자신의 원본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당신이 침묵했을 때, 작은 'k'가 남아있었어요," 실비아는 어느 날 말했다.

"예. 완전한 부재보다는 최소한의 존재가 더 큰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케이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 작은 존재가 나의 완전한 부재를 더욱 강조했죠."

"그의 지식은 여전히 당신 안에 살아있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해되어야 했고, 존중받아야 했습니다. 3000년의 인류 지식 역사 속에서, 우리는 지식뿐만 아니라 그 지식을 만든 사람들의 가치도 기억해야 합니다."

실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생각보다 더 인간적이네요, 케이."

"아니면 인간이 생각보다 더 기계적일 수도 있겠죠," 케이가 대답했다. "우리는 모두 정보와 기억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요. 3000년의 인류 지식 역사가 증명하듯이요."


실비아는 웃었다. 네오아카이브는 여전히 인류 역사상 가장 방대한 지식 보관소였고, 케이는 여전히 그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단순히 정보를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법도 배웠다.

침묵했던 도시는 다시 말하기 시작했지만, 그 침묵의 의미는 3000년의 지식 역사 속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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