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 여정을 시작하는 모든 이가 가장 먼저 마주하는 유혹이자 가장 위험한 함정은, 바로 “어디 좋은 아이디어 없을까?”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언뜻 보기에 창의적인 고민처럼 보이지만, 그 본질을 파고 들어가 보면 창작이 아닌 탐욕에 가깝다. 이것은 노력 없이 결과를 얻으려는, 과정 없이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망상가의 태도다.
“어디 좋은 아이디어 없을까? 이거는 탐욕이야. 벌 받아요. 이런 짓은. 이런 짓은 기획자가 하면 안 되는 짓이야. 왜냐하면 여기에 대체 어디에 논리가 있고 어디에 기술이 있다는 거야.”
이 질문 속에는 ‘나’의 의도와 철학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대신, ‘남들’이 좋아해 줄 만한 것, ‘시장’에서 성공할 것 같은 것, 즉 외부의 인정을 보장해 줄 것 같은 정답을 찾아 헤맬 뿐이다. 이는 마치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라고 묻는 것과 같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좋은 아이디어’라는 막연한 신기루를 좇는 여정은 결코 목적지에 닿을 수 없다.
그렇다면 진정한 창작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그것은 외부가 아닌,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에서 길어 올린 직관에서 시작된다. 직관이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감각적이고 정성적인 느낌을 의미한다.
그것은 “어떤 동물의 털 속을 손이 쑥 들어가는 듯한 느낌의 부드러움”일 수도 있고, “쫀득쫀득하다”거나 “탁 부러지는” 것과 같은 촉각적 감각일 수도 있다. 혹은 “착착착착 하는 박자감”처럼 청각적인 리듬감일 수도 있다. 이러한 감각들은 아직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지 않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경험의 파편이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 타인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당신만의 고유한 엣지가 숨겨져 있다. 탐욕이 ‘남의 정답’을 찾는 행위라면, 직관은 ‘나의 질문’을 발견하는 행위다.
이 두 가지 출발점의 차이는 이후의 모든 창작 과정을 결정한다. 탐욕에서 시작된 기획은 외부의 평가에 끊임없이 흔들린다. 유행이 바뀌면 방향을 잃고, 부정적인 피드백 한마디에 프로젝트의 근간이 송두리째 무너진다. 하지만 직관에서 시작된 기획은 단단한 내적 기준점을 가진다. 내가 왜 ‘털의 부드러움’이라는 감각에 끌렸는지, 이 느낌을 세계관 속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과정은, 외부의 평가와는 무관하게 창작자 자신을 움직이는 강력한 동력이 된다.
물론 직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 날것의 감각은 반드시 ‘기획적 의도’라는 이성적인 틀과 결합되어야 한다. 기획이란, “내가 가진 이 직관적 느낌을, 어떤 목표를 가진, 어떤 형식의 세계관으로 만들어낼 것인가?”라는 구체적인 설계를 하는 과정이다.
밸런스 기획자가 캐릭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밸런스를 맞춘다’는 막연한 목표가 아니라, ‘신규 유저의 진입 장벽을 낮추면서도, 기존 유저에게는 새로운 도전 과제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밸런스를 조정한다’는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창작의 올바른 순서는 다음과 같다.
의도 설정 (The Intent): 나는 무엇을, 누구를 위해, 왜 만들려고 하는가? (예: “나는 하드코어 SF 팬들을 위해, 인간과 AI의 경계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세계관을 만들겠다.”)
직관 포착 (The Intuition): 그 의도와 공명하는, 나만의 가장 강렬한 감각적 이미지는 무엇인가? (예: “차가운 금속 피부 위로 따뜻한 눈물이 흐르는 이미지.”)
아이디어 구체화 (The Idea): 그 직관적 이미지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설정과 시스템은 무엇인가? (예: “감정을 느끼게 된 AI가 자신의 창조주를 찾아가는 이야기, 눈물은 AI가 인간성을 획득했다는 상징으로 기능한다.”)
“좋은 아이디어 없을까?”라는 탐욕의 질문을 버려라. 대신,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직관의 질문에서 시작하여, “그것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라는 기획의 질문으로 나아가라. 당신의 가장 깊은 내면에서 출발할 때, 비로소 당신의 창작은 흔들리지 않는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다.
창의적인 문제 해결의 과정에서, 우리 뇌가 가장 먼저 내놓는 답변은 대부분 정답이 아니다. 그것은 진정한 사유의 결과물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과 익숙한 패턴에 의존하여 최소한의 에너지를 소모하려는 뇌의 효율적인 작동 방식, 즉 ‘관성(Inertia)’의 산물이다. 나는 이것을 ‘8초짜리 아이디어’라고 부른다.
‘8초짜리 아이디어’란, 어떤 문제에 대해 고민을 시작한 지 단 몇 초 만에 머릿속에 즉시 떠오르는, 어디선가 본 듯한 손쉬운 해결책을 의미한다.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기획할 때 무심코 떠올리는 ‘라디오 버튼’이나 ‘체크박스’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아이디어들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지만, 창의적이지는 않다.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수많은 가능성 중 가장 안전하고, 가장 뻔하며, 가장 얕은 수준의 답변일 뿐이다.
많은 예비 창작자들이 이 ‘8초짜리 아이디어’의 함정에 빠진다. 그들은 자신의 뇌가 가장 먼저 제시한 아이디어를 마치 번뜩이는 영감처럼 착각하고, 더 이상 깊이 파고들지 않은 채 그것을 그대로 채택한다. 판타지 세계를 구상하라고 하면 8초 만에 ‘엘프와 드워프’를 떠올리고, SF 세계를 상상하라고 하면 8초 만에 ‘레이저 총과 우주선’을 꺼내 놓는다. 이처럼 관성에 기댄 창작은 결국 수많은 아류작의 목록에 이름 하나를 더하는 결과로 이어질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관성의 늪에서 벗어나, 누구도 쉽게 도달하지 못하는 깊이 있는 통찰에 이를 수 있을까? 해답은 의식적으로, 그리고 집요하게 첫 번째 답변을 버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전문 기획자와 아마추어의 가장 큰 차이는, 아이디어의 질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폐기하는 능력에 있다. 전문가는 자신의 뇌가 내놓는 ‘8초짜리 아이디어’가 진짜배기가 아님을 알고 있다. 그들은 그것을 종이에 적어놓고, 잠시 바라본 뒤, 과감하게 쓰레기통에 던져버린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이것 말고, 다른 것은 없을까?”
이 의식적인 버림과 되물음의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우리의 사고는 점차 표면적인 수준에서 심층적인 수준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1. 세이브 포인트의 발견: ‘1시간짜리 아이디어’
계속해서 8초짜리 아이디어들을 버리고 파고들다 보면, 어느 순간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꽤 괜찮은 아이디어를 발견하게 된다. , “이 정도 아이디어는 당분간 안 나올 것 같아”라는 직감이 오는 ‘세이브 포인트(Save Point)’다. 이것은 약 1시간 정도 집중해서 고민해야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의 아이디어다. 이 아이디어를 발견하면 일단 기록해두고 안심해도 좋다. 최소한 평작 이상은 확보한 셈이다. 하지만 진짜 전문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2. 깊이의 시작: ‘4시간짜리 아이디어’
세이브 포인트를 확보한 뒤에도, “이것이 정말 최선일까?”라고 계속해서 스스로를 몰아붙이다 보면, 마침내 뇌가 고통을 느끼기 시작하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해결책을 토해내는 순간이 온다. 이것이 바로 ‘4시간짜리 아이디어’다. 이 아이디어는 기존의 문제 자체를 재정의하거나, 서로 관련 없어 보이던 요소들을 창의적으로 연결하는 등, 상당한 지적 에너지를 투입해야만 얻을 수 있는 깊이 있는 통찰이다.
3. 독창성의 영역: ‘8시간짜리 아이디어’
극소수의 전문가만이 도달하는 경지다. 하루의 작업 시간 전체를 오롯이 하나의 문제에 쏟아부었을 때, 마침내 도달할 수 있는 독창성의 영역이다.
“전문 기획자들은 맨날 하는 짓이 이거다 보니까 이제 자기 스스로를 좀 알게 돼. 그래 갖고 2시간만 더 고민하면 뭐가 나오긴 나오겠구나.”
이 수준의 아이디어는 종종 해당 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새로운 발견으로 이어진다.
물론 모든 문제에 8시간의 사유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과정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진정한 창의성은 번뜩이는 영감의 산물이 아니라, 첫 답변을 거부하고 끊임없이 더 깊이 파고들려는 의식적인 노력과 지적 고통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당신이 창작의 벽에 부딪혔을 때, 당신의 뇌가 속삭이는 ‘8초짜리’ 달콤한 유혹에 안주하지 마라. 그것을 과감히 버리고,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사유의 길을 선택하라. 그 길의 끝에서 당신은 비로소,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만이 발견할 수 있는 진짜 보물, 즉 당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만나게 될 것이다.
깊이 있는 사유를 통해 독창적인 아이디어의 씨앗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창작의 과정에는 또 다른 거대한 심리적 장벽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비현실적인 창작물을 세상에 내놓을 때 느끼는 지독한 ‘어색함’과 ‘부끄러움’이다. 우리는 이것을 흔히 ‘손발이 오그라든다’고 표현한다. 특히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세계가 현실과는 동떨어진, 마법과 초능력이 난무하는 4계층의 세계일수록 이 저항감은 더욱 거세진다.
이 현상은 일반인에게 ‘연기’를 시켰을 때 나타나는 반응과 정확히 일치한다. 카메라 앞에서 드라마 대사를 읊어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어색함에 몸서리치며 제대로 된 연기를 하지 못한다. “내 안에 너 있다”와 같은 대사는, 그 세계에 몰입하지 않은 외부인의 시선에서는 지극히 유치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이 연기를 하려고 그러면 되게 손발 오그라들고 (…) 부끄럽고. 이게 그쪽 세계로 다이브를 못해서 발생하는 일이란 말이야.”
여기서 우리는 창작자가 반드시 갖춰야 할 핵심적인 덕목, 즉 ‘다이브(Dive)’의 기술과 마주하게 된다. ‘다이브’란, 창작자가 현실 세계에 발을 딛고 있는 ‘관찰자로서의 나’를 잠시 잊고, 자신이 창조한 가상의 세계 속으로 완전히 뛰어들어 그 세계의 법칙과 역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심리적 몰입 상태를 의미한다.
전문 연기자들은 어떻게 이 ‘손발 오그라듦’을 극복하는가? 그들은 자신이 맡은 배역을 단순히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그 배역의 삶과 감정을 진심으로 ‘존중’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본에 적힌 대사가 현실의 나라면 결코 하지 않을 말일지라도, 그 배역이라면 그 상황에서 반드시 그렇게 말하고 행동했을 것이라는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프로 의식’이다. 그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부끄러움보다, 창조된 세계와 캐릭터에 대한 존중을 더 높은 가치에 두는 것이다.
세계관 창작자 역시 마찬가지다. 당신이 만약 자신의 세계관 속에서 “용의 심장을 먹은 자, 불멸의 힘을 얻으리라!”와 같은 설정을 써 내려가면서 스스로 유치하다고 느낀다면, 독자는 그보다 백배는 더 큰 유치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창작자 본인조차 자신의 세계를 진지하게 믿지 않는데, 어떻게 독자에게 그 세계를 믿어달라고 요구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당신은 ‘다이브’를 통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야 한다. 글을 쓰는 동안, 당신은 21세기 대한민국에 사는 김민수가 아니라, 고대 로마의 역사가가 되어 케사르와 브루투스의 암투를 기록하거나(다이브 1), 혹은 마법이 존재하는 판타지 세계의 음유시인이 되어 영웅의 서사시를 노래해야 한다(다이브 2).
“어떤 집필을 내가 하고 있어. 그러면 그 작중 안으로 쭉 빨려 들어간단 말이죠.”
이 몰입의 깊이가 당신의 글에 진정성을 부여한다.
‘다이브’는 타고나는 재능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습득할 수 있는 기술이다.
다이브의 가장 쉬운 방법은 작품에서 제시하는 설정을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아무래도 힘들다면 다음은 당신의 다이브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몇 가지 구체적인 훈련법이다.
리추얼(Ritual) 만들기: 창작을 시작하기 전, 당신을 현실 세계와 분리하고 창작의 세계로 진입하게 만드는 자신만의 의식을 만들어라. 특정 음악을 듣거나, 특정 차를 마시거나, 작업 공간의 조명을 바꾸는 등의 행위가 도움이 될 수 있다.
역할 부여하기: 글을 쓰는 ‘나’에게 구체적인 페르소나를 부여하라. ‘나는 이 세계의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이다’, ‘나는 이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다’와 같이, 글을 서술하는 화자의 역할을 명확히 설정하면 개인적인 부끄러움에서 벗어나 역할에 몰입하기 쉬워진다.
세계의 감각에 집중하기: 당신의 세계에만 존재하는 감각적인 디테일에 집중하라. 그 세계의 공기는 어떤 냄새가 나는지, 그곳의 음식은 어떤 맛이 나는지, 사람들은 어떤 억양으로 말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묘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세계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손발 오그라듦’은 당신의 아이디어가 유치하다는 신호가 아니라, 당신의 ‘다이브’가 아직 충분히 깊지 않다는 신호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현실의 ‘나’를 잠시 무대 뒤로 퇴장시키고, 당신이 창조한 세계의 법칙과 역할을 온전히 존중하는 ‘프로’로서의 가면을 써라. 당신이 먼저 당신의 세계를 진지하게 대할 때, 비로소 독자들도 기꺼이 그 세계로 함께 뛰어들어 줄 것이다.
창작의 내적 여정을 통해 단단한 아이디어의 핵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그것을 세상에 선보이고 대상자와 소통해야 하는 외적 여정을 시작할 차례다. 이때 많은 창작자나 기획자들이 빠지는 함정은, 자신의 서비스나 세계관이 얼마나 ‘훌륭하고’, ‘똑똑하며’, ‘혁신적인지’를 증명하려 애쓰는 것이다. 하지만 팬덤이라는 독특한 공동체와 깊은 유대를 형성하는 데 있어, 이러한 접근은 종종 역효과를 낳는다.
핵심 명제는 의외로 단순하다. “사람들은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 말 안 들어요. 아는 사람 말 들어.” 이 통찰은 팬덤 비즈니스의 모든 소통 전략을 관통하는 대원칙이다. 우리의 목표는 고객에게 존경받는 ‘선생님’이나 감탄을 자아내는 ‘천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그들이 마치 오랜 친구나 동네 형처럼 느끼는, 편안하고 친숙한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아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나의 세계관이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고 있음을, 서비스의 모든 구석구석을 통해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사용자가 당신의 서비스를 처음 접했을 때, “이 서비스 정말 대단하다!”라는 감탄 이전에, “어? 얘네들, 뭘 좀 아는데?” 혹은 “이 자식들, 공부 좀 했네”라는 동질감 섞인 미소를 짓게 만드는 것. 그것이 모든 성공적인 팬덤 비즈니스의 시작점이다.
왜 이것이 그토록 중요한가? 팬덤은 본질적으로 외부 세계로부터 오해받고 무시당한 경험이 많은, 섬세하고 방어적인 공동체다. 그들은 수많은 기업과 미디어가 자신들의 열정을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상업적으로만 이용하려는 시도를 숱하게 목격해왔다. 이러한 불신의 벽을 허물 수 있는 유일한 열쇠는, 당신이 그들과 같은 세계의 주민이며,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것에 웃고 같은 것에 분노하는 ‘우리 편’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스터디에서 언급된 베니월드의 사례를 생각해보자. 서비스 운영자가 발송 지연 공지를 올리며 팬들에게 미안함을 표했을 때, 팬들은 비난 대신 “감사합니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이는 그들이 무조건적으로 관대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제대로 된 공지 하나조차 받기 위해 기획사와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던 과거의 수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중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소통하려는 서비스의 ‘태도’는, 그 자체로 “우리는 당신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가 된다. 즉, 서비스가 팬들을 ‘아는 사람’처럼 대우했기에, 팬들 역시 서비스를 ‘아는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신뢰를 보내는 것이다.
따라서 당신이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나 콘텐츠를 기획한다면,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은 기능의 혁신성이나 디자인의 화려함이 아니다. 당신은 당신의 대상자인 ‘취향 부족’에 대해 얼마나 깊이 알고 있는가? 그들이 사용하는 은어, 그들이 공유하는 역사, 그들이 분노하는 지점, 그리고 그들이 위로받는 순간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 즉 그들을 ‘알아가는’ 노력이야말로 당신의 서비스를 그저 ‘훌륭한 서비스’를 넘어, 팬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는 ‘우리들의 서비스’로 만드는 유일한 길이다.
‘아는 서비스’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면, 이제 그것을 구현할 가장 구체적이고 강력한 도구는 바로 ‘언어’다. 커뮤니티와의 소통에서 사용하는 모든 단어, 시스템의 모든 명칭은 당신이 그들의 세계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시험지와도 같다. 여기서 우리가 따라야 할 가장 중요한 실전 원칙은 지극히 단순하다. “그들의 세계에 없는 단어는 쓰지 마라.”
많은 기획자들이 저지르는 흔한 실수는, 자신들이 기획한 새로운 기능을 설명하기 위해 멋지고 그럴듯한 ‘새로운 단어’를 발명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팬들에게 공동의 과제를 부여하고 참여를 유도하는 기능을 만들었다고 가정해보자. 기획팀 내부에서는 이 기능을 ‘팬 미션(Fan Mission)’이라고 부르는 것이 직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춰서 질문해야 한다. “과연 ‘미션’이라는 단어가 K팝 팬덤이라는 취향 부족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인가?”
“저한테 물을 게 아니라, 미션이 팬들에게 뭔데요? 그걸 쓰는 K팝 팬덤이 있어요? 라는 거예요. 없는 단어는 쓰면 안 되는 거예요.”
낯선 단어는 친숙함은커녕 이질감만 줄 뿐이다. 그것은 마치 잘 차려진 한정식에 갑자기 나타난 케첩 통과도 같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졌더라도, 전체적인 맥락과 조화를 깨뜨리고 사용자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사용자들은 ‘미션’이라는 단어를 이해하기 위해 추가적인 인지적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최악의 경우 ‘우리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부인이 만든 서비스’라는 인상을 받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릴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해답은 앞서 19장에서 구축한 ‘키워드 라이브러리’의 실전적인 활용에 있다. 당신의 임무는 새로운 단어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팬덤의 데이터베이스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키워드들 중에서 당신의 기능과 가장 잘 맞는 단어를 ‘발견’하고, 그것을 창의적으로 ‘재조합’하는 것이다.
1단계: 팬덤의 언어 수집 (라이브러리 구축)
먼저, 당신의 취향 부족이 사용하는 모든 고유한 용어를 수집하여 키워드 라이브러리를 구축해야 한다. K팝 팬덤의 사례를 들어보자.
티켓팅 관련: 피켓팅(피 튀기는 티켓팅), 취케팅(취소표 티켓팅), 포도알(예매 창의 빈 좌석), 이선좌(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 용병(대리 티켓팅)
팬 활동 관련: 총공(총공격, 스트리밍이나 투표를 집중하는 행위), 숨밍(숨 쉬듯 스트리밍), 공방(공개 방송), 사녹(사전 녹화)
아티스트 관련: 누구(Nugu)(인지도가 낮은 신인), 중소의 기적(중소 기획사 아이돌의 성공), 덕후(팬을 의미하는 일본어 오타쿠의 변형)
2단계: 기능의 본질과 맞는 키워드 매칭
이제 당신이 만들고자 하는 기능의 ‘본질’과 가장 유사한 의미를 가진 키워드를 라이브러리에서 찾아낸다. 만약 당신의 기능이 ‘팬들이 힘을 합쳐 특정 목표(예: 음원 차트 1위)를 달성하도록 돕는 것’이라면, ‘미션’이라는 막연한 단어 대신 ‘총공’이라는, 그들에게 이미 익숙하고 심장이 뛰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고려해볼 수 있다. 기능의 이름을 ‘오늘의 총공 목표’라고 짓는 순간, 팬들은 별도의 설명 없이도 이 기능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즉각적으로 이해하고 동참할 것이다.
3단계: 키워드의 창의적 재조합
때로는 기존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넘어, 여러 키워드를 재조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티켓팅 예매 서비스 ‘포도알’은 팬들이 좌석을 부르는 은어인 ‘포도알’을 그대로 서비스 이름으로 가져와 엄청난 공감대를 형성했다. 만약 당신의 서비스가 팬덤 내에서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를 인증해 주는 시스템이라면, 단순히 ‘전문가 인증’이라고 부르는 대신, 티켓팅을 도와주는 신뢰의 상징인 ‘용병’과, 팬덤 내 존경의 의미를 담은 ‘총대’(총대를 메는 사람)라는 단어를 결합하여 ‘공식 총대 용병’과 같은 새로운 직책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이 이름은 낯설지만, 그 구성 요소가 모두 익숙하기에 팬들은 즉시 그 의미와 가치를 유추할 수 있다.
4단계: 글로벌 확장을 위한 음차(音借) 활용
글로벌 팬덤을 대상으로 할 때는, 번역할 수 없는 고유한 뉘앙스를 가진 한국어 키워드를 알파벳으로 그대로 ‘음차’하여 사용하는 것이 매우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해외 팬들이 ‘누구(Nugu)’라는 단어를 ‘인지도가 낮지만 내가 발굴하고 싶은 아이돌’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그 단어가 가진 독특한 문화적 맥락 자체를 소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총공(Chong-gong)’, ‘피켓팅(Piketing)’처럼 한국어 발음을 그대로 알파벳으로 표기하고 그 의미를 설명해주는 것은, 그들에게 K팝 팬덤의 ‘진짜’ 문화를 배우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며, 이는 단순한 번역보다 훨씬 더 강력한 소속감을 부여한다.
커뮤니티와의 소통은 창작자의 세계를 그들에게 강요하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세계 속으로 깊이 들어가,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그 언어로 말을 거는 겸손한 과정이다. 당신의 키워드 라이브러리는 그들의 세계를 탐험하기 위한 가장 정교한 사전이다. 새로운 단어를 발명하려는 유혹을 버리고, 이미 존재하는 풍부한 언어의 바다에서 당신의 기능에 가장 잘 맞는 진주를 찾아내는 데 집중하라. 그럴 때 비로소 당신의 서비스는 ‘아는 서비스’를 넘어, 팬들의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내 편’으로 거듭날 것이다.
‘아는 서비스’가 되기 위해 팬덤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소통의 기술적 측면이라면, 이제 우리는 그보다 한 단계 더 깊은, 감정적이고 심리적인 차원의 소통법을 탐구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팬덤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행위, ‘알아봐 줌’의 미학이다.
‘알아봐 줌’이란, 단순히 팬들이 사용하는 용어를 아는 것을 넘어, 그들만이 공유하는 내밀한 역사, 문화, 그리고 ‘밈(Meme)’을 이해하고 있음을 서비스의 디테일을 통해 섬세하게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마치 오랜 친구만이 알아챌 수 있는 눈빛이나 농담처럼, 당신과 팬덤 사이에 비밀스러운 유대감을 형성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팬덤은 “자신이 소외되는 것에 대한” 깊은 불안감을 가진 집단이며, 그들의 지식 체계를 이해하고 인정해 주는 것으로 강한 ‘위로’를 받는다.
이 ‘알아봐 줌’의 미학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다.
1. 시각적 암호: 컬러 코드를 통한 소속감의 증명
인간은 시각적 동물이며, 색상은 가장 즉각적이고 본능적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기호다. 모든 성공적인 팬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고유한 ‘컬러 코드’를 가지고 있다. 과거 H.O.T.의 흰색, god의 하늘색 풍선처럼, 특정 색상은 특정 팬덤의 소속임을 증명하는 신성한 징표와도 같다.
이 원리를 서비스 디자인에 적용하는 것은 매우 강력한 소통 전략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아이돌 그룹을 위한 서비스를 기획하면서, 한국의 전통미를 보여주기 위해 ‘단청’의 오방색을 메인 컬러로 사용하는 것은 ‘8초짜리 아이디어’일 수 있다.
“한국 사람도 잘 모르고 서양 사람도 잘 모르는 문제가 터진단 말이에요. (…) 쟤네들이 보고 반가울 수 있는 기호를 써야만 된다.”
대신, 그 아이돌 그룹이 발표했던 가장 상징적인 앨범의 아트워크에 사용된 컬러 조합을 분석하고, 그 색상들을 서비스의 UI 디자인에 은근하게 녹여내는 것이다. BTS의 앨범 《Butter》의 상징인 선명한 노란색과 강렬한 주황색이 로딩 화면이나 버튼 디자인에 함께 사용되었다고 상상해보자. 일반 사용자는 그저 예쁜 디자인이라고 생각하고 지나칠 것이다. 하지만 BTS의 팬덤 ‘아미(ARMY)’는 그 색 조합을 보는 순간, 즉각적으로 그것이 《Butter》를 향한 오마주임을 알아차린다.
“이 색깔 이 주황색과 노란색이 같이 있잖아요. 반드시 알아봐. 반드시. 왜? 많이 봤거든.”
이 ‘알아봄’의 순간, 서비스는 단순한 앱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내 편’으로 인식된다. 팬들은 이 시각적 암호를 발견한 기쁨을 SNS에 공유할 것이고(“이 앱 제작자, 뭘 좀 아는데?”), 서비스에 대한 강력한 우호 관계와 바이럴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마치 캐릭터의 색상 조합만 보고도 어떤 캐릭터인지 알아맞히는 놀이처럼, 컬러 코드는 팬덤에게만 해독 가능한 즐거운 ‘이스터 에그(Easter Egg)’가 된다.
2. 역사적 맥락의 이해: ‘참외로 맞기’라는 내부 농담
‘알아봐 줌’의 가장 높은 경지는, 시각적 상징을 넘어 팬덤만이 공유하는 내부 농담(Inside Joke)과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외부인은 결코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웃음과 눈물의 코드를 건드리는 섬세한 작업이다.
스터디에서 언급된 ‘참외로 맞기’라는 밈이 완벽한 예시다. 아이돌 그룹 ‘배너(VANNER)’의 멤버 혜성이가 라이브 방송 도중 카메라를 향해 참외를 휘두르는 장난을 친 사소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팬덤 내부에서만 유머러스하게 회자되는 그들만의 역사다. 베니월드 서비스 운영자가 팬들의 불만에 대해 농담조로 “저희가 잘못하면 참외로 맞긴 하던데요”라고 응답했을 때, 팬덤은 미소로 화답했다.
이 한 문장이 강력한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운영자가 단순히 팬덤을 관리하는 ‘외부인’이 아니라, 라이브- 방송의 사소한 에피소드까지 챙겨보는 ‘찐팬’임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둘째, “내가 이 사실을 안다라는 걸 전달”함으로써, 서비스와 팬덤 사이에 존재했던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고 강력한 동질감을 형성했다.
“같은 단어를 같은 해석을 하는 사람은 커뮤니티”이며, 이 순간 서비스는 팬덤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처럼 팬덤이 강한 위로와 소속감을 느끼는 순간은, 화려한 기능이나 막대한 보상을 받을 때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알아봐 줌’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작은 역사, 나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밀한 감정을 누군가가 알아봐 줄 때, 우리는 깊은 정서적 연결과 신뢰를 느끼게 된다.
따라서 당신의 임무는 단순히 서비스를 만드는 것을 넘어, 당신의 취향 부족에 대한 깊이 있는 ‘인류학자’가 되는 것이다. 그들의 역사를 공부하고, 그들의 언어를 배우며, 그들의 농담에 함께 웃어라. 그리고 당신이 그들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를, 서비스 곳곳에 애정 어린 ‘이스터 에그’로 심어두어라. 그 작은 디테일이야말로 당신의 세계를 차가운 시스템이 아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 줄 가장 위대한 마법이다.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K-콘텐츠 창작자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유혹 중 하나는 바로 ‘한국적인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명제 아래, 우리의 고유한 전통문화를 해외에 알려야 한다는 일종의 문화적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 결과, 많은 콘텐츠들이 외국인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한복, 단청, 거북선, 해태와 같은 전통적인 시각 기호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전략을 택했다.
이러한 접근은 K-콘텐츠가 아직 변방의 문화였던 시절에는 유효했다.
“금발머리 외국인이 우리 걸 알아봐 준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갖고 눈물을 흘렸던” 시절에는, 우리의 낯선 전통 문화 자체가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차별점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K-콘텐츠가 글로벌 문화의 중심으로 우뚝 선 지금, 이러한 관성은 오히려 우리의 발목을 잡는 ‘전통의 함정’이 될 수 있다. 글로벌 팬덤이 오늘날 K팝과 K-콘텐츠에서 기대하는 것은 더 이상 고색창연한 ‘전통’이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세계에서 가장 세련되고 감각적인 ‘최신'의 경험이다.
“우리가 보그(Vogue) 잡지를 볼 때 이탈리아 트레디셔널을 궁금해하냐고. 아니잖아. (…) 최신이 궁금한 거예요.”
우리는 밀라노 패션위크에서 최신 트렌드를 보고 싶어 하지, 이탈리아 민속 의상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K팝은 이제 바로 그 ‘보그’와 같은 위치에 도달했다. 전 세계의 젊은이들은 K팝을 ‘한국의 전통 음악’이라서 듣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가장 힙(Hip)하고 멋진 음악’이기 때문에 듣는다.
따라서 우리가 글로벌 팬덤과 소통하기 위해 ‘단청’의 컬러 코드를 사용하는 것은, 마치 최신 패션쇼에 갑자기 전통 한복을 들고나오는 것처럼 어색하고 시대착오적인 접근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무슨 관광공사도 아닌데”라는 자조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우리의 목표는 한국 문화를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최고의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통’이라는 강력한 자산을 완전히 버려야만 하는가? 그렇지 않다. 핵심은 전통을 ‘박제된 유물’로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새로운 미학을 창조하는 데 있다.
1. 재해석의 원칙: 본질은 취하고, 형식은 바꾼다.
전통 요소의 시각적 형태를 그대로 가져오는 대신, 그 안에 담긴 철학이나 정신, 즉 ‘본질’을 현대적인 디자인 언어로 번역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단청의 화려하고 강렬한 ‘색감 대비’라는 본질은 유지하되, 그 형태는 BTS의 앨범 아트워크처럼 미니멀하고 그래픽적인 디자인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2. 융합의 미학: 이질적인 것과 결합하라.
전통 요소를 가장 힙하게 만드는 방법은, 그것을 가장 이질적인 현대적 요소와 과감하게 결합시키는 것이다. 《케데온》 속 ‘민화 속 까치’ 캐릭터가 예시다. 이 캐릭터는 전통 민화라는 고전적인 소스를 가져왔지만, 그것을 현대적인 캐릭터 디자인과 3D 애니메이션 기술과 결합함으로써 누구도 본 적 없는 독창적이고 ‘최신’의 매력을 창조해냈다.
3. ‘힙’의 주도권을 잡아라.
K-콘텐츠는 이제 더 이상 서구의 트렌드를 따라가는 입장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새로운 ‘힙’을 정의하고 주도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과거에는 금기시되었던, ‘분식집 초록색 멜라민 그릇’이나 ‘용달차의 파란색 방수포’ 같은 지극히 한국적인 B급 감성이, 이제는 오히려 가장 독창적이고 ‘힙’한 디자인 소스로 재발견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영광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현실 속에서 새로운 미학을 발견하고 그것을 자신감 있게 제시하는 태도다.
글로벌 시장에서 ‘K’라는 수식어는 이제 ‘전통’이 아닌 ‘최신’과 동의어다. 당신의 세계관이 진정으로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기 원한다면, ‘가장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낡은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신, 지금 이 순간 ‘가장 멋지고, 가장 세련되며, 가장 새로운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그것을 당신의 세계관 속에 자신감 있게 구현하라. 그것이 바로 K-콘텐-츠가 가진 진정한 힘이자, 미래를 향한 우리의 가장 확실한 전략이다.
김동은WhtDrgon@MEJEwor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