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의 메시지는 창작자의 선언이 아니라, 대상자의 욕망을 출발점으로 삼아 설계된 하나의 거대한 경험 시스템이다. 이 장에서는 대상자의 욕망을 식별하고, 그 욕망의 작동 원리를 해부하며, 최종적으로 그것을 거부할 수 없는 세계의 법칙과 메시지로 변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설계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세계 스토리텔링'으로서 세계관의 효용을 보여준다. 본래 사람은 주변에서 하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흉내낸다. 세계는 그런면에서 가상의 질서를 학습시키기에 적합한 도구인 것이다.
모든 세계관 설계는 보이지 않는 두 개의 극점(Pole) 사이에서 펼쳐지는 정교한 항해술과 같다. 한쪽 극점에는 창작자가 궁극적으로 탐구하고 전달하고 싶은 가치, 즉 ‘목적지’로서의 제작자 욕망이 존재한다. 다른 한쪽 극점에는 사용자가 이미 가지고 있는 익숙한 갈망과 쾌감의 원리, 즉 ‘출발지’로서의 대상자 욕망이 존재한다. 왜 어떤 세계관은 깊은 울림을 주며 성공하고, 어떤 세계관은 자기만족적인 독백으로 끝나버리는가? 그 차이는 이 두 극점의 존재를 명확히 인식하고, 그 사이를 잇는 항로를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했는지에 달려 있다.
제작자 욕망은 세계관의 정체성이자 방향성을 결정하는 북극성이다. 이것은 창작자가 자신의 세계를 통해 궁극적으로 던지고 싶은 ‘왜?’라는 질문이다.
“인간은 운명에 저항할 수 있는가?”,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 “시스템의 부조리에 어떻게 맞서야 하는가?”와 같은 철학적 주제 의식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욕망이 부재한 세계관은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배와 같다. 아무리 화려한 설정과 매력적인 캐릭터가 있어도, 모든 요소를 하나로 꿰뚫는 구심점이 없기에 결국 파편적인 아이디어의 나열에 그치고 만다. 제작자 욕망은 세계관에 깊이와 일관성을 부여하는 영혼과도 같다.
하지만 이 극점에만 치우쳤을 때의 위험성은 명확하다. 제작자가 자신의 욕망, 즉 메시지를 대상자의 수용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전달하려 할 때, 세계관은 ‘작품’이 아닌 ‘훈계’나 ‘설교’가 되어버린다. 이는 마치 아무런 단서 없이 바다 한가운데에 던져진, 자물쇠로 잠긴 보물상자와 같다. 그 안에는 위대한 진리가 담겨 있을지 모르나, 대상자는 상자를 열 방법도, 열어야 할 이유도 느끼지 못하고 외면하게 된다.
대상자 욕망은 사용자가 이미 이해하고 있으며, 즉각적인 쾌감을 느끼는 익숙한 서사와 장치의 총체다.
‘주인공이 강해지는 것’, ‘악당을 물리치는 것’, ‘사랑을 쟁취하는 것’과 같은 보편적인 서사 구조, 그리고 우리가 앞서 다룬 수많은 ‘트롭스(Trope)’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것은 사용자가 낯선 세계로의 항해를 시작하는 안전하고 친숙한 출발 항구의 역할을 한다.
이 출발지를 무시한 세계관은 대상자에게 지적인 오만함으로 비칠 수 있다. 아무런 익숙한 이정표 없이 완전히 새로운 규칙과 개념만으로 가득 찬 세계는, 사용자가 몰입의 첫 단계를 밟는 것 자체를 어렵게 만든다. 대상자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은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말을 걸고, 그들이 원하는 재미를 제공함으로써, 낯선 세계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허무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 극점에만 머무르는 것 역시 창작의 실패다. 오직 대상자의 익숙한 욕망만을 충족시키는 데 급급한 세계관은, 결국 어디선가 본 듯한 클리셰의 안전한 재탕에 머무르고 만다. 이는 마치 볼거리와 기념품은 많지만, 그곳만의 독특한 영혼이나 깊이는 없는 유명 관광지와도 같다. 순간적인 재미는 줄 수 있으나, 결코 잊을 수 없는 깊은 경험을 선사하지는 못한다.
성공적인 세계관은 이 두 극점 사이의 광대한 바다를 건너는 정교한 항해 지도를 설계하는 것과 같다.
이 항해는 반드시 대상자가 편안함을 느끼는 ‘출발지(대상자 욕망)’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여정의 최종 목적지는 창작자가 탐험하고자 하는 미지의 섬, 즉 ‘목적지(제작자 욕망)’를 향해 있어야 한다.
제작자 욕망 (목적지): “진정한 힘은 무한한 성장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데서 온다.”
대상자 욕망 (출발지): “주인공이 강력한 마법을 배워서 무한히 강해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 두 극점을 연결하기 위해, 창작자는 다음과 같은 세계관 ‘법칙’을 설계할 수 있다.
“이 세계의 마법은 사용할 때마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기억을 대가로 지불해야만 한다.”
이 세계관에서 주인공은 처음에는 ‘더 강해지고 싶다’는 대상자의 익숙한 욕망을 따라 마법을 연마한다. 독자는 이 성장 서사에서 초기적인 쾌감을 느낀다. 하지만 주인공이 강해질수록, 그는 점차 가족의 얼굴, 친구와의 우정, 사랑의 기억을 잃어가는 끔찍한 대가와 마주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과 독자는 자연스럽게 제작자가 의도했던 철학적 질문, 즉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무한한 힘이 과연 가치 있는가?”라는 ‘목적지’에 도달하게 된다. 이처럼 세계관의 시스템 그 자체가, 대상자의 욕망을 제작자의 욕망으로 변환시키는 정교한 항해의 경로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관 설계의 첫걸음은, 당신이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만큼이나,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대상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정확히 아는 것이다.
출발지로서의 ‘대상자 욕망’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대상자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해야 한다.
전통적인 마케팅과 콘텐츠 기획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주로 인구통계학적 데이터에서 찾아왔다. ‘서울에 거주하는 20대 여성’, ‘미국의 40대 남성’과 같이, 대상자를 나이, 성별, 거주지, 소득 수준 등 측정 가능한 외부 조건으로 분류하고 정의하는 방식이다. 이 모델은 매스미디어 시대에 불특정 다수를 효율적으로 공략하는 데 있어 유용한 도구였다.
하지만 모든 것이 파편화되고 개인화된 오늘날, 이러한 인구통계학적 분류는 점차 그 효용을 잃어가고 있다. 넷플릭스가 초기에 방대한 사용자 데이터를 분석하고 내린 결론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은 사용자의 국적, 나이, 성별과 같은 데이터가 그들의 실제 콘텐츠 시청 패턴을 예측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왜냐하면 브라질에 사는 40대 남성 엔지니어와 서울에 사는 10대 여고생은 인구통계학적으로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지만, 둘 다 ‘음울하고 철학적인 사이버펑크 애니메이션’을 밤새워 시청하는 열렬한 팬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에게 대상자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요구한다. 세계관 설계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대상자는 물리적, 사회적 조건으로 묶인 집단이 아니다. 그들은 국경과 세대를 초월하여, 특정 문화와 콘텐츠를 공유하며 형성된 가상의 공동체, 즉 ‘취향 부족(Taste Tribe)’이다.
‘취향 부족’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핵심 요소로 정의될 수 있다.
1. 공유된 콘텐츠: 모든 취향 부족은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성경’과도 같은 핵심 콘텐츠를 가지고 있다. 이는 특정 장르(예: 로맨스 판타지), 특정 프랜차이즈(예: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혹은 특정 창작자의 작품들(예: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일 수 있다. 이 공유된 콘텐츠는 부족원들에게 공통의 추억과 지식 기반을 제공한다.
2. 공유된 언어: 모든 부족이 고유한 언어를 가지듯, 취향 부족 역시 그들만이 이해하고 사용하는 독특한 어휘와 문법, 즉 ‘트롭스(Trope)’와 ‘밈(Meme)’을 가지고 있다. ‘소울라이크 게임’ 부족에게 ‘화톳불’은 단순한 모닥불이 아니라 ‘안식과 부활’을 의미하는 신성한 장소다. 이 공유된 언어는 부족원들 사이에 강력한 유대감과 소속감을 형성하며, 외부인과의 경계를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3. 공유된 욕망 패턴: 취향 부족은 특정 종류의 서사적 쾌감과 감정적 경험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어, ‘이세계물’ 독자 부족은 평범한 주인공이 압도적인 힘을 얻어 문제를 해결하는 ‘대리만족’과 ‘성장’의 욕망에 강하게 반응한다. 반면, ‘하드보일드 누아르’ 부족은 도덕적으로 모호한 주인공이 부패한 세계 속에서 고뇌하는 ‘비극적 리얼리즘’과 ‘염세주의’에서 미학적 쾌감을 느낀다.
세계관 설계에서 대상자를 식별한다는 것은, “20대 여성을 타겟으로 하자”고 막연하게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해리 포터》를 읽으며 자랐고, ‘기숙사 배정’과 ‘비밀 친구’라는 트롭스에 강하게 반응하며, ‘평범한 내가 사실은 특별한 존재’라는 서사를 통해 소속감과 성장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싶어 하는 취향 부족을 우리의 첫 번째 주민으로 초대하자”고 구체적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이처럼 대상자를 ‘취향 부족’으로 재정의할 때, 비로소 우리는 그들의 진짜 욕망에 접근할 수 있는 열쇠를 얻게 된다. 우리는 더 이상 안갯속을 헤매는 대신, 그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문화적 지도와 언어를 바탕으로, 그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대상자를 ‘취향 부족’으로 정의했다면, 다음 단계는 그 부족의 문화적 DNA, 즉 그들을 움직이는 집단적인 욕망의 구조를 구체적으로 해독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인류학자가 미지의 부족 사회에 들어가 그들의 언어와 의식, 신화를 연구하여 핵심 가치관을 파악하는 과정과도 같다. 우리는 이 분석 과정을 통해 막연한 추측을 넘어, 데이터에 기반한 정교한 ‘팬덤 지도’를 그릴 수 있다. 이 지도는 당신의 세계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나침반이 될 것이다.
취향 부족의 욕망 DNA를 해독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단계로 구성된다.
모든 취향 부족은 자신들의 쾌감과 불쾌감을 표현하는 고유한 ‘감정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이 언어는 종종 비공식적인 은어나 신조어의 형태로 나타나며, 부족의 욕망 구조를 파악하는 가장 직접적인 단서가 된다. 우리의 첫 번째 임무는 고고학자가 유물을 발굴하듯, 이 욕망의 키워드들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분석 대상: 해당 취향 부족이 주로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의 서브레딧, X(트위터)의 관련 해시태그, 팬 카페, 관련 포럼 등)의 게시물과 댓글.
분석 방법: 특정 작품이나 주제에 대한 리뷰, 감상평, 논쟁 글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감정 표현을 수집한다. 이때 긍정적인 감정(쾌감)과 부정적인 감정(불쾌감)을 나타내는 키워드를 모두 수집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 웹소설 독자의 예시.
쾌감 키워드: ‘사이다’(답답한 상황이 통쾌하게 해결될 때), ‘뽕맛’(주인공의 강력함이나 위상이 극적으로 드러날 때), ‘국뽕’(자국의 위상이 높아질 때), ‘티키타카’(등장인물 간의 재치 있는 대화).
불쾌감 키워드: ‘고구마’(주인공이 계속해서 답답한 상황에 처할 때), ‘발암’(주인공의 행동이 어리석어 화가 날 때), ‘역하렘’(여주인공을 두고 여러 남주인공이 경쟁하는 구도에 대한 반감).
이 키워드 분석을 통해, 우리는 이 부족이 ‘빠르고 통쾌한 문제 해결(사이다)’과 ‘주인공의 압도적인 우월성(뽕맛)’에서 강한 쾌감을 느끼며, ‘지체되는 갈등(고구마)’과 ‘주인공의 비합리적인 행동(발암)’에 극도의 불쾌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그들의 핵심 욕망이 ‘지배 욕구’와 ‘정의 욕구(빠른 응징)’에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욕망의 키워드가 감정의 표면을 보여준다면, ‘트롭스(Trope)’는 그 감정을 유발하는 심층적인 서사 구조를 드러낸다. 특정 취향 부족이 반복적으로 소비하고 열광하는 콘텐츠들에는 반드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핵심 트롭스들이 존재한다. 이 트롭스들의 빈도를 조사하는 것은, 부족의 집단 무의식에 각인된 ‘성공 공식’을 역으로 추적하는 과정이다.
분석 대상: 해당 취향 부족 내에서 ‘명작’ 혹은 ‘필독서’로 꼽히는 상위 5~10개의 핵심 콘텐츠 (소설, 영화, 게임 등).
분석 방법: 각 콘텐츠에 사용된 주요 트롭스들을 TV Tropes와 같은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여 리스트업하고, 모든 콘텐츠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트롭스들의 빈도를 계산한다.
이세계 전생물 독자 부족의 경우의 예시.
높은 빈도의 트롭스: ‘먼치킨 주인공(Overpowered Protagonist)’, ‘하렘(Harem)’, ‘게임 시스템(Game Mechanics as Magic)’, ‘비밀스러운 조력자(Mysterious Mentor)’, ‘노예 해방(Slave Liberation)’.
낮은 빈도의 트롭스: ‘비극적 영웅(Tragic Hero)’,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 ‘회색의 도덕성(Grey-and-Gray Morality)’.
이 트롭스 빈도 조사를 통해, 우리는 이 부족이 주인공의 ‘압도적인 힘(먼치킨)’과 ‘다수의 이성에게 인정받음(하렘)’, 그리고 ‘명확한 규칙에 따른 성장(게임 시스템)’에서 안정감과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주인공이 패배하거나 도덕적으로 고뇌하는 복잡한 서사는 선호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이 부족의 핵심 욕망이 현실의 좌절감을 보상받고 싶은 ‘지배 욕구’와 명확한 인과응보를 보고 싶은 ‘질서 욕구’에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 단계는 커뮤니티 내에서 가장 격렬하고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논쟁, 즉 ‘전쟁’의 주제를 파악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과 감정을 쏟아부어 싸우는 지점이야말로, 그들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핵심 가치관, 즉 부족의 ‘신념’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가장 명확한 지표다.
분석 대상: 팬 커뮤니티 내에서 ‘논란’, ‘호불호’, ‘vs’ 등의 키워드로 검색되는 논쟁적인 게시물들.
분석 방법: 논쟁의 핵심 쟁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각 의견의 근거가 되는 가치관이 무엇인지를 분석한다.
핵심 논쟁 주제: “아이돌의 비밀 연애는 팬에 대한 기만인가, 아니면 사생활 존중의 영역인가?”
가치관 분석: ‘기만’이라고 주장하는 측은 아이돌을 ‘팬과의 유사 연애 관계를 수행하는 캐릭터’로 보고 있으며, ‘소속(독점) 욕구’가 매우 강하다. 반면, ‘사생활 존중’을 주장하는 측은 아이돌을 ‘독립된 인격체’로 보고 있으며,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 갈등 지점 파악을 통해, 우리는 이 부족이 ‘아이돌의 캐릭터성’과 ‘인간성’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세계관은 이 민감한 경계선을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거나, 혹은 이 갈등 자체를 이야기의 핵심 주제로 삼는 전략을 고려해볼 수 있다.
이 세 단계의 분석—키워드(감정), 트롭스(서사), 갈등(가치관)—를 종합할 때, 비로소 우리는 한 취향 부족의 입체적인 ‘팬덤 지도’를 완성할 수 있다. 이 지도는 당신의 세계관이 어디에 닻을 내려야 하고, 어떤 항로를 따라가야 하며, 어떤 암초를 피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가장 정교하고 신뢰할 수 있는 안내자가 될 것이다.
취향 부족의 욕망 지도를 손에 넣었다고 해서, 우리의 임무가 단순히 그들의 요구를 충실히 재현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대상자의 익숙한 욕망만을 반복하는 것은 그들에게 순간적인 안정감은 줄 수 있을지언정, 결코 잊을 수 없는 강렬한 경험이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지는 못한다. 진정한 세계관 창작자는 대상자의 욕망을 출발점으로 삼되, 그들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로 이끄는 안내자이자 영웅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우리는 흔히 창작자를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고독한 신(神)으로 상상하지만, 보다 정확한 비유는 ‘신들의 물건을 인간에게 가져다주는 영웅’이다. 그리스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이 직접 불을 창조하지 않았다. 그는 신들만이 향유하던 ‘불’이라는 낯선 기술을 훔쳐 와, 인간들이 사용하던 ‘날고기’라는 익숙한 음식 문화와 결합시켰다. 이 결합을 통해 인류는 ‘요리’라는 새로운 차원의 문명을 열게 되었다.
세계관 창작자의 역할도 이와 같다.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욕망을 발명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 우리가 속한 다른 세계—그것은 다른 장르, 다른 문화, 혹은 당신만이 가진 전문 지식의 세계일 수 있다—에서, 대상 취향 부족에게는 아직 낯선 ‘새로운 요소(신들의 물건)’를 가져와, 그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익숙한 욕망(인간의 문화)’과 결합시키는 것이다. 이 이질적인 두 요소의 창조적인 충돌과 융합이야말로, 독창적인 세계관을 탄생시키는 연금술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이 ‘익숙함’과 ‘낯섦’의 배합 비율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가? 이 비율이야말로 당신의 세계관이 시장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어떤 평가를 받을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전략적 변수다. 우리는 이 배합 비율에 따라 달라지는 ‘조합의 충격도’를 네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분석해볼 수 있다.
1. 안전 구역 (Safe Zone): 90% 익숙함 + 10% 새로움
이 구역의 세계관은 대상 취향 부족이 선호하는 장르의 문법과 트롭스를 거의 그대로 따른다. 새로움은 캐릭터의 이름이나 지명, 혹은 아주 사소한 설정의 변주에 그친다. 이는 독자에게 마치 익숙한 고향 집에 온 듯한 편안함과 안정감을 제공한다. 실패의 위험이 가장 적고 예측 가능한 재미를 보장하기 때문에, 웹소설 플랫폼의 양산형 장르 소설들이 주로 이 전략을 택한다. 하지만 독창성이 부족하여, 수많은 유사 작품 속에서 쉽게 잊힐 위험 또한 가장 크다.
2. 흥미 구역 (Interest Zone): 70% 익숙함 + 30% 새로움
이 구역은 대부분의 성공적인 상업 작품이 위치하는 최적점(Sweet Spot)이다. 세계관은 여전히 익숙한 장르의 틀을 기반으로 하지만, 그 안에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30%의 새로운 요소를 ‘신들의 물건’처럼 가져와 결합시킨다. 앞서 언급했던 게임 《P의 거짓》이 완벽한 예시다. ‘소울라이크’라는 70%의 익숙한 게임 문법에, ‘피노키오 동화’라는 30%의 낯선 미학을 결합함으로써, 기존 팬들에게는 신선한 자극을, 새로운 유저들에게는 흥미로운 진입점을 동시에 제공했다. 이 구역은 대중성과 독창성 사이의 절묘한 균형을 통해 가장 폭넓은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전략적 목표 지점이다.
3. 도전 구역 (Challenge Zone): 50% 익숙함 + 50% 새로움
이 구역에 들어서는 순간, 세계관은 단순히 장르의 변주를 넘어, 기존 장르의 핵심 규칙 자체를 파괴하기 시작한다. 익숙한 요소와 낯선 요소가 동등한 비율로 충돌하며, 독자에게 ‘이것을 과연 기존의 장르로 분류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가족 드라마라는 익숙한 틀 위에 멀티버스 SF, B급 코미디, 쿵푸 액션을 동등한 비중으로 결합하여 전에 없던 경험을 선사했다. 이 구역의 작품은 대중에게는 다소 난해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새로운 자극에 목마른 마니아층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으며 ‘컬트 클래식’이 될 잠재력을 가진다.
4. 위험 구역 (Risk Zone): 30% 익숙함 + 70% 새로움
이 구역은 상업적 성공보다 예술적 실험을 우선시하는 전위적인 창작의 영역이다. 세계관은 너무나 낯선 규칙과 미학으로 가득 차 있어, 대부분의 독자는 그 의미를 이해하는 데 실패하고 거부감을 느낄 위험이 크다. 하지만 극소수의 선구적인 작품은 이 위험을 감수하고, 마침내 성공할 경우 기존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장르의 시초가 되기도 한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영화들이나, 초창기 사이버펑크 소설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창작자로서 당신의 역할은 당신이 탐험한 수많은 ‘다른 세계’ 속에서, 당신의 ‘취향 부족’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매력적인 ‘신들의 물건’을 발견하고 가져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낯선 선물을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익숙한 음식과 함께 내놓을 때, 그 배합의 비율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지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당신은 안전한 만족감을 줄 것인가, 흥미로운 자극을 줄 것인가, 아니면 위험한 도전을 감수할 것인가? 이 전략적 선택이야말로 당신의 세계관의 운명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결단이다.
세계관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캐릭터들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 즉 ‘욕망’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져 있다. 창작자는 마치 엔지니어가 다양한 종류의 엔진과 연료의 특성을 이해하고 조합하여 하나의 효율적인 기계를 만들듯, 다양한 욕망의 종류와 그 특성을 이해하고 전략적으로 배치함으로써 살아 움직이는 세계를 설계할 수 있다.
우리는 세계관 설계에 직접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인간의 복잡한 욕망을 크게 세 가지 범주와 아홉 가지 하위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는 당신의 세계가 어떤 종류의 동력원으로 움직이는지를 명확히 정의하는 데 사용되는 기본적인 설계도다.
1. 원초적 욕구 (Primal Desires): 생존을 위한 본능의 엔진
이 욕구들은 가장 근본적이고 동물적인 동력원으로, 즉각적이고 강력한 행동을 유발한다.
생존 (Survival): 신체적 안전과 건강을 유지하려는 욕구. 굶주림, 갈증, 질병, 외부의 물리적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모든 행동의 근원이다.
번식 (Reproduction):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고 종족을 이어가려는 욕구. 성적 매력, 로맨스, 가족 형성 및 보호와 관련된 모든 서사의 핵심 엔진이다.
영역 (Territory): 자신만의 공간과 자원을 확보하고 지키려는 욕구. 소유, 점유, 방어, 확장에 대한 갈망으로 나타나며, 전쟁과 경쟁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된다.
2. 사회적 욕구 (Social Desires): 관계를 위한 감정의 엔진
이 욕구들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가치를 인정받으려는 동력원이다.
소속 (Belonging): 집단에 받아들여지고 동질감을 느끼려는 욕구. 인정, 환영, 포함의 경험을 추구하며, 길드, 국가, 팬덤 등 모든 커뮤니티 형성의 기반이 된다.
지배 (Dominance): 타인이나 환경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통제하려는 욕구. 리더십, 권력, 명예, 승리에 대한 갈망으로 나타난다.
정의 (Justice): 세상이 공정하고 올바른 질서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욕구. 불의에 대한 분노, 복수, 약자 보호, 규칙 수호와 같은 행동을 이끌어낸다.
미학 (Aesthetics): 아름다움과 질서를 추구하고 추함을 피하려는 욕구. 예술 창작, 도시 건설, 패션, 그리고 완벽함에 대한 집착 등으로 발현된다.
3. 지적 욕구 (Intellectual Desires): 성장을 위한 정신의 엔진
이 욕구들은 미지의 것을 탐험하고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려는, 가장 고차원적인 동력원이다.
탐구 (Exploration): 모르는 것을 알고 싶고,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려는 욕구. 미스터리, 모험, 과학 연구, 진실 추구 서사의 핵심 동력이다.
창조 (Creation):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외부 세계에 표현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는 욕구. 예술, 발명, 그리고 캐릭터의 내적 성장과 자기 극복의 과정에서 나타난다.
중요한 점은, 이 모든 욕망이 동일한 힘과 특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창작자는 각 욕망의 ‘강도’와 ‘지속성’을 이해하고, 서사의 리듬에 맞춰 전략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폭발형 욕망 (Explosive Desires): 강하고 즉각적이지만, 짧게 지속된다. 원초적 욕구(생존, 번식)와 일부 사회적 욕구(복수, 정복)가 여기에 해당한다. 굶주린 늑대에게 쫓기는 긴박감이나, 원수를 눈앞에 둔 복수심은 독자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 강력한 기폭제다. 따라서 이 욕망들은 이야기의 초반부에 긴장감을 조성하거나, 클라이맥스에서 모든 감정을 폭발시키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하지만 이 욕망만으로는 긴 서사를 이끌어가기 어렵다. 복수가 끝나거나 안전이 확보되면 동력이 급격히 사라지기 때문이다.
지속형 욕망 (Sustainable Desires): 강도는 약하지만, 꾸준하고 장기적인 동기를 부여한다. 사회적 욕구(소속, 성장)와 지적 욕구(탐구, 창조)가 주로 여기에 해당한다. ‘길드에서 최고의 장인이 되고 싶다’는 성장 욕구나, ‘고대 문명의 비밀을 밝혀내고 싶다’는 탐구 욕망은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사용자가 수백 시간 동안 게임을 플레이하게 만들고, 독자가 수십 권의 시리즈를 끝까지 읽게 만드는 꾸준한 동력원이 된다. 이 욕망들은 세계관의 중심 서사를 이끌어가는 척추와도 같다.
변환형 욕망 (Transformative Desires): 상황과 관점에 따라 다른 욕망으로 쉽게 전이되는, 가장 불안정하고 드라마틱한 욕망이다. ‘사랑(번식/소속)’이 거부당했을 때 ‘소유욕(영역)’이나 ‘파괴적인 집착’으로 변질되거나, ‘정의’를 추구하던 열망이 개인적인 상처와 결합하여 비뚤어진 ‘복수심’으로 변환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변환형 욕망은 캐릭터의 타락이나 성장과 같은 극적인 변화를 묘사하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로 활용될 수 있다.
세계관의 동력 시스템 설계는 이러한 다양한 욕망 엔진들을 정교하게 조합하는 과정이다. 초반에는 ‘폭발형 욕망’으로 독자의 시선을 붙잡고, 중반에는 ‘지속형 욕망’으로 꾸준한 몰입을 유도하며, 결정적인 순간에는 ‘변환형 욕망’을 통해 캐릭터의 극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세계관에 어떤 종류의 욕망이 존재하는지를 정의했다면, 다음 단계는 그 욕망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즉, 당신의 세계관 시스템이 특정 욕망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어떤 규칙을 적용하는지를 설계하는 과정이다. 이것은 세계관의 가장 근본적인 갈등 구조와 도덕률을 세우는 핵심적인 작업이다. 우리는 시스템이 욕망을 다루는 방식을 크게 세 가지—추구, 금욕, 전복—로 분류할 수 있으며, 이 방식들이 서로 다른 욕망들과 만나 충돌할 때 비로소 깊이 있는 드라마가 발생한다.
1. 추구(Pursuit)의 시스템: 욕망을 긍정하고 장려하는 세계
가장 보편적인 시스템은 특정 욕망의 추구를 긍정하고 장려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부(영역 욕구)’의 축적을 장려하고, 기사 사회가 ‘명예(지배 욕구)’의 획득을 숭배하는 것처럼, 이 시스템은 명확한 성공의 사다리를 제시한다. 이 세계에서 드라마는 주로 ‘경쟁 욕망’의 충돌 패턴을 통해 발생한다. 하나의 희소 자원(왕좌, 챔피언 타이틀, 최고의 부)을 두고 여러 인물이 경쟁하는 과정 자체가 이야기의 중심축이 된다. 이 경쟁에서 승리한 자는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되고, 패배하거나 과정에서 선을 넘은 자는 ‘타락의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이 시스템은 독자에게 가장 직관적인 목표와 성취의 쾌감을 제공한다.
2. 금욕(Abstinence)의 시스템: 욕망을 억제하고 통제하는 세계
어떤 세계관은 특정 욕망의 추구를 위험하거나 부정한 것으로 간주하고, 그것을 억제하고 통제하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다. 종교적 계율이 지배하는 사회나, 감정이 통제된 디스토피아 세계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시스템에서 드라마는 종종 ‘상극 욕망’의 충돌 패턴을 통해 발생한다. 시스템이 강요하는 ‘금욕(공동체의 안전)’과 캐릭터의 내면에서 피어나는 ‘자유로운 욕망(개인의 자유)’이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갈등 속에서 개인은 시스템에 순응하여 ‘해탈’의 경지에 이르거나, 혹은 억압된 욕망이 뒤틀린 형태로 폭발하여 시스템을 유지하는 ‘위선자’가 되기도 한다. 이 시스템은 인간의 내면적 갈등과 사회적 억압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가능하게 한다.
3. 전복(Subversion)의 시스템: 욕망의 체계 자체를 부정하는 세계
가장 급진적인 시스템은, 기존의 ‘추구’와 ‘금욕’이라는 이분법 자체를 거부하고, 욕망의 체계 그 자체를 무너뜨리려는 세력이 존재하는 세계다. 이 시스템의 드라마는 ‘단계 욕망’과 ‘은밀 욕망’의 충돌 패턴과 깊이 연결된다.
‘단계 욕망’의 충돌: 시스템을 전복하려는 혁명가는 ‘정의’나 ‘자아실현’과 같은 상위 단계의 욕망을 위해 움직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당장의 ‘생존’을 위해 동료를 희생시켜야 하거나, 무고한 사람들의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대의를 위한 소의 희생은 정당한가?”라는 질문이 이 시스템의 핵심 갈등이 된다.
‘은밀 욕망’의 충돌: 겉으로는 ‘정의로운 전복’을 외치지만, 내면에는 ‘개인적인 복수심’이나 ‘새로운 지배자가 되려는 권력욕’(은밀 욕망)을 숨기고 있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독자는 그의 행동이 진정한 혁명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사적인 욕망을 위한 위선인지를 끊임없이 의심하게 되며, 이는 서사에 예측 불가능한 긴장감을 부여한다.
주의할 부분은 충돌은 역동성을 일으키지만 단면을 익숙하게 만들기 전에 다면적 세계를 너무 서두르면 낯설고 혼란스러운 세계가 된다. 도입부분에는 충돌은 차라리 다양성으로 배치하는 것이 좋다. 서로 다른 앙숙의 충돌은 핍진성의 통제하에 놓이게 된다.
창작은 종종 논리가 아닌 직관에서, 명확한 계획이 아닌 하나의 막연한 ‘감각’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꿈에서 본 듯한 기이한 풍경일 수도 있고, 특정 음악을 들을 때 느껴지는 형언할 수 없는 분위기일 수도 있다.
“음울하고 서늘한 고딕 성”, “비 오는 밤의 네온사인이 비치는 축축한 골목길”. 이러한 감각적 편린들은 그 자체로 매우 매력적이지만, 아직은 가공되지 않은 원석과도 같다. 이 원석을 세공하여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보석, 즉 강력한 세계관 설정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 막연한 느낌의 이면에 숨겨진 근원적인 ‘욕망’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읽어내고, 최종적으로 그것을 세계의 ‘법칙’으로 변환하는 체계적인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는 왜 특정 감각에 끌리는가? 그것은 그 감각이 우리 내면의 어떤 근원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거나, 혹은 자극하기 때문이다. 창작자는 탐정과도 같아서, 자신이 느낀 감각이라는 ‘단서’를 통해 그 배후에 있는 욕망이라는 ‘동기’를 찾아내고, 그 동기가 만들어낼 ‘사건(법칙)’을 예측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감각을 욕망으로, 욕망을 법칙으로 번역하는’ 기술이며, 당신의 추상적인 영감을 구체적인 세계관으로 바꾸는 핵심적인 연금술이다.
이 번역의 과정은 다음과 같은 5단계의 워크플로우를 통해 체계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 이미지나 분위기를 최대한 구체적인 언어로 묘사하고, 거기서 느껴지는 가장 핵심적인 감각어를 추출하는 것이다.
사례: 당신이 ‘사막 한가운데 홀로 서 있는 녹슨 거대 로봇’의 이미지에 끌렸다고 가정하자.
감각 포착: “끝없이 펼쳐진 붉은 사막, 뜨겁게 내리쬐는 쌍둥이 태양, 모래바람에 부식된 거대한 로봇의 실루엣, 모든 것이 멈춘 듯한 완전한 적막감.”
핵심 감각어: 고독, 적막, 황량함, 버려짐, 오래됨, 거대함.
추출된 감각어들이 어떤 근원적인 욕구가 ‘채워지지 않은’ 상태를 보여주는지 분석한다. 모든 강렬한 분위기는 종종 무언가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고독, 버려짐, 적막 → 타인과의 교류가 없는 상태. 즉, ‘소속과 연결’의 욕구가 결핍되어 있다.
황량함, 오래됨 → 과거에 존재했던 문명이나 생명이 사라진 상태. 즉, ‘과거에 대한 정보’가 결핍되어 있다.
진단된 ‘결핍’은 자연스럽게 그것을 채우려는 반대 방향의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막연했던 분위기의 정체를 구체적인 욕망의 언어로 명명하게 된다.
‘소속과 연결’의 결핍 → “누군가와 연결되고 관계 맺고 싶은 욕망.”
‘정보’의 결핍 →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숨겨진 진실을 알고 싶은 탐구 욕망.”
이제 ‘사막의 로봇’이라는 이미지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연결에 대한 갈망’과 ‘진실에 대한 탐구’라는 두 개의 강력한 욕망이 교차하는 드라마틱한 무대가 되었다.
명명된 욕망은 반드시 구체적인 ‘행동’으로 발현되어야 한다. 이 세계의 캐릭터들은 이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어떤 대표적인 행동을 할 것인가?
탐구 욕망 → 행동: “주인공은 고대 문명의 유적을 탐사하고, 잊혀진 기술의 단서를 수집하며, 로봇에 숨겨진 비밀을 해독하려 한다.”
연결 욕망 → 행동: “주인공은 사막을 떠돌며 다른 생존자들을 찾아 공동체를 만들려 하거나, 혹은 거대 로봇을 다시 작동시켜 교신을 시도하려 한다.”
마지막으로, 이 대표적인 행동들을 세계의 근본적인 ‘법칙’과 연결한다. 이 법칙은 해당 행동을 장려하거나, 혹은 방해하고 금기시함으로써 세계의 핵심 갈등을 만들어낸다.
탐구 욕망에 대한 법칙: “고대 문명의 기술을 탐구하는 것은 신성한 행위로 여겨져 존경받는가? (촉구) 아니면, 과거의 재앙을 되풀이할 수 있는 위험한 행위로 간주되어 엄격히 금지되는가? (금기)”
연결 욕망에 대한 법칙: “생존자들끼리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장려되는가? (촉구) 아니면, 한정된 자원을 두고 서로를 불신하고 약탈하는 것이 생존의 유일한 규칙인 무법의 세계인가? (경계)”
김동은WhtDrgon@MEJEwor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