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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ia Oct 29. 2020

갑자기 내 인생이 좋아졌다

찾아낸 여유

여름 방학마다 한국에 방문했던 나는 2020년, 불가피한 상황에 조금 일찍 한국에 가게 됐다. 언제나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날짜를 세고, 먹고 싶은 음식 리스트를 쭉 적고 그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을 만나느라 쉬는 날이 없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외출을 자제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지만 나 스스로 그 무엇도 하기 싫었다. 스페인에 두고 온 것들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스페인에 있었으면 새벽에 수업을 듣고 경기를 보진 않아도 됐을 텐데. 우리 집 청소도 해야 되는데.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불안함을 억누르려 또 걸었다. 집에서 한강이 가까운 덕분에 나는 복잡한 마음을 안고 자주 한강을 거닐었다. 이른 아침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 빛나는 야경과 잔잔하게 몰아치는 강물을 보고 있으면 숨통이 트였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취미를 만들었다.


나는 자전거를 못 탔다. 보통 자전거를 배우는 어린 시절엔 인라인 스케이트를 배워 주말마다 스케이트를 타기 바빴다. 이후엔 대중교통과 내 두 다리로 어디든 갈 수 있으니 자전거를 타야 한다는 필요성을 못 느꼈다. 하지만 친구들은 내가 밤바람을 맞으며 타는 자전거의 즐거움을 알길 원했다. 생각보다 쉽게 페달을 밟을 수 있게 되자 나는 어느새 자전거에 푹 빠졌다. 


산책을 할 땐 멍 때리며 마음을 비웠는데, 자전거를 탈 땐 내 걱정과 고민이 스치는 바람에 같이 휩쓸려 가는 것 같았다. 친구들과 함께 끝없이 달리기도, 혼자서 음악을 듣고 야경을 바라보며 타기도 했다. 적당히 부는 강바람과 확 트인 전경, 한강 다리를 건너는 차들과 함께 페달을 밟으면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이렇게 매일같이 자전거를 타며 고민거리를 씻어내자 나를 감싸던 불안감도 점점 없어졌다. 어쩌면 나는 혼자서 털어낼 수도 있었는데, 여전히 겁이 많아 자전거라는 매개체가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방법이 어찌 됐든 다시 스페인에 돌아가기 전, 마음을 짓누르던 돌덩이를 내던졌다.


반년 만에 돌아온 쿠엥카는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거리를 거닐고 문 닫은 가게들이 많아졌지만 맑은 하늘과 푸른빛 풍경은 그대로였다. 언제나 변함없이 있는 도시에서 변한 것은 나였다. 


이곳은 여전히 재미없는 도시지만 그만큼 평화롭고 아름다운 도시이기도 하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서 눈을 돌리면 노랗고 빨갛게 물든 나무들이 줄을 잇는다. 온도가 바뀌는 시점에 내리는 노을도, 캄캄해진 하늘 아래서 불을 빛내는 작은 건물들도 묵묵히 일상을 이어간다.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데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여전히 스페인에서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또 특별한 경험을 하며 하루하루를 배워가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삶을 버텨내야 한다고 여겼는데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곳이었다. 풍족한 여유를 갖춘 늘어지는 재즈와 같은 곳. 조용한 도시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갑자기 내 인생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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