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작이 늦었다. 23살에 스페인으로 떠났고 24살 가을이 되어서야 대학교에 입학했다. 대부분의 또래보다 출발점에 늦게 섰기 때문에 여유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난 느리지만 여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호기롭게 스페인행 비행기를 타던 그 날과 달리 ‘내가 이러고 있어도 되나’란 생각이 자꾸 들었다.
“멋있다”는 말로 포장한 걱정 어린 참견이 많았다. “너 그럼 생활비는? 돈을 벌긴 하는구나. 그래도 부족하지? 졸업은 언제야? 졸업하면 바로 취업할 수 있어?”. 한국에 잠깐 들어온 어느 날, 직장인 친구를 만나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집으로 가는 길, 기분이 이상했다. 분명 나를 걱정하는 단어들이고 나를 대견하게 여기는 말투였는데 왜 이렇게 신경 쓰이고 불편할까.
‘유학’이라는 겉으로 멋들어진 삶을 보며 누군가는 내게 앞날이 창창하다고 했다. 하지만 내 미래는 너무나 불안정하고 내가 선택한 이 길을 끝까지 잘 해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나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은 점점 줄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 걱정돼 잠 못 이루고, 최악의 결과를 생각하며 전전긍긍하다 그보다 나은 결과를 얻으면 안심하곤 했다. 이런 방법은 나를 옥죄는 동시에 마음을 편안하게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안 좋은 결과를 초래했다. 긴장 속에 사는 것은 스스로를 조이며 이겨내야 한다는 압박으로 이어졌다. 스페인 생활 자체가 가시밭길을 제자리걸음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타인을 의식하는 목표가 많아졌다. 전에는 오롯이 나의 열정과 행복을 위해 꿈꿨는데, 점점 나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과 기대감을 충족시키기 위해 꿈을 꾸게 됐다. 그들이 나를 좋게 바라보고 치켜세워 줄 때 내 미래에 대한 안심이 찾아왔다. 내가 원하는 길임에도 의문점은 생기기 마련인데, 그때 이 길이 맞는지 망설이는 이유가 타인에게 받는 기대감이 됐다. 내 속을 들여다보지 않고 그들의 시선에 맞춰 걸으니 내 마음과 행동에 엇박자가 생겼다. 차근차근 내 일을 해나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 속은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서 걱정을 덜고 마음속 안정을 찾으려 오래 공들였다. 느릿한 재즈를 듣고 산책을 하며 내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닥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는 대신 새로운 일을 맞이한다는 기대감을 가지려 노력했다. 내 마음이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일상을 이어가다 보니 약간의 긴장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점점 안정이 찾아왔다.
“우린 아직 어리니까 할 수 있는 것도 너무 많아요. 절대 늦지 않았어요”. 이후 다시 한국에 왔을 때, 더 이상 새로움이 없어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는 지인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소중함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작은 것에서 기쁨과 행복을 찾으며 느릿한 인생을 추구하는 사람.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믿고 살아가는 사람. 아름다운 꿈을 꾸고, 그 꿈을 위해 행복하게 사는 사람. 그런 사람을 보며 나 역시 변하고 싶었다. 하지만 타인으로 인해 변할 필요가 없었다. 나 스스로 작은 여유와 행복을 즐기는 사람으로 충분히 바뀔 수 있었다. 그러자 더 이상 버티는 삶이 아닌, 어떤 상황이 닥쳐도 즐길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친구의 말을 참견으로 받아들인 것일까. 친구에게 그 말을 들은 후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 것일까. 또 마음의 안정이 찾아와 지인에게 그 말을 들은 것인지, 지인의 얘기를 듣고 안정이 찾아온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 마음가짐을 바꾸고 나에게 확신을 주는 것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