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야 LEEya Oct 24. 2021

초조함을 내려놓으면 보이는 것들

나만의 시간표는 따로 있다

“아마도 나는 언젠가 마흔이 넘으면 서울이 아닌 어느 곳에 작은 내 집이 있고 빨래를 널어 말린 마당이나 그게 아니면 작은 서재가 있고 아이는 하나, 아니면 둘. 운이 좋으면 내 이름의 책... 다른 건 가지지 못해도 그중에 하나 아니면 두 개쯤은 소원 이뤄 다른 건 가지지 못해도 행복한 그런 인생 그게 내 마흔 즈음의 모습이라고...” 최근 흥미롭게 보고 있는 드라마 <인간실격>에서 이부정이라는 주인공의 대사이다. 배우 전도연의 목소리로 전해지는 대사를 듣고 있노라니 먹먹했다. 마흔의 마음 한 조각이 담겨있는 말이었다.

다름 그리고 조화 (2021.10)

“아마도 나는 언젠가 마흔이 넘으면...”이라고 기대했던 수많은 기대들. 나 역시 그런 기대들이 있었다. 그 즘이면,.. 언젠가는... 이렇게 시작되었던 수많은 문장들. 누구나 마흔즘에는 자기 이름으로 된 집이 있고, 누구나 마흔 즘에는 번듯하게 이루어 놓은 것이 있고, 누구나 마흔즘에는 이루고 싶었던 꿈 중에 반 이상은 이룰 줄 알았다. 돌아보면 이십 대는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느라 시간을 보냈다. 삼십 대는 ‘나도 남들처럼’처럼 이라는 타이틀 앞에 조급해졌기에 일이, 사랑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실망도 많이 했다. 그러고 나서 마흔을 맞이하자니 그 초조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마흔으로 넘어가기 바로 전 겨울은 엄청난 반성과 후회가 밀려왔다. 생각이 많고 결정이 느린 나를 탓했던 시간. 도대체 무슨 큰일이라고 그때까지 대학원을 갈까 말까를 십 년을 고민을 하며, 영어강사로의 일을 지속할까 말까를 십 년도 넘게 고민을 했는지. 고민에 질려서 드러누울 지경이었다. 마흔을 가까이 두고 주변 탓을 하기도 부끄러운 일. 그 해 겨울은 <인간실격>에서의 대사처럼 ‘나는 마흔까지 이룬 것이 없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지냈다.


마흔이 무슨 재앙도 아니고 흔쾌히 맞이해도 좋았으련만, 서른아홉을 지나가기가 그렇게 슬프다니. 한 겨울을 그렇게 슬퍼하고 절망하고 나를 구박했다. 실컷 하고 나니 갑자기 용기 비슷한 게 생긴다. 어차피 더 이상 핑계할 곳도 기대할 곳도 없다고 생각하니 홀가분해졌다. 더 망칠 것도 잃을 것도 없다는 생각에 다다르자 뭔가를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대학원을 지원해 합격을 했고, 4년 후에는 나의 첫 책이 출간되었다. 하나씩만 지금 할 수 있는 것 하나씩만 해보자고 생각하니 꽤 괜찮아졌고, 그에 따른 몇몇의 성취도 할 수 있었다. 나의 느린 걸음도 나름 받아줄 만했다.


마흔에 다다르면 ‘제가 원래 그래요.’ 배짱 좋았던 마음에도 갑자기 주눅이 찾아올 수 있다. 주눅 정도가 아니라 절망이 찾아오는 경우도 종종 본다. 알고 보니 나만 겪은 게 아니었다는 것은 조금 후에 알았다. 마흔 즈음의 절망은 남들보다 ‘늦었다’라는 초조함에서 온다. 주변을 돌아보니 나만 뒤떨어진 것 같을 때. 나는 ‘아직’인데, 다른 사람들은 한참을 멀리 따라잡을 수도 없게 (실은 아무도 모르는) 목적지 근처에 있는 것 같아 보일 때. 부지런을 떨어 보지만 급한 마음만큼 얻어지는 것이 없을 때. 절망한다.


하지만, 나는 말해주고 싶다. 깊은 절망도  보면 지나가는 감정이라는 것을. 결코 영원한 절망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엄청 매운 떡볶이의 맛이 영원히 남아있지 않고  지나가 버리듯 절망도 우리 안에 지나가는 수많은 맛일 뿐이다. 깊은 폭풍이 지나간 자리, 그곳에 공기가 정화되는 것처럼,  끝인  같은  순간에도 소망은 피어오른다. 마흔은 시간표대로 살아야   같은 강박에서의 해방을 주는 시간이며, 진정한 소망을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니 초조함을 내려놓아 보자. 인생에 도착지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며, 혹시 도착지가 있다고 할지라도 누가 언제까지 그곳에 가야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마흔에 관한 글을 쓰고자 자료를 찾다가 흥미로운 영시를 발견했다.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이다. ‘뉴욕이 캘리포니아보다 3시간이 빠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캘리포니아가 느리다는 말은 아니다.’ 각자의 시간표가 있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 시작되는 이 시는 이렇게 계속된다. ‘어떤 이는 22세에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을 같기 위해 5년을 기다린다. 어떤 이는 25세에 CEO가 되고 50세에 세상을 떠나며, 어떤 이는 50세에 CEO가 되고 90세에 세상을 떠난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타임존을 가지고 있다. 당신 주변에 사람들이 당신보다 앞서간다고 보이지만 그들을 부러워하거나 무시하지 말아라... 천천히 최선을 다하라... 당신은 늦지도 빠르지도 않다.’ 꽤나 설득력 있는 시였다. 작가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많아서 결국 찾지는 못했다. 이 시의 마지막은 이렇다 ‘그저 벌집 새가 되어라. 힘센 사자와 호랑이가 과소평가를 해도 그는 그가 갖은 작은 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을 그 자신이 되어 그가 처한 곳에서 한다.’ 인생 시간표는 비교하는 게 아니다. 비교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각자의 인생이 제 각각의 다른 빛을 띄운다. 모두가 빛도 시간표도 달라 대신할 수 없는 소중한 인생들이다. 태초부터 모두가 그렇게 다른 시간표를 쥐고 이 땅에 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저 조급함을 버리고 나다운 시간표를 살아가는 것이 각자의 몫이다. 마흔이 지난 훗날 흡족할 수 있도록.


*무단 도용을 방지를 위해 워터마크를 사용하였습니다*

.








이전 01화 비상의 시간, 마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