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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야 LEEya Oct 24. 2021

다른 선택을 해 보아도 좋다

새로운 나를 만나면

“왜 하필 마흔일까?... 그런 혼란한 경험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 시기에 우리는 삶을 재평가하고, 때로는 무섭지만 언제나 해방감을 주는 한 가지 질문 앞에 설 기회를 갖는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모습과 맡아온 역할들을 배고 나면, 나는 대체 누구인가?”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의 작가 제임스 홀리스는 서문에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마흔의 혼란이 던져주는 질문. 좋은 질문은 좋은 답으로 인도한다. 피할 수 없는 질문이 마흔에는 우리의 삶에 도착을 한다. 아예 집 앞에 편지로 떡하니 써서 도착을 한다. ‘나는 대체 누구인가? 그 도착한 질문을 열어보고 당황하기도 하지만 이 질문 덕에 각자가 새로운 자신을 만나기도 한다. 물론 그동안의 삶, 마흔 이전의 삶도 역시 자신의 일부다. 당연하다. 하지만 마흔은 여러 이유로 물러섰던 내가, 묻어두었던 내가 더 드러나는 시기임에는 틀림없다. 더 이상 묻어놓을 수도 감출 수도 없는 마음에 소리들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또 다른 선택 (2021.10)

‘가장 높이 나는 새가 더 멀리 본다’라는 명언을 남겨준 <갈매기의 꿈>을 다시 읽어 보았다.  이 책은 갈매기 조나단이 꿈에 도전하는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십 년 전만 해도 ‘큰 꿈을 꾸고, 크게 성공해야 하나보다’라고 읽혔던 책이다. 마흔이 되어 다시 읽어보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조나단은 ‘갈매기는 그저 간단한 비행만 배우면 돼. 먹이를 구하기 위한 비행이면 충분해’라는 환경과 사회가 정해준 ‘갈매기’로는 살고 싶지 않았다. 기존에 자라온 환경과 사회에서 요구된 ‘나’가 있었지만, 진정한 ‘나’를 부정한 채 다른 모습으로는 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높이 나는 연습을 하기로 선택한다. 고생스럽더라도 자신이 되기로 선택한 것이다. 진정한 조나단 다움은 여기서 시작된다. 그는 비록 다른 갈매기에게 당장 이해를 받지 못하더라도 더 배우고 발견하고 자유로와야만 했다. 왜? 그게 조나단이니까. 자신이 누군지 찾아가고, 그 정체성을 찾아 힘껏 살아간 갈매기 조나단의 이야기. 이제 <갈매기의 꿈>은 진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선택하고 실행한 이야기로 다가온다. 정체성을 따라 사는 삶이 얼마나 반짝이는지. 얼마나 힘이 있는지. 그렇게 살아보라고, 그래도 된다고 이 책은 말해준다. 


나다운 선택을 하는 마흔. 그런 마흔인 것이 마음 한편을 뿌듯하게 한다. “인생은 B(birth탄생)와 D(death죽음) 사이의 C(choice선택)이다”라고 했던가?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의 말이 생생하다. 마흔의 선택은 우리를 전혀 다른 길로 인도하기도 하며, 숨겨놓은 나를 펼치게도 하기 때문이다. 


마흔에 용기 있는 선택을 하고 이름을 남긴 예들은 수도 없이 많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조지오 아르마니(Giorigo Armani)는 41세에 자신의 회사를 설립하였다. 원래 의학을 공부했던 그는 20세 때 군대에 지원해 전쟁에 참여하였다. 이후 남성의류를 판매하는 일로 처음 패션계에 발을 딛었던 조지오 아르마니. 하지만, 조지오 아르마니(Giorigo Armani)라는 회사를 밀란(Milan)에 설립했을 때는 약 18년간 패션계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한 후였고, 그의 나이 41세였다.


작가 수잔 콜린스 (Suzzan Collions)도 그녀의 삼부작 소설, 헝거게임(The Hunger Games)이 상상할 수도 없는 성공을 이룬 때가 48세였다. 후에 이 소설은 영화로 만들어졌고 3편 중에 첫 번째편, 헝거게임 모킹제이 파트 1은 전 세계적으로 1조 5000억 원의 수익을 거두어들인다. 어린이 텔레비전 작가로, 아동작가로 일했던 그녀는 2008년 청소년을 위한 소설 헝거게임(The Hunger Games)을 출간했다. 그리고 그녀의 소설은 순식간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어 삼 년간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는 기록을 만든다. 


마흔은 새로운 나를 만나는 시간. 새롭게 선택하는 시간이다. 마흔은 특별하다. ‘나’ 다움의 정체성을 찾고 그대로 실행에 옮기는 힘이 있기에 그렇다. 진정한 자신을 찾은 사람이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정말 자신이 누군지를 알아버리면 멈추어 있을 수는 없다. 새로운 선택이 두렵지가 않다. 마흔이 과연 그저 그런 지나온 날들의 연장이겠는가? ‘나다움’을 마주한다면, 누구라도 새로운 ‘선택’에 서보고 싶지 않을까? 지금의 조르지오 알마니도 마흔에 시작되었다. 헝거게임이라는 작품도 마흔 중반에 시작된 선택이었다. 마흔에는 나를 위한 다른 선택을 해 보아도 좋다. 나다운 삶. 그 선택을 하기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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