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고귀하고 위대한 자여, 나의 아들아! 떠나라

구약성서 끝까지 간다 프로젝트

by 오윤

“고귀하고 위대한 자여, 나의 아들아! ...”

이 말은 <미스터선샤인>에 새겨진 명문장 중 하나다. 극 중 선교사 요셉이 아들처럼 여기는 유진초이(이병헌)에 전하는 서신 속 문장인데, 이 문장은 내가 볼 때 일개 서신을 넘어 성서 전체를 관통하는 신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3-1 요셉고귀.jpg


“고귀하고 위대한 자여, 나의 아들아. 네가 어디에 있든지 너를 위해 기도하마. 기도하지 않는 밤에도 신이 너와 함께 있기를...”

그러나 막상 구약에서 이런 마음을 찾기란 쉽지 않다. 기원 전 구약의 이야기는 폭력과 살인, 배신과 음모, 치정과 배반의 스펙터클 막장 드라마의 연속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랬다. 몇 년전 HBO의 미드 시리즈 <왕좌의 게임>을 보면서 도대체 저 상상력은 어디서 시작된걸까, 그 이야기의 새로움과 웅장함에 깜짝 놀랐는데 구약을 보면서 그 실마리를 찾은 느낌이다. 구약 성서를 배경으로 한 문화에서 <왕좌의 게임>의 탄생은 매우 자연스럽게 느껴졌다고 할까?


3-2 왕좌의게임.jpg


그 세계에서 힘은 곧 정의다. 평화와 생명은 자주 호전적인 전사들에게 공격을 당하곤 했다. 선한 사람은 구석으로 몰렸고, 자주 먼지와 오염을 뒤집어 써야 했다. 어릴 적 주일학교에서 성경 이야기를 들으며, “난~~ 왼쪽 뺨을 맞으면 오른쪽 뺨을 내놓는 사람이 될거야.” 스스로 다짐했던 아가들은 잔혹한 전장 속에서, 아비의 죽음 속에서, 친구의 배신 속에서 어릴 적 다짐을 잊게 된다. 복수다. 경쟁이다. 싸움이다.


복수, 경쟁, 전쟁,

이것은 구약시대 이야기의 기본 축인 것 같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에 대한 로망은 쉽게 구석으로 내팽겨지고, 누군가를 속이고, 죽이고, 배신하는 드라마를 사랑하는 게 구약이다. 여기서 영웅들은 몸 좋고 싸움 잘 하고 검과 칼을 잘 휘두르는 “사나이”들이었다. 이 사나이들은 여자, 전쟁, 도박, 술, 음악을 사랑했다. 동시에 신을 찾고, 신을 노래했다. 바람, 태양, 비, 바람, 자연, 인간. 삶의 배경이 된 각 요소들이 연결되고 결합하는데 경전이 제공한 통찰은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였고, 불확실한 미래를 전망하고 통찰하는 매개였다. 경전과 함께 중요한 의식이 희생제였다. 제의적 분위기에서 동물과 작물을 태우면서 영광과 공포를 재연했다.


복수, 경쟁, 전쟁의 시대, 이 시대의 태초 지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유목의 시대와 만나게 된다. 이동은 삶의 운명이자 신성한 가치였다. 봄날이 되면 이동을 시작하여 누군가의 작물과 가축을 약탈했고, 우기가 시작되거나 겨울이 되면 본거지로 돌아와 자신의 땅을 돌보곤 했다. 이동의 전사들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때마다 제의를 열었고, 희생제 의식을 치르곤 했다. 누구를 위한 제의인가? 누구를 위한 희생제인가? 구약의 시대, 인류는 더 섬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신들을 찾고 발굴하고 창조하면서, 자신들의 신에게 바치는 제의와 희생제를 고도화시켜 나갔다.


3-3유목.jpg


이동을 하고, 전쟁을 하고, 신을 찾으면서 인류 문명에 계급, 위계, 서열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 왕과 귀족이 생기고, 평민과 노예가 뒤를 따랐다. 왕과 귀족이 따로 모여 사는 장소가 마련되고, 이들은 종교, 전쟁, 사냥에 시간을 쏟았다. 왕과 귀족이 모여 사는 펜트하우스 세계에서는 평민과 노예를 같은 인간으로 여기지 않았고, 그들만의 경쟁, 시기, 미움, 전쟁이 꽃을 피웠다. 펜트하우스에는 우아, 세련, 야만, 시기, 질투, 폭력, 권력욕이 묘하게 섞여 있었다.


이야기를 좁혀 구약의 무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보자. 때는 기원전 12세기. 당시 지중해 동부의 패권은 히타이트와 이집트가 나눠 가지고 있었다. 둘 다 상황은 좋지 않았다. 달이 차면 기우는 법, 히타이트 제국과 이집트도 그 위세가 예전 같지 않았다. 이집트의 땅이었던 가나안의 고지대에서 이스라엘이라 부족공동체가 출현한 것은 이즈음이었다. 새로운 공동체의 출현, 그 시작은 과거로부터의 단절이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창세기 12: 1~2)”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가나안이라는 낯선 곳으로 떠나는 아브라함, 여기로부터 시작하여 구약은 이스라엘의 시초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구술되던 이야기가 문자로 기록된 것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의 일이었다고 한다. 최초의 성경 텍스트들은 기원전 8세기가 되어서야 기록되기 시작했고, 성경의 정전은 기원전 4~5세기에 결정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텍스트에서 가장 깊게 이야기된 자, 주인공은 앞서 잠깐 언급한 이스라엘의 미스터선샤인 아브라함, 그리고 그 뒤를 잇는 모세, 여호수아, 다윗이었다.

“고귀하고 위대한 자여.. 나의 아들아!!”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들의 출발, 시련, 고통, 상처, 경쟁, 갈등, 극복, 회개의 이야기를 집요하게 호출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창조해간다. 왜 이 이야기에 집중했을까? 혼돈의 시기였고, 폭력과 경쟁이 극에 달하던 시기와 무관하지 않을 거다. 이 고통의 시대를 잘 이겨내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이야기가 필요했을 거다. 그 이야기의 중심에 자신들의 신 야훼와의 긴밀한 유대가 있었을테고, 바로 이 관계맺음을 통해 다른 민족과 다른 자기만의 정체성을 만들어갔을 거다.


야훼는 이스라엘의 창시자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삭, 그리고 그의 손자 야곱에게는 엘이라 불렀고, 이후 모세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야훼 신앙과 합쳐진다. 이 이스라엘의 신, 야훼는 때론 중동의 또다른 신 바알과 경쟁하기도 했고, 때론 적의 종교와 여타 민족을 섬멸하기도 했으며, 때론 자신이 선택한 이스라엘 민족으로부터 잊혀져 패배하기도 했다.


3-4hiker-1149898_1280.jpg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승리와 패배, 웃음과 눈물, 희열과 분노의 스펙터클한 스토리가 “고귀하고 위대한 자여, 나의 아들아! 떠나라” 야훼의 부름을 받고 안정된 생업을 버리고 떠난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거다. 이 이야기의 축은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를 가로질러 가나안 땅에 돌아가는 모세의 이야기에서도 반복된다. 떠나지 않으면 어떤 새로운 이야기도 써지지 않는 거다.


그리하여 구약의 이야기를 딱 한 문장, 로그라인으로 압축하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고귀하고 위대한 자여 나의 아들아! 떠나라” 나를 버리고 신의 목소리에 의지해 길을 나선 사람들의 스펙터클 어드벤처 스토리.


결국 이야기도 신도, 길을 떠난 자만이 만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keyword
이전 02화#2. 거룩함의 선율, 레위기. 렐리지오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