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빼곡한 계획을 세웠던 여행
재작년, 첫 해외여행을 가는 아빠와의 다낭여행은 아주 계획적으로 시작했다. 내가 여행계획표를 액셀로 짜는 재미에 빠지기도 했고, 아빠도 직업병처럼 군인 용어를 쓰며 칼같은 일정을 공유하는 것을 좋아했기에 둘이 죽이 잘맞았다. 최대한 많은 장소를 가기위해 이동 시간까지 분단위로 짜서 넣었다. 여행지에 가서 직접 수행해보니 매우 바빴지만 만족스러웠다.
빼곡했던 계획에 뭐가 있었나 떠올려보면 첫날엔 현지 사진작가를 컨택해서 스냅사진을 찍었다. 둘째 날엔 무리인걸 알면서도 안방 비치 일정을 넣고, 버스를 놓칠 뻔해서 헐레벌떡 타기도 했다. 오행산 등반으로 체력을 소진하면 마사지를 받아 원기를 회복하고 다시 어딘가로 나섰다. 셋째 날엔 옛 수도였던 후에라는 도시에 가이드 투어를 갔다왔다. 마지막날엔 시간이 남아서 인력거를 타고 쇼핑몰에서 게임도 하고, 콩카페도 하루에 연달아 두 번이나 가는 작은 사치를 누렸다.
글을 쓰며 생각난 사실인데, 사실 계획대로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특히 첫날이 멘붕이었다. 한국에서 달러를 거쳐 두 번 환전하는 것보다 현지에 가서 하는 비용이 낫다고 해서 첫날 숙소 도착후 시내 구경전에 환전을 해야했는데, 미리 알아둔 은행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은 현지인에게 물어 겨우 찾았지만, 시간이 금같은 여행지에서 이렇게 당황스러워하느니 환전을 좀 비효율적으로 하는 게 나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한 가지 추억할 이야기거리를 얻었다. 은행에서 우리 차례가 되자 창구 직원이 갑자기 지폐를 벽돌 만들듯 가득 집어 정리하기 시작했던 것! 많은 돈이 내 소유가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하기는 또 처음이었다.
첫날 메일로 예약까지하고 간 식당은 그리 맛있지 않았다. 그 장소만의 특색있는 먹거리 맛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앞으로 꼭 전통음식이나 명성있는 집을 고집할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을 바꿔준 맛이었다. 꽃이름이 붙었던 반투명한 만두피의 음식은 그냥 물만두였고, 면요리는 뻑뻑했고, 제일 나았던 음식은 무난한 타코 맛이었다. 그냥 길거리 반미를 먹을 걸... 미리 알아둔 루프탑 카페는 뷰가 좋았지만 음료 맛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오히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가게에서 사먹은 연꽃 주스가 향기롭고 달달했다. 이렇게 저렴해도 되나싶고, 작은 종이컵 분량이라 더 감질나는 맛이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밤 풍경과 달리 한적해진 강가 주변을 자전거로 돌다가 현지인들이 야외 계단에 앉아 마시는 달달한 커피를 따라 마셨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이건 여행책에 없어서 계획하지 못했었는데. 이런 로컬 맛집은 아빠가 참 잘 발견한다.
얼마나 여행계획대로 철두철미한 여행이었나 정리해보려고 했는데, 우연히 발견한 것들이 꽤 많이 생각난다. 필연을 만들려고 애쓰다 만난 소중한 우연들. 둘 다 소중하기에 앞으로도 열심히 계획을 짜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