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불안)
A. "언니, 나는 요즘 믿음이 없는 것 같아."
B. "음.. OO가 요즘 신앙생활이 좀 힘들게 느껴지나보다. 그렇게 느끼게 된 계기가 있어?"
A. "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신 계획이 있다는걸 믿어야 하는데 너무 불안하고, 삶에 대한 기대보다 어떤 불행이 기다리고 있을까 두렵고 무서운 마음이 먼저 들기도 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이 불확실함이 나를 굉장히 불안하게 하네.."
B. "그치,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이 때로는 두려움으로 다가올 때가 있는 것 같아. 예상되는 결과가 긍정적이면 참 좋겠는데. 그간의 좌절됐던 경험들이 마냥 긍정적인 미래를 그릴 수 없게 만들기도 하지..?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하심대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지만, 그 과정이 너무 힘들고 불안해서 때로는 길을 잃기도 하고.. 믿음 없는 자신을 보는 게 또 혼란스럽고 좌절스러운 마음이 들 것 같아.."
A. "맞아.. 언니, 나는 이 불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걸까?
불안은 누구나 어떤 상황에서든 흔히 경험할 수 있는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감정이다.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를 해야할 때..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 혹은 떨리는 이성을 만나러 가는 상황에서.. 등등 다양한 상황에서 불안감을 느낀다. 하지만 때로 불안은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감정이기도 하다. 가파른 절벽 앞에서 불안해하지 않는다고 가정해 보자. 위험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행동하지 않다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절벽 앞에서 불안을 느끼기 때문에 긴장하여 신중하게 행동할 수 있다.
불안을 느끼게 되면 우리의 몸과 마음에서는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난다. 자율신경계의 교감반응이 활성화되어 동공이 확대되고 혈압이 상승하여 호흡이 가빠지고 근육이 긴장되며 땀이 나게 된다. 또한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 행동을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하여 긴장상태를 유지한다. 이처럼 현실적으로 위험을 내포한 위협적인 상황에서 불안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적응적인 심리적 반응이며, 정상적인 불안이라고 할 수 있다.
불안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며 위험한 상황에 꼭 필요한 감정이다. 불안은 마치 경계경보와 같아서 실제적인 위험이 발생할 때 그에 대비할 수 있도록 우리를 보호해주는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경계경보가 지나치게 민감하거나 잘못되어 수시로 경계음을 울리게 된다면 우리는 불필요한 경계태세를 취하게 되고, 과도하게 긴장하게 되며, 혼란상태에 빠질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불안 반응이 부적응적인 양상으로 작동하는 경우를 병적인 불안이라고 이야기 한다.
불안 자체의 감정은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불안이 불쾌함과 고통을 수반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불안 자체가 잘못되었으며 없애야 하는 존재 즈음으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 경계경보를 울리는 센서가 고장이 났다면 센서를 고쳐야지 경계경보 자체를 없애선 안 된다. 불안이 자연스러운 감정임을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내가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용기 있게 보고, 이 불안은 경계경보일 뿐 실질적인 위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의 센서를 고쳐야 하는 정도인지 파악하는 기준은 불안을 느끼는 빈도, 강도, 관련 신체증상, 일생활에 지장을 주는 정도로 판단할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느끼는 불편함의 정도이다. 본인이 느끼기에 불안과 함께 동반되는 감정과 증상들이 너무 힘들게 느껴진다면, 가까운 정신과나 심리상담센터에 방문해볼 것을 권한다.
실제로 걱정이 많은 사람들이 가진 주제들을 살펴보면 크게 가족문제, 직업적 또는 학업능력에 대한 문제, 재정 문제, 미래의 불확실함, 인간관계, 건강에 관해 불안함을 느낀다고 보고된다. 세부적으로 각자가 느끼는 불안의 내용은 다 다르겠지만 사실 불안은 잘 되고 싶은 마음, 뭔가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기대하는 바가 있지만 세상은 내가 기대하고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으며 예상치 못한 변수에 제멋대로 흘러가곤 한다. 예상치 못한 변수는 끊임없이 사람을 당황하게 한다. 당황하면 긴장하고, 긴장하면 일을 그르치게 되며, 일을 그르치면 좌절한다.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은 계속 불안하고 두렵다.
앞선 대화의 내용처럼 일부 기독교인들은 불안을 느낄 때 자신의 믿음 없음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며 더 큰 좌절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불안과 믿음 없음은 엄연히 차이가 있다. 불안은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이지만, 믿음 없음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실한 사실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일 수 있으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기도가 절실히 필요한 감정일 수 있다.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에 하나님이 멋지게 그려주시는 '나'라는 작품에서 자꾸 붓을 빼앗아 온다. "하나님, 잠깐 붓 좀 줘봐요." 뭐가 잘 안 되는 것 같으니가 내 마음대로 뭔가를 해보고 싶은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불안함을 아시고, 이해하시며, 때로는 붓을 내어 주시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유약한 존재라 하나님과 함께할 때만이 온전해질 수 있다. 즉, 우리 삶의 주권을 맡겨드릴 때 비로소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다.
때로는 삶을 기대하는 게 힘든 순간들이 있다. 매일, 매 순간이 좌절이고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라서.. 괜히 기대가 더 큰 실망감으로 돌아올까봐.. 기대를 포기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포기했다고 생각했던 것은 우리 자신일 뿐, 하나님은 결코 우리들의 삶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내 멋대로 하겠다며 아집을 부렸던 나의 꼭 쥔 손을 살며시 펴주시며 하나님의 손으로 다시 멋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신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알 수 없고 여전히 삶은 예측 불가능하지만 지금도 우리들의 삶에서 멋지게 역사하고 계신다. 하나님이 그려주시는 '나'라는 작품이 엉망일 리 없다.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단 한 순간도 하나님의 사랑이 묻어있지 않은 순간이 없기에 당신이 그려주신 삶을 나는 더 이상 미워할 수가 없다. 흔들리는 불안함 속에서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신 하나로 '나'라는 작품을 더 사랑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