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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부메랑 Feb 23. 2020

2020년 2월 13일-발작 증상을 보이는 내담자

상담 사무실에서 응급상황을 경험하다

 아침부터 2월치고는 무척이나 포근하고 따사로운 날씨였다. 나의 주중 일과는 월요일부터 점차 바빠지기 시작해서 수요일과 목요일에는 스케쥴이 하루종일 가득 차 버리고 점차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곤함을 느끼게 되다가 금요일에 그 스케줄의 강도가 피크에 이른 뒤 금요일 저녁부터 릴렉스하게 되는 구조이다. 바쁜 정도를 그래프로 표현한다면, 일반 직장인들이 상수함수 모양으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수평선 모양의 그래프를 그릴 수 있다면, 나의 함수는 우상향 하는 지수함수 비슷한 모양이다.


지난 주 목요일 아침도 여느 때처럼 아침에 일어나 면도와 샤워를 하고, 간단히 빵과 과일로 아침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얼마 전에 구입한 커피 빈을 그라인더에 직접 갈아서 필터 위에 놓고, 끓는 물을 천천히 부어서 드립커피를 만들어 보았다. 예전에 일본에 방문했을 때 어떤 지인이 한 번 끓는 물을 부은 뒤에는 30초의 시간을 두고 그 다음 턴의 물을 부어야 한다고 했던 것이 기억나서 그렇게 해봤고, 실제로 맛도 초보자가 만든 것 치고는 꽤나 고소했다.



커피를 마시며 하루 일정을 정리했다. 아침에는 멕시코계 미국인 여성과 개인 상담이 예약되어 있었다. 이번에 만나면 두 번째 만나는데 지난주에 처음 만나서 Intake 상담을 했을 때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시간이 되어서 어쩔 수 없이 끊어졌던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그 외 기억나는 것은 상당히 선한 마음을 가진 여성이라는 느낌과 자신의 과거에 대해 말할 때 그 장면을 생생히 기억하다가 어떤 불쾌한 장면을 떠올렸던 탓인지 심한 어지러움을 느끼며 순간적으로 몸이 휘청하는 것처럼 보였었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어제 슈퍼바이져에게 이야기했다. 슈퍼바이져는 그런 여성은 매우 섬약한 심리상태에 있을 확률이 있으니, 대화 내용의 강도를 천천히 높여가며 상대의 반응을 보면서 조심스럽게 심리적 임계점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아침 9시도 안 된 시간인데 태양은 짙은 주황색으로 떠올라서 야자수 위로 따스한 온기를 내려 뿜고 있었다. 캘리포니아의 전형적 아침 출근길의 분위기를 느끼며, 라디오 뉴스를 듣다 보니 곧 사무실에 도착했다. 내담자는 약속시간보다 약 10분 늦게 도착했다. 머릿결이 여전히 젖어 있고, 샴푸와 비누향이 은은하게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샤워를 한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나이는 40대 초반이고, 자녀는 총 4명인 여성이다. 현재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운 상황이지만,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려고 몸부림치는 그 애절함이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로부터 느껴졌다. 어린 시절의 불우한 생활의 경험, 엄마를 학대하던 아버지, 아버지처럼 자신을 학대하던 남편, 그리고 현재의 삶. 그녀의 삶은 "한(恨)"이 많아 보였다. "한"이라는 말을 그녀는 못 알아듣겠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그 단어가 계속 떠올랐다.


그녀는 점차 자신의 분노와 억울함, 그리고 절망감을 깊이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에게 점차 목소리를 높여서 말을 토해내기 시작했고, 제스츄어가 커졌다. 그리고, 말의 속도도 점차 빨라졌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는 눈을 감았다. 나는 그녀가 감정이 복받혀서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정리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순간 이 모습은 지난주 그녀가 내 앞에서 휘청거리려고 했을 때와 너무 비슷하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들었다. 그녀는 계속 그대로 있었다.


나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그녀의 이름을 세 번 더 불렀으나, 그녀는 응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모습은 기절하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상체에서 힘이 빠져나가서 자세가 무너지고 있었고, 호흡이 불안정했다.


내 머릿속에서는


"이게 무슨 상황이지?"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지?"

"내가 잘못한 것이 있나? 묻지 말아야 할 것을 물어봤나?"


같은 생각만 뿜어져 나왔다.


내가 현재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심리적/의료적 정보는 그녀가 4년 전부터 극심한 공황장애와 우울증, 그리고 마약중독으로 치료를 받아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황장애 환우는 이런 식으로 기절하거나 쓰러지지는 않는 것으로 안다. 호흡 여부를 확인했는데, 마치 호흡을 안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복부를 보니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그녀의 오른쪽 팔목이 떨리고 있었다. 너무 놀랐고, 무서웠다. 마치 내가 뭔가를 잘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앞이 캄캄했지만, 일단 마음을 최대한 차분하게 하고, 그녀가 보다 편히 호흡할 수 있도록 몸을 옆 방향으로 눕힌 뒤, 메인 사무실로 달려가서 거기 있는 스텝들에게 외쳤다.


"Hey, my client has passed out!"



이후 곧바로 스텝들이 달려왔고, 어느새 출동을 한 앰뷸런스도 도착해있었다. 나도 점차 흥분하고 긴장해서 그런지 나에게 자초지종을 묻는 응급요원의 질문도 귀찮게 느껴졌다. 그녀의 이름과 사무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간단하게 답했다. 동료들은 내가 잘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니니 안심하라는 말을 반복해서 전했지만, 마음 한 켠이 무거운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녀가 들것에 실려 나가는 것을 멀리서 보고 사무실에 와서 앉아 있으니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킨 후, 슈퍼바이져에게 전화를 해서 상황을 보고했다. 까탈스럽고 예민한 성격의 슈퍼바이져에게 이런 상황을 보고하는 것은 사실 그다지 내키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바로 보고를 하는 것이 나의 의무이기에 전화번호를 하나씩 천천히 누르며 겨우 전화를 했다. 슈퍼바이저는 의외로 차분하고 담담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줬고, 신속하게 보고해서 고맙다고 했다.


창 밖을 보니 야자수와 야자수 사이로 태양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그 내담자가 내 앞에서 수줍게 웃으며 이야기할 때의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잠시 후 슈퍼바이져에게 문자가 왔다. "It is a non-epileptic seizure. We will talk about it"


사전에서 찾아보니 "비간질성 심인성 발작"이라고 나왔다. 뇌의 문제가 아닌 심리적 원인으로 발생하는 간질발작이다.


이제 조금 그녀가 내게 속사포처럼 빨리 말했던 내용들이 퍼즐처럼 조각이 맞추어졌다. 그녀는 이런 현상 때문에 현재 쉽게 취업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운전 중에도 발작이 생긴 적이 있었다고 했다. 다행히 옆에 앉아 있던 친구가 사이드 브레이크를 올리고 천천히 갓길로 차를 옮겨서 문제는 없었지만, 위험한 순간이었다고 한다. 나는 그런 발작이 사무실에서 상담시간에 발생할 줄은 전혀 몰랐다. 과거의 트라우마를 이야기하거나 현재 힘든 스트레스를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마음은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는 공포감과 분노가 차 버려 물이 차고 넘치는 컵처럼 마음이 조절할 수 없을 만큼 무너져 버리는 것일까? 이건 단순한 공황장애 하고는 다른 것이다. 그리고 동료들과 이야기해본 결과 그들도 나의 의견에 동의했다.


일단, 다음 주에 그녀와 또 상담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만약 상담을 한다면 오늘처럼 질문을 하면서 불쾌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위험해 보인다. 일단, 다음 주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정리해 보았다.


1) 그녀에게 Authorization to release confidential form (그녀의 정보를 내가 다른 곳에서 취해도 된다는 허락서 같은 성격의 문서)에 사인을 받고, 그녀가 만나고 있는 정신과 의사와 컨택해서 케이스에 대한 정보를 얻고, 그녀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하는 것

2) 비간질성 심인성 발작에 대한 공부

3) 육체적 치료 (Somatic therapy (예를 들면, 간단한 명상이나 요가 등)) 시도


물론 상담 초기라서 정보가 필요해서 이것저것을 물어보다가 이런 일이 생겼는데, 그녀에게 지나치게 깊은 질문은 일단 제한적으로만 하려고 한다. 그녀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무엇일까? 내가 상담사로서 그녀의 옆에서 무엇을 도와주어야 할까?


그녀의 역사를 내가 지금 다 알 수는 없지만, 그 수줍은 미소 뒤에는 너무나 많은 억압과 상처가 내비쳐지고 있다. 어린 시절 멕시코에서 와서 그다지 화목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랐고 일찍 한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희망과 변화는 언제나 미래 진행형 이어왔다. 나는 그녀의 희망을 현재에서 일어나도록 삶의 시제를 맞춰주고 싶다.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만약 가능하다면,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


쉽지 않은 케이스다. 슈퍼바이져와 동료들이 다들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나도 그것을 안다. 하지만 나는 천천히 그녀 옆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그녀와 함께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같이 찾아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아직 많은 것들을 선택할 수 있고, 그녀는 많은 것들을 입으로 또 몸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강조해서 꾸준히 알려주고 싶다. 그리고 나의 이런 상담은 내가 그녀를 "위해" 해 "주는"것이 아니라 그녀와 "함께"해 나가는 것임을 또한 넌지시 알려주고 싶다. 그래서 그녀의 삶이라는 드라마가 매일 한 장면씩 펼쳐나가고 그 장면들을 호기심과 희망을 갖고 만끽할 수 있게 동기 부여해 주고 싶다.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야자수 옆에 있는 또다른 야자수처럼 그녀 옆에는 계속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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