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닥터 부메랑 Jul 10. 2022

깊은 고립에서 지내온 내담자를 만나다

변화는 자기 이해와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에서 출발한다

몇 주전 무더웠던 6월의 어느 날 아침이었다. 너무 무덥고 습해서 잠에서 일찍 깼다. 시계를 보니 새벽 6시가 되기 직전이었다. 하늘을 보니 이미 파스텔 톤 색의 옅은 파란색의 하늘이 옅은 오렌지 색의 태양빛과 조화를 이루며 마을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다시 조금 더 잘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그냥 조금 일찍 하루를 시작하기로 했다.  


 부엌으로 내려와서 커피를 만들며 필터를 통과하며 내려가는 커피물을 바라보고 있으니 왠지 마음이 차분해졌다. 커피물이 채워지는 것을 보면 왠지 자동차가 주유를 통해 가솔린으로 채워지며 일종의 여유 있는 에너지를 비축하게 되는 것처럼 나도 뭔가 동기부여가 되는 좋은 기분이 된다. 그리고 그런 내 기분에 상응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내게 새로운 내담자가 배정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이메일을 그 순간 핸드폰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식탁으로 베이컨, 식빵, 딸기잼, 계란후라이, 그리고 커피를 가져왔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깊이 심호흡을 하니 조금 전까지 느껴지던 피로감과 덜 깬 상태의 졸린 느낌이 휙 하고 가볍게 변화되는 기분이 들었다.



이메일을 읽어봤다. 내담자는 만 53세의 한국계 여성으로 우울증과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는 간단한 내용이었다. 최근 내게 내담자 케이스가 급증하고 있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일단, 동료들 중에 몇 명이 휴가를 떠난 상태이고, 어떤 동료는 아내가 출산을 해서 당분간은 새로운 내담자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고, 최근 사무실에 새로 들어오는 케이스 중에 한국계 내담자들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당연히 그 분들은 네이티브 한국어를 구사하는 상담사를 원하기 때문에 현재로서 그 조건을 만족하는 내게로 케이스가 배정되고 있는 상황이다. 휴가를 떠난 동료들의 케이스 중에서 일부는 내가 임시로 도맡아서 진행을 하고 있는 케이스들도 있다. 디렉터와 동료들은 가끔 업무량이 많아진 나를 걱정하기도 하고 괜찮냐고 묻기도 한다.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Yes and No"이다. 일을 하고, 그로 인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증가된 내담자의 케이스 숫자에 따라서 수입도 더 늘어나고 그러는 것은 당연히 좋다면 좋은 일이다. 그런데 나 역시 가끔 내 몸과 마음이 어떻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종종 걱정이 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다. 마음 같아서는 퇴근 후에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때처럼 친한 동료와 삼겹살에 소주를 한 잔 마시고 근처의 사우나에서 푹 쉬고 가고 싶은 마음도 종종 든다. 그러나 이 곳은 그런 환경과는 많이 다른 환경을 가지고 있어서 기껏해야 동료와 퇴근 후 차 한 잔을 마시거나 저녁을 함께 하는 정도만 해도 다행인 그런 상황이다.


그 날 저녁 6시에 그 내담자와의 첫 세션(Intake)을 진행했다.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온 그 분은 신장 160센티미터 정도, 몸무게는 55킬로 정도 되어 보였고, 뭔가 예술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인사를 하고 서로 마주 보는 위치에 놓여진 의자에 각각 앉고 세션을 진행했다. 그 분의 첫 이미지와 느낌은 뭔가가 꽉 막혀있는 느낌, 가슴에 돌들이 많이 쌓여있는 느낌, 어떤 고립된 공간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느낌, 마음 속에 외침이 많은 분, 그리고 뭔가 가슴에 한이 있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인테이크 세션은 주로 내담자의 기본정보를 얻는 것을 주목적으로 한다. 가령, 가족사항, 트라우마 경험, 학력 사항, 종교, 취미, 상담의 목적 등에 대한 정보에 대한 질문을 주로 한다. 처음에 기본 질문에 대해 그 분은 천천히 또박또박, 그리고 조용하고 여성스러운 목소리 톤으로 대답을 했다. 그런데 약 20분이 흐를 무렵 갑자기 울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나의 질문과는 상관없이 본인의 한 맺히고 힘들었던 삶에 대해 마치 토하듯이 그 이야기와 감정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미 인테이크 구조로 상담을 지속하기 힘들었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서류와 노트를 덮고 그것들을 책상에 올려놓고 그 분을 다시 마주하고 그 분의 말에 집중했다.


나의 스승 중 한 분이었던 어떤 분은 내게 이런 말을 종종 하셨다.

"상담사로서 내담자를 위해 뭔가 대단한 것을 너무 빨리 하려고 그러지 마세요. 그냥 상담사로서의 존재 자체 (Therapeutic Presence)가 내담자들에게는 무엇보다 절실하게 필요할 때가 더 많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 나의 상담사로서 그 분 옆에 있어주는 존재 자체가 필요한 순간이라는 것에 확신이 생겼다. 그리고 그 분의 말을 한마디 한마디 경청했다. 종종 느끼는 것이지만 경청은 쉽지 만은 않은 일이다. 일단 그 분의 이야기에 집중해야 하고, 그 분의 입장에서 그 과거를 함께 바라봐야 하고, 그 분의 감정으로 그 경험을 같이 해석해야 하는데, 나는 아직 그 분의 성격이나 감정 패턴 등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이 순간 내게 갑자기 요구된 경청은 더 쉽지 않았다.



한 시간이 흘러 세션이 종료되었다. 그 분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고 내게 거듭 몇 번을 인사했다. 나는 상담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고 다소 상투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대답을 상투적이지 않게 들리도록 신경 쓰며 답변하며 그 분께 배웅인사를 했다.


그 분을 배웅하고 사무실로 들어오니 같이 이야기할 때 못 느꼈던 그 분의 향수 냄새가 짙게 풍겨져 왔다. 자리에 앉아 서류 정리를 하고 퇴근 준비를 했다. 잠시 창 밖으로 하늘을 보며 그 분에 대해 생각했다. 그 분은 예상대로 예술과 관련된 일을 오랫동안 해온 분이다. 음악 쪽에 관련된 일을 해오신 분으로서 섬세하고 예의가 바르고, 교양이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 분은 우울증과 공황장애, 그리고 동반된 불안감을 만성적을 경험해오셨다. 어린 시절에는 우울증에 걸렸던 어머니로 인해 트라우마적인 경험을 하기도 했고,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의 신분을 지녔던 아버지는 좋을 때는 좋은 분이었으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보여서 내담자를 실망시키거나 상처를 주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했는데, 남편의 부모님들 역시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의 신분을 지녔던 분들이었다고 한다. 그 분들은 종종 자신들의 아들과 내담자를 마치 상품 비교하듯이 비교하며 내담자에게 분노와 수치심이 들게 했다. 아직도 내담자가 기억하는 시어머니의 말 중에는 이런 말도 있다고 한다.


"너는 내 아들에 비해서 내세울 것이 뭐가 있니? 외모가 아름답니? 키가 크니? 학벌이 좋니?"


내담자는 시부모님들을 나르시시즘이 강한 분들이라고 회상했다. 쉽게 말해 자신들의 감정과 기분, 기준만 중요하고 자신들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상대방이 어떤 기분이 될지는 잘 모르는, 아니면 상대방이 어떤 기분이 되든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그런 분들이라고 표현했다. 예를 들어, 내담자의 남편과 내담자의 친아버지는 외모가 무척 닮았다고 한다. 그래서 아파트 경비아저씨가 내담자의 남편을 보고 오랜만에 군대에서 제대하고 돌아온 아들이냐고 물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재미 삼아 시어머니에게 들려주었는데, 그 말은 들은 시어머니가 했던 말은  "너 그 경비아저씨의 말에 동의하니?"였고, 그 질문에 "네"라고 답했다는 이유로 내담자는 시어머니에게 혼이 났다고 하는데, 본인은 아직도 그 때 혼난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시부모님들은 아들 부부의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삶이 너무 힘겨웠고, 그런 아내를 지켜주려고 남편도 결국 해외로 나가서 살자고 결심을 해서 두 부부는 미국으로 와서 살게 된 것이다. 하지만, 멀리 산다고 해서 내담자가 시부모님들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었다. 비록 육체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아들 부부를 통제하려는 그 분들의 영향력과 성향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거의 매년 내담자는 그런 시부모님을 보고 인사드리고, 또 돌봐주려는 목적으로 한국에 방문해왔다. 그런데 2년 전쯤 코로나바이러스가 시작될 무렵 한국을 방문했던 내담자는 다시 한번 시어머니로부터 큰 실망과 상처를 경험하게 되었다.


내담자의 말에 의하면, 본인은 당시 코로나 바이러스 양성반응을 보이며 침대에 누워서 며칠을 고생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며칠 뒤 겨우 침대에서 일어나 기본적인 생활을 다시 시작하며 기력을 회복하는 내담자에게 시어머니는 대뜸 백화점에 가서 커피머신을 사오라고 했고, 빨래와 요리, 설거지 등을 하며 살림을 돕는 며느리의 행동을 여느 때처럼 일일이 감시했다고 한다.


내가 첫 세션에서 들은 이야기는 더 많지만 몇 가지 기억나는 이야기만 다시 추려봐도 내담자가 그동안 시부모님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되었다. 첫 세션 후 그 분을 위해 일단 당장 필요한 것은 어떤 심리요법이나 심리치료 전략을 짜기보다는 말 그대로 그 분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가슴 안에 쌓인 돌들을 모두 밖으로 끄집어 낼 수 있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그 분과 그다음 주에도 2차 세션을 하게 되었다. 계획대로 나는 그냥 그 분이 하고 싶은 말들을 자유롭게 쏟아낼 수 있게 도와주었다. 예상대로 그 분은 또 한 시간 동안 가슴 속에 있던 무거운 돌들을 토해내듯이 쏟아내었다. 내담자는 이야기 도중에 울기도 하셨고, 잠시 말없이 침묵을 지키기도 하셨고, 가끔은 깊이 한 숨을 쉬기도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도 상담사로서 그 분에게 하고 싶은 질문들이 생각났다. 그러나 그 분이 쉴 새 없이 말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 굳이 그 흐름을 끊고 싶지 않아서 계속 그 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식으로 2차 세션이 끝났다.


그리고 또 일주일이 흐른 오늘 그 분과의 3차 세션이 있었다. 예상대로 그분은 내게 가슴 속에 쌓인 그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분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이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혼자 어떻게 그 힘든 시간과 경험을 혼자 견뎌내었는지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 안타까운 마음도 들고, 공감 이상의 슬픈 마음이 공명되기도 하고 그랬다. 약 20분 정도가 흘렀을 때 그 분이 잠시 숨을 고르며 커피를 한 모금 마시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그 분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떠올랐다. 그래서 좋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하고 그 분에게 질문했다.


"내담자님, 그 많은 이야기들을 제게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참 힘든 시간들을 잘 버텨오셨는데, 너무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제가 질문이 있는데 지금 당장 답변하셔도 좋고 나중에 천천히 답변하셔도 좋습니다."

"네"

"혹시 내담자님께서 지금 나이가 들어서 80대 후반의 노인이고 현재 어느 병원 침대에 누워있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면, 삶을 되돌아 보실 때 후회하는 부분이나 순간이 있을까요? 만일 있다면 그것은 무엇에 대한 것일까요? 만일 타임머신을 타고 젊은 시절이던 그 순간으로 돌아오면 무엇을 다르게 해보고 싶으신지요?"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내담자는 질문이 쉽지 않다며 살짝 웃었다. 그리고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신 뒤 다시 자신의 하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번에도 시어머니에 대한 불만과 시어머니에게 받은 상처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시간이 한참 흘러 이제 세션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그때까지도 내담자는 시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아마 나와 시어머니와의 관계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될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게 시어머니에게 불만과 상처가 많으신데도 매년 한국에 가서 시어머니를 돌보고 계시는 이유가 있나요?"

"글쎄요, 의무감이랄까요? 시어머니가 최근에 골프를 치다가 다치셨어요. 그래서 거동도 잘 못하시고......"

"그런데, 제가 볼 때는 시어머니께서 내담자님에게 불만을 표현하는 내용이나 이유, 그리고 방식들이 과연 적절한지는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가령, 시어머니께서 운동을 하다가 다쳐서 거동이 불편해지셨고, 그 이후 몸 상태도 더 안 좋아지셨고 이런 것들을 마치 내담자님이 책임이거나 내담자님의 탓인 것처럼 말씀하시는 것이 타당할까요?"

"제 말이 그 말이에요. 제 잘못이 전혀 아니에요. 저는 시어머니에게 그 말을 꼭 하고 싶어요. 그것은 시어머니의 잘못이고 저는 시어머니를 돕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이런 말들을 언젠가 시어머니에게 꼭 직접 말하고 싶어요"

"내담자님, 방금 내담자님께서 제가 아까 내담자님에게 드렸던 질문에 대해 뒤늦은 답변을 하셨습니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후회할 만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냐는 그 질문"

"아, 맞네요"


내담자는 짧은 답변을 한 뒤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탁자에 놓인 커피잔을 들어 남은 커피를 모두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담자는 자기의식과 관찰력이 높은 Self-Reflective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남의 요구나 평가에 민감하고 그런 상황에서 정작 자기 자신의 돌봄에 대해서는 자칫 소홀해지기도 한다. 지금까지의 3번에 걸친 세션을 통해 이제 나와 내담자 간의 공통된 주춧돌을 발견한 기분이다.  주춧돌을 기반으로 내담자가 천천히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고, 자아를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권리를 자유롭게 실행할  있도록 내가  분을 도울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이런 작은 변화를 통해 내담자의 가슴에 시원한 공간이 생기고, 내담자가 점차 몸과 마음에 활력을 되찾고, 자신의 온전한 삶을 되찾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


-끝-


==============================


*닥터부메랑의 유튜브에 방문해주세요

많은 관심과 구독 부탁해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a2Hpyxxe7kozsCGldkUTqw?view_as=subscriber





이전 11화 내 안의 '상처 받은 아이'를 만날 수 있다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