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담자의 인격에 대한 믿음을 지지하다
어느새 새해가 시작된 지도 두 달여가 되어간다. 시간은 늘 무심하며 꾸준하다. 발렌타인데이에는 시내가 번잡할 것 같아서 아내와 아들과 함께 지난 월요일에 어느 스시집에 가서 저녁식사를 했다. 물론 스시를 좋아해서 그렇게 한 이유도 있지만, 몸에 좋은 음식을 찾다 보니 현재로서는 스시를 먹는 것이 제일 좋은 선택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했다. 지난 연말 무렵 건강검진 후 받은 결과는 나의 건강에 대해서 내가 미처 예상치 못했던 만큼의 다소 위협적인 시그널을 주었다. 예전부터 스스로 '식단을 조절해야겠다', '운동을 해야겠다', '살을 빼야겠다' 등 여러 가지 다짐을 해 왔으나 이번의 검진결과는 내가 그런 결심들에 대해 작심삼일 하지 않고 최소한 지금까지 한 달 남짓 그런 결심들을 유지하게 할 만큼의 내용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나조차 신기할 정도로, 검진결과를 받은 후 약 두 달여가 지난 지금까지 내가 좋아하던 기름진 음식과 면류 등은 거의 먹지 않고 채식과 단백질류를 주로 해서 식단 메뉴를 유지하고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제대로 뭔가를 먹은 느낌이 들지 않아 계속 허기지고 그렇지만 뭔가 의식이 맑아지고 동기가 복돋아나는 느낌을 그 댓가로 받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내 몸이 다시 더 건강해질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한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발렌타인 데이였다. 오늘도 나는 예전 같으면 아침을 딸기잼과 버터를 바른 식빵, 베이컨, 소시지, 작은 팬케이크, 그리고 커피로 먹었을 텐데, 그 대신 야채주스와 당근, 삶은 달걀, 올리브 유를 뿌린 샐러드, 그리고 커피로 아침 식사를 했다. 식후에 여전히 배가 차지 않은 느낌이어서 식탁에서 자리를 뜨기가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의도적으로 의식을 전환하려고 오늘의 일정을 생각하며 사무실로 출근했다. 캘리포니아의 아침은 아직 2월이지만 꽤나 아늑하다. 길에서 느껴지는 아침 햇살과 공기의 질, 땅의 냄새, 그리고 사람들의 옷차림에서 봄의 느낌을 전달받는다.
사무실에서의 일과는 평소와 크게 다름없는 루틴의 연속이었다. 일정을 확인하고, 필요하면 동료들과 대화하며 특정 클라이언트에 대해 컨설팅을 받고, 식후 간단한 팀 회의, 그리고 이어지는 상담과 상담후 해야 하는 상담 문서와 노트 (Progress note) 작성의 연속이었다. 문서와 노트 작성은 가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작업이라서 나는 그 일들을 최대한 밀리지 않도록 바로바로 하는 편이다. 노트 작성을 마치고 시간을 보니 저녁 시간이 가까워져서 해가 천천히 지려고 하고 있었다. 아직 해는 짧아서 6시가 되기도 전인데 많이 어두웠다. 이제 마지막 내담자하고의 세션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천천히 커피를 마시며 그 내담자의 기존 상담 노트를 다시 읽으며 상담 계획을 짜보았다. 이런 상담 계획을 짠다고 해서 늘 상담이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상담사로서 이 정도의 준비를 하지 않고 상담에 임하는 것과 준비를 하고 임할 때는 뭔가 상담 세션의 출발점이 달라지는 느낌이 들어서 이런 준비를 꽤 많이 하는 편이다.
약속된 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 노크 소리와 함께 내담자가 살짝 미소를 띠며 들어왔다. 내담자는 50대 중반의 여성으로 두 아이의 엄마이며 오랫동안 자신의 직업을 갖고 워킹맘으로 성실히 살아온 분이다. 남편과의 관계는 나쁘지는 않지만 좋지도 않은 관계이고, 아이들은 대학생으로 캘리포니아에서 다소 먼 다른 주에 살고 있다. 이 내담자와는 그동안 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매주 상담을 이어오고 있다. 늘 미소를 짓고 계신 편인데, 그동안 살아온 여정과 최근에 겪고 있는 일들을 마주하며 힘들어하는 내담자의 감정과 경험들을 듣다 보면 '어떻게 그렇게 힘들과 외로웠을 텐데 이렇게 밝은 표정을 보일 수 있는가?' 하는 궁금증도 생긴다. 그분의 미소는 여타 직업적인 의무감으로 고착된 그런 미소도 아니고, 일부러 밝게 보이려고 노력해서 보여주는 그런 미소도 아니다. 말 그대로 자연스럽고 편안한 미소다. 그래서 내담자의 힘들었던 경험과 고통스러운 감정, 그리고 그 내담자가 보여주는 그런 외적 느낌들 간의 격차에 대해 나는 많이 궁금하기도 했고 다소 우려도 되었다.
내담자는 10대 후반에 미국으로 와서 말 그대로 많은 고생을 했다. 어쩌면 이 한마디로는 사실 내담자의 지난날의 역사와 경험을 너무 사소한 것으로 느껴지게 만들 수도 있다. 나는 이 내담자와 상담을 마치면 거의 매번 그 내담자를 향해 깊은 존경심과 고마움을 느끼기도 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었도 이 분은 자신의 지킬 가치를 지켜왔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타인과 세상에 대한 믿음과 애정, 그리고 양심이다. 나이가 들면서 이런 가치들을 꾸준히 지켜나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이런 분들을 이렇게 나의 내담자로 만나게 된 기회에 대해 고마움을 넘어 감동을 느끼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내담자는 그동안 가까웠던 사람들, 믿었던 사람들, 또는 아꼈던 사람들에게 배신이나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족들은 내담자에게 감정적으로나 재정적인 부분에서 많은 의지를 하는 편이다. 내담자는 사람들이 본인이 그들을 대우했던 것에 비해서 본인의 기대와 다르게 반응하고 오히려 실망스럽게 대하기도 하는 모습들에서 크고 작은 상실감을 꾸준히 받아왔다. 하지만 내담자는 참 많이 외롭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을 텐데 그냥 묵묵히 앞으로 전진해 왔다. 어떤 힘과 소스가 내담자를 계속 이끌어왔는지가 궁금하기도 했다. 무엇이 내담자의 삶의 동기며, 의미, 그리고 희망이었을까?
내담자는 의지적으로는 그런 전진을 스스로 꾸준히 해올 수 있었겠으나, 다른 면에서는 내담자의 몸과 감정은 어떤 임계점을 넘어선 느낌이었다. 그런 것들이 내담자의 신체 증상을 통해 나타나기 시작해서 상담소를 찾게 된 것이다. 내담자는 언제부터인가 깊은 양질의 수면을 하기 어려웠고, 식욕이 줄었으며, 쉽게 피곤해졌고, 가끔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분노를 느낀다고 했다. 그리고 내담자는 실망스럽고 버거운 삶에서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서 책임감과 의무감을 계속 재점검하며 자신을 이끌어왔다. 가끔은 누가 봐도 내담자는 그럴 필요가 없고 그 내담자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이 잘못을 한 것이 너무나 명확한데도 말이다.
지난 6개월여간 그런 내담자의 스트레스나 문제에 대한 대처 방식과 내담자가 스트레스나 삶의 상처, 상실감 등의 고통을 소화해 온 패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자신이 받은 감정적, 정신적인 고통과 상처를 사실 누구에게도 속 시원히 털어놓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자신만의 가치나 철학과 연관 지어 나름 체계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상담 시 나는 상담사로서 그런 내담자의 모습에서 깊은 연민과 공감의 느낌이 공명되는 느낌을 자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공명적 연대감을 내담자도 느끼는 것을 나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지난 6개월간은 내가 상담 시에 내담자의 말을 듣느라 내 말을 거의 하지도 않았다. 또한 나는 그동안 내담자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별 다른 상담기법을 굳이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상담이 시작되어 약 5분이 지난 시점부터는 내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들려주었기에 굳이 그 흐름을 멈추고 싶지도 않았고, 그런 과정이 내담자의 몸과 마음에 꽉 차있는 압력과 부정적 감정을 내보내는데 도움이 된다고 믿어서 나는 내담자의 바로 앞에 앉아 그녀의 삶의 공감적 목격자로서 상담사의 역할을 하려고 했다. 물론 가끔 필요하다 싶은 타이밍에서는 내가 알고 있는 기법 중에 도움이 될만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접근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그다지 주효하게 적용되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마치 양궁선수가 과녁의 빨간색 정중앙 부분을 노리고 최선을 다해 활을 쏘았는데 정중앙에서 벗어나 노란색도 아니고 파란색도 아닌, 겨우 과녁판 끝의 하얀색 종이 부분정도에 화살이 겨우 꽂히는 느낌정도였던 것 같다. 게다가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단순하게 보였던 이슈나 내담자의 심연이 더욱 복잡해 보였는데, 그에 더해 그 안에 자욱한 안개가 끼어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이분에게 지금 가장 주효하게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는 더욱 애매해지기도 했다.
확실한 것은 내담자는 매우 지쳐 있으며, 외롭고, 어려운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계속 돌아보며 점검하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최선의 의지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일단 당장의 심리적인 부분에 대한 접근보다는 신체증상에 대한 개선이 보다 쉽겠다는 생각에 그동안 수면을 돕기 위한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고, 적절한 셀프케어를 통한 스트레스 해소, 그리고 내담자 본인이 좋아하는 음식들을 리스트에 적어서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먹도록 제안해 오기도 했다. 다행히 그런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내담자는 최소한 육체적 피로감은 예전보다는 많이 개선된 상태이다. 하지만, 이제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갈 타이밍이기도 했다.
나: 지난 한 주 셀프케어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 시도한 것들이 있나요?
내담자: 글쎄요,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그렇게 해볼 만한 취미나 셀프케어 방법이 떠오르지는 않아요. 그냥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친구를 만나 카페에서 차 한잔 마시면서 나름 여가 시간을 보낸 것 같아요.
나: 그러시군요. 그래도 예전에는 그런 것들을 별로 생각하지 않고 지내셨는데 점차 내담자님 스스로 그런 노력을 하려고 하시는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내담자: 네, 저도 계속 다른 방법들을 생각하는데, 시간이 없다기보다는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별로 안 드는 것 같아요. 제가 문제가 있는 거겠죠? 제가 미련한 걸까요?
나: 저는 내담자님에게 문제가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미련한 것은 더더욱 아니고요. 셀프케어나 스트레스 해소에 대해 별로 생각을 하지 않고 오랫동안 살다가 갑자기 이런 변화를 만드는 것이 어려운 것은 내담자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다른 내담자들도 그렇게 느낍니다.
내담자: 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뭔가 안도가 되네요. 아무래도 제가 저에게 관심을 조금 더 갖고 제가 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아요.
나: 노력이요? 무슨 노력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조금 더 말씀해 주실래요?
내담자: 제가 그동안 제 스트레스나 감정적인 어려움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한 것은 사실이니까... 이제 그런 부분을 더 생각하고 더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게 아무래도...
나: 음... 제가 볼 때는 내담자님께서는 최선을 다하고 계시는데요... 지금까지 그래오셨던 것처럼. 제가 볼 때 내담자님은 도덕적 기준이나 책임감의 수준이 굉장히 높은 분이십니다.
내담자: 그런가요? 그래도 가끔 저는 제가 뭔가를 부족하게 했거나 그래서 내가 더 분발하면 나 자신이나 타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나: 네, 그렇게 생각을 하시는 이유는 저도 잘 알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혹시 내담자님은 본인의 너무 높은 이상적 가치를 준수하는데만 몰두하고 계신 것은 아닐까요? 음, 가끔씩이라도 그냥 평범하게 살면 어떨까요?
내담자: 평범하게요? 음, 평범하다는 것을 무슨 의미로 말씀하시는 것이죠?
나: 지금 상황에서는 그냥 말 그대로 내담자님이 너무 높은 기준대로만 살려고 하지 말고 가끔은 평범한 사람으로서 화가 나면 화도내고, 아프면 아프다 말하고, 남에게 베풀고 호의를 계속 지키기가 어려우면 그런 행위를 잠시 멈추면서 본인 스스로에게 일종의 쉬어갈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는 거라고 하면 될 것 같아요.
내담자: 아, 그래요. 하하. 저도 평범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더 기준을 낮춰보는 것, 기준을 더 낮추어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은 아직 깊이 해보지 않았네요.
나: 덧붙이자면, 저는 내담자님의 그런 선한 의지와 자기 고찰을 통해 자신의 이상적 가치를 꾸준히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점을 매우 존경합니다. 때로는 매우 고맙기도 합니다. 제게도 희망을 주거든요. 하지만, 그런 내담자님께서 그동안 많이 상하고 다치면서 마음속에 상실감과 슬픔이 많은 것 같아서 매우 아쉽기도 합니다.
내담자: 제가 마음속에 상실감과 슬픔이 많은 것은 맞아요. 언제부터인가는 그래서 울음도 잘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도 우리가 상담시간에 했던 이야기를 통해 저는 앞으로 제 자신에게 더 관심을 갖고 저를 지지하기로 했어요.
나: 저는 내담자님이 매우 인격적인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담자: 인격이요? 인격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나: 사람의 개성이나 의견은 상대적인 것이라서 평가하기 어렵지만 인격은 나름 평가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그 사람이 타인과 세상에 대해 얼마나 사랑과 존중, 그리고 믿음을 갖고 성실하게 그들을 대하며 사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을 대충은 알 수 있다고 봐요. 제가 보는 내담자님은 인격이 매우 높은 분이고, 그래서 본인 스스로의 그런 언행이 너무 당연한 것이죠. 하지만 다른 분들은 그렇지가 않기에 내담자님을 실망시키거나 혼란스럽게 하거나 나아가 화가 나게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내담자님은 본인이 인격 수준이 꽤 높다는 것도 자각을 못한 채 살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많이 들어요.
내담자: 나 스스로를 인격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은 조금 부끄럽기도 한데요. 인격을 자각을 할 수는 있어도...
나: 음... 네, 이해합니다. 그런데, 저는 내담자님이 느끼고 있는 상실감은 내담자님의 인격의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내담자님에게 관심을 갖고 스스로를 지지하기 위해서라도 그것을 알아주시면 좋겠어요.
내담자: 내 상실감이 내 인격의 증거라고요?
나: 네, 그런 생각이 드네요. 물론 상실감에도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최소한 내담자님께서 가슴에 품고 있는 그런 류의 상실감들에게 대해서는요.
이후, 내담자는 다소 긴장이 완화된 듯, 살짝 미소를 지을 듯 말듯한, 그리고 뭔가 마음의 실타래가 살짝 풀린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어쩌면 내담자는 나의 말을 이해했는데 스스로 "내 상실감은 내 인격의 증거입니다"라고 말하기가 어색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재력, 성과, 외모 등의 가치는 다소 쉽게 자랑하고 내세우는데 왜 자신의 인격에 대해서는 그렇게 구체적인 자긍심을 갖고 그것을 자각하거나 내세우지 않는 것일까?
내담자는 상담을 마무리하면서 오늘 자신은 상담사인 나의 경청과 공감적 이해도 물론 고마웠지만, 무엇보다 "평범한 사람", 그리고 "내 상실감은 내 인격의 증거"라는 말들이 많이 와닿았다고 전했다. 그렇게 상담에 집중하며 그래도 내담자가 도움을 받은 부분이 없지는 않았다는 생각에 나 역시 기분이 좋아졌다. 세션을 마치며, 나는 내담자와 다음 세션에는 가족들과의 대화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필요하면 롤 플레이를 통해 간단히 실습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나는 내담자를 문까지 배웅한 뒤 자리로 돌아와 그녀와의 상담을 돌이켜 보며 노트를 작성했다. 노트의 마지막 문장을 타이핑하고 '제출' 버튼을 누른 뒤 옷을 입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어느새 밤이 되어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발렌타인 데이라서 그런지 길에는 평소보다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나름 기쁜 날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은 대부분 표정이 밝았고 환하게 웃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의 그 내담자도 저렇게 자주 웃는 사람인데, 앞으로는 그녀가 더 자유로워지고 스스로 자긍심을 갖는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는 어쩌면 마음속에 내면화된 이상적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너무 우리 자신에게 숨 쉴 틈도 없이 철저하게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런 우리들의 마음속에 위로와 격려를 재생시키는 여지와 공간을 만들려면 일단 우리 자신의 그런 수고와 의지를 인정해 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퇴근길이다.
나는 길거리의 사람들, 그리고 운전석에 앉은 나 자신을 향해 말했다.
"당신들의 상실감은 당신들의 인격의 증거입니다"
"나의 상실감은 나의 인격의 증거이다"
"우리 평범하게 살아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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