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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부메랑 Feb 26. 2024

제품적 인간으로 살기보다

내담자를 통해 나와 우리, 사회를 돌아보다

 봄이 오기를 기다렸다. 지난 겨울은 내게 유난히 울적하고 스산했다. 자궁암으로 투병하던 나의 누나는 점점 야위어 가며 본인의 형체를 잃어버리다가 지난 11월 어느 날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났다. 나는 한국에 있던 누나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다. 다만 누나의 몸무게가 20킬로대로 급격히 줄어들어 뼈대만 앙상히 남았다는 말을 주변 가족들로부터 전해 들었다. 누나와는 마지막이 될 만한 뚜렷한 대화도 하지 못했다. 나와 누나의 관계를 단지 누나와 남동생의 관계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우리의 관계와 추억들을 의도치 않게 과소평가해 버리는 느낌이 들정도로 우리는 각별한 관계였다. 그래서 나는 누나와 나의 관계는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라고... 영원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누나와의 사별을 통해 내게 남겨진 감정은 슬픔이나 충격, 또는 상실적 비애감 같은 감정보다는 뭔가 텅 빈 비현실감 같은 것에 더 가깝다. 그리고 그것을 채우고자 나는 나의 다른 일상에 일부러 더 몰입했다. 지난 몇 달간, 그런 비현실적 삶의 전환 속에서 왜인지 눈물도 나지 않았다. 부모님은 애써 티를 내지는 않으시지만 자식을 잃고 망연자실의 매일을 보내고 계신다. 나는 이제 어떻게 삶과 가족, 그리고 세상을 새롭게 이해해야 할까? 앞으로 어떻게 내 삶의 역할과 의미를 재구성해야 하는 것일까? 



주변에서 보이는 나뭇잎이 생기를 되찾고, 꽃잎들이 색감을 내세우며, 땅에서 올라오는 봄 특유의 냄새를 나는 그래서 더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의 늦겨울은 초봄에게 그리 쉽게 바톤을 전달해주지 않는다. 지난 며칠간 연이어 내리는 폭우와 바람으로 출근길 운전과 주말 행사, 그리고 나의 저녁 계획 등에 크고 작은 지장이 생기기도 했다. 


5일이 넘는 폭우가 비바람으로 다소 기분이 침체된 채 아침을 맞았다. 오늘은 화요일이다. 아침 샤워를 마치고 커피원두를 갈고, 필터에 소복이 담고, 끓는 물은 천천히 붓고, 여과되어 나오는 고소한 향기의 커피를 바라보니 기분이 뭔가 채워지는 느낌이 들면서 위로가 되었다. 깊이 심호흡을 하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검은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었다. 식탁으로 와서 삶은 달걀, 들깨 소스로 버무려진 샐러드, 삶은 고구마, 그리고 당근을 메뉴로 아침식사를 했다. 충분히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배가 절반도 차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나머지는 커피로 채워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커피를 크게 한 모금 마셨다. 출근 전 커피를 마시며 하루 일정을 점검하는 것은 내게 매우 중요한 루틴이다. 일정을 점검함으로써 나는 단순히 업무 리뷰를 떠나 그 날 하루에 대한 에너지와 동기를 얻기도 하며, 어떨 때는 심리상담사로서의 정체성을 마음 속에 다시 한 번 되새긴다.



예상대로 출근길은 쉽지 않았다. 웬일인지 비는 더욱 거세게 오고 있었고, 비 때문인지 도로 여기저기에 파인 곳들이 생겨나서 차들은 평소보다 더 천천히 달려야 했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날씨 때문에 지각하는 동료들도 여기저기 보였다. 오늘 오전에 예약된 첫 상담도 내담자가 비 때문에 오기 힘들다고 하며 취소를 했다. 오늘 하루만 해도 비 때문에 거의 절반의 상담이 취소되었다. 오늘 취소되지 않고 남아있던 예약된 상담 중에서 2건은 내담자들이 직접 상담소로 오지 않고 온라인으로 화상 상담을 하자고 요청해서 사무실 컴퓨터를 통해서 화상 상담을 진행했다. 화상 상담을 마치고 프로그레스 노트를 작성하며 보니 남은 상담은 두 건이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취소되어서 실제로 마지막 상담이 하나 남게 되었다. 오늘은 사무실에서 실제로 대면하면서 상담을 진행한 상담은 오전에 한 건, 그리고 이 마지막 상담 이렇게 총 두건이다. '혹시 이 상담도 시작 전에 내담자가 내게 연락해서  상담을 취소하거나 온라인으로 상담을 하자고 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무실에서 만나서 직접 서로를 바라보며 대면 상담을 하든, 컴퓨터로 온라인 화상 상담을 하든 다 상관없다. 다만 스케쥴이나 상담 방법을 급히 변경하려면 최대한 빨리 연락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동료들도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많은 내담자들이 예약된 상담을 취소하거나 스케줄을 변경하거나, 온라인 상담을 요구했다. 상담이 많이 취소되거나 남은 상담을 집에서 온라인 상담으로 해도 되는 예약만 남긴 동료들은 점심을 먹은 뒤에 바로 집으로 퇴근하기도 했다.     


사무실에 앉아 내담자들의 서류를 작성하고 완성된 서류들을 리뷰하고 있었다. 창 밖으로 내리는 비는 여전히 거세서 빗소리가 사무실 안으로까지 전달되기도 했다. 휴게실에 보니 끓인 지 얼마 안 된 여전히 뜨거운 커피와 버터 쿠키가 준비되어 있었다. 원래 요즘에는 과자류를 안 먹었는데, 한 달이 넘도록 과자를 안 먹었으면 오늘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쿠키를 먹었다. 많이 친숙한 맛이다. 그리고 연인어 커피를 컵에 따라서 마셨다. 그리 뜨겁지 않아서인지 원두의 종이 달라서 그런지 목 깊이 부드럽고 향기롭게 넘어갔다. 빗소리를 들으며 쉬고 있으니 왠지 이완이 되면서 졸렸다. 그렇게 의자에서 연신 하품을 하고 있을 때 사무실 문을 누군가 노크했다. 오늘의 마지막 내담자였다. 내담자는 그의 엄마와 함께 들어왔다. 나는 내담자를 나의 사무실로 안내했고, 상담 중에 대기실에서 기다릴 내담자의 어머니를 위해 커피와 쿠키, 그리고 캐러멜을 준비해서 그 분께 드렸다.



내담자는 10대 후반의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한국계 남자 청소년이다. 그는 부모님과 함께 파사데나에 거주하고 있는데 인근 사립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그는 키가 꽤 컸고, 누가 봐도 훤칠한 외모를 가진, 그런 건장한 청소년 내담자다. 내담자는 약 3개월 전에 수면 문제를 비롯한 우울증 증세를 보인다고 느낀 내담자의 어머니에 의해서 나와 연락이 닿아서 지금까지 매주 한 번씩 상담을 하고 있다. 내담자의 아버지는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고, 어머니는 소규모의 사업을 하고 있으며 내담자에게는 남동생과 여동생이 한 명씩 있다. 이런 부분만 본다면 내담자는 유복한 환경에서 큰 어려움 없이 자랐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도 내담자는 매우 지쳐 보였고, 마음 속에 분노랄까 혼란일까 그런 감정들이 많이 차있는 느낌이 들었다. 세션 중에는 상담사인 나를 외면하고 거의 쳐다보지 않고 바닥을 보거나, 사무실 벽 또는 창문을 보며 말을 했다. 목소리에도 밝은 기운이 별로 없었고, 목소리 톤은 변화 없이 단조로운 톤으로 내가 묻는 질문에만 거의 단답형으로 답을 하며 대화를 겨우 이어갔다.  


지난 세션동안에는 그런 내담자에게 뭔가를 자연스럽게 유도해서 말을 하게 하고, 그가 가진 이슈나 문제를 알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내담자와의 라포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그 나이의 남자 학생이 갖고 있을 법한 취미나 관심사, 그리고 꿈 등에 대해 공감대를 느끼려고 그런 것들을 유도할 만한 질문들을 하며 세션을 많이 진행했다. 하지만 내담자는 아직까지도 마음의 문을 활짝 열지는 않은 느낌이었다. 아니, 마음의 문이 열리지 않고 있어서 본인도 답답해하는 것이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는 내담자를 조급하게 푸쉬하면 안 된다. 가끔은 서로 말없이 침묵을 지키며 있어도 괜찮다. 그런 침묵과 약간의 간단한 대화, 그리고 비언어적인 요소로 진행되는 교류를 내가 최선의 의도와 기대를 가지고 하다 보면 마치 라디오 주파수가 잘 안 잡혀서 지지직 거리던 라디오가 갑자기 주파수가 잘 잡히며 선명한 소리로 음색을 내는 것처럼 나와 내담자의 상담도 드라마틱하게 새로운 상황으로 반전되기도 한다. 상황을 보아가며 나는 내담자가 여전히 이 세션의 주인공이고 나는 내담자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것을 내비치며 그를 계속 격려했다. 대화 주제를 소소한 일상에 대한 것들에 대한 것부터 시작해서, 점차 상담 목적에 관련된 주제로 대화의 초점을 옮겨갔다.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몇 가지 질문을 하고 내담자가 답하고 싶은 부분이나 질문에 대해서만 대답하도록 격려했다. 


이렇게 날씨도 안 좋은데 저녁에 상담을 하러 와준 내담자에게 고맙기도 했다. 그리고 내담자가 다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내담자도 자신을 최대한 존중하고 배려하며 마음속에 일종의 여유와 공간을 갖도록 노력하는 내 모습에 약간의 고마움은 느끼는 것 같았다. 약 40 분여의 시간이 흘렀을까? 대화가 계속 겉도는 것 같았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나도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냥 그 아이가 피곤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내게 뭔가를 말하기에는 아직 내가 불편하게 느껴져서 일 수도 있고, 아이가 자신의 문제점이나 감정 등을 스스로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워서 일수도 있고, 그 외 어떤 이유이든...... 가능한 이유는 많다.


큰 진전 없이 상담이 마무리 될 것 같았다. 진전이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담사로서 그런 진전 (progress)를 느끼는 것도 아주 가끔씩은 상담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상담을 진행해 가면 될지 생각할 때 중요한 단서를 주기도 한다. 그래서 3개월 여가 지나가는 이 시점에서는 지금 나와 내담자가 어디까지 왔고 어디로 가면 좋을지 생각하려면 그런 진전에 대한 구체적 파악이 일종의 체크포인트가 된다. 오늘은 그런 진전을 구체적으로 못 느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냥 내가 내담자를 더 알기 위해 노력했고, 그 아이와의 시간을 소중히 여겼고, 또 그 아이를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해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다면, 그 아이도 그런 내 마음을 조금은 느꼈을 것이다.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상담을 마무리하려고 했다.


나: 자, 이제 오늘 상담에서 했던 말들을 요약해 볼까?

내담자:......

나: 혹시 아직 하지 못한 말이나 질문이 있으면 해도 돼.

내담자: 저는 3년 뒤 제 모습이 정말 궁금해요...

나: 3년 뒤... 어떤 모습? 더 자세히 말해 줄래?

내담자: 잘 지내고 있을까요 저는?

나: 음... 건강적인 측면을 말하는 거니?

내담자: 건강도 그렇고, 학업도 그렇고, 부모님과의 관계, 그리고 그냥... 다요... 앞이 보이지 않아요

나: 어떤 말을 하는 것인지 조금은 알 것 같구나. 알려줘서 고마워. 네가 그렇게 말하니 네가 지금도 얼마나 힘들고 불확실함 속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많이 느껴지는구나.

내담자: 저는, 그냥 다 싫고 혼란스러운데요

나: 다 싫고 혼란스럽다? 뭐가 그렇게 싫으니?

내담자: 저는 자유가 없어요 자유가...... 제 일주일, 한 달의 스케줄은 다 엄마가 짜고 있고...... 아빠는 제 꿈은 인정을 안 해요... 나도 꿈이 있는데... (울기 시작한다)

나: 아... 자유가 없고... 참 답답하고 그렇겠네...

내담자: 저는 기계가 아니라고요. 평생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내담자는 3개월 만에 처음으로 내게 본인의 속마음과 감정을 전했다. 아이는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계속 울었다. 나는 아이의 울음을 바라보며 아이의 많은 감정과 공명했다. 아이가 몇 분 뒤 울음을 그칠 때 나는 아이에게 티슈를 건네고 아이의 어깨를 다독였다. 나도 마음 속에 느껴지고 할 말은 많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시계를 보고 상담 시간이 다 된 것을 알아 챈 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제 가봐야 해요, 고맙습니다"라고 말을 했다. 그 때 나는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E (내담자의 이름 이니셜), 너 말대로 너는 사회의 제품으로 살지 않아도 돼. 너의 삶을 살아. 이야기해 줘서 고마워...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


아이는 내 말을 듣고 나를 잠시 멍하니 바라봤다. 내가 한 말의 어느 부분 때문에 마음 속에서 작은 호기심이 생겨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냥 인사를 하려고 그렇게 본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아이를 대기실에 앉아있던 어머니에게 바래다주며 비 오는 길 안전 운전하고 잘 돌아가시라고 인사를 전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내담자 E는 버거운 삶을 살고 있다. 그의 부모님은 교육열이 매우 높은 분들이고, 아이가 미국 아이비리그를 거쳐 아버지처럼 전문직을 갖고 살도록 매일 아이를 푸쉬하고 있었다. 물론 이것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을 수 도 있다. 하지만 아이의 부모가 마치 사람도 학벌, 직업, 수입, 사회적 위치 등에 의해서 제품화해서 이해하는 것이 당연한 듯이 이해하고 있고 그 가치관을 E에게 부여하고 있고 부모님과 E사이에 그것이 큰 저항과 충돌로 자리 잡아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도 지역에서 공부를 꽤 잘하는 아이들이 모여서 공부하고 경쟁하던 곳이었다. 매일 밤 10시까지 자율학습을 했고, 고3 때는 일요일과 명절 때도 나와서 밤 12시까지 자율 아닌 자율학습을 했었다. 그런 우리에게는 각자 꿈이 있었다. 물론 그 꿈이란 것이 당시 대학 배치표에 나온 대학 순위를 참고로 마련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 배치표에서 대학과 학과 간 점수 1~2점으로 나뉘는 그런 간극은 당시 우리에게 꽤 크게 느껴지기도 했다. 마치 철사 끝에 달콤한 목표물을 붙여놓고 그 철사를 머리띠에 달아 우리들의 머리에 두르고 그 목표물을 향해 매일 돌진하던 것처럼 우리는 매일 밤늦게 그렇게 달렸다. 마치 "저것만 달성한 뒤에는 편하고 즐겁게 살면 돼"라는 공동의 인식과 기약된 약속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지금도 가끔씩 우리는 동창회를 통해서 친했던 동창들을 만난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자신들의 삶에 자족하며 사는 친구들도 있지만, 내 눈에 보이는 우리들은 대부분 아직도 머리에 그 목표물을 붙여놓은 철사 머리띠를 달고 아무리 달려도 만지거나 도달할 수 없는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는 우리들이다. 그런 우리들이 우리의 노력과 가치, 삶의 주요 의미를 측정할 수 있는 것은 공동의 가치인 재력, 사회적 지위, 명예 등인 경우도 매우 많다. 마치 제품적 인간들처럼.


경쟁이 필요한 자본주의시대를 사는 우리가 그런 인식을 갖고 열심히 사는 것, 그리고 그런 마음가짐과 필요를 알려주는 부모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나는 그들의 선택과 결정을 존중한다. 그들의 삶은 그들의 것이고 그들은 자신들이 자신들에게 가장 최적화된 삶의 전략을 본인들의 가치와 경험에 기초해서 세워가고 있다. 다만, 가끔씩, 아주 가끔씩이라도 잠시 멈춰서 자신들의 현재 위치와 상황을 다른 각도에서 한 번쯤은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싶다. 나는 각 분야에서 소위 성공해서 많은 부와 명예를 얻은 내담자들도 종종 만나왔다. 그들이 직면한 인간의 고민과 문제 앞에서 그들이 이뤄낸 부와 명예는 그다지 효율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상담을 하며 그 내담자들은 자신들이 오랫동안 자본주의의 시스템과 틀에서 나름의 성공과 성취를 연이어하면서 자신들의 시야와 가치관이 일종의 포화상태 (Saturation)를 거치며 딱딱해지고 마음에 여유 있는 공간이 적어져 왔음을 뒤늦게, 때로는 아주 뒤늦게, 느끼고는 했다. 노력과 경쟁을 통해 극단으로 가면 어떤 면에서는 극단의 보상과 희열을 느낄 수 있으나 그만큼 다른 부분이 소홀해질 수 있다는 것을 자주 느꼈다. 내가 상담을 하며 가끔 느끼는 아쉬움과 슬픔은 이 사회에 그렇게 사람을 제품화시키고 사람을 비교의 틀에서 평가하게 만드는 담론의 틀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벌주의, 능력주의, 성차별주의, 외모주의, 인종주의, 지역주의 등...... 이런 담론의 교차 속에 나를 비롯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각자 어떤 교차점에 서서 그런 천편일률적인 담론과 가치들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그런 담론들에 대해 자기 자신만의 잣대와 고찰을 하며 그런 것들을 무너뜨리고 자신이 새롭게 발견한 가치와 의미로 자신만의 우주를 만들어야 하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내담자 E가 이렇게 상담을 통해 나와 만나 자신은 "기계"가 아니라고 자신의 내적 저항과 문제점을 파악하고, 그런 부분을 앞으로 더 이야기하게 된 것은 E에게 남들보다 보다 빨리 주어진 좋은 고찰과 자신으로서의 성장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본다. 



E는 본인의 캔버스에 이미 자신이 그리려고도 하기 전에 부모님이 뭔가를 잔뜩 그려놓아서 혼란스럽다. 그리고 그런 그림이 본인을 벅차게 하고 기가 죽게 만든다. 이제 E는 그 캔버스를 깨끗이 지우고 본인이 그릴 그림을 선택하며 뭔가를 새롭게 그려나갈 것이다. 그의 목소리와 의지가 부모님들에게도 잘 전달되고 허용되기를 바란다. 그가 이제부터 주체적으로 그려나갈 캔버스의 새로운 그림이 기대된다.  


제품적 인간으로 서로 경쟁하고 비교하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의미와 가치의 그림을 가진 인간으로서 서로 격려하고 돕는 삶.



그것은 먼 옛날 누나가 어린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격려하며 나를 사랑했던 모습을 충분히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또한 나를 설레게 하고 내가 몹시 그리워하는 내가 회복하고 싶은 이상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누나를 다시 만날 때까지 이 세상에서 노력하며 추구할 내 삶의 남은 목표와 의미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좋은 밤 보내 E, 오늘 고마웠어. 무엇을 하던 너의 꿈과 미래를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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