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닥터 부메랑 Nov 15. 2020

심리상담을 하는 이유에 대한 고민

누구나 상담이 필요하다

토요일 아침부터 비가 세차게 내렸다. 비가 내리는 분위기를 꽤나 좋아하는 나는 캘리포니아로 이사 온 뒤로 비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강하게 내리쬐는 빨간 태양과 야자수, 그리고 파란 하늘도 좋지만, 가끔은 비가 내려서 건조한 공기와 뜨겁게 달아올라 지치려고 하는 내 마음을 식혀주고 적셔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생겨간다.



새벽 6시 30분에 알람에 맞춰 일어나니 비가 꽤나 강하게 내려서 창문에 부딪치는 소리가 후드득하고 울려 퍼지고 있었다. 창문 밖을 보니 어찌나 비가 많이 오는지 바닥이 까맣게 보였다. 몇 달만에 이런 비를 경험하는가. 잠시 마음이 해갈되는 느낌을 만끽하다가 샤워실로 들어가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부엌으로 가서 간단하게 아침을 만들었다. 언제나처럼, 계란후라이와 베이글, 크림치즈, 그리고 블랙커피와 사과가 아침메뉴다. 비가 내리는 창 옆에 앉아 베이글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것은 내게 꾀나 고무적인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커피를 마시며 하루 일정을 점검하고, 어떤 내담자와 몇 시에 어디에서 상담을 하는지 살펴보고, 각 내담자와 오늘 진행할 세션에서 무슨 주제나 이슈에 대해 어떤 질문을 하고 어떤 방향으로 내담자와 협력해 갈지를 잠시 생각해 보았다.



오늘의 첫 세션은 70대 여성으로  LA 인근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분이었다. 그리고 상담은 오피스에서 만나서 진행하는 대면 상담(Face to Face Counselig)이 아니라 전화를 통해서 상담을 하는 전화 상담 (Teletherapy)로 예약이 되어 있었다. 코로나 이후 상담사와 내담자 상호의 안전을 위해 이런 식의 전화 상담과 페이스타임이나 줌, 스카이프 등을 통해 상담을 하는 Teletherapy가 많이 활성화되었다. 대면 상담과 비교해 보면 분위기나 효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두 가지 방식을 비교해 보면 장단점이 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의 텔레세라피는 서로 이동할 필요가 없어 서로 시간과 교통비를 절약해 주고, 둘 중에 한 명이 몸이 불편한 경우에도 비교적 쉽게 상담을 할 수 있다는 점, 상담소를 방문하는 것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불편해하는 분들에게 부담을 줄여주는 점, 그리고 요즘같이 코로나 같은 전염병이 있는 상황에서 서로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 있다. 하지만, 전형적인 대면 상담에서 느낄 수 있는 상담사와 내담자 간의 직간접적 감정교류의 효과를 그만큼 느끼기 어려울 수도 있고, 인터넷 시그널이 약해지거나 불안정할 때는 적절한 상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거나 방해받기도 한다. 그리고 자칫 잘못하면 상담의 장면이나 내용이 타인에게 노출될 수도 있어서 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중 하나인 내담자의 기밀 (Confidentiality)가 훼손될 우려도 있다. 어쨌든 오늘 오전에 예약된 상담은 모두 텔레세라피로 예약이 되어있어서 이런 비가 오는 가운데 내 방에서 상담을 해도 된다는 생각에 포근한 느낌마저 들었다.



예약시간인 오전 9시 30분. 집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상담을 하는 것이지만, 프로페셔널한 자세는 유지해야 하므로 옷차림은 평소처럼 단정한 세미정장으로 입고 내담자를 기다렸다. 이 내담자는 연세가 있어서 전화로 상담하는 것을 선호하셔서 내가 전화를 걸어서 상담을 시작하면 된다. 신호음이 약 5번 정도 울리자 전화를 받았다. 내담자는 현재 딸의 집에서 살고 있다. 한국에서 딸과 아들을 뒷바라지해서 키우시고, 자녀들을 미국으로 유학보내서 유학자금까지 대주셨다. 하지만, 사업을 하던 남편은 사업을 통해 별다른 이득을 못 본채 몸이 쇠약해져서 병을 앓다가 몇 해전 세상을 떠나셨고, 모아둔 돈이 없던 내담자는 결국 딸의 집으로 와서 머물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내담자는 평생을 전형적인 한국 어머니들의 역할을 하면서 위로는 어른들을 모시고, 아래로는 자식들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했는데, 나이가 들어서 수중에 남은 것이 없고, 갈 곳없이 딸의 집에서 머물게 된 자신의 모습을 한탄했다.


"나는 샌드위치 세대예요, 어른들은 성심성의껏 모셨고, 아이들을 그렇게 열심히 키웠는데...... 이제 아무도 내게 신경을 안 써요"

"내 아들은 제게 연락을 잘 안 해요...... 무슨 오해가 있는 것인지...... 나름 연구원으로 잘 살고 있기는 해요...... 그런데 제가 먼저 연락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딸도 내게 잔소리를 자주 해요...... 엄마 밖에 나가지 말라고...... 엄마 몸에 무리가 올 수 있으니 설거지 하지 말라고...... 제게 자유가 없어요...... 사위 보기도 어색하고 불편해요"


내담자는 이런 말들을 수화기 너머의 나에게 한 마디씩 툭툭 던졌다. 대면 상담과 전화 상담의 가장 큰 차이라면 전화는 오직 목소리의 내용에만 집중해서 듣게 되기에, 그 단어 하나가 주는 울림과 파장이 크다는 것이다. 내담자는 가끔 깊이 한숨을 쉬기도 하고, 가끔은 서럽게 울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상담사로서 할 수 있는것으로 내가 내담자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는지를 최대한 자세한 단어와 정중한 어투로 표현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것이 생각나지 않았다. 몇달 전 처음 이 내담자와 상담을 처음 시작할 때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하면 왠지 지금의 모습이 더 많이 지쳐 보였고, 더 화가 많이 나보였다. 목소리에 분노와 절망, 그리고 슬픔의 농도가 배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내담자의 이야기를 듣다가 세션을 10분여 남긴 상황이 되었다. 이대로만 세션을 진행하기에는 뭔가 밋밋한 것 같아서 나는 물었다.


"선생님, 외로운 상황에서 혼자 힘들게 분투하고 계신 것 같은데,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참 얼마나 힘드실지 상상이 됩니다. 그런데, 일주일 중에 가끔 기분이 좋았거나 동기부여가 되었던 순간은 없었나요?"


그러자 내담자는 다소 퉁명 맞은 목소리로

"기분이 좋거나 동기부여가 될게 뭐 있겠어요?"

라고 답했다.


"그래도 선생님의 삶을 아주 조금이라도 다르게 만들만한 일들을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그러자 내담자는 화를 내며 말했다.

"상담사님, 제가 지금까지 계속 무슨 말을 했는지 다 들었잖아요? 지금 제 상황 다 아시면서 자꾸 저보고 뭘 해보라고 하면 어떡해요? 저는 아무것도 할 게 없어요"


순간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내 의도가 틀리거나 부적절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담자의 상황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뒤를 이었다. 어쩌면 나는 "상담을 통해 내담자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성장시킨다"는 기본적인 상담의 모토에 너무 깊이 몰입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상담을 받는 나의 내담자들을 한 명 한 명 보면 나와 상담을 하는 이유도 다 제각각이다. 기본적으로 본인의 불안감과 우울감을 낮추고 건강한 삶을 회복하기 위한 변화와 성장을 목적으로 하는 내담자들도 물론 있다. 어떤 내담자는 심리적으로 큰 문제가 없거나, 큰 문제가 해결되어 고비를 넘겼지만 삶이 쓸쓸하고 외로워서 상담을 이어가는 경우도 있다. 그러고 어떤 내담자는 자신의 사고방식이나 삶의 가치관이 얼마나 타당한지를 내게 확인받고자 상담을 한다. 하지만, 이 내담자의 경우에는 그저 상담사가 옆에서 자신을 지지해주고 자신의 삶의 항상성을 유지(Sustaining) 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상담의 가장 큰 목적으로 하고 있다. 순간 '아차'하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내가 내담자와 제대로 튜닝(tuning)되지 못한 것에 대해 순간적으로 반성도 했다.



그래서 내담자의 말을 들으면서 내담자를 위로해 주었다. 내담자도 속으로는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다 알고 있고 다 이해한다고 했다. 그렇게 서로를 다시 위로하며 세션을 마무리하고 있었는데, 내게 짜증을 냈던 것이 미안했던지 내담자가 다시 온화해진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그런데, 선생님도 상담을 따로 받으세요? 선생님은 누구에게 고민을 이야기하세요?"


중요하면서도 흥미로운 질문이었다.


"하하 저는 지금 따로 상담을 받지는 않아요. 그런데 예전에 따로 상담을 받은 적은 몇 번 있어요."

"아, 그러세요? 그렇군요"


그 후 내담자와 다음 주 일정을 예약한 뒤 상담을 마무리했다. 상담이 끝난 뒤 책상 위에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커피가 목구멍을 통해 뱃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그리고 내담자가 내게 화를 내며 했던 말들, 그리고 나의 반성, 심리 상담의 목적에 대한 생각, 그리고 나는 누구에게 고민을 이야기하는지 등에 대해 답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눈알을 굴리며 생각했다. 창 밖에 내리는 빗소리가 시끄러워서 그런지 명확한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나도 코로나 이후 부쩍 급증한 내담자의 케이스 숫자 때문인지 일종의 피로감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이른바 타인을 공감하고 위로하는 것에 대한 피로, 즉 Compassion Fatigue가 느껴지는데, 나도 누군가에게 상담을 받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상담을 받으러 간다면, 그래서 그 상담사가 내담자인 내게 "무슨 목적으로 상담을 받으려고 하시죠?"라고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답할 것인가? 불안감과 우울함을 완화하려고? 외로워서? 아니면 삶의 희망에 대한 단서를 조금이라도 발견하기 위해서?  나의 경우는 이 모든 것이 나의 상담의 이유가 될 것 같다.


그래서 아마도 나는 상담사에게 그냥 이렇게 답을 할 것 같다


"누구나 상담이 필요하잖아요"


식당에 갔는데 어쩐 일로 식당에 왔냐고 묻는 주인이 없는 것처럼, 이발소에 갔는데 왜 여기 왔냐고 묻는 이발사가 없는 것처럼, 상담사도 빨리 내담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파악해서 그것을 채워주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기 위해 상담사가 할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가끔은 상담사가 그저 내담자 옆에 같이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족할 때가 있다는 것을 오늘 오랜만에 다시 느꼈지만 말이다.


====================================================


*닥터부메랑의 유튜브에 방문해주세요^^

많은 관심과 구독 부탁해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a2Hpyxxe7kozsCGldkUTqw?view_as=subscriber






이전 06화 서로가 미리 하지 못한 말과 행동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