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닥터 부메랑 Nov 05. 2021

서로가 미리 하지 못한 말과 행동들

가족을 위해서는 지금 바로 해야 한다

 오늘 오전에는 주로 서류 작업을 했다. 서류 작업은 지루하지만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 없고, 제 때 제출해야 하는 일이기에 나름 신중해야 하는 작업이다. 가끔은 쌓여있는 서류들을 보며 누군가가 이 일들을 대신해 주고 나는 상담에만 집중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화창한 화요일이었다. 보통 케이스가 월요일부터 목요일에 몰려있는 나로서는 화요일이 되면 나름 워밍업이 되는 느낌이 든다. 사무실 창문을 통해 멀리 벌디 산 (Mt. Baldy)가 보였다. 태양 빛이 환하게 비추고 앞으로는 멀리서 큰 산이 뿜어내는 회색빛 돌과 초록색 나무들의 에너지와 기운을 느끼는 것은 점심시간에 내가 만끽할 수 있는 작은 선물 같은 휴식이다.



점심으로 사무실 근처의 화덕피자집에서 피자를 한 판 사왔다. 한 판이라고는 해도 혼자 먹기에도 조금 부족한 양으로 보이기도 하는 사이즈다. 피자에 토핑으로 마늘, 토마토, 치즈, 버섯, 이탈리안 소시지, 시금치 등이 올라가 있는데 어차피 먹으면 그 맛이 그 맛인 것 같다. 피자를 다 먹고 콜라를 한 잔 들이켜니 그제야 조금 정신이 들고 동기부여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에게는 먹는 것도 큰 위안을 주며, 때로는 치유와 해방감을 선사하기도 한다는 생각이 요즘 들어서 자주 든다. 나의 경우, 특히 코로나로 인해서 사람들과의 교류가 급감해버린 요즘 같은 때면 사람과의 관계와 교류에서 느끼던 희열과 훈훈함이 음식을 통해 느끼는 위로와 만족감으로 많이 대체되었다. 다 좋은데 체중과 콜레스테롤이 걱정된다. 이 정도 식사만으로도 체중과 콜레스테롤을 신경 쓰는 나로서는 먹방을 진행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부러운 점이 바로 그들의 체질이다. 그렇게 많이 먹는데 살도 안 찌고 콜레스테롤도 문제가 안 되는 것 같고, 지방간이나 역류성 식도염도 걱정을 안 하는 것 같아서 너무 부럽다.



식사  다음 내담자를 기다렸다. 오후 2시에 예약이 되어있는 42 여성이다. 케이스에 대해 기존에 기록했던 상담 노트들을 읽었다. 노트에 집중하다 보니 커피가 필터를 통해  내려온 줄도 몰랐다.  집중해서 들으려 해야 어차피 커피가 필터를 통해 내려오는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케이스는 나름 흥미로운 케이스다. 사실 오늘 2시에 오는 내담자는 내담자가 아니고 내담자의 어머니다. 내담자는 멕시코계 미국인인 17 고등학교 남학생이다. 전교 1등을 꾸준히 해왔고, 각종 대회에서 수상경력도  있는 아이로 지난 달부터 대학입시 원서를 제출하고 있는데  학교들이 대부분 이름만 들어도 다들 알만한 탑스쿨들이다. 내담자의 상담 목적은 우울증 치료였다.  아이와 지난 7월부터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상담을 할수록 아이의 스트레스 원인이 밝혀졌다. 입시 스트레스, 결과에 대한 중압감, 시간 부족, 체력 부족, 자신감 저하 등이 나타났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다양한 대화를 해왔고, 다행히 아이는 차차 안정을 찾아갔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진짜 문제는 대학입시와 중압감이 아니라 다른 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부모님과의 관계 단절 그리고 대화 부재였다. 아이의 부모님들은 십 대 후반에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온 이민 1세대였다. 그리고 매우 착실하고 성실한 분들이었다. 내담자는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2세로서 부모님에게 나름 섭섭한 점과 상처를 받은 것들이 많았다. 가장 자주 거론 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지난 한 주 어떻게 보냈니?"

"아주 바쁘고 피곤해요......"

"피곤했다고? 음...... 그렇게 보이는구나. 정신적으로 피곤한 거니? 아니면 육체적으로 피곤한 거니?"

"둘다요...... 그런데 정신적으로 더 피곤해요"

"정신적으로? 왜 그런지 더 자세히 말해주겠니?"

"입시결과도 걱정되고"

"입시결과...... 음 또?"

"사실 그런 건 제가 알아서 잘 할 자신이 있어요. 어느 대학이든 가게 될 거고...... 장기적으로 보면 저의 꿈은 내과의사니까 학부에서 기초 전공과정을 마치고 메디컬 스쿨로 가서 그 이후에도 잘할 자신이 있어요"

"음, 그래 나도 네가 잘할 거라고 믿어. 너의 입시에 대해서는 나도 사실 그렇게 걱정은 안 해"

"그런데 부모님이 저를 너무 통제해요. 그리고 제가 1등을 하거나 상을 받아오면 반응이 너무 시시해요. 가령 제가 상을 받으면 하는 말이 "상 받았어? 어 그래" 이 정도예요. 저는 제가 그냥 부모님 통제받으며 공부만 열심히 하는 로봇같아요"

"그런 성취를 했는데 아빠나 엄마가 그렇게 반응하면 당연히 섭섭하고 슬퍼질 것 같구나. 그런 이야기를 부모님께 직접 하는 것은 어떻니?"

"그런 대화는 상상하기도 어색해요. 그리고 부모님은 저와 다른 동생들을 다르게 대해요. 저는 첫째로서 항상 모범이 되어야 해요. 동생들은 막 놀고 떠들어도 관대한데, 저에게는 안 그래요. 제게는 항상 "야, 너 지금 공부하고 있어야 하는데 왜 친구랑 통화하니?" "야, 너 그거 내일까지 해야 하는 건데 끝냈어?" 이런 말만 해서 부모님 앞에 있으면 숨이 차고 답답해요...... 그래서 대학을 빨리 캘리포니아가 아닌 다른 주에 있는 곳으로 가버리고 싶어요"

"그렇구나. 너 말대로라면 집에서 다른 가족들과 함께 있어도 마음이 편치는 않겠는데?"

"그럼요. 그냥 부모님께 그분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고 저는 떠날 거예요, 멀리, 아주 멀리"

"부모님께 뭔가 섭섭한 감정이 많이 쌓여 있는 것 같구나...... 가장 섭섭한 것이 부모님의 차갑고 억압적이고 딱딱한 태도 같은데...... 만약에 부모님께서 너에게 친절하고 너를 존중하는 태도로 너에게 말을 걸고 너를 칭찬하면 어떨 거 같아?"

"부모님이 저를 그렇게 대하 면요? 상상하기는 어려운데...... 아마 저는 감동해서 울 거예요"


이런 식의 대화가 최근 들어 자주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로서 내담자와 내담자의 부모님들을 중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난주에 내담자에게 Release of information이라는 서류에 동의한다는 서명을 받고 구두로도 어머니와 만나서 이야기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오늘 그 아이의 어머니와 대화를 하고자 예약을 하게 된 것이다.


멀리 보이는 벌디 산을 보며 손에 쥐고 있던 커피 잔으로 커피를 거의 다 먹어 갈 무렵 노크 소리가 들렸고 이윽고 내담자의 어머니가 들어왔다. 어머니는 인상이 굉장히 좋았고 나이에 비해서 많이 젊어 보였다. 그리고 나와 바로 마주 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의자에 앉았다. 그 분에게 커피나 쥬스를 먹겠냐고 권했는데 괜찮다고 했다. 자리에 앉자마다 수줍게 웃으며 얼마 전에 나에게서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는 문자를 받고 아이가 무슨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걱정을 했다고 했다.


어머니에게 나는 아이의 심리적인 상황과 생활 패턴, 그리고 무엇 때문에 힘든지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했다. 어머니는 나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었고, 때로는 웃기도 하고, 때로는 놀라기도 하고, 때로는 걱정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내가 이런 자리를 마련하고 아이에 대해 자신이 잘 몰랐던 것들을 자세히 이야기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대화가 마무리 될 즘에 질문을 했다. 내가 아이에게 부모님이 자신을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하고, 가끔 성과를 내면 칭찬하기도 하면 어떨 것 같냐고 물어봤는데 뭐라고 답했을 것 같냐고 묻자, 그녀는 "그런 일은 없을 걸요?"라고 하지 않았냐고 했다. 내가 그 아이는 "나는 감동해서 울어버리겠죠"라고 답했다고 하자,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고 이내 눈시울이 빨개지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어머니로서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너무 앞서서 그렇게 아이를 차갑게 대해왔던 것 같다고 흐느끼며 말했다. 어머니는 자신이 아이에게 상처 준 몇 가지 일화들을 이야기했는데, 신기하게도 그 일화들은 내담자 아이가 자신이 상처 받은 경험으로 내게 말해줬던 그 일화들과 같은 일화들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무슨 상처를 주었고, 무슨 상처를 받았는지 서로 잘 알고 있던 것이었다. 그들이 그 일화들에 대해서 그 이후에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모르겠다. 내담자에게 듣기로는 그런 일들을 잘 끄집어 내지도 않고, 어쩌다가 대화를 하게 되도 어머니가 간단히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만 변명하며 둘러대듯이 말해서 자신도 더 깊은 대화를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연신 이런 대화를 하게 되어 고맙다는 말을 하며 자리를 떠났다. 그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족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의 존재들인데 그 사이에도 쉽게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이 쌓여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가 같은 집에 살지만 가까운 만큼 먼 부분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뭔가 쓸쓸한 기분이 되었다.


다행히도 그 만남이 있은 뒤로 내담자는 부모님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고, 이제 부모님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이는 여전히 열심히 공부하고 있고, 자신의 꿈과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아이는 아직 부모님에 대한 관계나 감정이 쉽게 괜찮아진 것은 아니다. 내년이면 아마도 다른 주로 떠나서 먼 곳에 위치한 대학에서 의사라는 꿈을 위해 공부하고 있을 아이에게 캘리포니아를 떠나기 전 부모님과 최대한 풀 것은 풀고, 부모님과 동생들과 좋은 추억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니겠느냐라는 이야기를 최대한 직설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아이가 스스로 느낄 수 있게 전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이런 대화와 접근은 상담이라기보다는 심리 교육 (Psycho-education)에 가깝지만, 현재로서는 이런 것이 아이와 그 집에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판단해서 이런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오렌지 색으로 바랜 저녁노을이 예뻐서 잠시 인근 공원에 차를 세우고 벤치에 앉았다. 깊은 숨을 들이 마시니 순간적으로 왠지 한국에서 느꼈던 공기의 냄새가 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의 가족이 떠올랐고 나의 가족이 그리워졌다. 얼마 전 큰누나가 난소암 판정을 받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먼 곳에 떨어져 있는 나로서는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현재 누나는 우울증까지 생겨서 사람들과의 연락과 교류를 기피하고 있어서 나로서도 연락을 하기가 조심스럽다. 작은 누나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큰누나가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아왔고, 자신감도 없고, 그래서 우울해졌고, 얼마 전에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신체검사를 하다가 자궁에 혹이 발견되었는데, 자궁을 통째로 제거하는 수술을 하다가 우연히 난소암이 발견된 것이라고 했다. 다행히도 1기에 발견이 되었고, 다른 부위로 암세포가 전이되지는 않았다. 현재 누나는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큰누나는 그 보다 훨씬 전부터 우울증을 심하게 겪어왔다. 큰누나는 배려심 있고, 유머감각이 있고,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그런 누나가 20대 후반 무렵 개인적인 상실감을 겪고 뭔가 변했다는 것을 나는 느꼈다. 누나는 결혼을 하고 애들을 낳고 바쁘게 살았고, 나도 회사 생활과 유학생활, 그리고 미국에서 일을 하면서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다른 길로 가면서 서로 점차 멀어져 버렸다. 작은 누나에게 들었던 말 중에는 큰누나가 내게 받은 상처도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왠지 그 상처도 큰누나에게 충격과 스트레스를 주어 난소암을 일으키는데 영향을 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왜 상처와 슬픔, 상실감의 이야기를 쉽게 그 때 그 때 하기 어려운 건가? 만일 누나가 내게 섭섭하고 상처되었던 이야기를 보다 편하게 그 때 이야기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니면 내가 그런 누나의 마음을 미리 눈치 빠르게 알아채고 누나에게 다가가 누나에게 사과하고 누나를 위로했더라면 어땠을까? 연장자로서 먼저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싫은 소리 하기를 싫어하는 누나의 성격으로는 더더욱 그러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 내가 여기서 누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의 마음과 심리를 치료하는 심리상담사로 일하면서 정작 누나를 위해서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생각에 무기력하고 우울해졌다.



내 표정이 심각하고 슬펐는지, 앞에서 놀고 있던 꼬마들이 나를 유심히 쳐다봤다. 그리고 그 아이의 엄마들도 나를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어쩌면 나는 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거기서 울고 있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머릿속에는 큰누나와 함께 했던 지난날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고, 나는 그것에만 집중했었을 뿐이니까.


10년 뒤, 내가 이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어떻게 해서든지 후회하게 될 부분을 최소화하고 싶다. "그 때 내가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라는 이런 후회들 말이다. 그러려면, 어색함을 무릅쓰고서라도 내가 할 일을 빨리 찾아서 지금 여기서 당장 실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여기서 당장 말이다. 최소한 가족에게는 말이다.


누나, 내가 미안해. 조만간 한국에서 꼭 만나자.

건강해야해

========================================================


*닥터부메랑의 유튜브에 방문해주세요

많은 관심과 구독 부탁해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a2Hpyxxe7kozsCGldkUTqw?view_as=subscriber

이전 05화 삶의 의미에 대한 재구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