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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부메랑 Jun 20. 2022

심리상담사도 상담이 필요하다

지쳐갈 때 내민 나의 손을 잡아준 그 분들

 초여름을 맞아서 날이 더워져 가고 있다. 이제 아침에 일어나도 이미 해가 빨갛게 떠있고 조금만 움직여도 살짝 땀이 나는 느낌이 들고 아침에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것도 조금 어색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창 밖을 보니 뜨겁고 환한 태양이 플래시처럼 눈부시게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깊이 심호흡을 했다. 어젯밤 잠을 잘 못 잤다. 새벽에 2시에 한 번 , 그리고 4시가 조금 넘어서 한 번 더 깼다. 악몽을 꾼 것은 아닌데, 정확한 이유를 찾기 어렵지만 잠을 깊이 제대로 자지 못했다. 약 2주 전부터 이런 식으로 수면의 질이 저하되었고, 낮에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식욕도 예전과는 다르고, 무엇을 먹어도 그다지 맛있지 않다. 그리고 지난 3달 사이에 살이 7킬로 정도가 이유 없이 감소했다. 내가 스스로 내 상황을 점검해보면 내가 정신적으로 또는 감정적으로 번아웃되어가고 있다고 느껴진다.



짐작되는 이유들로는 몇 가지가 있다. 몇 년간 이어진 코로나 팬데믹 상황, 물가 상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공적인 이슈들은 나도 모르게 내 에너지를 조금씩 누수시켜 왔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담당하고 있는 상담 케이스들이 급증하고 있는 데다가 연구 프로젝트까지 더해져서 계속 바빠지고 있고, 누나가 항암치료를 받고 있으나 난소암의 재발률이 다른 암에 비해 높다는 점에서 느껴지는 불안감, 한국에 방문을 한 지 오래되어 멀리 떨어져서 지내고 계신 부모님과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과 걱정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친하게 지냈던 지인 부부가 멀리 떠나게 되어 일종의 상실감을 느끼고 있는 것 등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힘이 들고 번아웃되려는 조짐이 있을 때 나는 나의 의지나 마음 속의 목소리보다는 내 몸의 목소리를 더 경청한다. 몸이 보다 정직하고 정확하기 때문이다. 약 2주 전부터 가슴이 답답해질 때가 있었고, 아침에 속이 안 좋고, 밤에 잠이 잘 안 오고 잠이 와도 중간에 깨는 이런 증세가 생겼다. 틈이 날 때마다 운동을 하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인근 지역에 자주 가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면서 셀프케어 (Self-care)를 하려고 나름 노력했으나 순간적인 호전이 있었을 뿐 별다른 차도가 없었다. 당연히 남들이 보기에도 내가 표정이 지쳐 보이고 뭔가 에너지가 예전보다 없어 보였던 것 같다.


며칠 전 오전에 미팅이 끝나고 디렉터가 개인 면담을 하자고 연락을 했다. 면담을 하자는 연락을 받았을 때 많은 생각이 들었다. 면담은 보통 이유가 있어서 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 이유들은 대부분 내가 책임지어야 할 어떤 문제나 잘못에 대해 지적받거나 질의를 하기 위한 것들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뭘 잘못했나?'라는 생각에 다소 불안해하며 디렉터의 사무실에 들어갔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디렉터는 내게 블랙커피를 한 잔 따라주었다. 그리고 최근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의 진행상황에 대해 간략히 물어봤다. 일들의 진행상황을 간단히 브리핑하자, 자신이 도와주거나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해 줄 만한 일을 없냐고 물어봤다. 뜻은 고맙지만 별로 그럴 필요는 없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대뜸 말했다.


"요즘 상담사님이 뭔가 힘들어 보이고 불안해 보여서 그래요. 뭔가 문제가 있나요?"


이 말을 듣고 나는 마시던 커피를 탁자에 내려놓고 그를 말없이 바라봤다. 순간적으로 뭔가 잘못한 것은 없는데 마치 잘못을 하다가 선생님에게 걸린 학생처럼 긴장감이 느껴졌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제가 예전부터 자주 말했지요? 상담사님은 종종 셀프케어를 소홀히 해서 제가 걱정이 된다고 말이죠. 열심히 사는 것도 좋지만 가끔 보면 너무 무리하고 제대로 쉬지도 않고 셀프케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아요"


숨길 필요가 없는 일이므로 나는 최근 나의 상황과 상태를 그대로 설명했다. 내 말을 듣고 디렉터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알았어요. 알려주셔서 고마워요...... 그럼, 제가 제안을 하나 하죠. 제가 아는 동료 상담사들의 프로필을 알려줄 테니 그 중에서 한 명을 골라서 그 분에게 상담을 받도록 하세요. 상담비용은 우리 사무실에서 대신 지불하도록 하지요"


그 제안에 대해서 반대할 이유는 없었지만 뭔가 어색했다. 그 어색한 기분이 어떤 생각이나 감정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디렉터가 나를 꽤 배려하고 있다는 생각에 일단 고맙다고 인사하고 생각해 보고 결정한 뒤 알려드리겠다고 답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왔다.



심리상담사에게도 역시 상담은 필요하다. 나도 심리상담을 받아야 한다. 나름대로 셀프케어를 한다고 여러 가지 해봤는데 왜 이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일까? 나도 예전에 상담을 받은 적은 몇 번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 동료 상담사들 중에서도 상담을 정기적으로 받고 있는 상담사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색해할 일은 전혀 아니다. 하지만 상담사와 내담자가 앉는 사무실의 그 두 의자에 이제 내가 다른 쪽 자리의 의자에 앉는다고 상상하니 그 자리에서 무슨 말을 하고 무엇을 어떻게 할지 딱히 감히 잡히지 않았고, 아마 그런 애매함이 내게 순간적으로 어색한 느낌을 갖도록 한 것 같았다.


디렉터가 소개해준 상담사들 중에서 2 명을 선택해서 디렉터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 분들과 엊그제와 어제저녁에 각각 약속을 잡아서 상담을 진행했다. 두 분 다 60대 나이의 경력이 많은 분들이고 한 분은 여성분이고 다른 한 분은 남성분이다. 오랜만에 내담자가 되어 나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상담을 받으며 내담자가 이야기를 쏟아내고 그 이야기가 경청되고, 집중되고, 공감을 바탕으로 이해될 때의 기분이 어떤지를 느낄 수 있었다. 상담 후에는 내가 무슨 말들을 했는지에 대한 생각보다는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던 무거운 돌들 중에 돌덩이 몇 덩이가 없어진 느낌이 든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가슴이 가벼워졌고, 위안을 느꼈고, 뭔가 희망의 빛을 조금 본 느낌이라고 표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분들이 내게 했던 말과 반응, 그리고 제안들도 많았으나 가장 인상 깊게 또는 효과적이었다고 기억되는 것은 그분들의 느낌과 향기, 그리고 나와 함께 했던 그분들의 동행적 존재 그 자체일 것이다. 앞으로 이 분들과 몇 차례 상담을 더하게 되었다. 다음 주가 기대가 된다는 것은 이 분들이 상담사로서 오늘 자신들의 몫과 역할을 꽤 잘했다는 뜻일 것이고, 동시에 상담사의 일에 대한 의미와 그 가치에 대해 내가 재확신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모두 사연과 이야기가 있고, 우리는 모두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돌보는 '(Care-giver) 된다는 것은 뜻깊은 일이다. 그동안 나는 심리상담사로서의  일에 대해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일에 매진해왔다. 나는 상담사이고 상대방은 내담자였다. 나는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 (Care-giver)이었고, 상대는 돌봄을 받는 사람 (Care-taker)이었다. 이런 이해의 틀은  사람 사이에 뭔가를 주고받는 일종의 Give and Take원칙에 입각한 관계를 맺도록 하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내가 뭔가를 주면 상대방도 뭔가를 내게 주며 일종의 교환 (Transaction) 이뤄지는 그런 관계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내담자의 입장이 되어 상담을 받으며 느낀 것은 그런 Give and Take관계보다는  둘의 관계는 Give and Give관계로 이해되어야 하는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탁구선수로 비유하면 내가 상대에게 볼을 받아  볼에  좋은 에너지를 더해서 상대에게 공을 넘기고 상대방도  공에 다시 새로운 에너지를 더해서 내게 볼을 전하고 이런 관계가 지속되어 일종의 긍정적인 나선(Positive spiral) 선순환이 이뤄지는 관계가 유지되는 플레이를 하는 것이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일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단순하게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요구되는 그런 관계의 질일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 능력주의, 외모주의, 성차별, 학벌주의, 연고주의 등의 수 많은 담론들의 교차점에 서서 그 압력이 주는 요구에 따라 살다 보면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삶보다는 일종의 사회의 제품으로서의 삶을 살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압력 속에서 나의 주체성과 목소리, 나의 가치가 묻히기 때문이다. 이번 주에 상담을 받으며 느낀 감정과 새로운 생각들은 내게 일종의 작은 희망과 안도를 주었다. 그 희망과 안도를 느끼게 된 가장 큰 이유들 중에 하나도 바로 내가 사회의 제품이 아닌 한 명의 인격과 개성을 가진 주체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살아도 된다는 생각이 재확인되고 지지되고 격려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와 상담을 한 그 상담사 분들의 나와 함께한 그 소중한 동행과 함께해 줌에 대해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이번 경험은 앞으로 내가 상담사로서 내담자들과 어떻게 하면 보다 효과적이고 긴밀한 치유적 관계를 구성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건강한 고민을 하게 해 주었다.


이제 내 앞에 앉아있는 내담자의 눈동자에 비친 상담사로서의 내 모습과 역할을 조금 더 새롭고 넓은 시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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