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누군가의 이모님 아니면 어머님으로 살아 왔던 영숙은 오십 대의 시작을 맞이함과 동시에 세상을 떠났다. 열 아홉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주연을 가진 그는 대학교 합격증을 방구석에 밀어 넣고 비정규직의 전선에 뛰어 들었다. 최근까지 영숙이 일했던 곳은 대형 마트였고 그는 거기에서 시식코너를 담당했다. 만두, 튀김, 떡갈비, 볶음밥 등 그때그때 출시되거나 할인을 진행하는 냉동식품을 먹기 좋게 한입거리로 소분하여 자신을 무시하고 지나가는 손님들에게 권유했다. 교복을 입은 주연이 친구들과 함께 마트에 찾아와 엄마를 부를 땐 필사적으로 제 딸을 모른 척했다.
엄마는 날 보면 안 반가워? 왜 인사 안 받아줘? 열 시가 넘어 퇴근하고 돌아온 저의 등 뒤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딸이 그리 물을 때면 영숙은 쓰게 웃었다. 그랬다가 네 친구들이 널 무시하면 어떡하려고. 쟤네 엄마 마트 시식코너에서 일한다더라 같은 사실과 다를 바 없지만 충분한 모욕으로 느껴지는 말들을 너의 면전에 대고, 혹은 너의 뒤에서 몰래 떠들면 엄마는 어떻게 해야 하니. 그 모든 말을 주연에게 할 수는 없어 영숙은 웃기만 했다. 내 아이에겐 듣기 싫은 소리 하나 하지 않겠다던 스스로의 다짐이 굳건했던 탓이다. 주연은 언제나 확실한 대답 대신 웃음으로 회피하는 엄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춘기에 접어 들면서 엄마와 딸 사이의 정서적 거리가 멀어진 건 아마 이러한 연유 때문일 것이다.
엄마의 노고를 아는 건지 주연은 사고 한 번 치지 않고 성실한 인생을 살았다. 누구나 들어도 알 법한 회사에 입사한 주연은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시간 날 때 반찬도 가져다 주고 바쁘면 청소나 빨래도 해주겠다는 영숙의 제안이 그저 부담스러웠다. 모른 척 현관문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았기에 영숙은 새벽 일찍 택배로 반찬을 보내면서 가는 길에 상하진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퇴근하고 돌아 오면 녹초가 되어버리는 주연은 영숙이 보내준 반찬을 대부분 먹지 못하고 그대로 버리는 일이 잦았다. 배달음식 쓰레기와 함께 음식물 쓰레기도 나날이 쌓여 가던 젊은 날을 회상한다.
위아래로 시꺼먼 색의 옷을 걸치고 머리를 하나로 단정하게 내려 묶은 주연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붓기는 커녕 붉은 기 하나 없는 버석한 눈가를 통해 주연이 울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느덧 서른 살을 넘긴 주연에게 장례식과 같은 누군가의 죽음은 낯선 일이 아니었다. 그는 제 앞에 놓인 모든 절차를 하나씩, 묵묵히 밟아 나갔다.
피곤하게 묫자리 알아보고 그러지 마. 요즘 땅도 부족하다는데 다 죽은 사람 뼈다귀를 묻어서 뭐 하니. 어차피 다 썩어서 가루가 될 거, 그냥 미리 태워 버려. 납골당에 넣지도 마. 그것도 다 돈이야. 네가 어떻게 번 돈인데 그런 일에다 쓰니. 어디 저 강가나 바다에다 뿌려 버려. 사람들 잘 안 와서 조용하고 약간 음산하기까지 한 곳 있잖아. 엄마는 조용한 게 좋아. 사는 동안 너무 시끄러웠으니까.
본인이 곧 어떤 일을 당하게 될 거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어느 날의 영숙은 뜬금없이 장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걸 기억하고 있던 주연은 영숙의 말을 거역하지 않았다.
살아 있을 때의 엄마는 나보다 키가 작긴 해도 폭이 좁고 아래로 굽은 등을 보고 있으면 단 한 번도 작은 존재처럼 느껴지진 않았는데. 이 세상에서 엄마가 차지하는 부피가 너무나도 작아졌어. 언제나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하던 엄마는 청계광장에서 모두의 앞에 서 있을 땐 깜짝 놀랄 만큼 큰 소리를 냈지. 안 좋은 일을 당하진 않을까 걱정되어서 몰래 따라갔다가 본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 그때도 엄마는 절대 오지 말라고 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 같은 거 아르바이트도 해본 적 없는 주연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였다. 요즘 엄마 일 하는 건 어떠냐고 물어볼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빨간 조끼를 입고 마이크를 쥔 채 나머지 손으로는 주먹을 꽉 쥐고 있는 영숙의 사진은 기사에 그대로 실렸다. 주연은 저도 모르게 출력해서 가져온 그 사진 한 장을 주머니에 고이 넣어두었다. 엄마의 마지막을 엄마도 함께 보라는 듯이.
되짚어 보면 엄마 일하는 곳에 오지 말라던 당부는 결국 지키지 못했던 것 같다. 영숙이 일하던 마트도, 영숙이 성대가 찢어져라 목소리를 내던 광장도. 주연은 전부 찾아갔으니까. 나 때문에 엄마는 비참해졌을까, 아니면 힘을 얻었을까. 엄마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주연은 함을 열어 잿가루를 한 움큼 쥐었다. 바닷바람을 타고 허공에 흩어지는 엄마를 말없이 응시했다.
그제야 주연의 눈동자가 서서히 젖어 갔다. 그는 생각했다. 이건 무엇 하나 요구한 적 없던 엄마를 위해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