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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싸 Mar 26. 2024

눈물

 마을로 돌아오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솁의 차 안. 하늘은 파랬고, 솁이 특별히 엄선한 걸그룹들의 밝은 노래로만 구성된 <상큼한 노래> 플레이리스트가 재생되고 있었다. 소보로가 황교수를 만나 상담을 시작한 지 오늘로 네 번째가 되는 날이었다. 상담을 마치고 소보로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희미하게 웃으며 ‘좋은 시간이었어요’라고 말할 뿐이었다. 창밖을 응시하며 생각에 빠진 소보로의 얼굴에서는 어떤 표정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솁은 그런 소보로를 힐끗 쳐다본 후 오늘 저녁은 무얼 먹어야 모두가 즐거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모짜렐라 치즈가 유통기한이 간당간당했던 것 같은데, 오늘 저녁에 피자나 만들어 먹을까?”


솁의 물음에 어쩐지 아무 대답도 없던 소보로가 별안간 끅끅 울음을 참는 소리를 냈다.


“야, 넌 피자가 싫으면 말을 하지, 왜…”


솁은 당황하며 휴지를 꺼내 소보로에게 내밀었다. 겨우 끅끅 울음을 참던 소보로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솁은 그런 소보로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상처를 직시하게 되었구나. 그래서 이제야 아프기 시작한 거구나… 솁은 말없이 음악소리를 키웠다. 소보로는 아이처럼 소리를 내며 펑펑 울기 시작했다. 소보로의 마음이 느껴지는지 솁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송이가 없는 시간 동안 소보로는 스스로에게 집중했다. 

자신을 알고 이해하기 위해서 심리학 책을 찾아보고 공부를 했다. 솁의 도움으로 상담심리학 교수인 솁의 아내 황교수를 만나 몇 차례 상담을 진행하면서 스스로의 내면에 쌓인 아픔을 마주하고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 힘듦을 극복하기 위해서 자신이 선택한 방법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방법이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힘들게 했는지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소보로는 불과 1년 사이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처를 겪었다. 

이 정도의 아픔은 누구나 겪는 것이라고, 별로 대수롭지 않은 상처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애써 가볍게 치부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소보로의 마음이 스스로를 세뇌시켜 왔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황교수는 여러 사례를 보여주며 소보로가 받은 상처가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고, 소보로가 스스로의 상처를 직시하도록 만들어주었다. 상처를 제대로 바라보아야 내가 얼마나 아픈지 알 수 있고, 그래야 적절한 치료를 하고 새살이 돋는다는 것이 황교수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소보로에게는 그저 이론이고 남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정말 이제는 아무렇지 않은 것 같은데, 억지로 감정을 끌어내서 괴로워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 그동안 아무렇지 않다고 믿어왔는데, 그동안 마음속에서 자라 스스로의 마음을 가둬왔던 견고한 둑이 지금 갑자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가족들이… 너무… 보고 싶어요…”


소보로는 울음을 겨우 삼키며 힘겹게 한 마디씩 내뱉었다. 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소보로의 어깨를 다시 두드려 주었다.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어요?”


황교수는 언제나처럼 따뜻한 미소로 소보로를 맞이했다. 벌써 다섯 번째 만남인데, 소보로는 이제야 황교수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이렇게 따뜻하게 웃어주는 분이셨구나…’ 소보로는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끼며 대답했다. 


“잘… 지낸 것 같아요.”

“정말요? 맨날 똑같았다고 하더니, 이번주는 다르네요?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있었나요?”


황교수는 환하게 웃으며 다시 물었다. 소보로가 민망한 듯 웃으며 대답했다.


“울었… 어요.”

“그래요?”


미소를 지으며 울었다고 말하는 소보로의 눈에 다시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기 시작했다. 소보로가 소매로 대충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게 이상한 게… 한번 그렇게 터지고 나니까…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요. 뭐가 고장 난 것 같아요…”


황교수는 소보로에게 갑 티슈를 밀어 건네며 웃었다.


“고장 난 게 아니라, 이제 고쳐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어때요? 기분은?”


소보로는 잠시 생각을 하며 머뭇거렸다. 지금의 기분을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단어를 찾는 듯했다. 


“음… 후련… 한 것 같아요. 그리고…”


황교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소보로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가족들이… 보고 싶어요…”

“가족들 중 누가 제일 보고 싶어요?”

“… 아버… 지요.”


황교수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아버지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하고 싶어요? 죄송하다는 말은 하지 말고! 소보로씨가 죄송할 건 하나도 없으니까.”


소보로는 마음을 들킨 듯 머뭇거렸다. 그리고는 어렵게 겨우 입을 열었다.


“그냥… 글쎄요… 하고 싶은 말은 사실 죄송하다는 말 밖에 떠오르지가 않아요… 그땐 너무 철이 없어서… 아버지를 미워해서 죄송하다고… 아버지 혼자 그 무서운 일을 감당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황교수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아버지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황교수의 질문에 소보로는 고민을 하다가 멈추었던 눈물을 다시 쏟아냈다. 


“잘… 컸구나… 그동안 열심히 살았구나… 고생… 많았구나… 그런…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 어요…”


울먹이며 겨우 말을 마친 소보로를 황교수는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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