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는 필수품이다. 모든 사람들에겐 위로가 필요하다. 수요에 비해 공급은 늘 부족하다. 위로가 유행인 시대지만 유행은 소수만 누릴 수 있는 기호일 뿐이다. 다수가 흉내 내지만 진짜는 충분하지 않다. 내가 이렇게 위로했으니 너는 그만 징징대고 어서 일어나!!! 어떤 건 혼나는 기분까지 들기도 한다. 대량 생산된 모조품 같은 말들이 갈겨써진 도배지로 싸인 좁은 방에서 귀를 막고 쭈그려도, 위로 같잖은 말들은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위로의 알고리즘은 위로만 없는 곳으로 데려간다. 그곳엔 위로를 파는 장사꾼들이 즐비하지만 기대한 위로를 품고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은 없다. 위로의 치유력은 주장에 그칠 뿐이다. 하트 뿅뿅은 더 이상 아무런 감흥조차 주지 못한다. 하지만 이조차도 너무 필요한 위로 결핍자들은 여전히 많다. 가판에서 막판 세일 가격으로 파는 위로라도 급한 대로 주워 담아야 한다. 누군가는 어떤 방식으로라도 위로를 공급받은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누군가는 그만큼 위급할지도 모르니까.
최근 몇 주 동안 가까운 이들의 여러 고난을 간접적으로 겪었다. 나는 너의 허상이 아니고 나는 너의 사라진 과거가 아니라서 나는 실존하는 사람이고 말과 글을 구사하며 당신이 힘들 때 최소한의 정성을 다해 벼랑 끝에 매달려 울고 있을 당신의 감정 상태에게 완전한 고립은 없다고 당신의 지금은 결코 생의 마지막 장면이 아니라고 정중하게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하며 조금 더듬으며 조금이라도 다치지 않을 단어들을 떠올리며 위로의 임무를 다하고 싶었다. 그 시간 나는 유일한 대화 상대였고 네가 누구든 어디서 무얼 하며 살았고 무엇을 후회하든 스스로에게 버려지지 않고 좀 더 나은 처우를 보장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걸 (모를 리 없겠지만 혹시 잊었다면) 알려주고 싶었다. 적어도 네 곁에 이런 말 같지도 않고 와 닿지도 않지만 열과 성을 다해 이렇게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지 않냐... 그러니까 화마 같은 감정의 폐허에 같이 뛰어들어 니 옷자락을 움켜 잡으려는, 구조대원을 생각해서라도 좀 살려고 버둥거리기라도 해 봐...라고 전하고 싶었다. 바람일 뿐, 결과는 알 수 없다. 그래 이렇게 내가 중요한 지인이다 라고 전시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네가 더 부서지지 않길 희미해지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나도 누군가의 값싼 위로를 흉내 내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싸던 비싸던 니 자아가 옅은 숨이라도 쉴 수 있다면 바이탈싸인이 다시 춤출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